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섭섭이의 사내 동생이 꺽정이니 꺽정이도 섭섭이와 같이 별명이 이름이 된 것
이다. 처음의 이름은 놈이었던 것인데 그때 살아 있던 외조모가 장래의 걱정거
리라고 “걱정아 걱정아.” 하고 별명 지어 부르는 것을 섭섭이가 외조모의 흉
내를 잘못 내어 꺽정이라고 되게 붙이기 시작하여 꺽정이가 놈이 대신 이름이
되고 만 것이다.
꺽정이가 어릴 때부터 사납고 심술스러워서 아래위의 앞니가 갓났을 때에, 무엇
에 골이 나서 우는 것을 그 어머니가 “성가시다, 우지 마라”하고 꾸짖으며 젖
을 물리었더니 꺽정이가 젖을 이로 물어서 젖꼭지를 자위가 돌도록 상한 일이
있었고, 불과 너덧 살 되었을 때에 그 아버지와 겸상하여 밥을 먹는데, 저의 아
버지에게만 국그릇을 놓았더니 꺽정이가 아무 말도 없이 뜨거운 국그릇을 들어
서 저의 앞으로 옮겨놓은 일이 있었다. 이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라 “저것이 장
래 크면 무엇이 될라노”, “저것이 커서도 저러면 참말 걱정거리다”하고 장래
를 걱정하는 것이 그 외조모뿐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버지 돌이만은 아들이 귀
여워서 “사내자식이 그래야지 계집애 같아서야 무엇에 쓴담”하고 걱정은 고사
하고 도리어 칭찬하였다. 그리하여 집안에서 꺽정이를 꺾을 사람이 없어서 어린
꺽정이의 기가 자랄 대로 자랐었다.
꺽정이의 나이 칠팔 세쯤 된 때에 어느 날 꺽정이의 어머니가 방에 앉아 바느
질하다가 옆에 너부죽이 엎드려 발장구치는 꺽정이를 보고 “네가 커서 무엇이
될래?”하고 물은즉 꺽정이가 “아버지처럼 소 잡지”하고 선뜻 대답하더니 다
시 그 어머니의 얼굴을 치어다보면 장래 될 것을 의논하듯이 말하여 그 어머니
도 웃으며 말대꾸하였다. “목사가 소 잡는 것보다 나을까?”, “나으면 어떻게
할래?”, “그러면 목사하지, 목사보다도 나은 것이 있소?”, “그럼 있고말고.
참판 영감도 있고 판서 대감도 있고 대장도 있고 정승도 있지, 많지”, “그중
제일 꼭대기가 무어요?”, “정승이란다”, “정승 위에는 아무 것도 없소?”,
“그 위에 상감이 계실 뿐이다”, “그러면 상감이란게 꼭대기이구료. 내가 크
거든 상감 할라오”, “그런 소리 남 들으면 큰일난다”하고 그 어머니가 임금
께 대하여 말씀 한마디만 불공스럽게 하여도 역적으로 몰리어 죽는 것과 백정은
천인인 까닭에 조그마한 벼슬도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서 “네 말대로 소 잡는
게나 잘 배워라”하고 타이르니 “나 싫소. 사람 잡는 것이나 배우지 소 잡는
건 안 배울라오”하고 꺽정이의 볼이 부었다. 그 어머니가 “사람 잡는 것을 가
르치는 데가 어디 있니?”하고 웃으니 “없으면 혼자 배우지”하고 꺽정이는 더
말하기 싫다는 듯 벌떡 일어나 나갔었다.
그때 마침 돌이가 들어와서 꺽정이의 어머니가 남편을 보고 꺽정이의 말을 그
대로 옮기고 나서 “좀 다잡아 이르시오. 그대로 자랐다간 큰일내겠소”하고 말
하니 돌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앉았다가 밖으로 나가서 꺽정이를 불러가지고 들
어왔다. “이얘, 내 이야기 좀 들어라”하고 사촌누이 봉단이가 사람이 잘나서
지금 정경부인이 된 것을 이야기하고 그 뒤에 조상이 최장군을 길러내서 세상에
대접받았다는 것을 이야기하니 꺽정이는 최장군의 범 잡는 이야기가 재미가 나
서 “아버지, 그래”하고 이야기의 뒤를 재촉하였다. 돌이가 안해를 돌아보고 “
그 활을 좀 찾아오우”하고 말하여 활을 갖다놓은 뒤에 이 활이 최장군이 쓰던
것인데 집에 전하여 오는 보배라고 말하여 활을 내서 보인즉 꺽정이가 손을 내
밀어서 활을 받아들고 “이까짓게 보배야”하고 두 손으로 양끝을 잡아 휘니 꺽
정이가 아이라도 힘이 세찰 뿐 아니라 활이 삭았던 까닭에 딱 하고 분질러졌다.
