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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1권 (12)

카지모도 2022. 9. 15.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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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와료!” 소리가 나고 교군이 마당 중간에 놓이며 교군 안에서 이급제가 나

왔다. 이급제가 마당에 서서 우선 주삼의 내외를 향하여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다음에 관 하인들을 돌아보며 ‘수고하였다. 빨리들 들어가거라’ 말을 이르는

데, 그 동안에 주삼의 안해는 안방에 들어가서 일변 방을 치우며 새 자리를 내

서 깔고, 주삼이는 어찌할 줄을 몰라서 손을 맞비비며 공연히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고, 돌이는 수선 틈에 어디로 가버리고, 봉단이는 머릿방에 들어앉아 나

오지 아니하였다. 이급제가 관 하인을 돌려보내고 잠깐 동안 마당에 서성거린즉,

안방에 있는 주삼의 안해가 그 남편을 내다보며 “여보, 무엇하오? 이리 들어오

시라지 못하오?” 인도 아니한다고 나무라니 주삼이가 이급제 앞에 가까이 와서

“안방으로 들어가시지요.” 하고 여전히 손을 맞비빈다. 이급제가 “아니, 내

방이 좋지.” 하고 안방으로 들어가려고 아니하니까 주삼의 안해가 방에서 뛰어

나와서 “천만의 말이지, 이리 들어갑시다.” 하고 이급제를 붙들어들였다.

이급제가 아랫목 새 자리 위에 앉고 주삼의 안해가 앞치마를 휩싸고 앉으려고

할 때, 방 밖에 있는 주삼이가 손뼉을 쳐서 그 안해를 오라고 하여 “이 사람아,

존전에서 그렇게 앉는 법이 아니야. 그리하고 자기 말을 할 때는 쇠인네라고 하

소.” 가만히 이르는데 주삼의 안해가 화를 벌컥 내며 “그가 우리의 사위나리

가 아니오. 앞에 가서 앉지 못할 것이 무어 있수. 또 쇠인네란 다 무어요?” 큰

목소리로 주삼의 말을 되받으니 주삼이가 “이 사람아, 떠들지 말아. 들으시네.

” 안해를 꾸짖는다. 주삼의 가만히 이르는 말도 주삼의 안해의 떠드는 말과 같

이 이급제 귀에 들리었다. 이급제가 혼자서 빙그레 웃으면서 “이리들 들어와서

앉으우.” 소탈하게 말하니 주삼의 안해가 남편의 얼굴에 삿대질을 하며 “저것

사위 나리 말씀 좀 들어보오. 앉지 못하기는 왜 앉지 못해?” 하고 “들어갑시

다.” 하고 남편을 끌었다. 주삼의 안해는 앞을 휩싸고 동그마니 앉고 주삼은 앉

기가 종시 황송하여 두 팔로 방바닥을 짚고 엉거주춤 앉았다. 이렇게 세 사람이

한 방에 앉기는 하였으나, 별로 말들이 없어서 자리가 싱거웠다. 주삼의 안해가

“봉단이는 어디 갔누?” 혼잣말하듯이 말하고 거북살스럽게 앉은 주삼을 바라

보는데 주삼은 말이 없고 이급제가 “좀 불러 주우.” 말하여 주삼의 안해가 일

어서 나가니 주삼이도 그 뒤를 따라 일어섰다.

머릿방에 들어앉았던 봉단이를 그 부모가 “왜 잔뜩 들어앉아서 나오지 않니?

” “나리가 부르신다.” 불러내서 안방으로 들여보냈다. 봉단이가 방에 들어와

서 고개를 들지 않고 입으로 옷소매를 지그시 물고 그린 듯이 서 있으니 이급제

가 눈짓으로 가까이 오라 하다 못하여 “이리 와.” 하고 입을 벌리었다. 봉단이

가 가만가만히 발을 떼어놓아 아랫목 가까이와서 모를 꺾어 앉으려 할 때, 이급

제가 몸을 앞으로 수그리고 긴 팔을 늘이어 봉단의 손을 잡으며 “새색시인가?

” 하고 자기 옆으로 앉히었다. 사실로 봉단이는 첫날밤보다도 더 부끄러운 듯

이 고개를 잘 들지 아니한다. 이급제가 입을 봉단의 귀에 대고 가만히

“백정의 딸로 양반의 안해가 되려고 습의하는 모양이지.” 하고 웃으니 봉단이

는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며 고개를 치어들었다.

