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꺽정이가 누이의 고생을 안 뒤에는 실상 죄없는 금동이를 밉게 볼 뿐이 아니
라 갖바치에게도 전과 같이 다르지 아니하였다. 금동어머니가 시어미 노릇 못되
게 하는 것을 갖바치가 전혀 모를 리 없을 것인즉 알면서도 짐짓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니 이것이 곧 시아비 노릇을 잘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어느 날 밤에 심의는 자기 집에 가고 갖바치와 꺽정이가 단둘이 앉아 있었는
데 갖바치가 장감이란 책을 펴서 놓고 새겨 이야기하여 가르쳐주다가 걱정이의
얼굴에 딴생각하는 빛이 있는 것을 보고 “고만 듣기가 싫으냐?” 하고 물은즉
꺽정이는 “아니오.” 하고 고개를 흔들고 “안에서 무슨 말소리가 나는 것 같
아서요.”하고 맘이 갈린 까닭을 말하였다. 갖바치가 책을 덮고 “사람 있는 데
말소리 나기가 예사이지.” 하고 빙그레 웃으면서 “꺽정아, 너의 누이 고생하는
것이 맘에 걱정이냐?” 하고 다정하게 물으니 꺽정이는 속으로 '저것 보아. 뻔히
알고도 모른 체한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당신이라구 걱정도 아니하겠소.
” 하고 불쾌히 대답하였다. 갖바치는 다시 빙그레 웃고 “시집살이란 본래 그
만 고생하는 것이다.” 하고 이르고 뒤를 이어서 “너의 누이 시집살이가 동안
에 오래지 아니할 게니 걱정 마라.” 하고 따로 짐작하는 일이 있는 것같이 말
한 뒤에 “책 이야기나 더 듣지 아니하려느냐? 이 책을 다 들려 준 뒤에는 이
책보다 더 좋은 육도삼략을 차례로 이야기하며 들려주마.” 하고 말하였다. 그
다정한 어조가 사람의 뺏속에 사무칠 것 같아서 꺽정이는 불괘하던 생각이 사라
없어지고 침착히 책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해 초가을에 금동 어머니가 토사병으로 급작스럽게 죽었다. 그 초종이 간단
하였다. 승새 굵은 북포로 수의를 짓고 닷푼널로 편을 짜서 송연을 칠하고 택일
도 아니하고 입관성복하던 이튿날, 두방망이 상여로 수구문 밖 북망산에 장사하
였다. 초상난 뒤 열흘이 채 못 되어서 안마루 한구석에 있는 상청 명색과 건정
으로 지내는 조석 상식 외에는 초상난 집 같지 아니하였다. 갖바치는 한번도 눈
물을 흘린 일이 없었으니 말할 것고 없고, 금동이가 오직 하나 서러워할 사람인
데 그 미련한 위인이 안해가 안방 차지하게 된 것만 다행으로 여기는지 저의 어
머니 죽은 것을 서러워하지 아니하였다. 갖바치의 집의 안살림이 섭섭이의 소임
이 된 뒤로는 꺽정이는 한걱정이 없어져서 맘이 편하였다. 꺽정이가 안방에 드
나들며 갖바치의 심부름을 하게 되었다. 꺽정이가 원식구 같고 갖바치는 도리어
손님 같았다. 꺽정이가 안방에 있을 때는 봉학이와 유복이도 안방으로 들어왔다.
처음에 봉학이와 유복이는 섭섭이를 아주머니라 불렀는데, 어느 날 꺽정이가 두
아이를 보고 “이애들, 우리 결의형제하자.” 하고 발론하여 세 아이가 형제의를
맺으며 두 아이도 꺽정이를 따라서 누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금동이는 세 아
이가 안방에 와서 등쌀 놓는 것을 성가시게 여기어서 안방에 있다가도 세 아이
들의 기척이 나면 “저것들 또 들어온다.” 하고 상을 찔그리고 일어서 나가는
때가 많았다. 꺽정이가 매부라고 부르는 것은 싫어도 대답하지만 봉학이나 유복
이가 “여보, 매부!” 하고 부르면 “경칠 자식, 매부는 무슨 매부냐?” 하고 볼
메인 소리를 하는 까닭에 두 아이는 그것이 우스워서 부르지 아니하여 좋을 때
도 “매부, 매부,” 하고 불렀다. 금동이가 그 전만 같으면 그들 머리에 꿀밤 개
나 솟쳐 줄 것이지만, 그들이 열두서너 살씩 먹은 아이랄 뿐이지 억세기가 어른
볼 쥐어지기를 만하여 호락호락하게 꿀밤을 받지 않게 되었고 더욱이 장사 꺽정
이가 뒤에 있는 까닭에 금동이는 손댈 생의를 못하고 입으로만 “오라질 자식,
고랑 찰 자식.”하고 욕할 뿐이었다. 꺽정이는 이것을 알고 두 아이를 부추기는
때가 많았다.
