6
이튿날 아침때 주팔이가 형의 집에 와서 보니 윗방 아랫방 할것 없이 방문은
모두 닫히었고 잡안이 괴괴하여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윗방 문을 열어본즉 형은
없고 형수가 포대기 같은 처네 쪽을 덮고 누웠다가 문 여는 소리에 놀라 일어나
며 “아재요? 잘 왔소. 어젯방을 반짝 새우고 하도 곤하기에 눈을 좀 붙이고 아
재에게 가려고 했더니 마침 잘 왔소. 이리 들어와 이야기 좀 들으시오.” 하고
처네를 치운다. 주팔이가 밖에 서서 “형님은 어디 가셨소?” 물으니 그 형수는
“아니 글쎄 들어와 이야기를 들으시라니까 그러오.” 방으로 들어오라고 재촉
하여 주팔이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 형수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제 봉단이가 냇가에 있는 것을 불러 보내셨다지? 집에 와서 저녁밥 먹기
까지는 천연스럽게 별말 없던 아이가 저녁을 먹고 난 뒤에 저의 아버지와 나를
보고 김가를 도로 불러달라기에 내가 좀 나무랐더니 두말 아니하고 일어서서 아
랫방으로 갑디다그려. 그런데 일어설 때부터 눈치는 달랐었어. 그년의 눈치가 수
상하다고 우리 내외가 말까지 하였었지. 일어서 나간 뒤에 불과 얼마 동안 안
되어서 형님이 아랫방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듯하다고 가본다고 나가더니 아랫
방 문을 열자마자 큰일났다고 소리를 지릅디다. 겁결에 맨발로 뛰어가 보니 그
년이 목을 맸습디다. 시렁에 목을 맸습디다. 곧 끌러놓았지만 벌써 얼굴이 새파
랗게 질렸지요. 주무르고 문지르고 해서 간신히 기운을 돌렸는데 그년이 정신을
차린 뒤부터는 울고 불고하며 죽게 내버려 두라고 몸부림을 치며 야단이지요.
그리고 나중에는 미친년 날뛰듯 하는구려. 수건이고 노끈이고 칡껍질이고 무엇
이고 눈에 보이는 대로 집어다가는 목에 대고 동이려고 하니 가만 내버려둘 수
가 있어야지. 형님하고 나하고 그년을 붙들고 앉아서 밤을 새웠소. 형님은 지금
도 그년을 지키고 앉았지요. 대체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오? 딸자식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저 모양이니 그야말로 죽으라고 내버려둘 수도 없고 기가 막히
오그려.” 하고 그 눈에 눈물이 도는 것 같았다.
주팔이는 봉단이가 꾀를 쓴 것이로구나. 자기가 입이 닳도록 말하여야 형수의
고집이 풀릴지말지 생각하고 왔었는데, 지금 형수가 봉단의 꾀에 빠졌으니 남은
고집쯤은 풀기가 쉬우리라 생각하며 “큰일날 뻔했습니다그려. 그래도 미리 구
하셨으니 천만다행입니다. 사람이 열에 뜨이면 미친 것 같고말고요. 봉단이가 소
명한 아이라 조만한 일에야 미친 것같이 날뛰도록 되겠습니까? 제 맘에는 꼭 맺
힌 것이 있어 그런 것이니까 그것을 풀어 주어야지요.” 말하고 걱정하는 빛을
보이니 그 형수는 아직도 김서방을 불러들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그년의 맘
에 맺힌 것이라면 잘난 서방이겠지. 모든 것이 김가 망한 놈의 탓인 것을 생각
하면 사람이 분통이 터져 죽겠구려.” 열을 내며 고개를 외로 친다.
사위가 장인 장모의 맘에 들고 안드는 것은 둘째나 셋째 일이고, 첫째가 딸의
내외 상득하냐 아니하냐 볼 것인데 사위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상득한 내외의
사이를 억지로 떼려는 것은 옳지 않은 생각일 것이라고 주팔이는 완곡하게 말을
하여 그 형수가 주팔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주팔이는 그 형수의 입에서
김서방을 불러오자는 말이 나오도록 하려고“아주머니가 잘 생각해서 처단하셔
야 합니다.” 하고 대답을 기다리다가 형수가 입맛만 다시고 있는 것을 보고 아
랫방에를 가보고 오겠다고 일어서 나가려고 하니 형수는 “에이.” 소리 한마디
를 내고서 “그애 아버지를 오시래서 의논을 작정합시다.” 하여 주팔이가 방문
을 열고 아랫방을 향하여 “형님, 형님.” 불러서 주삼이가 윗방으로 올라오는데
머리는 헙수룩하고 눈알은 붉었었다.
