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제자
1
심의의 집에는 행랑방이 둘이 있는데 한 방에는 상길이 내외가 있고 다른 한
방에는 홀어미 모자가 있었다. 그 홀어미는 아들의 이름이 유복이라 심의의 집
에서 유복 어멈이라고 불렀다. 유복 어멈은 본래가 황해도 강령 사람으로 남편
이 허무한 죄에 서울로 잡혀오게 되어서 그 뒤를 따라왔다가 남편은 옥에서 죽
고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을때에 갖바치의 지시로 심의의 집에 와서 행랑살이를
하게 된 것이다. 유복 어멈의 남편은 농군이었다. 그러나 아이적에 글방에 다니
며 꼬부랑 글자 낱을 배워두었던 까닭에 구실집 수 적은 것쯤은 곧잘 알아보아
서 동네에서 대접을 받던 농군이었다. 서울로 잡혀오던 해 여름에 가뭄이 몹시
심하였는데 품꾼 두 사람과 같이 밭벼의 이듬을 매다가 새들새들한 벼포기에 정
이 떨어져서 “이렇게 가물어서는 올 농사도 다 보았네. 요 몇해지간은 연년이
살년이니 사람이 살 수 있나. 이게 다른 까닭이 아니야. 서울 조재상이 벼슬을
잘 살아서 우순풍조하고 국태민안하던 것인데, 상감이 소인의 말을 듣고 조재상
을 죽인 까닭에 하느님이 역정이 난 것이야. 금년에 각골 봉물짐이 서울로 올라
가는 것을 보지. 조재상이 있으면 될 일인가. 상감 못 만난 덕으로 우리 백성만
못 살아.” 하고 수다스럽게 지껄이었더니 그때 품꾼 두 사람중에 남의 집 머슴
으로 품앗이왔던 자가 무슨 큰 수나 날 줄 알고 슬그머니 서울 와서 고변을 하
였었다. 유복 어멈의 남편은 서울로 잡혀와서 마침내 맞아 죽고, 그때 품꾼의 한
사람은 고변 아니한 죄로 볼기를 맞고, 큰 수를 바라던 머슴은 고변한 상급으로
무명 세 필을 받았었다. 유복 어멈은 단 내외 살다가 남편이 잡혀오니까 전후
불계하고 뒤를 따라왔던 것인데 남편이 옥에서 죽고 보니 사고무친한 서울에서
어찌할지 몰라서 옥문 밖에서 목을 놓고 울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가까이 와서
“울지 말고 죽은 남편 감장할 도리를 생각하시오.”하고 친절하게 말하여 그
사람과 말을 하게 되었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혜화문 안 갖바치였
다.
갖바치가 지시하여 심의의 힘을 입어서 죽은 사람을 장사도 지내게 되었고 또
그 집에 와서 행랑살이도 하게 되었다. 행랑살이를 시작한 뒤 두어 달 만에 유
복이를 낳았는데, 유복자라고 유복이란 이름을 지었다. 유복이가 대여섯 살되며
부터 갖바치에게 다니며 글을 배우게 되었는데 유복의 글동무가 하나 있었다.
그 아이는 갖바치의 이웃에서 사는 이 봉학이라는 아이였다. 봉학의 아버지는
이학년이라는 유명한 사람인데 그 아버지가 비명에 죽게 되며 그 어머니가 놀라
병이 나서 시름시름 앓다가 남편의 졸곡도 못 지내고 남편의 뒤를 따르게 되어
서 돌도 채 지내지 못한 봉학이가 외조모 손에서 암죽으로 길려나게 되었다. 봉
학이가 나이로는 유복이보다 한 살 손위이지만 몸이 가냘프고 약하여 유복이보
다 어려 보이었다. 그러나 눈치가 빠르고 약은 것은 유복이는 고사하고 나이 이
십이 가까운 갖바치의 아들 금동이보다 못할 것이 없었다.
금동이는 갖바치의 첩의 소생인데 부모와는 딴판으로 우락부락한 위인이었다.