봉단이가 이급제의 모양을 보니 양에 윤이 나는 칠색 좋은 갓에 궁초 갓끈을 매

어 쓰고 취월명주 창의 위에 회색의 술띠를 느직이 늘여 띠었다. 노끈 갓끈으로

찌부러진 갓을 쓰고 주름투성이 베도포에 띠도 띠지 아니하였던 김서방과는 딴

사람같이 보이었다. 이급제가 봉단을 돌아보며 “웃옷을 좀 벗고 앉아야지.”하

고 일어서니 봉단이도 일어서서 끌러주는 띠를 받고 창의를 벗기어서 횃대에 걸

쳐놓고 또 벗어주는 갓을 받아 횃대모에 걸어놓았다. 이급제가 탕건 바람으로

봉단이와 같이 앉아서 원을 보느라고 애쓴 것과 원이 우대하던 것을 자세히 이

야기하고 나중에 명주 저고리와 세목 바지를 가리키며“이것이 다 원의 옷이라

내게는 조금 작아.”하니 봉단이는 저고리를 만져보며“웃옷감만은 좀 못해도

상길 영흥주구먼이요.”하고 또 바지를 만져보며 “열두 새야요.”한다.

이때 주삼의 안해가 저녁밥을 짓느라고 부산히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리니“나

가서 어머니 시중을 들어야겠어요.”하고 봉단이가 일어서려는 것을 이급제가

손을 잡아 말리고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며 “여보 장모, 혼자 바쁘지 않소?”

말하니 주삼의 안해가“아니오.”대답하고“봉단아, 너는 거기 사위 나리 뫼시고

앉았거라.”말하는데 목소리가 전날같이 거세지 아니하다.

 

8

이급제의 저녁상이 들어왔다. 전날 김서방의 상과는 대단히 다르다. 우선 소반

에다가 외상으로 차려놓은 것이 다르고 하얀 입쌀밥이 다르고 무나물,배추 겉절

이의 한두 가지 반찬이라도 먹게 하여 놓은 것이 다르다. 주삼의 안해가 상머리

에 앉아서 술을 드는 이급제를 바라보며“원님에게서는 잘 잡수셨을 터인데 찬

이 무어 있어야지.”하고 나서 이급제의 밥 먹는 시중을 끝까지 들어주니 이급

제가 양껏 먹고 술을 지우며“대접이 너무 과해서 손복할 것 같구면. 원의 대접

이 아무리 융숭해도 오늘 저녁같이 밥을 달게 먹기는 처음이어.”말하여 주삼의

안해의 입이 벌어지게 하였다. 이때 밖에서 빙빙 돌던 주삼이가 수저 놓는 소리

를 듣고 창문을 조그만치 열고 들여다보며 “저녁을 얼마나 잡수셨습니까?” 인

사로 물으니 이급제는 “오늘 저녁 참 잘 먹었어.” 대답하고 얼마 동안 있다가

“여보,주팔이가 어느 날쯤 온댔어?” 물은즉 주삼이가 말할 사이 없이 그 안해

가 “오늘 안 왔으니까 내일은 올걸요.” 대답하였다.

그날 밤부터는 이급제 내외가 윗방을 쓰고 주삼의 내외가 머릿방을 쓰게 되었

다. 이급제가 방문을 닫고 봉단이와 마주 앉아서 서울 갈 일을 이야기하는데,봉

단이가 “가시는 날은 나하고 같이 가게 하시겠지요?” 하고 이급제의 얼굴을

치어다보며 방그레 웃으니 이급제는 고개를 흔들며 “그렇게 못될 것이야.” 하

고 조금 동안을 띄어 “내가 조명을 받고 올라가자면 내외 동행은 못하게 될 것

이야. 내가 서울가서 집안 살림을 정돈해 놓고 기별하거든 삼촌과 같이 오게 하

지.” 하고 또다시 조금 동안을 띄어 “내가 주팔이와 의논해 두고 갈 것이니

걱정 말아.” 하고 세 도막 대답을 하였다.봉단이가 이급제의 첫마디 대답에 웃

음을 거두고 다음 두 마디가 끝나도록 새침하고 앉았더니 “나는 생각이 두가지

에요. 서울을 갈까 말까 두 가지에요. 그런데 두 가지가 다 어려워서 삼촌과도

의논하려니와 제일 첫째 의향을 여쭈어보고 어떻게든지 작정할랍니다. 대체

내가 서울 가면 당신 전정에 방해되지 않겠어요?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여

자지만 저의 호강만을 생각하고 남편을 우세시키고 망신시키러 서울가겠다고는

하지 않겠세요. 그렇다고 부모밑에서 그대로 지내기도 어렵지요.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는 생각이 올지말지 해요.” 하고 고개를 숙인다. 이급제가 고개를 끄덕이

