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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2권 (15)

카지모도 2022. 10. 12.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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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유복이가 창 던지는 공부를 동무들에게까지는 숨기었지만, 그 어머니는 속일

래야 속일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 어머니 눈에 들킬 때마다 사설을 듣고 또 야

단을 맞았다. 그러나 그 어머니가 무어라고 사설을 하거나 또는 야단을 치거나

말거나 유복이는 꾸준히 창을 던졌었다. 한번은 그 어머니가 유복이를 붙들고

“하라는 글은 아니하고 말라는 장난만 하니 어찌할 셈이냐? 너의 나이도 인제

는 셈들 때가 되지 않았느냐? 너 하나를 바라고 사는 어미 생각을 좀 하려무나.

”하고 사정을 하다가 유복이의 입에서 시원한 대답이 떨어지지 아니하여서 “

네가 어미 생각을 아니한다면 나는 오늘이라도 죽는다.”하고 발악하다시피 말

하였다. 고개를 숙이고 앉아 듣기만 하던 유복이가“어머니, 왜 그러오? 내가 아

버지의 원수를 갚자면 칼도 쓸 줄 알고 창도 쓸 줄 알아야 할 것 아니오? 소학

대학을 가지고 원수를 갚을 수 있소, 어머니?”하고 고개를 들고 어머니의 얼굴

을 바라보니 그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돌았다. “네가 그게 잘못 생각이다. 네

가 글 잘 읽어가지고 이담에 강령 원님이 되어 가면 그까짓 원수는 하루아침에

갚을 수 있지만 네가 창질을 잘한다고 창으로 원수를 갚을 터이냐?” “글 잘

읽으면 강령 원님해 가오? 그러면 우리선생님은 황해 감사도 해갔게.” “너의

선생님은 백정이니까 벼슬을 못했지.” “상놈의 자식은 백정보다 낫답디까? 어

머니 알지 못하거든 가만히 계시오. 별수없어요. 아버지 원수 갚으려면 꺽정이

같이 힘이 장사거나 그렇지 않으면 봉학이의 활재주 같은 재주가 있어야지. 내가

댓가지창으로 원수놈의 대가리를 꿰어놓을 날이 있으니 어머니 두고 보시오.”

유복 어머니는 유복이가 생각을 고쳐먹도록 말을 하다 하다 지쳐서 그만두었

다. 유복 어머니가 그 아들의 장래를 걱정스럽게 여기지마는 그 뒤로는 장난 동

부한다고 유복이를 사설하거나 야단치거나 하지 아니하였다. 그뿐이 아니라 달

밤에 유복이가 혼자 마당에 나와서 ‘쉬, 쉬’하고 소리를 질러가며 대창을 던

질 때 뒤에 따라나와서 웃으며 구경하고 유복이의 던지는 창이 겨냥하는 과녁에

벗어나가지 아니하고 꼭꼭 들어가 맞는 것을 보고는 “신통하게는 맞는다.”하

고 칭찬까지 하게 되었다. 유복 어머니의 칭찬이 안으로 들어가서 심의의 입을

거치어 갖바치의 집으로 굴러왔다. 꺽정이가 이것을 듣고 “재주를 배우면 드러

내놓고 배우지 숨길 것이 무엇이냐?”하고 유복이를 나무라니 유복이는 못된 일

을 하다가 별안간 남에게 들킨 사람과 같이 얼굴이 붉어지며, “끝끝내 숨기려

고 한 것도 아니오. 한번 언니들을 놀래 보려고 했더니 고만 들켰소.”하고 발명

하였다. “어림없는 것 같으니, 네가 하늘의 별을 따기로 놀라기는 누가 놀라겠

니? 대체 댓가지창을 가지고 얼마나 잘 던지나 내 앞에서 한번 해보아라.” “

아직 언니에게 보일 만큼 되지 못했으니 조금 더 참으시오.” “네가 참으란다

고 보고 싶은 것을 참는단 말이냐? 오늘 한번 해보아라.”