돌이가 “저놈이!”하고 놀라 소리치고는 어이가 없어서 말을 못하고 앉았더니
꺽정이는 잘한 듯이 웃었다. 돌이가 그 웃는 것을 보고 화가 더 났던지 꺽정이
의 팔죽지를 끌고 마당으로 나와서 사매질을 하여 꺽정이의 몸에 구렁이를 감아
놓았다. 꺽정이는 이를 악물고 매를 맞는데 꺽정이의 어머니는 아들의 장래가
무섭기도 하고 아들의 당장 맞는 것이 애처롭기도 하여서 눈물을 흘리고, 섭섭
이는 그 아버지의 팔에 매달려 가며 동생 맞는 것을 말리었다. 꺽정이가 속으로
보배될 것도 없는 활을 좀 꺾었다고 때리는 그 아버지가 옳지 않게 생각하였으
나 이렇게 몹시 맞은 뒤로 그 아버지 앞에서는 기를 펴고 심술부리는 일이 적어
졌다.
6
돌이가 동리 글방 선생에게 애걸하다시피 간청하여 꺽정이를 글방에 보내게
되었다. 꺽정이가 처음 글방에 가던 날 돌이가 데리고 가는 길에까지 다른 아이
들과 싸우지 말고 선생님 말을 잘 들으라고 신신당부하였더니 불과 며칠 안에
당부한 보람이 없어지게 되었다. 글방 아이들이 백정의 자식이라고 넘보고 업수
이 여기어서 꺽정이를 외톨로 돌리고 같이 놀지 아니하는데 꺽정이가 심술이 났
지마는 하루 참고 이틀 참고 하여 며칠을 참아왔다. 어느 날 선생이 어디 나간
틈에 여러 아이들이 밖에 나와서 장난을 치는데 꺽정이가 혼자 따로 서서 구경
하다가 그 글방 아이들 중에서 거수 노릇하는 열댓 살된 반명의 아들 아이에게
로 와서 “이애 나하고 같이 고누 두자”하고 짓궂이 걸어보았더니 그 양반 아
이가 대번에 “백정놈의 자식이”하고 욕을 내놓았다. 꺽정이가 두말 아니하고
주먹다짐을 시작하여 싸움이 되었다. 꺽정이가 나이로는 그 아이보다 훨씬 아래
지만 기운이 세기는 그 아이 네다섯이 함께 덤벼도 당치 못할 만하던 까닭에 그
아이는 대가리도 얻어맞고 볼퉁이도 쥐어질리었다. 선생이 돌아온 뒤에 다른 아
이가 고자질하여 선생이 꺽정이를 불러 세우고 “양반의 댁 도련님에게 손찌검
을 하다니, 너 이놈 매 좀 맞아라”하고 종아리채를 해오라고 야단을 쳤다. 꺽정
이는 선생의 층하하는 것이 아이들의 업신여기는 것보다 더 분하게 생각하여 책
을 들어서 선생의 면상에 내던지고 “글을 안 배우면 고만이다”하고 횡하게 집
으로 돌아왔다. 돌이가 이것을 알고 꺽정이를 걱정할 뿐 아니라 꺽정이 대신으
로 선생에게 사죄까지 갔었으나 꺽정이가 다시 글방에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갖바치가 위요로 와서 꺽정이를 보았다. 열한두 살 먹은 아이가 열대여섯 되
었다고 하여도 곧이들릴 만큼 숙성하였다. 살빛이 거무스름한 네모 번듯한 얼굴
에 가로 찢어진 입도 좋고 날이 우뚝한 코도 좋거니와 시커먼 눈썹 밑에 열기가
흐르는 큼직한 눈이 제일 좋았다. 인물이 그릇답게 생기었다. 갖바치가 “대장감
으로 생겼구나”하고 칭찬하고 빙그레 웃은 돌이는 “우리네 자식이 잘생기면
무엇하오”하고 한숨을 지었다.
