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판서 집에서 창녕으로 낙향할 때에 이판서가 갖바치를 보고 “자네는 어찌
하려나? 이번에 같이 가세.” 하고 권하는 뜻을 보이었으나 갖바치는 “나는 오
나가나 매일반이지만 가속들의 내두 처지가 서울 있는 편이 나을 것이라 따라갈
것이 없습니다.” 하고 서울에 떨어져 있을 뜻을 말하였다. 이판서 부인이 같이
이사하자고 우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을쇠로 행세하는 덕순이가 “나 같은 신
세에 다른 갈 데가 없는 것은 고사하고 주인대감 내외분이 정답게 말씀하는 것
을 거역하지 못하여 창녕을 따라가겠으니 당신도 같이 가십시다. 구차한 목숨이
살아 있는 동안은 든든히 지나게 가십시다.” 하고 사정을 말하였으나 갖바치는
“실상 내가 좀 서울 있으면 남의 아들들을 맡아줄 터이니까 남에게 좋은 일이
야.” 하고 모호한 말을 하며 서울 있을 뜻을 변개하지 아니하였다.
이판서가 가권을 데리고 떠나는 날 작별 나온 갖바치를 보고 “자네가 이사
오고만 싶거든 언제든지 기별하게. 초가 한 삼간 장만해 놓고 기다림세.” 하고
말한즉 갖바치는
“내가 한번 가오리다. 풍파 많은 환로를 하직하고 백구 좇아 노시는 것을 한
번 뵈오러 가오리다.” 대답하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다니며 면면히 작별한 뒤
에 다시 이판서에게로 와서 “대감께는 치하로 작별하렵니다. 대감께서 이십오
륙 년 간 지나오신 험한 길이 이로써 끝이 나고 앞으로는 태평한 세월을 보내시
게 될 터이니 대감께 이보다 더 치하할 일이 없습니다.” 하고 저으기 웃으니
이판서는 “그럴까? 참말 그럴까? 오뉴월 화롯불도 쪼이다 나면 섭섭하다는데...
그렇지만 자네 말이 옳아 치하받네.” 하고 쾌활하게 웃었었다.
이판서가 창녕으로 낙향한 뒤 서너 달 밖에 아니 된 때에 갖바치가 내려와서
달포를 넘어 묵었다. 달포 동안에 갖바치는 덕순이와 동무하여 남천에서 붕어
낚시질도 하고 이판서의 뒤를 따라서 화왕산에서 매 사냥질도 하였다. 화왕산에
갔을 때는 옥천사라는 보잘것없는 절에 흘각 겸 구경을 들어갔다가 신돈의 아야
기가 났었다. “신돈의 어미가 이 절 종년이었다네그려.” “신돈이도 처음에는
이 절에서 중노릇을 했겠지요.” “중놈 하나가 오백년 종사를 망하였단 기막힌
일이야.” “나라가 망하려니까 그런 중놈이 나겠지요.” “우와 창이가 공민왕
의 혈속이 아니고 신돈의 아들과 손자라고 신우이니 신창이니 부르지만 이것은
미덥지 않은 말이야.” “고려 말년 사적은 정도전이 같은 개국공신이 손삽손실
을 하여 고치어 놓은 것이니 그대로 믿을 수가 있나요.” “그래, 그렇지만 우가
죽을 때 겨드랑 아래 있는 용비늘을 보이어 왕씨 표적을 내었다는 것도 당치 않
은 소리야.” “그렇겠지요. 왕씨가 용녀의 자손이란 것부터 당치 않은 소리니까
요.” “아조로 말하면 신돈이 같은 중놈이 국정을 탁란할리는 없지.” “글쎄
요, 이삼십 년 후에 곤댓짓하는 중놈이 없으란 법도 없지요.” 이판서는 갖바치
가 대중없이 허튼말을 하지 아니하리라고 생가하여 “자네 말이 맞나 두고 보
세.” 말하고 “이삼십 년 후면 우리가 칠팔십 노인이 될 모양이니 볼는지도 모
르겠네.” 하고 한번 웃고 말았다.