갖바치가 엄하게 구는 까닭으로 갖바치가 집에 있는 때는 안방 구석에 처박히어
꿈쩍을 못하지만, 갖바치가 어디 출입을 하고 집에 없는 때는 바깥방에 나와서
봉학이와 유복이를 데리고 무식스럽게 장난을 하였다. 꿀밤을 준다고 두 아이
머리를 밤톨같이 부풀게 하기는 예사이었다. 이 까닭에 두 아이는 그 선생님인
갖바치가 출입만 하면 성문턱에 올라가서 흙장난을 할망정 방에 들어앉았지 아
니하였다. 누가 말하였던지 선생이 이것을 알고 하루는 출입을 하면서 두 아이
를 보고 “장난을 하더라도 방에서 해라. 성문턱에 올라가지 마라.” 하고 일러
서 두 아이가 방에서 바스락장난을 하고 있는데 금동이가 옳다 좋다 하고 나와
서 두 아이를 볶기 시작하여 두 아이가 애구 소리를 지를 때 방문이 열리며 선
생이 들어섰다. 금동이는 쥐구멍을 찾았다. 선생이 금동이를 앞에 꿇어앉히고 이
다음에 또다시 아이들을 귀찮게 하면 눈앞에 두고 보지 않을 터이라고 준절히
일러 내보냈다. 그 뒤에 금동이가 한번 저의 아버지 없는 틈에 아이들 데리고
못비 장난을 하였더니 그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며 곧 금동을 불러세우고 “내가
이른 말이 있는데 그 동안 잊었단 말이냐? 너는 오늘부터 집에 있지 말고 나가
거라.” 하고 호령하여 내쫓아서 금동의 어머니가 빌다 빌다 못하고 마침내 유
복의 주인의 청으로 간신히 용서를 받게 되었다. 그 뒤로는 금동이가 두 아이를
밉게는 볼망정 머리에 밤톨은 만들지 못하였다.
2
심의가 원래 갖바치와 상종이 잦아서 하루도 몇번씩 왔다갔다 하던 터에 그
형님의 복제를 당한 뒤로는 갖바치의 집에 와서 줄곧 살다시피 하였다. 아이들
은 선생님이 두 분 있는 셈이라 심의를 심선생님이라고 부르고, 갖바치를 주인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이때 봉학이와 유복이는 여남은 살씩 되었고 금동이는 이
십여 세의 떠꺼머리 총각이었다. 금동이는 양주 백정 임돌이의 딸과 정혼 하였
다. 금동이의 스무남은 살은 과할 것이 없지마는 금동이와 동갑인 색시는 과년
한 터이라 혼인이 급하였다. 혼인을 완정하기는 삼사 년 전 이나, 그 동안 색
시의 어머니 되는 사람이 죽어서 대 삼년하느라고 혼인이 늘어졌던 것이다. 색
시의 아버지 돌이는 데릴사위로 들어간 사람인데 데릴사위로 근 삼년 지내는 동
안에 장인 장모가 모두 죽고 내외 살림으로 살아오다가 안해가 죽고 보니 늙지
아니한 사람이 홀아비 노릇하기가 어려운 것은 고사하고 집안 살림이 갑자기 주
장이 없어져서 혼인 대사를 지내도록 두서를 차리기가 어려운 까닭에 딸의 혼인
전에 헌 여편네 하나를 얻었었다. 그리하여 금동의 어머니가 “사위 자랑 장모
라는데 갓 들어온 의붓장모가 무슨 사랑이 있겠느냐.” 하고 재미없이 말한 일
까지 있었다.
색시의 집에서 혼인을 재촉하여 정한 혼인날이 가까웠다. 신랑의 옷가지까지
라도 심의의 집에서 돌보아주었다. 금동이가 관례하여 상투를 쪼진 지 며칠 아
니되어 이야깃거리가 하나 생기었다. 그것은 보쌈에 잡혀간 이야기다. 그때 여편
네의 개가는 막히고 사주팔자는 꼭 믿던 까닭에 대가집 딸로서 과부 될 팔자라
하면 액때움으로 보쌈을 하였는데, 안여편네들이 주장하여 하지마는 사랑 사나
이도 알면서 모른체하던 것이다. 어느 날 밤에 남부 혜민서 근처에 화재가 났었
다. 금동이가 갖바치 몰래 불구경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구리개를 지나오자,
어느 어두운 옆골에서 건장한 사람 네댓 명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금동에게 와락
대어들어 사지를 각각 붙들며 “이놈 찍 소리만 했다 보아라. 당장에 멱줄을 따
놓을 게니.” “이놈 꿈적 마라.” “아무 소리 말고 가민히 있으면 수가 생긴
다, 이놈.” 하고 여러 사람이 으름장을 놓으며 옆골목으로 끌고 들어와서 가죽
으로 만든 큰 자루 같은 것에 집어넣었다. 금동이는 물론 자루에 아니 들어가려
고 뻗대 보았지만 강약이 부동으로 할 수 없이 들어갔다. 소리를 지르려고 하였
으나 한 사람이 버선짝 같은 것으로 입을 틀어막아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여
러 사람이 가죽 자루 주둥이를 동이어 들것 같은데 얹고서 무엇으로 덮은 뒤에
메고 일어섰다. 속에 든 금동이는 ‘귀신 모르는 죽음을 하는 것이다.’ 하고 생
각하였다. 가기는 자꾸 가나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가는 동안이 오래니 만치 여
러 십리를 가는 것 같았다. 얼마 동안이 지난 뒤에 들것이 땅에 놓이었다. 금동
이는 산인지 강인지를 몰랐다. 옆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왔소?” 하고 간단히
묻는 말소리가 들리었다. 들것 위에 있는 가죽자루를 두어 사람이 앞뒤로 어깨
위에 엇메는 것 같았다. 또다시 어디로 가는데 내려갔다 꼬불꼬불 돌았다 하는
것이 험한 길로 들어가는것 같았으나 군데군데 인기척이 들리었다. 다시 한동안
지난 뒤에 가죽자루가 땅에 놓이었다. 자루 주둥이를 끄르고 금동이를 내놓았다.