갖바치가 이삼 일 새사돈 집에서 묵었는데 하룻밤에는 돌이가 갖바치를 보고
꺽정이의 성질이 사나운 것을 걱정하다가 “우리 아버지가 위하고 위하던 조상
님을 그 자식이 꺾어버리었소. 우리 아버지가 살아서 보았더면 그 자식을 죽여
놓거나 자기가 죽거나 했을 것이오”하고 말하고 “글이나 좀 가르치면 성질이
고쳐질까 하고 글방에를 보냈더니 백정놈의 자식이라고 하고 하대한다고 반명의
자식과 싸울 뿐 아니라 선생까지 욕을 보이어서 글방에도 다니지 못하게 되었어
요. 그래서 될 대로 되라고 가만히 내버려 두었는데 그 자식이 기운이 장사요.
팔구 세 때부터 몽근 벼 한 섬을 예사로 드날랐소. 기운이 이런데다가 성질이
불 같아서 아이들은 고사하고 어른도 섣불리 건드리지를 못하였소. 저의 어미니
가 죽을 때 운명하기 전 정신기 있어서까지 성질을 좀 고치라고 중언부언하더니
요 몇 해 동안 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으나 그렇지만 천생이야 어디 가요. 지금도
저의 비위에 틀리는 일만 있으면 물불을 헤아리지 아니하오. 내가 이르는 말이
나 저의 누이의 달래는 말을 좀 듣는 것이 저의 누이까지 가고 보면 더 걱정이
오”하고 한걱정을 삼아 말하였다.
갖바치가 다 듣고 나서 “내가 맡아다 가르쳐 볼까?”하고 실없는 말 비슷하
게 말을 하자, 돌이는 들었다 보았다 하고 “그렇게 해주시면 작히나 좋겠소. 그
렇지 않아도 청을 하고 싶은 맘이 있던 차요”하고 기뻐하니 갖바치는 웃으며
“생마 길들이는 값은 무엇인가?”하고 묻고서 돌이의 대답은 기다리지 않고 “
백정 설치인가”하고 허허 웃었다. 하여간 당자의 의향을 물어보아서 정하기로
하고 그날 밤을 지난 뒤에 이튿날 갖바치가 꺽정이를 보고 “너의 아버지가 너
를 내게 맡긴다고 하니 네가 날 따라 서울 가려느냐?”하고 물으니 꺽정이는 간
다 안 간다는 말하기 전에 “서울 가서 무어하오?”하고 도리어 물었다. “글공
부하지”, “글공부는 싫소. 그렇지만 서울은 갈라오”, “아무려나. 너 싫은 것
은 고만두지. 어려울 것이 무엇 있니”하고 갖바치는 웃었다.
7
갖바치가 금동이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올 때, 꺽정이도 같이 왔다. 돌이가 “
딸년 신부례한 뒤에나 꺽정이를 보내리다”하고 말하는 것을 갖바치가 “가만
있게. 그것도 저더러 물어보세”하고 꺽정이를 불러서 의향을 물어보니 하루라
도 일찍이 서울 오고 싶어하는 말이라 돌이를 보고 “제가 일찍이 가고자 하니
이번에 내가 데리고 가겠네”하고 말하여 곧 같이 오게 된 것이다. 갖바치가 꺽
정이를 집에 데려다 둔 뒤에 지각 없는 어린아이로 보지 않고 점잖게 대접하는
까닭에, 꺽정이는 갖바치를 어려워하면서도 따르게 되었다.
꺽정이는 금동이 모자와 심선생이 맘에 조금 마땅치 못하였으나 봉학이와 유
복이 같은 맘에 맞는 동무가 있어서 좋아하였다. 봉학이는 동갑이나 생일이 아
래요, 유복이는 한 살 아래라 꺽정이가 두 아이의 맏형과 같았다. 봉학이와 유
복이가 글을 읽을 때 꺽정이 혼자서 심심하여 글공부를 시작하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동생 같은 두 아이가 소학을 첫권, 둘쨋권 읽고 있는데 하늘 천
따 지하는 천자문을 시작하기가 창피하여 말을 내지 아니하였다. 꺽정이가 글을
읽지 아니하는 까닭으로 두 아이까지 차차로 글공부를 싫어하고 달음질, 뛰엄질
같은 장난에만 맘이 팔리게 되었으나, 갖바치는 한번 꾸짖지도 아니하고 저희들
하는 대로 내버려 두다시피 하였다.