갖바치가 창녕서 떠날 때에 이왕 나선 길이니 경사도 산천이나 구경한다고 남
으로 떠내려가서 진주를 구경하고 동래.울산.경주로 돌아서 서울을 올라오느라고
길에서 두어 달소수를 보내었다. 갖바치가 삼가 땅에 갔을 때 이황이라는 젊은
선비가 독실히 공부한다는 말을 득고 일부러 찾아가서 학문을 논난한 일이 있었
다. 그때 그 선비가 주역을 읽던 중이라 주역으로 말을 묻게 되었다. “삼역이라
니 무엇 무엇이 삼역이오?” “연산.귀장.주역이 삼역이지요.” “연산.귀장도 역
인가요?” “역은 아니지만 주역 가닭에 통틀어 역이라고 하는 갑디다.” “읽
으시는 주역이 주자의 정보인가요?” “잘 모르나 주자의 정본은 아닙니다.”
“그렇소. 영락황제 때 정자와 주자의 것을 찢어 모아서 만들어 놓은 것이요.”
그 선비는 거사 복색한 성명 모를 사람의 학식을 놀래고 ‘이 사람이 혹시 정허
암이가.’ 생각하고 허암의 말을 물었다. “정허암을 아시오?” “네, 알지요.”
“허암이 왜 세상에 아니 나오실까요?” “종상 못한 것이 불효이고 군명을 도
망한 것이 불충이라고 세상에 나서지 않는답디다.” 갖바치는 그 선비가 허암으
로 아는 것을 속으로 웃으면서 “나는 가오.” 하고 붙잡는 것을 뿌리치고 나섰
었다.
4
갖바치는 서울 올라오던 이튿날 심의를 찾아간즉 상길이가 나와서 하는 말이
“댁 나으리께서 엊그저께 송도를 가셨소.” 하여 “어느 날쯤 오실까요?” 하
고 갖바치가 물으니 상길이는 “모르지요. 삼사 일 후에나 오실까요?” 도리어
묻듯이 말하고 “당신이 시골 가서 하도 오래 아니 오니까 댁 나으리께서는 화
를 더럭더럭 내십디다.” 하고 그 상전의 고대하던 양을 말하였다. 사실로 심의
는 이웃 친구가 일찍 돌아오기를 믿고 기다리다가 서너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으니까 홧김에 송도 친구 서경덕을 찾아간 것이다. 심의가 송도에 도착하던
길로 벼우물골에 있는 서처사의 집을 찾아갔다. 처사의 아우 형덕이와 숭덕이가
문밖에 나와 맞아들이는데, 형덕이가 그 형이 화담에 가서 있고 집에 있지 아니
한 것을 말하니, 심의는 “찾아온 사람이 화담에 있는 바에 화담으로 가야지.”
하고 들어가지 아니하고 돌쳐섰다. 숭덕이가 등 뒤에서 손가락질하며 “큰형님
이 아니 계시기로 잠깐 들어앉지 못할 것이 무엇인고. 우리는 눈에 사람으로 보
이지도 않는 모양인가.” 하고 아니꼬운 생각에 침을 뱉었다.
심의가 화담에 왔을 때는 해가 거의 석양이 다 되었다. 여울 소리가 해진 뒤
에 높아질 것을 미리 준비하는지 의외로 낮게 들리고 작은 물고기가 물 위로 뛰
어올랐다. 심의가 차츰차츰 걸어서 서처사 초당에 가까이 오며 들으니 초당 안
에서 흘러나오는 거문고 소리가 초당 밖의 물소리와 서로 맞아서 물소리와 거문
고 소리가 구별할 수 없이 섞일 때가 있었다. 심의가 열어놓은 창문 앞에 와서
방안을 들여다보니 한 여자가 바깥편을 등지고 앉아서 거문고를 타는데 처사는
눈을 감고 거문고 소리를 듣는 중이었다. 심의가 갑자기 “여보게, 가구!” 하고
부르니 자를 부르는 소리에 처사가 눈을 뜨고 내다보며 “의지, 이거 웬일인가?
” 하고 일어 맞았다. “산중 풍류가 적막치 아니하구려.” 하고 심의가 방으로
들어오니 그 여자는 거문고를 치우고 비켜 앉았다.