화려하게 꾸민 방안에 홍촛불이 키어 있고 아랫묵에 화려한 금침이 펴 있다. 메
고 온 사람들이 자루를 가지고 나간 뒤에 영창문이 열리며 화려한 옷을 입은 여
자 두 사람이 꽃같이 꾸민 색시 하나를 부축하고 들어와서 곱게 않혀놓고 나갔
다. 문은 밖으로 닫히었다. 금동이는 눈이 현황하였다. 꿈인지 생신지 의심하였
다. 눈앞에 꽃 같은 색시가 그림같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차츰차츰 앞으로 나
가서 색시의 손을 만져보았다. 쇠기름 덩이로 만든 손 같았다. 금동이는 조금조
금씩 담이 커지며 색시를 금침 속으로 끌어보았다. 색시는 벙어리같이 말 한마
디도 없이 끄는 대로 끌리었다. 금동이가 잠이 들었다가 몸을 건드리는 바람에
눈을 떠서 보니 같이 누웠던 색시는 간 곳 없이 없어지고 메고 왔던 건장한 사
람들이 방안에 들어섰다. 올 때와 달리 금동이의 두 팔을 결박하였다. 그리하고
가죽자루에 넣었다. 금동이는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금동이는 자루 속에서
구리개로 도로 갖다 주려니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동안이 올 때보다 더 오래되
는 것 같더니 갖다놓이는 자리가 땅바닥 같지 아니하였다. 금동이가 가죽자루에
서 나와 보니 강물에 떠서 있는 배 속이었다. 이것이 웬일인가 하고 누인 채로
누워 있자니까 뱃사공이 배를 강물 한중간으로 저어 나가더니 여러 사람 중에
한 사람이 금동이를 보고 “호강한 값을 받아라.” 하고 눈짓하며 금동이가 항
거할 사이도 없이 여러 사람이 함께 결박한 금동이를 번쩍 들어서 강물에 풍덩
집어넣었다.
3
금동이가 초저녁에 나가서 밤중까지 들어오지 아니하니 금동 어머니는 걱정이
되어서 여러 번 문간을 내다보기까지 하였다. 안에서 혼자 기다리다 못하여 바
깥방에 나와서 방문을 조그만치 열고 들여다보니 심의는 누워 있고 갖바치는 신
창을 달고 있다. “여보 나 좀 보시요.” 하고 목소리를 알아들을 만치 말을 하
였더니 갖바치는 “왜 그래?” 하고 돌아보지도 아니한다. 심의가 갖바치 내외
의 말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앉으며 갖바치를 보고 “좀 들어가 보지그려.” 하
고 권하여 갖바치는 그제야 손에 잡았던 일거리를 놓고 돌아보면서 다시 “왜
그래?” 하고 물으니 금동 어머니가 문 밖에서 말하였다. “금동이가 초저녁에
나가더니 이때까지 들어오지 아니하니 무슨 일일까요?” “낸들 무슨 일인지 알
수 있나.” “불구경을 간 모양인데 무슨 일이 있는 것 아닐까요?” “불구경에
서 난 독은 불구경으로 씻어야지.” 하고 갖바치가 빙그레 웃으니 남의 맘 졸이
는 것을 생각지 않고 맘 편하게 웃는다고 금동 어머니는 방문을 톡 하고 닫았
다. “아들에게 너무 범연한 것도 병이야.” 하고 심의가 옆에서 웃으니 갖바치