어느 날 세 아이가 안 뒤꼍 담 밑에서 공기를 놀리다가 꺽정이가 공기가 적어
재미없다고 말하여 큼직한 돌덩이를 가지고 공기를 놀리기 시작하였다. 꺽정이
는 돌덩이를 높이 치뜨리고 왼손으로 선뜻선뜻 받았지만 , 봉학이는 치뜨릴 생
각조차 못하고 유복이는 간신히 치뜨리기는 하나 두 손을 가지고도 잘 받지 못
하였다. 나중에 유복이가 한번 높이서 떨어지는 것을 받아본다고 허리를 굽히고
힘껏 치뜨린다는 것이 돌덩이가 빗나가서 담 너머로 넘어가며 와지끈 소리가 났
다. 담 너머 이웃집 장독대의 장독이 깨어진 것이다. 유복이가 얼굴빛이 파래졌
다. 꺽정이는 “깨졌으면 고만이지 겁낼 것 없다”하고 장독 주인이 된 것처럼
말하는데 봉학이가 “여기 있지 말고 어서 빨리 밖으로 나가자”하고 말하여 세
아이가 밖으로 몰려 나와서 바깥 마당에서 뛰엄질을 하고 있었다.
얼마 동안 아니 되어서 이웃집 주인이 갖바치를 찾아왔다. 그 사람이 방으로
들어간 뒤에 봉학이가 유복이를 보고 “탈방망이가 왔다”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탈방망이는 무슨 탈방망이?”하고 “가만 있거라. 내 들어가 보고 오마”하고
방문을 여니 갖바치가 “들어오지 마라”하고 말하였다. 이웃 주인의 불공스러
운 말소리와 주인 선생의 온공스러운 말소리가 한동안 섞이어 나고, 심선생의
말소리가 몇 마디 들린 뒤에 이웃집 주인이 나오더니 유복이와 봉학이보다도 꺽
정이를 많이 흘겨보며 돌아갔다.
갖바치가 세 아이를 불러서 앞에 나란히 앉히고 “누가 이웃집 장독을 깼느
냐?”하고 묻는데 말소리는 높지 아니하나 말하는 모양은 전에 없이 엄숙하게
보이었다. 봉학이는 뱅글뱅글 웃고 유복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꺽정이가 “
선생님, 제가 깼습니다”하고 똑똑하게 말하였다. “왜 깨었느냐?”, “공기를
받다가 돌이 빗나갔습니다”, “힘에 겨운 큰 돌을 가지고 공기를 받다가 남의
장독을 깨인 것이 잘한 일이냐?” 꺽정이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 말이 없다가 “
힘에 넘치는 공기는 다시 받지 않겠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꺽정이가 선생의 묻는 말에 대답하는 동안에 봉학이는 여전히 뱅글뱅글하고 유
복이는 줄곧 고개를 숙이었다.
갖바치가 세 아이를 나가서 놀라고 밖으로 내보낸 뒤에 심의가 “꺽정이가 깨
인 것을 숨기지 않는 것이 사내다워”하고 말하니 갖바치는 “꺽정이가 제가 깨
인 것도 아닌 모양이오”하고 웃었다. “그러면 어느 놈이 깨었을까?”, “고개
를 들지 못하던 유복인 게지요”, “꺽정이가 유복이 죄를 가로맡은 모양이군”,
“그런 모양이지요”, “대체 이웃 사람의 말로 보면 돌덩이가 물박같이 크다더
니 엄청나지. 그런 것을 가지고 공기를 받다니”, “세 놈이 모두 힘에 겨운 공
기를 받을 감들이오”하고 갖바치는 잠깐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8
꺽정이가 글공부는 아니할망정 배우는 것과 익히는 것이 없지 아니하였으니
배우기는 대개 주인 선생의 이야기를 듣는 데서 배우고 익히기는 주장 두 동무
와 장난하는 데서 익히었다. 갖바치가 밤저녁이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리어
주는데 꺽정이가 제일 재미있어 하기는 옛날 명장의 싸움 싸우던 이야기였고 꺽
정이가 두 동무와 갖은 장난을 다하는데 셋이 다같이 좋아하기는 높이 뛰고 널
리 뛰고 하는 뛰엄질이었다. 꺽정이가 낮이면 두 동무와 장난하고 밤이면 갖바
치에게 이야기를 듣는 외에 별일이 없이 한 해를 보내었다.
