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생때 같은 사람 여섯을 가슴을 짓찧어서 물고를 올린 뒤에 참새새끼같이 발발
떠는 모린이를 다시 앞으로 끌어냈다. 이기가 모린이를 내려다보며 “아까 그년
들은 하나도 편지 받았다는 말이 없으니 혹시 다른 사람들을 주었느냐?” 하고
말을 물으니 모린이는 대답이 없었다. 제가 횡설수설 지껄인 말 몇 마디에 사람
여섯이 눈앞에서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 무섭고 두려운 맘이 가슴을 눌러서 입
이 저절로 봉하여졌던 것이다. “다른 사람이 또 있다느냐?” “그년이 넋이 빠
졌느냐, 어째 말이 없느냐?” “그년 정신 차리게 귀싸대기를 한번 때려라.” 모
린이가 함부로 불어서 애매한 사람들을 죽인 것을 군사 중에 밉게 생각하는 사
람이 있어서 그 사람이 큼직한 손바닥에 침을 뱉어가지고 모린의 뺨을 두서너
번 연거푸 후려쳤다. 당장에 부풀어 오르는 뺨을 모린이가 손을 포개 누르면서
“죽어 지만하외다.” 하고 우는 소리 하는 것을 임백령이 듣고 홧증이 나는 듯
이 “누가 저더러 지만을 두라는가? 말을 하란 말이지. 매혹한 것이다.” 하고
혀를 차니 모린이가 아프고 무서운 중에도 심정이 상하는 모양으로 임백령을 치
어다보며 “여섯 사람을 소인네가 죽이지 아니했습니다. 대감마님은 알으시겠지
요?” 하고 말한 뒤에 한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울기 시작하였다. 임백령이 “
그년 우스운 년일세. 누가 저더러 사람을 죽였다나.” 하고 이기를 돌아보며 눈
짓하니 이기가 우는 모린을 내려다보며 호령하였다. “맨망스러운 년이다. 쓸데
없는 주둥이 놀리지 말고 묻는 말이나 바로 아뢰어라.” “편지를 준 사람이 또
있느냐, 없느냐?” 모린이는 대답이 없이 울기만 하였다. 이기가 “저년을 빈전
으로나 보낼까?” 하고 나직이 말하며 웃는데, 임백령이 그 말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를 몰라서 “왜요?” 하고 물은즉 “곡을 잘하니 말이야.” 하고 이
기는 임백령, 허자와 같이 웃었다. “모린은 이제 더 물어야 소용없을 모양이니
고만두고 옥매향이나 한번 잡아들여 봅시다.” 하고 허자가 먼저 웃음을 거두니
이기가 고개를 끄덕이고 모린은 한옆으로 끌어내어 두고 금부에 가서 옥매향을
잡아올리라고 나장에게 분부하였다. 옥매향은 나이 벌써 삼십이 가까웠으나 당
대 일색으로 이름이 높던 계집이니만큼 그 자색이 아직도 사람을 놀래일 만하였
다. 키가 크도 작도 아니한 맨드리 있는 계집 사람이 나장들에게 붙들려들어오
는데, 애써 몸을 가누려고 하지 않는 것이 봄날 낮잠 자고 일어난 뒤 맥이 풀리
어서 계집종에 의지하는 태와 방사하였다. 모양없이 틀어 꽂은 머리가 기름
바른 것같이 윤이 나고 분세수 아니한 본얼굴이 눈같이 희었다. 대상 대하의 여
러 눈이 모두 한곳으로 쏠리는데, 그곳에는 옥매향을 쪼그려 앉히었었다. 이기는
노안을 씻고 내려다보다가 “참말로 일색이군.” 하고 칭찬하고 허자는 임백령
을 돌아보면서 “저 사람은 온전하게 대감께로 보내 드려야지.” 하고 웃었다.