는 “아들인지 무엇인지.” 하고 곧 뒤를 이어서 “아비 소리 듣는 것만은 사실
이니까 그만한 책망은 지지요.” 하고 저으기 다시 웃었다. 문 밖에 있던 금동이
어머니 귀에는 갖바치의 말에 뼈가 있는 것같이 들리었다. 갖바치가 고개를 문
밖으로 돌리고 “여보, 금동이를 찾아와야 할 터이니까 첫닭 운 뒤에 곧 나와서
나를 좀 깨워 주오.”하고 말하였다. 하필 첫닭울이에 찾으러 가려는 것은 무슨
일인가. 금동 어머니는 괴상히 생각하면서 안으로 들어왔다가 과연 닭이 첫홰치
며 나가서 “여보 여보.” 하고 방문을 두들기고 갖바치가 잠이 얕게 들었던지
곧 “응, 알았어.” 하고 대답하고 일어났다. 같이 자던 심의도 잠이 깨어나 따
라 일어나니 갖바치가 “주무시지요. 나도 곧 도루 누울 터이오.” 하고 말하자,
밖에서 듣던 금동 어머니가 “금동이를 찾으로 가신다더니?” 하고 나무라듯 말
하는데 갖바치는 방문을 열고 나와서 “가기는 어디를 가? 고만두고 안방으로
들어가지.” 하고 딴청을 부리듯이 말하였다. “그러면 왜 남 잠도 못 자게 첫닭
울이에 깨어라 말아라 하셨단 말이오?” “잠을 좀 깨워 달라고 했기로 큰 낭패
될 것이 무어 있나. 이 사람이 소견도 빽빽하군.” 하고 갖바치는 허허 웃더니
마당 한중간에 나와 서서 서남방을 향하고 입속으로 무어라고 중얼중얼하고 뜨
거운 국을 불듯이 후후 불기를 네댓 번 한 뒤에 도로 방으로 들어가며 금동어머
니더러 “걱정 말고 들어가서 자라구. 금동이는 내일 아침에 찾아올 것이니.”
하고 말하였다. 금동 어머니는 맘에 좀 야속하나 어찌할 수 없었다. 안방으로 들
어가서 혼자 고시랑거리느라고 밤을 새우다시피 하였다.
그날 밤에 여러 사람이 금동이를 집어넣고 돌아간 뒤 금동이는 처음에 물 속
으로 쑥 들어갔다가 다시 물 위에 불끈 솟았다. 금동이가 팔을 결박당하지 아니
하였더라도 헤엄을 치지 못하는 까닭에 살아나올 길이 없는데, 더구나 결박을
당하여 허위적거리지도 못하니까 꼭 죽을 수 밖에 없이 되었다. 그런데 금동이
가 물 위에 솟았을 때, 갑자기 바람이 일어나서 물결을 치기 시작하며 금동이가
물결에 밀리어 활 반 바탕 가량 떠내려와서 건너편 강가에 부딪치었다. 금동이
가 물을 토한 뒤에 가만히 생각하여 본즉 저의 몸이 모랫바닥 위에 와서 엎드러
져 있었다. 다시 죽을 힘을 다 들이어 용을 써서 등밀이로 올아왔다. 하늘에 별
이 총총한데 희미한 별빛이 비치어서 먼 데 서 있는 나무 형체가 알아볼 만하였
고, 먼 곳에서 우는 닭소리가 실낱같이 들리었다. 금동이는 모든 것이 꿈속 같았
다. 그러나 추운 생각으로 생시인 것을 알았다. 몸이 얼어 굳을 것같이 추웠다.
이가 딱딱 맞물리었다. 금동이가 추위를 배겨내느라고 애를 쓰는 중에 날이 새
게 되었다. 해뜨기 전 낚시질하러 나오는 어부가 모래사장에 누워 있는 금동이
를 보고 송장으로 놀랐다가 가까이 와서 산 사람인 것을 알고 결박한 것을 알고
끌러주었다.