이듬해 봄에 금동이 어머니의 재촉으로 섭섭이를 신부례하여 왔다. 금동이는
사람이 별미쩍고 무식스러우나 안해만은 부모보다도 더 각별히 위하여서 별 탈
이 없었지만, 금동이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까다로워서 섭섭이의 시집살이가 고
되었다. 처음에는 섭섭이가 무무하다고 잔소리쯤 하던 것이 날이 갈수록 차차
심하게 되어서 “반찬 한 가지 똑똑히 맨들지 못하고 옷 한 가지 반반히 꿰매지
못하니 나이 이십여 살 되도록 배운 것이 무엇이냐?”, “며느리를 얻어온 게
아니라 상전을 얻어왔다”하고 소리가 커지기 시작하였고, 정히 심하게 되면서
섭섭이가 웃으면 “미쳤니? 시시거리게”하고 꾸짖고 섭섭이가 골을 내면 “주
둥이를 뽀르퉁하고 다니면 누가 겁을 내니”하고 야단치고 또 섭섭이가 조금 말
대답이나 할 때에는 “백정의 딸자식이라서 할 수 없다” 하고 근본 하자까지
하여 섭섭이는 남모르게 눈물줄기를 좋이 흘리었다. 금둥이는 저의 어머니가 안
해를 구박하는 것이 맘에 좋지 아니하여 저의 어머니가 야단치는 것을 보게되면
“어머니 그만두세요.” 하고 말리기도 하였지만 “잔뼈가 굵어지니까 계집밖에
모르느냐?” 이와 같은 말에 우박을 맞을 뿐이었다. 금동이가 섭섭이의 쓰는 건
넌방에 들어가는 것을 금동 어머니가 밉게 보아서 자고 나가는 이튿날이면 금동
이에게는 까닭없이 화를 내고 섭섭이는 공연히 들볶았다. 이런 날 섭섭이가 혹
시 무엇을 묻게 되면 “너는 잘 아는 것이 한 가지뿐이냐?” 하고 사람이 괴란
스럽게까지 말하였다. 이 까닭에 금동이가 방에 들어오는 것을 섭섭이는 반갑게
알지 아니하지만, 금동이는 화받이하는 것을 대사로 여기지 아니하고 쇠귀신같
이 줄기차게 들어왔다. 나중에는 어머니가 “나무 흔한 시골도 아니고 백사지
땅 서울에서 군불나무를 대기도 힘이 키인다.” 하고 건넌방을 폐하고 안방 한
방을 쓰게 하여 금동이는 낭패 보았으나 섭섭이는 맘의 송구스러운 것이 덜하여
서 다행으로 여기었다.
섭섭이는 꺽정이의 얼굴을 하루 한두 번씩 못 보지 앉지마는 조용히 이야기할
틈이 적을 뿐이 아니라 성질 사나운 동생이 혹시 괴악을 부릴까 무서워서 고된
시집살이를 이야기로는 고사하고 내색으로도 알리지 아니하려고 속으로 애를 썼
다. 그러나 한 집에 있는 까닭으로 꺽정이가 자연히 알게 되었다. 하루는 섭섭이
가 저녁밥을 지을 때 꺽정이가 부엌 뒤로 돌아와서 “누님” 하고 불러놓고는
첫마디에 “시골집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니 섭섭이는 “그건 무슨 소리냐?
왜 가라니?” 하고 물었다. “이놈의 집에서 구박받고 있을 것 없지 않소.” “
이에 지각없이 지껄이지 마라.” “그래 누님, 아니 갈라오?” “가긴 어딜 간단
말이냐?” “누님이 안 간다면 그년을 죽여 없애기라도 해야지.” 섭섭이는 부
지갱이를 내던지고 뛰어나와서 동생을 붙들고 갖은 말을 다하여 달래고 “내가
견디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너더러 말을 하마. 그 전에는 아무 소리도 말고 가
만 있거라.” 하고 말하며 꺽정이가 “아무리나 하오.” 하고 돌아서 나가려고
할 즈음에 금동이가 저의 어머니 몰래 안해에게 말마디 해보는 재미로 가만히
부엌 뒤로 오다가 꺽정이와 마주쳤다. 꺽정이가 ‘대체 저 못난 자식 때문에 우
리 누님이 고생하는게렸다.’ 하고 생각하며 별안간에 나는 골을 걷잡지 못하
여 금동이의 뺨을 한번 보기좋게 후려쳤다. 금동이는 영문도 모르는 뺨을 맞고
“이 자식 미쳤나!” 하고 침을 배앝고 “이 자식, 나가거라!” “나가지 말래도
나갈 테여.” 하고 꺽정이가 나간 뒤에 섭섭이게로 와서 동생을 시켜 뺨 때리게
하였다고 당치 않게 시비하니 섭섭이는 가엾단 말 한마디 아니하고 “요량 없는
소리 작작하오.” 하고 핀둥이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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