주삼이가 “너 왔구나!” 아우가 온 것을 든든히 여기며 “이야기 들었겠지?
어떻게 하면 좋겠나?” 아우의 소견을 묻는다. 주삼의 안해가 수숙간의 의논한
말을 대강 남편에게 들려주고 “게으름뱅이 그 자식을 다시 불러들여야 될 것
같소.” 말하며 불쾌한 심정을 억제하려는 듯이 방문을 열고 침을 뱉으니 주삼
이는 따라서 침을 뱉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더니 질들 생각했군. 사위 내쫓다
가 딸 죽이겠어.” 김서방을 불러들일 의논이 쉽사리 작정되었다. 주팔이가 어제
저녁때 김서방이 자기 집에 있는것을 말하니 주삼이는 그 아우를 보고 “찾아다
니지 않겠으니 잘되었다. 지금 네가 가서 데리고 오너라.” 말하여 주팔이가 김
서방을 데려오게 되었다.
제 7장 반정
1
김서방이 다시 처가로 들어온 뒤에 집안에 있어서 게으름뱅이란 별명을 듣고
밖에 나가서 백정 사위란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전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해 겨울 돌림감기로 사람이 많이 상하였다. 주삼의 집의 중늙은 내외 젊은
내외 제 식구는 다행히 무사하였으나 주팔의 안해가 죽고 돌이 집에서는 돌이의
아버지가 죽었다.
주팔이는 상처한 뒤에 안해가 누중에 큰 누라고 재취할 생각이 없어서 그의
오막살이 살림을 걷어치우고 형의 집에 기식하게 되었고, 또 돌이는 상제 된뒤
에 당시 금법으로 삼년상을 입지 못하였으나 전 같으면 겹상제의 몸이라 성취가
급할 것이 아니라고 주팔이가 말을 일렀을 뿐이 아니라 당사자가 이쁜 색시를
만나기 전에는 총각으로 늙어도 좋다고 장가를 들지 아니하여 떠꺼머리 총각이
혼자 살림하기어려워서 고모의 집에 기식하게 되었는데, 돌이의 집이 방이 많은
까닭으로 주삼이가 외딴 마을집을 비워두고 돌이의 집으로 이사하였다.
세집이 합솔한 뒤에 김서방은 장모의 구박 외에 간간이 돌이의 퉁명을 받지
만, 봉단의 위로와 주팔의 두둔을 함께 받게 되어 모든 것이 합솔 전만 못하지
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의 신세는 들면 박대요, 나면 천대라 그가 뱃심을 부리
며 하루를 보내고 구역을 참으며 이틀을 보내는 동안에 지리한 세월이 지나가서
김서방이 주삼의 집에 데릴사위 노릇한 지 이제 3년이 되었다.
기러기 남으로 날아가고 국화꽃이 피려 하는 구월 초생이다. 어느 날 저녁때
돌이가 읍에 갔다 돌아와서 방에도 들어오지 아니하고 마당에 선 채 “다들 이
리 나와 이야기 좀 들으시오.” 소리를 지르니 저녁밥을 먹고 방에들 들어앉았
던 주삼의 내외와 김서방이 무슨 일이 났나 하고 아래윗방에서 각각 방문을 열
고 내다보았다.
이때 주팔이는 영흥 땅에 볼일 보러 가서 집에 없고 봉단이는 밤다듬이하려고
일지의 집으로 홍두깨를 빌리러 가서 집에 없었다. 주삼의 안해는 돌이가 소리
지른 데 홧증을 내어 “갑자기 미쳤니? 무슨 소리를 그렇게 지르니! 사람이 초
풍을 하겠구나.” 돌이를 나무라니 돌이가 무정지책을 듣는 데 속이 상한 듯이
입을 삐죽하고 “내가 무슨 소리를 질렀어요. 아주머니는 공연히 남을 나무라는
구려. 미치기는 읍내 사람들이 모두 미쳤습디다.”나무람을 받고 발명하는 동안
에 이야기하려던 흥심이 꺽인 듯이 "옵이 법석한 소문을 이야기할랬더니 고만두
시오.“ 하고 자기의 방으로 가려고 할 때, 주삼이가 “이애!” 불러서 “무슨
소문이냐?” 물었다. 돌이는 조금 불쾌한 기운이 있는 말로 “무슨 소문이 무어
요. 읍내는 지금 야단법석입디다.” 하고 주삼의 방으로 가까이 와서 “새 상감
이 났다고 옥문을 열어제치고 죄인들을 내놓고 야단인데 옥에 갇히지 않았던 사
람들도 경사가 났다고 들뛰어서 부중 안이 와글와글합디다.”