유복이는 꺽정이의 말을 어기지 못하여 저의 집에 가서 댓가지창들을 가져왔

다. 두어 간 밖에 세운 손바닥만한 나무쪽에 댓가지창 다섯 개를 내리꽂아 보이

었다. 꺽정이가 “용하다.” 한마디 칭찬하고 바로 갖바치에게로 하서 “선생님,

유복이도 한번 시재 보이십시오.”하고 말하니 갖바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

었다. 이튿날 갖바치의 집 안마당에서 여러 사람들 보는 데서 유복이가 댓가지

창을 던지게 되었는데 갖바치와 심의는 바깥방에 앉아서 문을 열고 내다보고 꺽

정이와 봉학이 외에 금동이까지 유복이 좌우에 둘러서고 섭섭이는 안마루 끝에

서서 바라보았다. 유복이 입에서 쉿쉿 소리가 나며 댓가지창들이 빨랫줄같이 건

너편으로 건너가서 담에 붙은 나무쪽 과녁에 들어가 박히었다. 맛없는 금동이가

유복이를 툭툭치며 “가는 창을 만들어 가지고 봉학이처럼 파리나 잡아라.”하

고 말하니 “지금 하나 잡아보리까? 매부 상투에 한 마리가 붙었소그려.”하고

별안간에 쉿 소리를 하며 댓가지창 하나를 던지어서 금동이의 상투를 가로 꿰었

다. 가까이서 던진 것이 빗나갈 까닭이 없었다. 이것을 보고 봉학이는 손뼉을 치

고 꺽정이와 심의는 허허 소리를 내고, 섭섭이는 입을 막고 갖바치까지 빙그레

하였다. 금동이가 내다보는 갖바치를 꺼리어서 맘대로 골을 부리지 못하나마 유

복이에게 목자를 부라리며 상투에 꽂힌 댓가지창을 뽑아서 분질러 버리었다.

 

14

심의가 봉학이는 상급을 주고 유복이는 아니 줄 수 없다고 대장장이를 시켜서

조그만 제물자루창 다섯 개를 치이어서 상급으로 유복이를 주었다. 그것이 명색

만 창이지 크기는 손 작은 사람의 집게뼘 한 뼘쯤밖에 아니 되고 모양은 조그만

댓잎에 굵은 줄기가 붙은 것 같았다. 그리하여 유복이는 댓잎이라고 이름을 짓

고 봉학이는 뼘창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봉학이의 지은 이름이 여럿에게 쓰이

게 되었다. 그 뒤에 어느 날 꺽정이 남매가 조용히 안방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중에 섭섭이가 “너도 무슨 재주든지 재주 한 가지 배우려무나. 봉학이의 활은

고사하고 유복이 뼘창 잘 쓰는 것도 보기 부럽더라.”하고 동생의 눈치를 보니

꺽정이는 탐탁하게 듣지 않고 “부럽거든 배우구려.”하고 문동답서로 대답하였

다. “내야 여편네 사람이 그런 것을 배워서 무어 하겠나. 네나 배우란 말이지.

너 같은 장사가 신통한 재주까지 배워 두면 좀 좋겠니.” “언짢을 것은 없겠지

요.” “그거야, 언짢을 것만 없어? 배워 두면 이담에 잘 써먹게 될지 누가 아

니?” “잘 써먹지 못할 것 내가 아는걸. 그리고 쓸 데가 있으면 봉학이나 유복

이 같은 놈 불러다 쓰지 걱정이오?” “무엇이든지 남의 손을 비는 것이 내가

하는 것만 하냐?” “누나 말대로 하면 옷도 내 손으로 지어 입어야지, 누나 손

을 빌어서는 못 쓰겠구려.” “그렇게 할 말이 아니야. 도적질도 하지는 않을망

정 알아는 두란다고 무엇이든지 배워 두면 좋지, 언짢을 것이 무어 있니?” “

글쎄, 언짢을 건 없다니까 그러오?” “그렇다면 무엇이든지 배워야지.” “차차

배우지요.” ‘“내가 사내 같으면 너더러 배우라기 전에 내가 나가서 배우겠다

만.” “여편네는 배워 두면 어떻소?” “그럼 여편네가 활이나 창 같은 것을

배워 두어서 무엇에 쓰니?” “쓰기는 무엇에 써요, 그저 배워 두는 것이지.”

“여편네가 벼슬하는 나라 같으면 나도 배워 두다뿐이야.” “누나가 쓴다 못

쓴다 하는 것이 벼슬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누나의 여편네나 나의 사나이가 못

쓰기는 일반이오.” “신령님이 인물을 점지할 때는 장래에 반드시 쓰일 곳이

있을 것인데 너 같은 큰 인물을 왜 우리네 백정의 집으로 점지하셨을까?” “신

령님이란 다 무엇이오? 그런 것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있다고 해도 내가

그 따위 것의 점지를 받아서 태어났을 리 만무하오.”