이기가 “옥매향이 듣거라! 네가 윤임의 음모를 아는 대로 바로 고하여야지망정
만일 일호라도 기기는 일이 있으면 중한 죄를 당하리라.” 하고 으름장 놓고 나
서 말을 묻기 시작하였다. “윤임이가 음모할 때 누구누구와 같이 하였더냐?”
“그 아들 흥의와 그 사위 이덕응과 같이 수군거리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옥매향의 아리따운 목소리에 나장이가 정신을 잃고 서 있다가 무료한 것을 감추
려고 “고만이냐?”하고 쓸데없는 말을 묻고 나서 그 말을 받아올리었다. “계
림군을 세운다고 하더냐, 봉선군을 세운다고 하더냐?” “계림군은 동궁과 같이
자기의 생질이라 두말할 것이 없이 좋지마는 열네 살이나 손위니까 나이가 알맞
지 못하다고 괴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답니다.”“유관이나 유인숙하고 서로
의논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느냐?” “서로 의논하는 것을 본 일은 없지마는 유
정승이나 유판서에게서 편지가 오면 꼭 남몰래 보고 불에 집어넣더랍니다.” “
윤임이가 흥의나 덕응이를 데리고 의논할 때 말참례라도 한 일이 있었다느냐?”
“항상 자리를 피하였답니다.” “자리를 피하였다면 말은 어떻게 들었을꼬?”
“의논이 하도 잦으니까 간간이 엿들을 수 있었답니다.” 미간 찌푸리고 앉았던
임백령을 허자가 손으로 건드리며 “대감,너무 걱정 마시오. 잠시라도 보기 애처
롭소?” 하고 하하 웃었다.
8
윤임이가 대역부도의 큰 죄인으로 몰리는 판이니 그의 첩인 옥매향이 아무리
계집 사람의 몸이라도 옥사에 관련이 있어 국문까지 받게 된 바에는 다소의 곤
욕을 면하기가 어려울 것이지만, 옥매향이가 처음부터 윤임이가 죄 있다고 무고
하였을 뿐 아니라 임백령이 알뜰히 두호한 까닭으로 옥사가 끝나기까지 털끝 하
나 다치지 아니하였다. 옥매향이 임백령의 첩으로 들어가고 모린이 속량하여 나
간 것은 모두 뒷날 이야기고, 모린과 옥매향이 국문을 당하던 이튿날 이덕응 구
초에 오른 사람들을 잡아들여 국문하게 되었는데, 이날은 대왕대비가 국청에 나
와 앉아 친국하는 위의를 차리었었다 이날 친국에 형장질이 심하여서 장하에 죽
어나가는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었으나, 끝끝내 씩씩하게 꿋꿋하기로는 장령 정
희등이 제일이었다. 정장령은 옥사가 벌어지기 전에 우연히 낙마하여 중상을 당
하고 집에 누워 있었는데, 어느 날 밤에 윤원형에게 친근히 다니는 사람이 원형
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 "편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금 화색이 박두하셨다고
윤참판이 매우 걱정합디다. " 정장령의 대답이 없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은 다시
구변을 다하여 "윤참판이 평소에 남달리 흠앙하는 까닭에 지금 대단히 걱정합디
다. 대체로 모진 것도 좋지만, 등글게 화를 면하여야 하지 않습니까? 대장부란
능강능유하여 강할 때는 강하고 유할 때는 유하여야 하지 않습니까? 윤참판과
조만히 말씀하다 온 길이올시다. 우선 그 편지를 보시지요. " 정장령이 받아놓은
편지를 집어들더니 겉봉도 뜯지 않고 찢으면서 "언평의 편지가 불과시 동사하잔
말이겠지. 사람이 죽고 사는 것도 중하지만 곧은 길로 죽을망정 굽은 길로 사는
법이 없느니. " 하고 허허 웃으니 그 사람이 무색하여 다시 두말 못하고 돌아갔
었다.
원형이 정장령을 깊이 미워하여 이기 등을 시켜서 백단으로 모함하는데, 중학
회의 끝난 뒤에 정희등은 소격동 유관에게로 가고 박광우는 장의동 윤임에게로
갔으니 가서 의논들 한 일은 곧 역모인 것이라고 몰아서 단련하기 시작하였다.