는 듯 마는 듯 끄덕이고 “그래,서울을 못 가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려

우니 무어니 하여도 부모 밑에 있게 될 터이지.” 봉단이가 숙이었던 고개를 잠

깐 들고 이급제의 얼굴을 치어다보며 “죽든지 승이 되든지 해야지 부모 밑에서

그대로는 못 있세요. 내가 죽는대도 당신이 박정하다고는 원망할 리 없고요,승이

된다면 다시 백정의 집에 태어나지 않도록 후세 발원이나 해보지요.” 하고 두

눈에 눈물이 어린다. 이급제는 빙그레 웃으면서 “좀 어렵지만 내가 맹세한 일

도 있고 하니까 데려가지. 그렇지만서도 백정의 딸을 정실로 정한다면 일가친

척이 시비할 뿐아니라 하인들이라도 아씨라고 부르기를 싫어할 것이니까 첩으로

데려가지. 첩이라도 승되느니보다는 나을 것 아니야.” 하고 봉단의 얼굴을 들여

다보니 어리었던 눈물이 방울로 맺히고 방울로 맺힌 눈물이 줄로 흐른다. 이 급

제가 봉단을 앞으로 끌어 당기어서 손으로 눈물을 씻어주며 “소명한 사람도 속

을 때가 있군. 지금 말은 실없은 말이야. 내가 벌써부터 작정해 둔 일이 있어.

내가 우세도 아니하고 망신도 아니하고 내외 잘살게 될 수 있을 터이니 염려말

고 기다리오. 내가 전정을 내버릴망정 정다운 안해는 저버리지 아니할 것이야.”

위로하여 얼마 뒤에 봉단은 다시 웃게 되었다.