남매의 문답이 그칠 줄을 모를 때에 금동이가 밖에서 뛰어들어오며 “너 여기

있구나. 나는 봉학이하고 새 잡으러 간 줄로 알았지. 어서 나가 보아라.”하고

미처 나가 보라는 까닭을 말하지 못하여 꺽정이는 “왜 나가라오?”하고 까닭을

묻는데 순하지 아니한 어조가 듣기에 시비하려는 사람의 말 같기도 하였다. 금

동이가 대번에 골을 내며 “나가기 싫거든 고만두려무나.”하고 변덕스럽게 고

개를 흔드니 꺽정이가 웃으면서 “고만두지, 낭패될 일 없소.”하고 앉은 자리에

서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금동이가 골이 조금 풀리며 섭섭이를 향하여 “장인님

이 오셨어. 꺽정이 어디 갔느냐고 물으시기에 새 잡으러 갔는가 보다고 말씀했

지.”하고 꺽정이더러 나가 보라던 까닭을 말하자, 꺽정이는 “매부 똑똑하오.

버선 수눅은 바꾸어 신지 않겠소.”하고 벌떡 일어나 나갔다. “자식이 고분고분

치도 못하다.”

“그애 고분고분치도 못한 것 걱정 말고 당신이 좀 변변하게 구시오.” 하고 섭

섭이도 일어나서 방을 쓸어놓으려고 비를 찾았다. 얼마 아니 있다가 꺽정이 부

자가 같이 들어왔다. 섭섭이가 그 아버지를 이따금 보지만 아버지의 얼굴을 보

는 것이 반갑지 않을 리 없었다. 방에 들어앉은 뒤에 “아버지, 이번에 어째 오

셨소?” 하고 섭섭이가 정답게 물으니 그 아버지는 턱으로 금동이를 가리키며

“저애 아버지하고 좀 의논할 일이 있어서.” 하고 의논할 일이 무엇인것은 말

하지 아니하였다.

돌이가 이번에 서울 온 것은 아들딸도 보려니와 데리고 사는 여편네가 태중에

학질로 죽을 지경이 되어서 약을 물으러 온 것이었다. 그날 밤에 두 사돈이 병

이야기, 약 이야기를 하고 앉았는 중에 심의가 어디를 갔다가 돌아와서 중전이

지금 태중이라는 소문을 전하였다. 갖바치가 “임금 한 분이 탄생하시려는 게지.

” 하고 적이 웃으니 심의는 “중전이 생남을 합신대도 동궁이 계옵신데 임금은

무슨 임금, 한껏해야 대군이지.” 하고 허허 웃고 돌이는 “우리 집에도 이번에

무슨 군이나 나려는지.” 하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15

그 뒤에 돌이의 여편네가 병에 부대끼다 못하여 여덟 달에 사내아이 하나를

지어 낳았다. 어린아이는 조막만한 것이 간신히 사람의 모양만 가졌을 뿐이지

손톱 발톱도 변변히 생기지 못하였었다. 꺽정이는 동생 하나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내려왔다. 갓난아이를 보고 동기가 귀엽다느니보다 인생이 불쌍하

였다. 아버지는 고사하고 아이의 어머니까지 며칠 못 살고 죽을 것으로 셈을 치

고 죽으라고 내버려 두다시피 하는 까닭에 더욱이 불쌍하였다. 꺽정이는 아이가

울면 젖을 먹이라고 재촉에 재촉을 더할 때가 많을 뿐 아니라 곰살궂지 못한 손

으로 조심하여 살깃을 바꾸어 줄 때도 적지 아니하였다. 꺽정이가 서울은 집 같

고 집은 객지 같아서 서울로 가고 싶은 생각이 많지마는 어린 동생을 아이 어머

니에게만 맡겨두면 참말로 죽일 것 같아서 완구히 살 것을 보고 가려고 며칠 동

안 집을 떠나지 못하였다. 아이가 꼴보다 병은 없어서 몇 달 지나는 동안에 손

톱 발톱도 생기고 살점도 붙어서 비로소 사람의 아이같이 반반하여지니 아이 어

머니는 울기가 무섭게 젖을 물리고 아버지도 “인제는 사람 같다. 형이 애쓴 보

람이 있다.” 하고 들여다보게 되었다.

꺽정이가 내일 모레면 서울로 간다고 작정하였을 때 그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어

물도가에를 갔더니 어떤 손 하나를 중간에 앉히고 여러 사람이 둘러서서 이야기

들을 듣고 있었다. 꺽정이도 무슨 이야기인가 하고 뒤에 가서 들었다. 그 손이

이야기한다.

“그래 구슬원에서 잤더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을 공연히 객기로 나섰소그려.