박광우는 형장이 정강이에 떨어질 때마다 애구 애구 소리를 지르는데, 정희등은
무릎이 부서지도록 아프단 말 한마디가 없었다. 정희등이 연 삼차 국문을 당하
는데 끌려들어갈 때와 끌려나올 때에 반드시 빈전을 향하여 부복하되, 자기가
혼자서 운신하지 못하게 된 뒤로는 군사들에게 부축하여 달라고 청하여서 한 번
도 궐한 일이 없었다. 이기가 이것을 보고 눈을 부릅뜨며 꾸짖는 말이 "혼령이
구원하여 주실 줄로 아느냐? 헛수고하지 마라. " 임백령 ,허자 정순붕 같은 위인
들은 이기와 같이 정희등을 웃었지만, 금위 군사와 금부 나졸은 뒤에서 "정장령
나으리같이 모진 양반은 처음 보았다. " "정장령 나으리같이 갸륵한 양반은 보기
어렵다. " 하고 칭찬들이 분분하였다. 박광우가 형장 아래에서 기절하였다가 새
벽에 깨어난 뒤에 정장령을 돌아보며 이야기하였다. "어제 대비가 위에 계시기에
소리를 지르지 아니한다는 것이 아픈 것을 참지 못하여 소리를 지르게 되었네.
형장이라고 넓적다리보다 굵으니 사람이 배겨낼 수가 있든가? 자네는 어쩌면 그
렇게 모질게스리 아프단 소리 한마디를 아니하나? “ "정갱이나 무릎에 형장이
떨어지면 누구는 아니 아프겠나? 그렇지만 재궁이 가까이 계신 터에 소리지르기
가 황송하여서 죽기 한하고 참았었을 뿐이지. "
"나는 미처 그 생각을 못하였네. 자네 같은 사람은 따를 수가 없네. "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옥졸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었다. 정장령이 목이 말라서 옥졸을
보고 "물 한 모금 얻어먹을 수가 있겠소? “ 하고 청하여 옥졸이 선뜻 ”네. 갖
다 드리지요. " 하고 일어서는데 한구석에 누워 있던 화초장이 박수경이 옥졸을
불러서 자기 집에서 들여준 배 몇 덩이를 정장령 나으리께 들여달라고 청하였
다. 이덕응이 배를 보고 먹고 싶은 생각이 나든지 "나 한 덩이 주게. " 하고 손
을 내어미니, 박수경이 눈을 부릅뜨며 “글 읽었다는 위인이 함부로 무고하여
집안을 도륙내고 사림에 화를 끼치니 괴악한 사람이오. 나는 전에 그렇게 알지
아니하였더니 참말로 괴악하오. 무슨 낯을 들고 지하에 가서 윤판서께 보일터이
오? 정장령 나으리께 드리는 배를 당신에게는 줄 수 없소. ” 하고 이덕응을 꾸
짖고 나서 “정희등과 같이 국문을 당하였으니 죽어도 한이 없다. " 하고 혼잣말
하였다.
9
이튿날 박수경이 국문을 당하였다. “윤임이가 아들 흥의, 사위 덕응이와 같이
역적모의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다니 들은 말을 아뢰어라. " "들은 말이 없답니
다. " "덕응의 입에서 말이 났는데 없다면 될 것이냐?” "쳐라! " 호령 한번
에 형장질이 시작되었다. "애구 애구. " "말을 아뢰겠다느냐? " "헐장 없이 되우
쳐라. " 신칙 한번에 살이 터지고 피가 흘렀다. "애구 애구. " "인제 아뢴다느냐?
