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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2권 (11)

카지모도 2022. 10. 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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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남곤, 심정이가 전에 여러 명현을 모함한 것은 판국을 뒤집어 권세를 잡으려

고 꾀한 것이요, 후에 여러 사람을 살해한 것은 신변의 위험을 없이 하려고 꾀

한 것이었었다. 후에는 권세 잡은 대신과 중신이 고변을 받아가지고 역적모의로

몰아서 조치한 것이나까 꾀가 용이하였지만, 전에는 조정의 판국을 뒤집느니만

큼 용이한 꾀로 될 것이 아니었었다. 만일에 궁중 세력이 유리하게 돌지 못하였

다면 남곤, 심정의 백 가지 천 가지 꾀가 모두 소용이 없었을 것이었다. 남곤,

심정이가 이것을 잘 알았던 까닭에 심정이가 척분을 연줄 삼아서 경빈을 끌 뿐

이 아니라 홍경주같이 어리석은 위인과 손을 맞잡아서 희빈을 끌었던 것이다.

그러나 희빈과 경빈의 힘만으로는 임금까지 끌기가 용이치 못하였을 것인데

젊은 왕비 윤씨가 조광조 등을 미워하여 희빈과 경빈을 곁들어 준 까닦에 남곤,

심정이가 마침내 임금을 끌게 된 것이었다.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릴 때로 말하

더라도 어제같이 죽일 죄가 없다고 잘라 말씀한 임금이 곤전에서 한 밤을 지내

고 오늘같이 갑자기 사약을 내리게 되었으니 왕비 윤씨의 임금을 움직이는 힘이

절대하던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윤씨는 파산부원군 지임의 딸이니 중종대왕의 셋째왕비이다. 중종대왕이 정국

공신의 억지를 못 당하여 첫째왕비 신씨를 폐출하고 숙의 윤씨를 왕비로 책봉하

였는데, 이 윤씨는 파원부원군 여필의 딸이니 효혜공주와 인종대왕을 탄생한 장

경왕후이다. 왕후가 장래의 인종을 탄생하고 산후더침으로 승하한 까닭에 삼년

후에 파산의 딸이 간택에 뽑히어 셋째왕비가 되었었다. 파산의 딸 윤씨는 신씨

와 같이 유순하지도 못하고 장경왕후와 같이 유덕하지도 못하나 한미한 집 딸로

서 뒷줄이 없이 간택에 뽑히니 만큼 인물이 잘났었다. 임금에게 고임을 받는다

느니보다 임금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던 인물이었다. 자색과 총명이 겸비한데

다가 임금보다 십사오 년 아래 되는 연치가 있어서 임금의 맘을 용이하게 수중

에 모았었다. 임금이 정사를 마치고 내전에 들어와서 왕비 가까이 앉았다가 궁

인들이 보지 않는 틈에 손이라도 만지려고 하면 손을 감추면서 “궁인들에게 견

모되십니다.”하고 나직히 말씀을 아뢰어서 임금의 손이 무료하게 들어가도록 하

고 궁인들이 모두 물러가고 왕비 혼자 임금을 뫼시게 되면 분결 같은 손이 임금

의 무릎 위에 걸치어 임금의 손이 만지기를 능대하고 있었다. 임금을 성나게 하

고 임금을 웃게 하는 것이 왕비의 손에 있었다. 임금은 왕비가 웃기는 대로 웃

고 성나게 하는 대로 성내는 것이 일종의 재미가 되어서 내전에서 재미보는 시

각을 방해하는 의외의 일이 있을 때는 미간의 주름이 저절로 잡히었었다. 조광

조의 축이 조정에 있을 때는 경연이다 복합이다 면대다 구계다 임금이 성이 가

시더니, 남곤, 심정의 축이 조정에 들어선 뒤에는 경연은 시늉에 지나지 못하고,

복합은 절종이 되고, 면대나 구계가 있다 하여도 시각을 끌지 아니하여 임금이

내전 재미를 맘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임금이 항상 곤전을 떠나게 되지 아니

하므로 경빈, 희빈 같은 빈들은 곤전 옆에 뫼시고 있어 시중이나 들었지 따로

대전을 뫼실 때가 드물었다.