하루는 세 아이가 안방에 들어오며 금동이가 나가려고 일어서니 꺽정이가 “
매부, 나가지 말고 거기 앉으시오.” 하고 붙잡아 앉히었다. 꺽정이가 두 아이와
같이 북새를 놓고 놀다가 “너희들 매부하고 팔씨름해 보아라.” 하고 말을 내
어 두 아이가 매부 매부 하고 조르다시피 하여 금동이와 팔시름을 하게 되었는
데, 봉학이는 대번에 졌지만 유복이는 한참을 맞섰었다. 꺽정이가 “매부 세구
려, 나하고 한번 해봅시다.”하고 대어드니 금동이가 “너는 싫다.”하고 자빠졌
다.
10
봉학이와 유복이가 금동이의 골을 질렀다. 유복이가 “꺽정이 언니는 못 당할
것 같지?”하고 입을 비쭉하고 봉학이는 “꺽정이 언니가 세다고 해도 아이는
아이지요. 매부가 못 대어들고 자빠져서야 남부끄럽지 아니하오.?”하고 깔깔 웃
었다. 아니다를까 금동이가 골이 났다. 꺽정이를 보고 “어디 한번 해보자.”하
고 팔을 내미는데 꺽정이는 웃으면서 “회목 잡아 주리다.”하고 금동이의 손목
을 쥐려고 하였다. “주제넘은 소리 마라.”“두 팔 걸어도 아니 될 터인데 회목
잡이를 주제넘다고 ?”어디 해봅시다.“ 꺽정이가 힘도 들이지 않고 넘기었다.
금동이는 힘쓰기 전에 넘기었다고 탈을 잡고 고쳐 하여 보았으나 별수없이 지고
왼팔 씨름도 하여 보았으나 역시 할 수 없이 지고 나서 ”참말로 세다.“ 하고
나앉으니 꺽정이가 ”그것 보시오. 회목 잡아도 좋지 앉을까?“ 내가 힘만 쓴다
면 회목 잡은 외에 왼팔을 더 걸어도 매부에게는 질 것 같지 않소.”하고 웃으
니 “흰소리 마라. 설마 그렇기야 하랴?” “흰소리가 아니지요.”“어디 해보
자.”하고 금동이가 다시 덤비어 바른손목을 잡힌 위에 왼손까지 더 걸었다. 꺽
정이의 팔뚝은 쇠막대 세운 것 같았다. 금동이가 얼굴에 핏대를 올리며 넘기려
고 힘을 써도 넘어가지 아니하였다. 나중에 금동이가 “못 이기겠다.”항복하고
나앉는 것을 봉학이와 유복이는 저희들이 항복받으니나 다름없이 좋아하였다.
세 아이가 형이니 동생이니 하기 전에도 맘이 맞아 잘 지내던 것이 형제를 맺
은 뒤로는 의가 자별하여 서로 말다툼 한번 아니할 뿐 아니라 봉학이나 유복이
가 혹시 다른 아이들과 싸움을 주고받다가 형세에 몰릴 때에는 꺽정이가 반드시
역성하러 나서게 되고, 두 아이는 꺽정이 같은 역성꾼이 뒤에 있는 것을 든든하
게 생각하여 같은 아이들은 고사하고 여간 어른까지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다.
그리하여 조석 먹을 때와 잠잘 때 외에는 세 아이가 잠시를 서로 떨어지지 아니
하였는데, 그중에 봉학이가 몇 달 동안 갈려 지내지 앉을 수 없게 된 일이 있었
다.