4
아침때 금동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금동이 어머니는 사설이 적지 않았으나 갖
바치는 앞에 와서 절하는 금동이를 보고 “살아 왔구나.” 하고 한마디 말한 뒤
에는 다른 말이 없었다. 금동이 어머니가 금동이의 일장 이야기를 듣고 “근래
보쌈이라든가 무엇이 생겼다더니 네가 거기 걸려들었던게구나, 목숨을 부지한
게 천행이다. 바람이 없어 물결이 잔잔했으면 어찌될 뻔했나? 생각만 해도 아슬
아슬하다.” 하고 금동이의 옷을 만지며 “옷은 어디서 말려 입었니?” 하고 묻
고 금동이가 “어부의 집에 가서 말려 입었소.” 하고 대답한즉 “데리고 가서
옷까지 말려 입혔으니 고마운 사람이다.” 하고 일어서서 바꾸어 입을 옷을 찾
아다가 금동이를 주었다. 금동이 어머니는 어부의 고마운 것이 못 잊혀져서 “
어부가 내외 가진 사람이더냐?” 하고 물어본 뒤에 혼수 중의 세목 한 필을 끊
어내 내외의 버선을 짓고 버선목을 ‘보덕’이란 글자를 징거서 금동이 시켜 갖
다주게 하였다.
이때 양주 돌이의 집에서는 대사 준비에 분주하였다. 대사에는 음식이 주장이
고 음식에는 고기가 주장인데 관포주의 집이라고 고기 걱정은 없지마는, 고기도
먹게 만들려니 손이 돌아가야 하고 더구나 신랑 신부의 옷을 새로 짓노라니까
자연히 분주할밖에 없었다. 동리 여편네로 와서 일하여 주는 사람이 없지 않지
마는 먹새 보탬이가 떠드는 보탬이 절반이라 돌이가 안팎으로 드나들며 입방아를
찧지 않을 수 없었다. 동리 여편네 중에 자잘궂은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는 돌이
를 보고 “사위를 보다가 나무신 굽이 닳겠네.” 하고 조롱하니 짚신 신은 발을
내밀어 보이면서 “왜 나무신은? 멀쩡하니 짚신이요.” 하고 너털웃음을 웃는
데 그 여편네는 지지 아니하려고 “짚신이면 날이 나지라오.” 하고 야죽거리었
다. “여보, 밉상부리지 마오.” “내가 밉상을 부리어? 참말로 밉상을 부려 볼
까?” “그래보지. 누가 말리오?” 그 여편네가 돌이의 발을 가리키며 “저 발
도 무던히 크지만 신랑의 발은 엄청나게 큰 게야.” 하고 부지런히 방으로 들어
가 자루같이 큰 진솔 버선 한 짝을 가지고 나와서 돌이를 보이며 “이것이 신랑
의 버선이라며? 이것이 자루지 버선이오? 소도적놈을 첫사위로 얻어오는 게지?
” “여보, 그게 무엇이 크오? 우리 사촌누이의 남편 이판서의 버선을 보았더면
기함하겠구려.” “발이 크다고 판서하나?” “만수받이하고 있을 새가 없소. 내
가 지겠소.” 하고 돌이는 다시 너털웃음을 웃으며 밖으로 나가더니 얼마 아니
있다가 다시 들어와서 “내가 처음 장가들러 올 때 양주의 이쁜 색시를 훔친다
고 양주대적이란 말을 들었더니 사위놈이 대를 잇는가.” 하고 소도둑 소리에서
생각이 났던 말을 하고 “제기 발써 삼십 년이 가까웠어.” 하고 턱 아래에 수
북이 난 수염을 쓰다듬었다.
하루 이틀 지나가는 동안에 대삿날이 당도하여 갖바치가 금동이를 데리고 내
려와서 대사를 지내었다. 누가 보든지 색시의 인물이 신랑보다 훨씬 나았다. 색
시는 얼굴이 이쁘장스럽고 사람이 만만치 않아 보이었다. 색시는 이름이 이쁜이
요, 별명이 섭섭이었다. 그러나 본이름보다도 별명이 쓰이어서 집안에서는 고사
하고 동리사람들까지도 모두 섭섭이라고 불렀었다. 그 별명은 색시의 아버지 되
는 돌이가 아들을 바라다가 딸을 낳아서 섭섭하다고 우연히 지어 부른 것이 이
내 이름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돌이의 안해는 첫딸을 낳은 위에 두서너 번 연
거푸 낙태하고 그 뒤에 아들하나를 낳았는데, 그 아들을 낳은 때에 난산이 되어
서 모자가 모두 위태할 뻔하였다가 갖바치의 방문을 얻어 약을 먹고 다행히 무
사하였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다시 생산하지 못하였으므로 이번에 금동이와 혼
인한 섭섭이가 단지 남매인데 그 사내 동생이 섭섭이보다 나이 십여 살이 처지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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