그러나 경빈은 상주 미인으로 이름이 있던 사람이라 나이 들고 자녀를 생산하

여 자색이 쇠하였다 하여도 전날 아리땁던 자취가 미목간에 남아 있어 임금의

어여삐 여김을 받을 만하고, 임금의 자녀 중에 연치로 맏아들인 복성군과 연치

로 맏딸인 혜순옹주와 옹주 중에 가장 총명한 혜정옹주의 소생모인 까닭으로 임

금의 대접이 자연히 다른 빈과 달리 후하였다. 왕비가 겉으로는 경빈 대접을 임

금보다도 더 후히 하나 속으로 은근히 미워하였다. 왕비가 한 달에 한동안 임금

을 가까이 뫼시지 못하게 될 때에는 희빈을 시켜 뫼시게 하고 희빈 역시 일이

있거나 또는 희빈이 괘씸스러울 때는 사람이 요사스럽지 아니한 창빈안씨 같은

궁인을 불러 뫼시게 하였다. 그 덕택에 경빈에게 미치는 것은 일 년 일차가 드

물었다. 사실로 안씨같이 순직한 후궁은 임금 뫼시게 되는 것을 오로지 왕비의

덕택으로만 알았었고, 이 덕택이 임금께는 곧 투기 없는 표가 되어 보이었었다.

왕비가 이와 갈이 임금의 맘을 한손에 쥐다시피 하였지만 세자에 향한 임금의

맘은 어찌하지 못하였다. 세자가 하루도 몇 차례씩 대전께 문안을 드리러 오건

만, 동궁에 찬림하여 세자의 기거 범절을 하순하는 때가 적지 아니하고 문안 때

가 조금만 늦으면 세자가 병이나 없지 아니한가 하여 내시를 보내 보되 그 내시

의 회주가 빠르지 못하면 연거푸 다른 내시를 보내는 때가 없지 아니하고, 세자

가 혹시 미령하면 쾌복되기까지 심려를 마지 아니하여 조석 수라가 현저히 평시

에서 감하였다. 왕비는 임금의 귀 너머로 지극한 자애를 흉보듯 변도듯 말하는

때가 없지 아니하였으나 임금의 앞에서는 감히 생심코 발설하지 못하였다.

 