심의가 처사와 느런히 앉으며 그 여자를 바라보니 얼굴에는 분을 바르지 아니
하고 머리에는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고 의복은 검소하게 차리었으나 천연하게
아리땁고 요사치 않게 어여쁜 것이 진세 사람 같지 아니하였다. 그 여자가 처사
를 보고 “선생님, 제가 여기 있어도 좋겠습니까?” 하고 묻는데 그 목소리까지
세상에서 들어보지 못한 선악 같이 들리었다. 심의가 처사의 대답이 나오기 전
에 “좋다뿐이야.” 하고 대답하니 처사도 저으기 웃으며 “손님이 좋다시니 주
인이 좋지 않달 길이 없지.” 하고 “이 손님이 대관부와 소관부를 지으신 심좌
랑이시다.” 하고 일러주었다. 그 여자가 심의를 향하여 잠깐 머리를 숙이고 “
저는 송도 진이 올시다. 나으리의 대관부. 소관부는 선생님이 가르쳐 주셔서 읽
었습니다.” 하고 별같이 밝은 눈 속에 봄기운 같은 웃음을 띠니 심의은 “소철
이가 한기를 보고 천하의 대관을 다하였다고 했다더니, 심의는 진랑을 보고 천
하의 대관을 다한 셈이다.” 하고 허허 웃었다. “가구! 자네는 전생에 무슨 복
을 닦아서 좋은 산수의 주인이 되고 요대 선녀의 선생이 되단 말인가.” 하고
처사에게 말하면서도 그 눈은 진이의 몸을 떠나지 아니하여 처사가 웃으며 “자
네가 나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진랑을 보러 온 것일세그려.” 하고 조롱까지
하였으나 심의는 여전히 진이를 바라보며 “눈이 저절로 가는 것을 내가 금치
못할 뿐이야.” 하고 또다시 허허 웃으니 진이는 “비아야라 모야로다.” 하고
깔깔 웃었다.
나중에는 심의가 진이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서 두 손으로 진이의 손을
받들어 들고 정신없이 들여다보니 진이가 방긋이 웃으며 “무엇을 그렇게 들여
다보시나요?” 하고 물으니 심의는 “아름답고 어여쁜 것이 땅에서 샘솟듯 살
속에서 솟아나오는군.” 하고 싱글벙글하며 처사를 돌아보는데 처사는 말이 없
이 빙그레 웃고 있을 뿐이었다.
5
서처사의 초당은 방이 둘뿐이었다. 한 방에는 처사가 손님과 같이 자고 다른
한 방에는 진이가 혼자 자게 되었다. 진이가 화담 초당에 와서 자는 것은 이날
이 처음이 아니었다. 처음에 진이가 영롱한 수단으로 당대 도승이던 지족선사의
도를 깨뜨리고 같은 수단으로 서처사를 놀리려고 어느 가을 밤에 초당에 와서
잠을 자는데 무섭다고 꾀를 피고 처사의 방에서 나가지 아니하고 춥다고 핑계하
고 처사의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잠을 험히 자는 체하고 처사의 몸에 팔다리를
드놓기까지 하였으나 처사의 마음은 반석 같아서 마침내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그 뒤에도 진이가 처사와 한 방에서 잔 때가 없지 아니하였으나 항상 처사는 처
사대로 자고 진이는 진이대로 잘 뿐이었다. 이날 밤에 진이가 혼자 자게 되어
다른 방으로 가더니 다시 처사의 방에를 와서 “나는 혼자 자기 싫어요. 손님이
나 선생님이나 두 분 중에 한 분이 혼자 주무시지요.”하고 방그레 웃으니 처사
가 대번에 “손님더러 혼자 자랄 수야 있나. 내가 혼자 자지.”하고 말하였다.
심의는 진이와 한 방에서 자는 것이 맘이 싫지 아니하나 조금 수줍은 생각이 나
서 “이 방에서 셋이 자지 못할까?”하고 처사를 돌아보니 처사는 “그래도 좋
겠지.”하고 손의 말을 거스르지 아니하나 진이는 도리어 “넓은 방 좁게 쓸 것
없지요.”하고 자기의 주장을 보이었다. 그리하여 심의가 진이에게 시험을 받느
라고 하룻밤을 곡경으로 지내었다. 진이가 다리를 배에 얹어도 심의는 가만히
있었고, 진이가 팔을 목에 감아도 심의는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있기 어려운 때
에 가만히 있자니 곡경이었다. 진이는 ‘화담의 친구 값이 있구나.’하고 생각하
고, 심의는 ‘기녀란 할 수 없구나.’하고 생각하였다.