봉학이의 외조모가 속앓이 본병이 있어 친한 중이 있는 것을 연줄삼아 서문
밖 진관으로 북약하러 나가는 데 봉학이를 데리고 가게 되었다. 불과 몇 달 동
안이 아니지만은 세 아이는 각기 다 섭섭하였다. 봉학이가 진관 가서 있는 동안
꺽정이가 유복이를 데리고 하루돌이로 찾아나갔다. 그 덕에 섭섭이의 안방이 조
용하여져서 금동이는 이외에 더 다행이 없이 생각하였다. 절에 와서 있는 봉학
이는 동무를 떨어져서 심심하였다. 꺽정이와 유복이가 자주 놀러나와서 같이 놀
때 뿐이지 놀다 들어가면 더욱 심심한 것을 못견디어하였다. 심심한 끝에 싸리
나무로 활을 만들고 빼앙대로 살을 만들어 활장난을 시작 한 것이 하루하루 재
미가 들기 시작하여 며칠 뒤에는 밥 먹을 것을 잊고 활을 쏘게 되었다. 나중에
는 한두 칸 앞에 나무쪽 과녁을 세우고 맞히기 시작하여 맞는 데서 재미가 더
생기었다. 봉학이가 꺽정이를 보고 “언니, 활이 재미납니다.”하고 빼앙대살로
나무쪽 과녁을 맞히어 보이니 꺽정이는 “한량 아우가 생겼구나.”하고 웃고 유
복이는 “그러면 나는 한량 언니라고 할까?”하고 따라 웃었다. 봉학이는 “태
조대왕이 활 잘 쏘았다고 선생님이 이야기하신 일이 있지 않소? 태조대왕의 핏
줄을 받은 내가 태조대왕만큼 활을 쏘고야 말터이니까 언니 두고 보시오.”“그
래, 활을 잘 쏘아서 둘째 태조대왕이 되어보렴.”“그러면 우리는 한량 언니의
신하가 되게.”하고 세 아이가 다같이 웃었다. 봉학이는 참으로 활에 열성이었
다. 중이 조석 예불할 때 뒤에 가 서서 “부처님, 제가 태조대왕같이 활을 잘 쏘
게 하여 줍소서.”하고 가만히 빌기까지 하였다. 열성이란 것이 무서웠다. 봉학
이의 활재주가 나날이 늘어서 활장난 시작한 지 한 달 안에 굵은 싸리나무 활에
끝을 깎은 싸리나무 살로 참새를 쏘아 맞힌 일이 있었다. 봉학이가 외조모와 같
이 절에서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에 문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때는 봉학
이의 활솜씨가 처음에 장난으로 보고 웃던 것이 꺽정이까지 칭찬할 만큼 되었었
다.
11
봉학이가 전과 같이 셋 동무로 섭슬려다니지마는 걱정이와 유복이가 뛰엄질
같은 장난을 할 때, 봉학이는 그 틈에 끼이지 않고 혼자 따로 서서 활을 쏘았다.
유복이가 심사가 나면 “한량은 사정으로 가시오.”하고 비꼬아 말하는 일도 있
었으나 이런 때는 꺽정이가 “조롱 말고 가만두어라.”하고 유복이를 눌러서 그
리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꺽정이는 가다가는 혹시 웃으면서 “우리 한량 활
을 잘은 쏜다.”하고 조롱 반 칭찬할 때가 없지 않았다. 그리하여 한량이 봉학이
의 별명이 되어서 꺽정이와 유복이는 고사하고 다른 사람의 입에서라도 한량이
란 말이 나오면 봉학이도 저의 말을 하거나 하고 무심결에 돌아보게 되었다. 봉
학이가 원래 손이 재고 눈이 빠른데다가 천생 타고난 궁재가 보이어서 장난감
활일망정 쏘는 살이 겨냥에 틀리는 법이 없었다. 봉학이는 여러 가지 활에 여러
가지 살을 만들어 가졌다. 뽕나무 활에 조릿대 살도 있고, 앵두나무 활에 수숫대
살도 있고, 또 대가지 활에 새꽤기 살도 있었다. 그중에 대가지 활은 대쪽을 깎
아서 활 모양을 만든 것이니 작기가 장뼘 한 뼘이 될락말락하였다. 봉학이는 새
꽤기 살에 바늘촉을 박아서 파리를 쏘아잡는 까닭에 이 활을 파리활이라고 이름
지었다. 봉학이가 파리활로 앉은 파리를 쏘아서 백발백중 맞힐 뿐이 아니라 복
치로만 쏘는 것을 재미적게 여기어 일부러 파리를 쫓아 날리고 날치로 쏘기를
공부하여 얼마 뒤에는 나는 파리를 놓치지 않게 되었다. 조그만 날개에 힘이 많
은 것을 자랑하듯이 날개치는 무당파리가 살을 맞아 떨어지게 되니 몸집이 큰
쉬파리는 천생이 과녁감이었다.
봉학이의 파리 사냥이 동리에서 다 알도록 유명하여졌다. 갖바치가 심의와 공
론하고 남촌에서 명수로 치는 궁장에게 부탁하여 자그마하고 이쁘장스러운 숙각
궁을 만들려고 엿돈쭝 유엽전을 극상으로 구하여 이쁜 전통에 넣고 활 소용에
당한 제구를 갖추갖추 장만하여 세 아이의 눈에 뜨이지 않게 벽장 안에 넣어둔
뒤에 어느 날 낮에 갖바치가 “오늘 우리 파적으로 한량의 시재를 보입시다.”