8

왕비가 처음 입궁한 때에는 원자가 세 살 먹은 어린 아기라 그 귀여운 양이

자기의 소생이 아니라고 미워할 수가 없었으나, 원자의 범절이 놀랍게 숙성하여

궁중 상하가 칭송 아니할이 없을 때 왕비는 은근히 미워하는 맘이 생기기 시작

하였고, 원자가 여섯 살에 왕세자로 책봉되며부터 다음 날 소생 아들은 대군밖

에 못 되려니 하는 생각에 왕비가 눈에 가시로 보기 시작하였다. 효혜는 공주일

뿐 아니라 일찍이 김안로의 아들 희에게로 하가하여 그다지 고울 것이 없는 대

신 그다지 미울 것도 없었지만, 세자는 하루도 몇 번씩 눈앞에 보이는데 왕비의

미워하는 맘이 점점 더 심하였다. 세자의 체질이 약하건만 왕비의 눈에는 튼튼하

게 보이어서 도리어 걱정이었다. 왕비가 이런 맘을 내색하지 아니하려고 애를

썼으므로 임금은 까맣게 몰랐지만, 궁녀 중에 눈치 빠른 사람들은 속으로 짐작

하여 왕비 앞에서는 세자를 칭송하지 아니하였다. 세자는 성인의 자품이 천생으

로 탁월하여 어린 나이에 하는 일을 어른의 일로 보아도 흠잡아 말할수 없던 것

이 별로 없었던 까닭에 왕비는 밑도끝도없이“아이구 깜찍스러워”하고 말할 때

가 종종 있었는데 이것이 세자를 두고 하는 말인 것은 눈치 빠른 궁녀 외에는

알 사람이 없었다. 세자가 여덟 살에 관례하고 열 살에 열한 살인 세자빈과 가

례를 행하였는데 가례가 순성하던 날 임금이 내전에서 궁동으로 물러가는 세자

를 가리키며 “장래에 요순 같은 성군이 될 것이니 동방의 복이다.”하고 칭찬

하며 기꺼워하였더니 입술을 물고서 듣고만 있던 왕비가 그 뒤로는 세자의 말을

요순이라고하고 비꼬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세자가 열세 살 되던 해 봄 탄신날 식전에 어느 궁인 하나가 동궁에서 이곳저

곳 수군거리게 되었다. 그것은 불로 태워 죽인 쥐 한마리였다. 태워 죽인 쥐가

방자라고 하여도 그것만이면 궁인들끼리 서로 시기하여 한 짓으로도 볼 수 있지

만, 쥐 옆에 올해생건명이라고 쓰인 나뭇조각이 매어달렸은즉 궁중에서 올해생

사나이는 세자 한 분 뿐이라 세자를 두고 방자한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것이 누가 한 짓일까? 누가 시켜 한 짓일까? 경빈 박씨에게 있는 궁인이 전날

밤에 그 근방에 있던 것을 본 사람이 있었다. 본 사람은 곤전에 있는 궁인이었

다. 임금이 이것을 알고 세자의 탄신날 저녁때 내전에 형장 기구를 차리고 지목

받은 경빈의 궁인을 잡아내어 중장으로 신문하였으나,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지

못하였다.

화가 난 임금이 경빈의 부리는 궁인을 모조리 잡아내어 매질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세자가 입시하여 “신이 불초하온 탓으로 이런 일이 났사온즉 신은 말씀

을 아뢰기도 황송하오나 의심스러운 죄는 가볍게 다스림이 옛 성인의 뜻이오니

형장을 과히 쓰지 마옵소서.” 하고 부왕께 아뢰는데 부드러운 목소리가 임금의

화를 눅이어서 임금은 곧 형장 기구를 거두게 하였다. 이 일이 명백히 되고 아

니 되고간에 궁중에서 조처되고 말 것이 파원부원군 윤여필의 귀에 들어가서 파

원이 심정을 찾아보고 궁중 소문을 전한 뒤에 “이런 변이 어디 있소? 이리 하

다가 세자의 장래가 위태하실 모양이니 대감 같으신 이가 밖에 있어 세자를 극

진히 보호하여 드리면 작히나 좋겠소” 하고 눈물을 흘리며 부탁 비슷하게 말하

였더니 심정이는 경빈과 연통이 있으니만큼 경빈의 치의 받는 것이 자기에게까

지 미치지 아니하리라 속히 발뺌을 하는 것이 장사라고 생각하고 그날로 예궐하여

임금을 보입고 “윤여필의 말을 듣사온즉 그간 동궁에 저주의 변이 있다 하오니

이것은 국가의 대변이라 궁중에 덮어두지 마시고 조정에 내어맡기사 죄범의 정

절을 명백히 함이 마땅하올 줄로 신은 생각하옵니다” 하고 아뢴 것이 발단이

되어 일이 궁중에서 조정으로 옮기어 저주옥사가 일어났다.