해가 다 저물어 갈 때 그 외딴 주막에를 오지 않았겠소. 과연 늙은이 하나가 삼

태기를 겯고 앉았습디다. 그래서 그 늙은이를 보고 이 근처에 칼 잘 쓰는 이가

있다는데 그가 어디 사는지 아시오. 당신더러 물어보면 알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디다. 하고 물은즉, 그 늙은이가 대번에 ‘나는 모릅니다’ 하고 고개를 설

레설레 흔들더니 한참 있다가 ‘칼 잘 쓰는 사람은 찾아 무얼 하실라오’ 하고

묻는 것이 다소간 묘맥이 있어 보이기에 검술을 배울 욕심으로 찾아 왔노라고

바로 말했지요. 그랬더니 그 늙은이가 웃으면서 ‘이 앞 숲속에서 가끔 화적이

납니다. 아마 그 화적이 칼을 잘 쓰는갑디다. 그렇지만 화적을 만나면 물건 빼앗

기고 잘못하면 목숨까지 빼앗기기만 하지 검술 배울 수가 있겠소. 생각마시오’

하고 말립디다. 그 화적이 어디 사는 사람이냐고 물으니까, ‘그걸 알 수가 있

소? 화적 사는 곳을 알면 관가에 가서 고발하고 상을 탔겠소.’ 하고 대답합디

다. 화적 난다는 숲이 거기서 얼마나 되고 또 화적이 흔히 어느 때 나느냐고 자

세히 물어 가지고 늙은 이 주막에서 오 리나 착실히 되는 숲속에를 오지 않았겠

소. 그때 해 저문지가 한참 된 때라 어두운데다가 숲속이라 옆의 사람도 알아보

지 못할 만큼 캄캄하였소. 화적이 인기척을 들으면 나오려니 하고 일부러 큰기

침을 해가면서 차츰차츰 걸어나오는데 숲을 거의 다 나와서 뒤에서 새가 날아오

는 것 같은 기척이 나며 별안간에 ‘칼받아라’ 소리가 납디다그려. 나는 무망

결 주주물러 앉았지요.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어 가지고 ‘칼을 배우러 왔습니다

’ 한마디 말했더니, 깔깔 웃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 웃음 소리가 올빼미의 우는

소리 같습디다. 웃음소리가 끝난 뒤에는 아무 소리가 없습디다그려. 그날 밤에

숲에서 한 오 리 떨어져있는 동네에 와서 자는데 그 동네 사람들의 말이 어둔

뒤에 그 숲을 지나오다니 목숨이 붙어 온 것이 천행이라고 말합디다그려. 나중

에 아니까 갓이 모자가 없어지고 상투까지 잘리었습디다. ‘칼 받아라’ 할 때

머리위가 선뜻하더니 그때 그렇게 된 모양인데 나는 까맣게 몰랐었소. 이것 보

오.” 하고 갓을 벗고 솔잎상투를 보이면서 “인제 겨우 당줄을 동여맬 만큼 되

었소. 그래 내가 검술을 배우려다가 혼만 나본 일이 있소.” 하고 이야기를 마치

었다. 꺽정이는 검술 이야기에 귀가 뜨이어서 앞으로 나서서 그 손에게 “구슬

원이 어느 땅인가요?” 하고 물은즉 그 손은 꺽정이를 치어다보더니 “부평땅이

다. 그것은 왜 묻니? 네가 나처럼 혼이 나보고 싶으냐?” 하고 껄껄 웃었다. 꺽

정이가 심부름 왔던 일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손의 이야기대

로 보면 외딴 주막의 늙은이가 수상한 사람이다. 내가 한번 찾아가 보겠다.’ 하

고 생각하였다. 꺽정이는 떠나려던 날 집을 나서 서울로 오지 않고 부평 구슬원

을 찾아갔다.

 

16

꺽정이가 초행이라 물어가며 길을 걸었다. 서울을 비켜놓고 한강 하류를 건너

김포 땅에서 남으로 내려오는데 구슬원길을 물어 나오기는 양주서 떠나던 이튿

날이었다. 무인지경 숲속길에를 들어섰다. 숲이 크거나 길지는 아니하지만 나무

가 빽빽히 들어선 까닭에 대낮에도 길이 어둠침침하였다. ‘이 숲이 그 손의 상

투 잘린 곳이구나.’ 하고 꺽정이는 생각하며 그 숲을 지나 곧은 길로 한 오 리

를 와서 본즉 과연 외딴 주막이 하나 있다. 삼간 초가가 까치집 같이 엉성한데

넓지 못한 앞마당에 늙은이 하나가 맷방석을 틀고 앉았다.