“ "그래도 못 아뢴다? 흉악한 놈이다. 단근질 기구를 들여라. " "지져라! "
호령이 내리며 불에 단 쇳조각 밑에 살이 타고 기름이 끓었다. "애구 애구 죽겠
네. 애구 애구. " 금위군사 중에 박수경의 친구 아들이 하나 있어 보다가 민망하
여 동여매인 박수경의 옆으로 가까이 와서 넌지시 "말씀 아니하다가는 큰일날
터이니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말씀을 하시오.”
하고 권하니 박수경은 기운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말을 못 아뢴다느냐?
“ "어서 말씀하시겠다고만 하시오. " 하고 그 군사가 다시 권하여도 박수경은
여전히 고개를 흔들었다. "참으로 말 못할 흉악한 놈이다. " "쇠를 발갛게 달여
서 버썩버썩 지져라! " 애구 소리도 못 지르고 입만 딱딱 벌리던 박수경이 나중
에 "아이구” 한마디에 숨이 그치었다.
계림군이 반변 황룡산 속에서 중이 되어 숨어 있다가 마침내 발각되어서 서울
로 잡혀와서 압슬, 단근 갖은 형벌을 다 당하고 나중에 하릴없이 무복하여 달포
동안 끌어오던 옥사가 겨우 결안되었는데, 장하에 죽은 사랄들은 말하지 말고
유관, 유인숙, 윤임은 부관참시를 당하고, 계림군은 참형을 당하고, 이덕응,이휘는
쿄수를 당하였다. 백인걸, 유희춘 외 여러 사람은 원찬을 당하고, 이중열, 김저
외 여러 사람은 삭을 당하고, 그중 가볍게 파직을 당한 것은 권발, 송인수 등 여
러 사람이었다. 이때 정희등과 박광우는 악형 아래에 거의다 죽게 되었으나, 아
직 목숨이 붙어 있는 까닭으로 박광우는 황해도 봉산으로, 정희등은 평안도 용
천으로 각각 정배되었는데, 박광우는 겨우 돈의문 밖을 나가서 숨이 그치고 정
희등은 귀양길을 떠나게 되었었다. 정희등의 어머니가 아들의 뒤를 좇아 중로 와
만나서 모자 서로 안고 통곡하는데, 압송도사도 사람이라서 억지로 금하려 하지
아니하였다. "어머니께는 불효막심합니다. " 하고 정희등이 먼저 눈물을 거두고
"네가 평생에 정직한 것을 지키다가 마침내 정직한 것으로 화를 입었으니 맘에
부끄러울 것이 없다. " 하고 그 어머니도 아들을 따라 눈물을 씻었다.
정희등이 그 어머니를 만나보던 날 세상을 버리었는데, 죽은 얼굴에는 다시
여한이 없는 것같이 웃음까지 떠돌았다. 그 어머니가 아들 시체를 앞세우고 서
울로 돌아오니 가산집물을 적몰당한 뒤 초종을 치를 방책비 없어 과부 된 며느
리와 아비 잃은 두 손자를 데리고 밤낮 울음으로 지내는 중, 어느날 밤에 서울
선비 몇 사람이 빈소로 찾아와서 무명 삼백여 척을 주고 가고 장사를 지낼 때에
영남 선비 백여 명이 묘하로 찾아와서 각각 부의를 주고 가서 초종과 졸곡을 치
르게 되었었다. 그때 그 선비들의 성명을 물어보기는 하였으나, 한 사람도 말하
는 사람이 없으니 정희등 상사에 부의하였다는 것만 가지고도 고변하는 사람이
있으면, 정희등의 동류로 물리어서 죽거나 귀양을 가거나 할 판이라 이름을 대
어주기 어려웠던 것이다. 무명을 가지고 갔던 선비들 중에 삼형제 같이 간 사람
이 있었으니, 이 삼형제는 김덕수와 김덕순과 및 덕무이었다. 김덕수는 의기를
참지 못하여 아우 둘을 데리고 가기는 갔지마는 갔다 온 뒤에 혹 말이 날까 보
아서 아무리 친한 사람에게라도 이야기한 일이 없었지만, 덕순은 형의 부탁이
있는 것을 불고하고 한 사람에게 이야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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