이 옥사에 경빈의 궁인과 혜정옹주궁 하인이 혹독히 국문을 당하였는데 나뭇

조각의 글씨가 옹주의 부마인 당천위 홍려의 필적같은 점이 있어서 옹주궁 하인

이 국문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옥사는 경빈이 자기의 소생인 복성군으

로 대통을 잇게 할 욕심이 있어서 혜순, 혜정 두 옹주와 의론하고 세자를 방자

한 것이라고 결정되어 경빈과 복성군은 사약을 받고 두 옹주는 서인이 되고 혜

순옹주의 부마 광천위 김인경은 원찬을 당하고 당천위는 장하에 맞아 죽었다.

경빈의 죽은 것을 왕비와 왕비에게 가까운 궁인들 외에는 모두 원통히 여기었으

나, 불쌍하다는 말 한마디를 감히 입 밖에 내지를 못하였다.

 

9

심정은 경빈이 죽은 뒤에 궁중 소식을 염탐할 연줄이 없어져서 허우룩한 생각

이 없지 아니하였으나, 경빈의 연루 입지 아니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었다. 저주

옥사가 끝난 뒤에 어느날 심정이가 남곤을 와서 보고 조정 이야기도 하고 궁중

이야기도 하다가 부원군 윤여필이 세자 보호를 부탁하더라고 이야기하고 “우리

가 섣불리 동궁을 보호한다고 나서다가는 동궁의 덕을 보기 전에 중전의 미움을

받을 것이 탈이니까 겉으로는 동궁을 떠받들며 윤원로, 윤원형 형제에게 인정을

사두는 것이 상책이오. 지금 윤씨 형제가 중전의 동기로 조정의 박대를 받아 불

평불만이 있는 중이니 이런 때에 덕보이기는 지이차이할 것이오.” 하고 자기의

꾀많은 것을 자랑하듯이 웃으면서 남곤의 얼굴을 쳐다보니 전 같으면 눈웃음을

치며 “글쎄, 그래” 하고 바싹 앞으로 나앉을 남곤이가 얼굴의 힘줄 하나를 까

딱 아니하고 비슷이 앉아서 “아이구 성가신 소리 하지 마오” 하고 하품을 하

였다. 심정이가 괴상히 생각하여 “대감, 오늘 심기가 불편하신가요?” 하고 물

은즉 남곤이는 “아니오” 하고 고개를 흔들더니 “얼마 살 세상이라고 이것저

것 맘을 썩힌단 말이오. 나는 만사가 귀찮소.” 하고 또다시 하품을 하였다.

심정이가 재미없이 돌아간 뒤에 남곤이는 자기 사랑에 와서 있는 일가 사람을

불러올려서 “자네 내일 적성 좀 갔다 오게” 하고 이르니 그 일가 사람이 “왜

적성은이오?” 하고 묻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듯이 “큰댁 영감께 갔다 오란 말

씀입니까?” 하고 다시 고쳐 물었다. 남곤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우리 형

님은 나를 아우로 여기지 않을뿐 아니라 당초에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시니까”

하고 입맛을 다시다가 “여보게, 자네 생각에 이 다음 후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겠나? 아무래도 소인이라겠지?” 하고 풀기없이 말하는데 그 일가 사람이 완

곡하게 말한다는 것이 “그렇지 않기가 어려울 것이오” 하고 대답한즉 남곤이

는 또다시 입맛을 다시고 한동안 말이 없이 앉았다가 머리맡 손그릇 위에 놓인

자기의 시문 초한 것을 집어들고 장장이 찢기 시작하였다. 그 일가 사람은 어이

없이 여기어 보고만 있다가 “웬일이십니까?” 하고 물으니 남곤이는 “욕거리

를 남겨둘 것 없지” 하고 곧 “이리 오너라” 하고 청지기를 불러서 찢어놓은

휴지를 가져다가 불에 넣으라고 일렀다.