‘이 늙은이가 바로 수상한 늙은이구나.’ 하고 꺽정이가 속으로 생각하며 늙은

이의 앞으로 나가서 “다리가 아프니 좀 쉬어 갑시다.” 하고 말을 붙이었다. 그

늙은이가 한번 흘긋 치어다보더니 고개를 돌이켜서 턱으로 봉당을 가리키며 “

저기 앉아 쉬어 가게.” 하고 손에 잡은 일거리를 놓지 않는 것이 일에 재미를

붙인 모양이다.

꺽정이가 봉당 위에 올라앉아서 늙은이의 뒷모양을 바라보며 생각하였다. ‘

머리에 검은 털 하나 없는 늙은이가 눈의 열기는 어찌 그리 매서울까. 이 늙은

이가 확실히 수상하지.’ 꺽정이가 늙은이와 말을 하고 싶으나 말거리가 없어서

“구슬원이 여기서 먼가요?” 하고 물어볼 것도 없는 말을 물었더니 늙은이는

“멀지 않아.” 간단하게 대답하고 돌아다보지도 아니하였다. 꺽정이가 “물어볼

말씀이 있소.” 하고 말을 붙이니 늙은이가 “무어?” 하고 돌아보는데 “검술

배우려고 왔다가 이 앞 숲속에서 상투만 잘리고 간 사람이 있소?” “나는 몰

라. 듣지도 못했어.” 하고 늙은이는 일 방해하는 것이 재미없다는 듯이 현저히

불쾌한 내색으로 고개를 흔들고 손에 잡은 일을 계속하였다. 꺽정이가 ‘이 늙

은이 보아라. 얼마나 재미있게 일을 하나 보자.’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봉당 위

에까지 뻗치어 올라온 맷방석 날을 두서넛 함께 집어 매듭을 지은 뒤에 봉당 중

간에 선 기둥을 들어 매듭이 들어갈 만한 틈을 내고 그 매듭을 틈에 끼워놓았

다. 늙은이가 맷방석 테를 들어올리다가 뒤에 걸리는 것을 알고 아이가 손으로

붙잡았나 의심하고 돌아다보는데 꺽정이는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먼 산을 바라보

고 있었다. 늙은이가 날을 잡아당기다가 기둥 밑에 끼인 것을 알았다. 늙은이가

일어나서 몸에 붙은 검부적을 떨고 봉당위로 올라왔다. 한번 기웃이 기둥 밑을

들여다보고 다시 물끄러미 꺽정이를 바라다보았다. 아무리 초가집의 약한 기둥

이라도 한 손으로 기둥을 들고 한 손으로 물건을 끼자면 여간 장사로는 되지 못

할 일이니 아직 몇 살 되어 보이지 아니하는 아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맷방석이 저절로 기둥 밑에 돌아 끼었을 리도 없고 대낮에 도깨비가 장난쳤을

리도 없고 본즉 아이의 짓인 것은 틀림이 없다.

늙은이는 한참 생각하고 섰다가 꺽정이 옆으로 와서 붙어앉으며 “이애?” 하

고 부르니 이때껏 시침을 떼고 앉았던 꺽정이가 “네.” 하고 대답하며 돌아보

았다. “너 어디 사니?” “양주 사오.” “양주? 너의 아버지가 관푸주하니?”

“그렇소. 어떻게 아오?” 늙은이가 꺽정이의 어깨를 툭 치며 “참말 장사다. 내

가 너의 장사란 말을 듣고 한번 보러 가려고 했더니 잘 만났다. 지금 어디 가는

길이냐?” “어디 가는 길이 아니라 여기까지 왔소.” 늙은이는 이 말을 듣고

빙긋이 웃더니 “네가 상투 잘린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상투 자른 사람을 찾아

온 모양이냐?” “그렇소.” “그 사람은 찾아 무엇하니? 힘겨룸해 보려냐?”

“아니오. 그 사람에게 검술을 배워 보려고 왔소.” “다른 사람 같으면 일러줄

수가 없지만 너니까 내가 일러주마. 내가 그 사람을 안다. 내게서 며칠만 묵으면

자연히 그 사람을 만나보게 될 것이다.” 하고 늙은이는 연하여 싱글싱글 웃었

다. 꺽정이 만난 것을 진정으로 반가워하는 모양이었다. “이애, 맷방석을 꺼내

놓아라. 치워버리게.” 꺽정이가 한번 웃고 나서 한 손으로 기둥을 들고 한 손으

로 매듭을 잡아당겨 눌리었던 기둥 밑에서 떼어놓았다. 보고 있던 늙은이는 “

하늘이 내신 장사다.” 하고 칭찬을 마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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