주삼이가 미처 무어라고 말하기 전에 김서방이 자기 방에서 뛰어나와서 돌이
에게 말하는데 “무어, 새 상감? 이야기 좀 자세히...” 뒤를 채지 못하도록 말이
급하니 돌이는 어기어 천천히 “그래요, 새로 상감이 났대요” 하고 웃으며 김
서방의 모양을 바라보았다. 돌이가 어기대는 바람에 김서방도 찬찬한 말로 “새
상감이 나다니, 국상이 나고 새 임금이 섰단 말이지?” 물으니 돌이는 고개를
가로 흔들고 “국상은 무슨 국상. 국상이 나면 천하상을 불게. 망한 상감은 내
쫓기고 새로 상감이 났대.” “새 상감이거나 헌 상감이거나 우리에게야 무슨
상관이 있어? 망한 상감이 내쫓긴 건 해로울 것이 없지만 경사가 났다고 뛸 것
까지야 없지그려.” “읍사람들 하는 꼴이 하도 우습더라니. 김서방, 내일이라도
들어가 구경 좀 하라구.”
혼자서 내리 지껄이고 김서방은 한참 동안 얼빠진 사람같이 아무 말이 없이
서 있다가 미친 사람같이 홀저에 껄껄 웃으며 도로 자기 방을 향하여 성큼성큼
걸어갔다. 돌이는 김서방의 뒤에 손가락질하며 “뛰는 사람들보다도 한술 더 뜨
네.” 하고 주삼의 안해에게 향하여 “아주머니, 내 밥 어디 있소?” 물어 “너의
방 웃목에 상을 차려놓았다.” 하는 대답을 듣고서 돌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
다.
2
그날 아랫말에서 읍에 갔다온 사람이 돌이뿐이 아니었다. 그 사람들의 입에서
임금 갈리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여 “세상이 변했단다.” “천하 죄인을
모두 백방했답디다.” 와 같은 말이 잠깐 동안에 동네를 돌았다. 봉단이가 얻으
러 갔던 홍두깨는 얻지 못하고 “잠깐이라도 앉았다 가야지.” 하는 그 집 여편
네에게 붙잡히었다가 뜻밖의 소문을 얻어들고 급히 집으로 돌아와서 그 어머니
를 보고 “그 집에서 쓴답디다.” 홍두깨 못 얻어온 것을 말하고 곧 뒤를 이어
서 “오빠 왔세요?” 돌이 온 것을 물으니 그 어머니가 “왔다.” 대답하고 “
홍두깨가 없으니 오늘 밤 다듬이는 다했구나.” 일이 밀리는 것을 걱정하는데,
봉단이는 듣고 온 소문이 진적한가 알려는 맘이 급하여 “무슨 소문 들었다고
이야기합디까?” 묻고 그 어머니가 대답도 하기 전에 “오빠더러 물어볼까?”
말하니 그 어머니는 봉단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어보긴 뭘 물어보아. 읍내서는
야단이라더라.” 신통이 여기지 않는 나무람과 대수롭게 생각지 않는 대답을 함
께 끼어 하였다.
봉단이가 자기 방에 들어오니 김서방이 번듯이 누워서 물끄러미 바라보며 몸
을 조금도 움직이지 아니한다. 봉단이가 서서 김서방을 내려다보며 “사람이 들
어오는데 어쩌면 저렇게 모른 체하고 누워 계시오?” 성을 내는 듯이 나무라나,
김서방은 말이 없이 손으로 자기 누운 옆을 가리키어 앉으라는 뜻을 보일 뿐이
다. 봉단이가 김서방에게 가까이 와서 쪼그리고 앉으면서 “어디가 아프시오?”
물으니 김서방은 고개를 흔들며 봉단의 손을 덥석 쥐고 일어 앉는다. 앞으로 기
울어지는 봉단의 몸이 김서방의 품으로 들어가니 김서방은 그대로 끌어안으려는
듯이 한 팔을 봉단의 뒤로 돌리다가 고만두고 봉단을 일으켜 앉힌다.
봉단이가 김서방의 눈치를 보며 “서울 소문을 들으셨소?” 물은즉 김서방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여보.”하고 입을 열어 “서울을 가야 할 터인데 어찌
할까 생각중이오.”말을 하니 봉단이는 “내일이라도 나하고 같이 떠나십시다.”