이튿날 식전에 봉단이도 전날 밤에 잠 못 잔 까닭으로 좀 늦게 일어났지만,

이급제는 해가 높이 뜬 뒤에야 간신히 기침하였다. 주삼의 내외가 윗방 문 밖을

지나다닐 때 신발 소리도 내지 아니하는데, 주삼의 안해가 주삼을 보고 나직한

목소리로 “게으름뱅이는 게으름뱅이야.” 하고 웃으니 주삼이도 쉬쉬 하면서 웃

었다. 이급제가 소세한 뒤에 관 하인들이 찬수를 가지고 나왔는데, 쇠내장 곰거

리며 도야지의 업진이며, 이러한 고기 찬수가 있을 뿐이 아니라 김치와 젓무까

지도 있었다. 원의 사람이 찬찬한 것보다도 원의 부인이 “촌 백정집에 김치나

젓무가 있겠소.” 하고 내보낸 것이다. 이급제가 원의 전갈을 받고 원에게 보내

는 답전갈을 이르는 중에 영흥 갔던 주팔이가 돌아와서 삽작문 밖에서 집안의

광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9

관하인들이 이급제에게 ‘물러납니다’고 고하고 삽작 밖을 나서며 저희들끼

리 지껄인다. “이급제 뒤에 섰던 것이 주삼의 딸이지? 잘생겼데.” “이급제가

상투 끝까지 빠진 모양이야.” “진작 알았더면 빼다가 관비나 박아줄걸.” “관

비를 박았더라도 네나 내게 차례가 오니? 계집이라면 침을 흘리는 수도놈에게

좋은 일이지.” 주팔이는 길 옆에 비켜섰다가 관 하인들이 지나간 뒤에 집안으

로 들아왔다. 주팔이가 형과 형수를 보고 날 사이 별 연고 없느냐고 인사하니

형은 “별 연고 있지그려. 김서방이 이급제 나으리가 되었어.” 하며 싱글벙글하

고 형수는 “사위 나리가 어제도 아재 말합디다. 어서 가보오.” 하고 손으로 윗

방을 가리킨다. 주팔이가 형수를 보며 “아주머니, 사위 나리가 전날 받은 박대

를 속에 치부해 두지나 않았습디까?” 하고 웃으니 형수가 말소리를 낮추어서

“내가 아재더러 말이지 처음에는 혹시 오금이라도 박히지 않을까 조금 걱정스

럽더니 지금 내가 너무 위해 주니까 과해서 손복하겠다지. 봉단이하고 내외 사

이가 경치게 좋으니까 모두가 덮이는 게야.” 하고 목을 움츠리고 웃고 난 뒤

말을 이어 “여보 아재, 관가에서 찬수를 내보냈지. 쇠고기 도야지고기 김치 젓

무까지 내보냈어. 정작 제일 긴한 쌀은 아니 내보내고. 우리도 자기네와 같이 입

쌀밥만 먹고 지내는 팔자인 줄 아는 게야.” 하고 쩍쩍 혀를 찬다. 주팔이가 “

쌀이 없거든 바꾸어 오지요.” 말하니 그 형수는 “아재도, 바꾸어 올 사이나 있

든가요? 어제 윗말 간난이집에 가서 쌀 한 말을 꾸어왔어요. 그전 같으면 없으

니 못 주겠느니 말썽부리고 급기 줄 제라도 속히 갚으라고 열 번 스무 번 당부

하고 줄 사람이 사위 나리 대접한댔더니 두말없이 내줍디다그려.” 하고 이야기

하는데 이때 윗방에 있던 이급제가 주팔이가 온 것을 알고, 와서 보기를 기다리

느니보다 나가 보는 것이 편하겠다고 생각하고 슬그머니 방문을 열고 나서서 “

여보, 주팔이?” 부르니 주팔이가 형수의 이야기를 듣다가 말고 이급제 있는 곳

으로 오는데 이급제가 마주 나가서 주팔이가 인사할 사이도 없이 주팔의 손을

잡으며 “기다렸네. 어서 방으로 들어가세.” 하고 손을 잡은 채 윗방 문앞까지

같이 와서 방문을 열어 주며 먼저 들어가라고 하니 주팔이가 몸을 빼고 이급제

를 돌아보며 “귀천이 다르니 상하를 차립시다.” 하고 웃는데 이급제는 “이

방은 잠시라도 내방이오.” 하고서 주팔의 말투를 본받아 “주객이 다르니 선후

를 차립시다.” 하고 웃는다.

이급제와 주팔이가 방에 들어와 앉은 뒤에 이급제가 자기의 전후 내력을 대강

이야기하고 반상의 신분이 드러났다 하더라도 정분이야 어디 갈 것이 아닌즉 될

수 있는 대로 전날과 같이 지내자고 부탁하니, 얼굴에 웃음빛을 가득히 띄고 이

야기를 듣고 앉았던 주팔이가 그 부탁을 받을 때는 고개를 외치며 “전이라고

양반이신 것을 짐작 못한 것이 아니지만 남의 눈에 괴상히 보이도록 미리 짐작

하는 체할 까닭이 없으므로 그렁저렁 지냈습니다만 지금도 벌써 전날과 다릅니

다. 그런데 앞으로는 갈수록 더할 것이니까 정분은 정분대로 속에나 두고 지내

지요.” 하고 정색한다. 이급제는 ‘주팔이 같은 인물이 천인으로 썩다니, 널리

말하면 국가의 불행이야.’ 혼잣말로 한탄하다가 주팔을 바라보고 “내가 서울

가서 기별하거든 질녀를 데리고 오게. 그리하여 서울서 같이 지내 보세. 자네 형

님 내외는 내 가만히 생각해 본즉 서울 와서 산다고 해야 별수 없을 것이요, 두

집 사이에 서로 불편만 할 듯하니 시골서 그대로 살게 하지. 두서너 식구가 먹

고 지낼 것은 내가 담당함세. 그러고 내가 아는 수령이 올 때마다 부탁이나 해

두게 되면 이때껏보다는 낫게 지내겠지.” 하고 말을 그치었다가 다시 이어 “

어련할 것이 아니나 내가 떠난 뒤의 일은 자네만 믿네.” 말하니 주팔이도 고개

를 공손히 끄덕이어 그 부탁을 받는다는 뜻을 보이었다.

그때 주삼의 안해가 이급제의 아침상을 가지고 들어왔다. 이급제가 외상을 받

고 앉아 “밥 한 그릇만 여기 더 갖다놓아 주팔이와 같이 먹지 무어.” 하니 주

삼의 안해가 주팔이를 돌아보며 “아재, 그러시지.” 하는데 주팔이는 “아니요,

형님하고 같이 먹지요.” 하고 이급제를 향하여 “많이 잡수십시오.” 하고 일어

서 방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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