말하고 봉학이를 불러서 파리를 쏘이었다. 심선생과 주인 선생이 아랫목에 나란
히 앉아 있고, 꺽정이 형과 유복이 아우가 윗목에 느런히 서 있다. 봉학이가 그
중간에 들어서서 재주를 다하여 보이었다. 처음에 서너 마리는 벽에 앉은 채로
꿰어 박아놓고, 그 다음에 너덧 마리는 일변 날리며 일변 쏘아 떨어뜨리고, 나중
에 두어 마리는 일시에 날리고 연발로 쏘아 맞히었다. 앉은 파리를 쏘아 꿸 때
부터 ‘허허’하고 감탄하던 심선생이 날치에다 연발까지 하는 것을 보고 “저
것 보아 저것 보아.”하다가 나중에 “귀신 같은 재주다!”하고 칭찬하여 갖바치
를 돌아보니 갖바치는 “태조대왕 같은 명궁이 되겠다.”하고 웃고 봉학이에게
“심선생님께서 좋은 상급을 주실 터이다.”말하며 벽장문을 열고 활과 전통과
및 다른 제구를 모두 내놓았다. 심선생이 낱낱이 집어서 봉학이를 주니 봉학이
는 좋아서 싱글벙글하며 절하고 받은 뒤에 팔찌를 매고 각지를 끼고 살수건은
고사하고 노루발까지 달려 있는 전통을 메고, 그리하고 활을 들고 방에서 나와
서 겅중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 뒤에 봉학이의 외조모가 봉학이를 데리고 와서 심의와 갖바치를 보고 외
손자를 그와 같이 사랑하여 주니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이놈이 돌날 돌상에서
활을 맨 처음에 쥐더니 지금 보면 활로 입신할 것 같소이다." 말하고 또 "저의
아버지가 뼈는 근본이 있던 사람이고 죽기도 의리로 죽었으니까, 이놈이 다음날
속신하여 호방으로 출세하면 만호, 첨사쯤이야 얻어 하겠습지요." 말하며 좋아하
였다. 봉학이가 정말 활을 얻은 뒤에는 궁방에 가서 궁장이를 친하여 활 먹이는
것을 보고 시위 누이는 것도 보고, 또 활을 점화하여 버릇 고치는 것도 보아서
혼자서 활을 다루게 되었고, 사정에 가서 한량을 친하여 하삼지로 줌통 쥐는 법
도 배우고 상삼지로 시위 그읏는 법도 배우고 각지손 떼는 법도 배우고, 또 비
정비팔에 흉허복실로 서는 법을 배워서 궁체를 얌전히 가지게 되었다. 아기 한
량의 색시활을 메고 다니는 것이 동소문 안의 명물이 되었다. 봉학이가 사실로
명무에 지나가는 재주를 가졌지마는, 사정에 가서 활 쏠 잡이가 못 되는 까닭에
삼선평에 나가서 먼장질을 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성균관 뒷산에 올라가서 새
사냥을 하였다. 새 사냥할 때에는 꺽정이와 유복이도 반드시 따라다니며 구경하
였다.
12
어느 날 봉학이가 활을 메고 동소문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유복이가 뒷산으
로 새 잡으러 가자고 붙잡으니 “새가 있어야지 잡지.”하고 봉학이가 뒷산으로
가지 아니하려는 것을 꺽정이가“없거나 있거나 가보자꾸나.”하고 우기어서 세
동무가 성균관 뒷산에를 올라왔다. 그윽한 곳에 있는 성한 나무숲에 새들이 없
을 리 없지마는, 아기 한량 활 그림자에 놀란 새들이 높이 날아 멀리 피하고 아
기 한량이 흥풀이하라고 남아 있지 아니하였다. 아기 한량까지 세 아이가 숲속
으로 이리저리 헤매는 동안에 산비둘기나 종새 같은 큰 것은 고사하고 솔새나
굴뚝새같이 작은 것도 한 마리 만나지 못하고 흥이 없이 도로 내려오는 길에 봉
학이가 가죽나무 가지에 뒤로 앉은 까치를 보고 한번 시위를 당겼다. 그 까치는
꽁지 밑에 살을 맞고 푸드득하고 날아서 옆가지 위에 있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살대는 까치집 밖으로 내다보이나 까치가 나오지 아니하니 그 살 한 대는 잃어
버리지 않을 수 없이 되었다. 봉학이가 살이 아까워서 "저것을 어찌하나?"하고
걱정하니 유복이가 "가만 있소."하고 잔돌을 주워가지고 와서 팔매를 치기 시작
하였다. 팔매가 까치집에 맞기도 하였지만, 꽁지 밑에 박힌 살을 주둥이로 뽑아
보려고도 못하고 죽은 듯 엎드려 있는 까치가 겉팔매를 겁내서 나올 까닭이 없
었다. 봉학이가 팔매질이 소용없는 것을 보고 활과 전통을 유복이에게 맡기고
나무에를 올라가려고 하니 꺽정이가 나무 밑으로 와서 나무의 위아래를 눈으로
재어보며 "가만 있거라."하고 봉학이를 올라가지 못하게 한 뒤에 나무를 두 손으
로 흔들었다. 그 가죽나무가 크기는 얼마 되지 아니하여 밑동이 두 손으로 싸서
쥘 만하였다. 나무가 흔들흔들하였다. 그러나 까치는 종시 나오지 아니하였다.