이튿날 식전에 처사가 심의를 보고 “밤에 잘 잤나?”하고 인사하니 심의는
고개를 가로 흔들어 잘 못 잤다는 뜻을 보이고 “겉으로 보기는 선녀 같으나 속
은 종시 기녀이데.”하고 낙심하는 모양이 선녀가 기녀 된 것을 몹시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진이가 저의 맘대로 장난을 치는 것이 눈에 세상이 비어
보이는 까닭이야. 불가의 말로 유희삼매라고나 할지, ‘마등가’같은 음녀가 아니
야. 당돌한 여자이지. 자네도 망석중이 되지 않은 것이 무던해.”하고 처사가 말
을 그칠 때에 밖에 나갔던 진이가 들어왔다. 진이의 말은 이로써 끝이 나고 심
의가 “나는 그 동안 좋은 친구를 얻었어. 실상은 친구라느니보다도 스승이라고
하는 것이 마땅한 사람이야.”하고 갖바치의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사람이 총
명하고도 경선치 아니하고, 고상하고도 거만치 아니하고, 있고도 없는 것같이 하
고, 차고도 빈 것같이 하는 것이 나는 처음 보는 인물이야.” 서사시는 심의의
칭찬이 곧이 들리지 아니하는 모양으로 “그런 사람이 다 있어? 그 사람의 성명
이 무엇인가?”하고 물으니 심의는 “성명은 몰라. 갖바치야.”하고 대답하였다.
“성명을 모르는 갖바치?” “그 사람의 성명은 당초에 아는 사람이 없어. 전부
터 안다는 최원정도 모르든걸. 그 사람이 정암과도 친하게 지냈던 모양이야.”
“정암과 친하게 지냈다면 사람이 무던할 것일세.” “나하고 친하게 지내는 것
으로는 무던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겠나? 사람이 무던뿐이 아니야.”“이 다음에
한번 작반하여 놀러오게.” “올는지 모르지? 자네가 한번 서울 와서 만나면 어
떻겠나?”“내가 가도 좋지만 나는 서울 가기가 싫어.” 옆에서 수작을 듣고 앉
았던 진이는 갖바치에 인물이 있는 것을 희한하게 생각하여 곧 한번 만나보고
싶어서 “선생님은 아니 가신다니 이번에 저와 같이 가십시다.”하고 나서니 심
의는 고개를 외치며 “그 사람이 지금은 경상도 가고 서울 없어. 이 다음에 한
번 박연 구경 가자고 데리고 오지.”하고 말하였다. 심의는 서처사에게서 이삼
일 더 묵다가 서울로 올라왔다.
6
심의가 서울 오던 날 저녁때이었지만, 갖바치가 시골서 왔단 말을 상길에게
듣고 곧 찾아가서 만나려고 불불이 가는데 성균관 어귀 큰길에를 나서자 혜화문
안으로부터 내려오는 갖바치를 길가에서 만나게 되었다. “어디를 가는 길이오?
”“댁에를.”“어떻게 내가 온지를 알고?”“혹시 오셨을까 하고요.”“나도 찾
아가려고 나선 길이오. 여기서는 우리 집이 가까우니 가까운 데로 갑시다.”하고
말하여 심의가 갖바치를 데리고 들어왔다. 갖바치는 영남의 산천 인물을 이야기
하는 중에 이황의 공부 독실하던 것까지 말하였고, 심의는 서경덕에게서 진이
만난 것을 이야기한 뒤에 박연폭포가 구경할 만하다는 것까지 말하였다.