하고 방긋이 웃는다. 김서방이 손을 맞비비고 앉았다가 “내가 읍에를 들어가서
진적한 소문을 알아보고 감사를 볼빡에.” 하고 양미간을 흉상스럽게 찌푸리고
머리를 긁으니 봉단이가 얼굴 빛을 고치며 걱정스러운 듯이 “감사를 보아도 좋
겠세요? 감사를 보실 수 있겠세요?” 연거푸 묻고 김서방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그의 얼굴빛이 불그레하여 술취한 사람과 같다. “감사를 보는 수밖에 없어. 내
가 내일 식전 일찍이 읍에를 갈 테야.” “아침도 아니 잡숫고?” “아침은 먹
든지 말든지.” “어떻게라니?” “의관을 아니해도 좋은가요?” “아, 참말! 의
관을 어찌하나?” “그러기에 보세요. 아침 일찍이 못 가세요.” “아침 일찍이
가든 못가든 의관을 어찌하면 좋아? 내가 쓰고 왔던 망건이 있지?” “있을걸
요.” 하고 봉단이가 손그릇 속에서 망건을 찾아내니 앞뒤 당 편자 할것 없이
곰팡이가 앉고 좀이 집어서 거의 손을 대기가 어렵게 되었다. 망건은 그나마 손
질하여 쓰기로 하고 또 도포는 혼인 때 입던 것을 쓰기로 하더라도, 정작 의관
중에 중요한 갓이 없다. 김서방이 한걱정을 하다가 봉단이가 “내가 돌이 오빠
를 졸라서 하나 얻어보리다.” 말하여 겨우 안심이 되었다.
봉단이가 김서방을 따라서 그날 밤을 뜬눈으로 새우고 이튿날 식전에 돌이를
보고 정답게 ‘오빠, 오빠’하며 갓 하나를 얻어 달라고 조르니 돌이가 처음에
는 “갓은 무엇할라나?” “김서방이 감사를 보러 가?” “감사를 보려다가 볼
기나 맞을라구?” 하며 듣지 아니하다가 나중에는 졸리다 못하여서 “누이의 청
으로 하나 얻어 보지?” 하고 얻으러 나갔다. 주삼의 내외가 이것을 알고 주삼
이는 “가사를 보다니, 세상이 변하였다니까 감사를 길가의 개똥같이 굴러다닐
줄 아는 게로군?” 빈정거리고 주삼의 안해는 “볼깃살이 가려운 게다. 지랄한
다.” 욕설하나 둘이 다 말리지는 아니하였다. 돌이가 양이 쪼개지고 모자가 찌
부러진 갓 하나를 얻어왔다. 김서방이 노끈 당줄로 그 헌 망건을 어름어름 만져
쓰고, 또 노끈 갓끈으로 그 헌 갓을 졸라 쓰고 구기어 주름투성이가 된 청베 도
포를 입고 띠는 띠지 아니하고 초군 짚신을 신고 읍에를 가려고 나섰는데, 이때
해는 벌써 아침 새때가 기울었었다.
3
김서방이 함흥읍에 들어와서 소문이 적실한 것을 안 뒤에 다시 생각하기를 보
기 어려운 감사를 보려느니 힘이 덜 들 원을 볼리라하고 홍살문 안을 들어섰는
데, 이때 해는 벌써 점심때가 지났었다. 한참 동안 삼문간에서 어리대다가 사령
하나를 보고 “원님을 보러 왔으니 서울 손님이 왔다고 통기하여 주게.” 해라
는 못하고 하겟말을 붙였더니 그 사령은 한번 흘긋 김서방의 꼴을 보고 “서울
손님은 다 무어야?” 하며 김서방을 한옆으로 떠다박질렀다. 김서방이 두말 못
하고 물러서서 삼문 안을 멀리 바라보고 있다가 늙은 아전 하나가 문안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보고 앞을 막아서서 “여보, 나는 서울 사람인데 원님을 좀 보아야
겠으니 통기해 주실 수 있겠소?” 김서방이 아까 하게로 낭패를 본 뒤라 하오를
깍듯이 하고 좋은 대답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 아전이 한참 물끄러미 김서방
을 보더니 “이 사람, 저리 비키소.” 하고 손을 저어서 길을 틔우라고 하나, 김
서방이 그대로 서서 꼼짝도 아니하니까 삼문 밖에 있던 군노 한 사람을 손짓하
여 불러서 “이 양반의 말을 좀 들어봐라.” 하여 김서방을 군노에게 떠맡기고
옆에 있는 길청으로 들어갔다.