남곤의 일가 사람이 남곤의 편지를 가지고 적성 감파동에 사는 남곤의 형을

찾아갔더니 남곤의 형은 멀쩡한 눈을 가지고 거짓 청맹과니 행세하는 사람이라

“자네가 가지고 온 편지를 좀 읽어주게” 하고 말하여 그 사람이 편지를 읽어

들리었다. 그 편지 사연은 형제의 천륜이 막히다시피 된 것은 저의 죄라 용서하

기를 바란다고 하고, 저의 지은 죄가 머리털을 뽑아 헤아리기 어려울 것을 잘

안다고 중언부언한 것이었다. 남곤의 형이 다 듣고 나더니, “쉬 죽으려는 게군

” 하고 다른 말이 없이 눈물을 좌르륵 흘릴 뿐이었다. 그 사람이 서울로 돌아

온 뒤 얼마되지 아니하여 남곤이가 병이 났다. 병이 나며부터 정신을 잃고 헛소

리를 하였다. “덕순이가 날 죽이러 왔다” “아이구, 칼이 무서워. 칼이 무서워.

” 하고 소리를 지르고 진땀을 흘리고 난 뒤에는 손을 가지고 무엇을 만지는 시

늉을 하였다. 그 헛소리가 하루하루 더 심하여졌다. 내의는 고사하고 어의까지

나와서 여러 가지로 약을 썼으나 효험이 없었다.

심정이가 그때 마침 감기 기운이 있어 출입을 못하다가 남곤의 병이 위중하다

는 말을 듣고야 비로소 문병을 왔었다. 남곤이는 물끄러미 옆에 앉은 심정을 바

라보나 알아보는지 몰라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대감, 대감, 심정이 아시겠소?

정지요, 정지” 하고 자기의 이름과 자를 불러가며 알아보느냐고 물어야 남곤이

는 대답이 없더니 홀저에 “저놈 보아라. 저놈 보아라.” 하고 고개를 베개 밑으

로 넣으려고 애를 쓰며 “저놈이 정지를 죽이고 날 마저 죽이러 왔구나” 하고

전신을 벌벌 떨더니 “아이구 골이야” 하고 소리를 지르며 입으로 피를 토하였

다. 심정은 등골에 찬물을 붓는것 같았는데 감기 기운만이 아니었다.

 

10

영의정 남곤이 죽은 뒤에 남곤에게 몰려났던 정광필이 다시 영의정이 되었고,

심정이도 대배하여 우의정이 되었다가 나중에 좌의정에까지 승차되었다. 남곤이

가 살아있을때에 연성위 김희의 부친 김안로가 이조판서로 있어 남곤, 심정과

세력을 겨루려다가 세력이 밀리어서 원찬을 당하였었는데, 김안로는 남곤, 심정

이만 못지 아니한 간신이라 동궁 보호를 구실삼고 일부 조신과 기맥을 통하여

다시 조정에 들어서게 되었으니 이것이 남곤이 죽은지 사오년 후 일이다. 김안

로가 조정의 채를 잡은 뒤에 저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은 벼슬을 돋아주고, 저와

사혐이 있는 사람은 어느 모로든지 몰아서 귀양 보내거나 죽이거나 하였다. 김

안로와 함께 삼흉이라는 허항, 채무택 같이 안로에게 사자 어금니 노릇하던 자

는 말할 것도 없고, 안로에게 붙어서 고관대작을 지낸 자가 수가 없이 많았는데

도야지로 조명이 난 장순손이도 안로의 집과 이웃하여 살면서 안로의 비위를 맞

춘 까닭으로 일인지하요 만인지상이라는 영의정까지 되었다.

정광필은 사복 도제조로 있을때 안로가 목장 한곳을 자기가 쓰게 달라는 것을

국가의 땅을 베어 줄 수 없다고 거절한 일이 있을뿐 아니라 안로의 귀양 풀어주

려는 의론을 수차 막은 일이 있어서 안로는 함혐하고 백계로 모함하여 김해로

귀양 보내었다. 정광필과 같이 망중한 노인 대신도 안로에게 소소한 혐의가 있

어 원찬을 당하였으니 안로를 조정에서 몰아낸 한 사람인 심정이가 성할 리가

없다.