봉학이가 "언니 소용없소."하고 말하니 저의 하는 일이 소용없다는 데 꺽정이가
골이 나서 저고리를 벗어붙이고 나무를 뽑으려고 대어들었다. 유복이가 이것을
보고 "땅에 박힌 생나무가 그렇게 쉽게 뽑히오? 언니, 소용없는 짓 마오."하고
웃으니 저의 하려는 일이 소용없다는 데 꺽정이가 골이 더 올랐다. "가만, 있거
라, 어디 보자."하고 꺽정이는 허리를 구부려서 밑동을 아래로 껴안고 힘을 썼다.
한두 차례 힘쓰는데 나무가 우쭉우쭉하여 뽑힐 것 같았다. 봉학이가 유복이에게
서 활과 전통을 찾아서 전통은 메고 활은 살을 먹여 들었다. 꺽정이가 눈을 부
릅뜨고 입을 악물고 한번 응 소리를 크게 질렀다. 그리하고 허리를 폈다. 가죽나
무가 뽑혀 넘어지며 까지가 날았다.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던 까치가 미처 멀리
날지 못하여 살 한 대가 대가리를 꿰어뚫어서 허무하게 떨어졌다. 꺽정이는 저
고리를 집어서 안섶으로 얼굴의 땀을 씻고서 "인제도 소용없니?"하고 두 아이를
돌아보았다. 두 아이의 눈에는 꺽정이가 사람 같아 보이지 아니하였다.
유복이는 봉학이가 두 선생에게 상급을 받을 때 재주가 부러웠고, 꺽정이가
뒷산에서 생나무를 뽑을 때 힘이 부러웠다. 힘은 부럽지만 천생이라 할 수 없고
재주는 한 가지 배워보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활만은 배워야 봉학이만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무슨 재주를 배워 볼까?'하고 혼자서 궁리하였다. 그리하여
유복이는 댓가지로 창을 만들어 가지고 수법도 모르면서 두르기며 찌르기며 던
지기를 공부하였다. 유복이가 사람이 의뭉한 까닭에 낮이면 선생의 집에 와서
전과 같이 장난하고, 밤에만 집에 가서 창쓰기를 공부하는데 저녁때 조금 일찍
이 돌아가는 것 외에 꺽정이는 고사하고 약은 봉학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몰
래몰래 공부하였다. 유복이는 창을 어지간히 쓰게 된 뒤에 의형들을 놀래줄 작
정이었다. 심선생의 집 앞마당이 넓기는 하지만, 긴 창을 내두르기 어려울 때가
많고 유복 어머니가 글공부 아니하고 장난 공부한다고 대창을 분지르기까지 한
까닭으로 유복이는 그 어머니 몰래 조그만큼씩한 대창들을 만들어 두고 꾀꾀로
틈을 타서 물건을 던져 맞히기를 공부하였다.
하루 이틀 지나는 동안에 차차로 손이 익숙하여 처음에 가까운 거리에 큰 물건이나
맞히던 것이 거리가 조금씩 멀어지고 물건이 조금씩 작아져도 능히 맞히게
되어서 두서너 간 밖에 있는 참새를 노릴만큼 되었다.
그러나 참새는 잡지 못하고 털만 뽑아놓을 때가 많아서 제일로 귀신 같은 한량
형에게 재주라고 보이기가 부끄러웠다.
그러한데 유복이가 던지는 것이 버릇이 되어서 아무것도 아니 가진 맨손을 가지고도
던지는 시늉을 내는 것이 봉학이 눈에 뜨이어서 “너 왜 손짓을 그렇게 하니?”
하고 괴상히 여기는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런 때마다 유복이는 “어깨
가 아파서 그러오.”하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하여 대창 던지는 공부를 숨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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