이튿날 심의가 그 형을 보러 왔다. 사랑에는 남곤이가 와 앉아서 무슨 일을
의론하는 모양이라 바로 안으로 들어왔더니 안에는 경빈박씨의 심부름으로 무수
리가 나와 있었다. 심의는 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아니 있다가 심
정이가 분주히 안으로 들어와서 무수리에게 말을 일러 보낸 뒤에 심의를 보고
“잠깐만 안에 있거라. 사랑 손님도 곧 가실 터이다.”하고 도로 나가려고 하는
것을 심의가 소매를 붙잡고 “잠깐만 계시오. 남정승 대감보다 내가 먼저 갈 터
이오.”하고 안마루 구석에 있는 쥐구멍을 가리키며 “형님, 저 구멍으로 좀 나
가 보시오. 이 담날은 나가려고 찾아도 찾기가 어려우리다.”하고 히히 웃으니
심정이는 “이애가.”하고 뒷말이 없이 슬그머니 소매를 뿌리치고 옆에 있던 계
집하인들은 입을 막고 돌아섰다.
심의는 형의 일을 속으로 근심하며 돌아와서 갖바치를 보고 이야기하니 갖바
치가 “백씨 대감이 지금 와서는 당신의 가는 길이 끝이 좋지 못할 줄을 짐작하
신대로 돌쳐서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남정승과 구수밀의가 잦으시면
잦으니만큼 해를 많이 세상에 끼칠것이 걱정이지요.”하고 말하였다.
그 뒤에 심정이가 남곤이와 밀의한 결과로 과연 또 큰 옥사를 만들어서 애매
히 여러 사람을 살육한 일이 있었다. 삭탈관직을 당한 안당의 집이 옥사의 중심
이 되었다. 안당의 서모가 감정이라는 가봉녀 하나가 있어서 이름이 작은쇠라는
송가에게로 시집을 가서 사련이라는 아들을 낳았었는데, 사련이가 어미의 반연
으로 안당의 집에 드나들며 안당의 아들들과 교유하게 되었었다. 안당의 아들
삼형제가 모두 출중한 중에 그 큰아들이 성질이 강직하여 동네의 친한 친구들과
모여 앉으면 곤이, 정이가 국사를 그르친다고 통탄할 때가 많았었다.
안당의 부인이 작고하여 삼년상이 막 지난 뒤의 일이었다. 안당의 큰아들이
동네 친구들을 청하여 술을 대접하는데 술이 거나하게 취한 김에 팔을 걷어치며
곤이, 정이 같은 놈을 없이 하여야 국가를 붙들고 사림을 보전할 수 있다고 통
론하니 그때 옆에 있던 사련이가 “잘 드는 칼 하나만 저를 주십시오. 제가 곤,
정이의 대가리를 외꼭지 도리듯 해놓으리다.”하고 실없은 말을 하며 해해 웃기
까지 하였었다. 이 사련이가 남곤, 심정에게로 붙어서 안당의 아들이 대신을 살
해할 음모를 꾸민다고 고변하였는데, 사람의 성명을 적은 서기란 것은 안당의
부인 초종 때 조객록과 그 발인 때 역군의 명부이었다. 남곤. 심정이가 이것을
가지고 옥사를 만들어 안당의 부자 이하 여러 사람을 죽이었는데, 죽인 사람들
중에는 제주에 안치되었던 김정이도 들었고 온성에 안치되었던 기준이도 들었다.
사화에 귀향 갔던 여덟사람의 결말을 보면 조광조는 먼저 사약을 받고, 김식은
망명 중에 자결하고, 김정과 기준은 이 옥사에 같이 사약 받고, 윤자임은 북청
배소에서 분통이 터지어 죽고, 박세희는 강계 백소에서 병이 나서 죽고, 김구과
박훈 두사람은 나중에 놓이기까지 하였으나 놓여 온 뒤 두 사람이 다 얼마 더
살지 못하였다. 다른 이야기는 고만두고 이 안당의 아들 옥사에 홍문관 하인으
로 조광조를 구하려던 이학년이도 죽었고, 썩은 배 위태하다고 김식을 깨우치던
최수성이도 죽었다. 죽인 사람들 외에 연좌 입힌 사람이 많았고, 양인, 천인 할
것 없이 휩쓸어 귀양 보낸 사람이 더욱이 많았다. 사련은 여러 사람을 죽이고
귀양 보내게 한 공로로 절충장 직함을 받고 일생 녹을 타서 먹게 되었으나 사람
같은 대접은 받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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