김안로는 심정이를 경빈의 저주 옥사에 관련이 있었다고 몰아서 강서로 귀양

을 보내고도 맘에 흡족치 못하여 가죄할 기틀을 엿보고 있던 중에 조정을 훼방

한 방서 한 장이 종로 종각에 붙은 일이 있어서 이것을 심정의 아들 심사순의

소위라고 몰아붙이어 사순과 및 심정의 집 사람은 고사하고 심정의 집과 상종이

없던 사람까지 엄혹한 형장으로 때려죽이게 하고 심정에게는 사약을 내리게 하

였다. 심정이가 후명을 받을 때에 남향 재배하고 나서 약그릇을 들고 “김안로

의 원수, 원수의 김안로” 하고 말하며 이를 갈았다. 심정이는 백번 천번 죽어도

마땅한 위인이지만 원통한 죄명으로 죽은 까닭에 세상 사람들이 대개 “천도가

무심치 않다” 고 말하는 중에 “불쌍하게 죽었다” 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아

니하였다.

심의는 심정의 아우인 까닭으로 의금부에 잡혀 갇히었다가 어전에서 곤장까지

맞았는데 국문에 대답이 장관이었다. “심정이는 벌써 죽었습니다. 내가 죽였는

데요.” “신이 형을 죽인 죄인이올시다. 죽어 마땅하외다” 하고 애고애고 통곡

도 하다가 “심정이에게 내 땅을 찾을 것이 있으니 이번에 찾아주십쇼.” “신

의 집에 문권이 있소이다”하고 허허 웃기도 하였다. 임금이 좌우를 돌아보며

“심의가 실성하였단 말을 들었더니 참말이고나. 내랬다 신이랬다 종이 없고나

”하고 말씀하시니 좌우에 있던 신하가 “실성한지가 오래옵니다. 평소에도 흔

히 횡설수설한다 하옵니다.” “저의 형이 남곤이와 같이 앉았는 것을 보고 두

소인놈이라고 호령한 일도 있었다고 하옵니다.” 말들을 아뢰었다. 임금이 저의

형을 소인이라고 호령하였다는 것이 우스워서 저으기 웃음을 머금고 “실성한

것이 아니면 천치고나. 정의 아우된 것이 죄라면 모르되 다른 죄는 짓지 아니하

였을 것이다” “형장을 그만두고 끌어 내보내라” 하고 말씀하여 심의는 곤장

을 몇 개 맞지도 아니하고 죄를 면하였다.

심의가 어전에서 곤장 맞고 나오는 길로 형의 집에를 와서 보니 사람이 떠나

지 아니하던 사랑방들은 모두 빈방이 되었고 안에를 들어온즉 형수와 질부가 한

방에 모여서 눈물로 서로 보고 앉았었다. 심의는 인사 한마디 아니하고 대청 구

석에 있는 쥐구멍으로 와서 펄썩 주주물러 앉아 “쥐구멍은 여기 있는데 우리

형은 어디를 갔나” 하고 방성대곡을 하기 시작하였다. 나중에는 갓 쓴 채로 머

리를 쥐구멍에다가 비비면서 “애고 형님, 애고 형님” 하고 한동안 형님을 부

르다가 기절한 사람같이 아무 소리가 없이 엎드렸었다. 그 형수와 그 질부가 방

에서 나와서 옆에 서 있는데 심의는 고개를 들고 물끄러미 형수를 치어다보더니

“우리 형님 찾아내오. 안 찾아내면 경치리다” 하고 한참 만에 “안해도 소용

없고, 아우도 소용 없소. 형님만 불쌍하오.” 하고 다시 울음을 울려다가 말고

“죽은 사람이 불쌍할 것 있나? 산 사람이 불쌍하지.” 하고 일어서서 말 웃음

웃듯이 입을 하늘로 치어들고 히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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