김서방이 다시 그 군노를 보고 자기가 원님을 보러 왔다는 뜻을 말하고 또 자
기는 서울 손님이로라고 말하니 그 군노가 “무어, 서울 손님? 너울 손님은 어
떻구? 손님 좀 볼라는가?” 하며 바른손을 김서방의 코밑에 내밀더니 곧 다시
끌여들여서 손바닥에다 침을 뱉어 가지고 눈에 불이 나도록 김서방의 뺨을 쳤
다. 김서방이 백정의 사위 된 뒤 삼년간에 못 당할 곤욕을 다 당하여 곤욕에는
집이 나다시피 되었건만, 이번에 맞은 뺨은 살점이 떨리도록 분하였다. 여짓 맞
손질을 하려다가 속으로 ‘참아라, 조금만 더 참아라.’생각을 돌리어서 분을 억
제하고 그 군노를 피하여 홍살문 밖으로 나오며 원 볼 방책을 생각하였다.
김서방이 ‘하늘 천 따 지’ 소리가 나는 어느 집을 찾아들어가서 주인에게
인사를 청한 즉 주인은 숙식하고 가려는 과객인 줄로 알고 대번에 “내 집에는
잘 데가 없소.” 하고 상을 찌푸리더니 “잘 데 없는데 재워 줍소사 말하지 않
을 터이니 고만두시고 글씨 안 쓴 종이쪽 하나만 주시오.” 하는 김서방의 말을
듣고서 상을 펴며 “어디 종이쪽이 있을라구?” 하고 노끈을 꼬려고 베어놓은
것 같은 좁은 쪽종이를 찾아주었다. 김서방이 그 종이를 받아들고 먹 찍은 붓을
빌리라 하여 전 교리이장곤이 보이러 와서 밖에서 기다린다는 뜻을 써가지고 그
집에서 나와서 다시 홍살문 안을 들어섰는데, 이때 해는 거의 승석때가 다 되었
다. 김서방이 삼문 앞 큰길가에 서서 문안에 들락날락하는 사령 군노의 얼굴을
모조리 살펴보다가 그중에서 사람이 순하여 보이는 사령에게로 가까이 가서 “
내가 책방과 서로 아는 터인데 청할 일이 있어 왔으니 이것을 좀 들여주겠소?”
하고 종이쪽을 내보이니 그 사령이 선뜻 받아들기는 하였으나, 들어갈 맘은 나
지 않는 것 같아 보이더니 마침 안에서 나오는 아이를 보고 “이애, 방자야. 이
양반이 책방과 아는 터수란다. 이 종이쪽을 갖다 책방 좀 주려무나.”
방자가 볼일이 있어 밖에 나가는 길이라고 다시 들어가지 아니하려다가 사령
이 우기는 바람에 종이쪽을 받아가지고 돌아서려고 할 때, 김서방이 “이애, 책
방이 그것을 보고 무슨 말을 하나 좀 들어다 다오.” 부탁하니 방자가 “거기서
기다리구려.”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들어갔다. 김서방은 삼문 밖 한구석에 쪼그
리고 앉아서 방자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얼마 뒤에 나오는 방자는 기다리
는 김서방을 찾지도 아니하고 그대로 가벼리려고 큰 길로 나선다. 김서방이 일
어서 쫓아가서 “책방이 무어라시디?” 물으니 방자는 성이 가신 듯이 “지금
책방 서방님이 안전께 불려서 동헌에 가 계시기에 통인보고 들여달라고 주고 왔
으니까 좀더 기다려 보시구려.” 하고 다시 말 물을 사이가 없이 잰 걸음으로
가버렸다. 김서방이 할일없이 앉았던 구석에 다시 와 쪼그리고 앉아서 이때나
소식이 있을까, 저때나 소식이 있을까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나 소식은 나오지
않고 해는 벌써 저물었다.
방자가 귀찮아서 통인을 주지 아니하였나? 통인이 잊고 책방에게 전하지 아니
하였나? 책방이 보고 원을 보이지 아니하였나? 또는 원이 보고도 귀찮아서 본
체하지 않는 것인가? 김서방이 이리 생각도 하고 저리 생각도 하는 중에 삼문
안에서 “사령 부르랍신다.” 는 소리가 들리며 문간에 있던 사령들이 ‘네이’
긴 대답을 하며 거위목같이 고개를 내밀고 병아리같이 고개를 내밀고 병아리같
이 종종걸음을 쳐서 문안으로 들어갔는데, 이때 땅거미가 다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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