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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제인과 김광준이 여러 대간들을 보고 누누이 이해를 타서 말하였으나, 여러
사람들은 점점 더 격앙할 뿐이라 마침내 하릴없이 회의를 파하고 일어서게 되었
다. 대간들이 중학 대청에서 회의할 때, 임백령의 아우 임구령이가 대청 밑에 엎
드려서 누가 무슨 소리 하는 것을 샅샅이 엿들었고 대간들이 흩어져 돌아갈 때
정순붕의 아들 정현이와 정순붕의 사위 이만년이가 그 또래 젊은 것들을 데리고
중학 대문 밖에 숨어 있다가 누가 어디로 가는 것을 각각 보살피었다. 그날 저
녁에 김광준이 회의 상황을 이야기하려고 원형에게 와서 본즉, 원형이가 임백령,
정순붕, 이기 등과 같이 앉았는데 회의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민제인까지 끼여
들어 가며 무능하다고 책망들이 분분하였다. 김광준이 무색하여 돌아간 뒤에 원
형의 무리가 밤중까지 공론들 하고 그 밤에 광화문 앞으로 모이어 와서 날이 새
기를 기다리었다. 이튿날 새벽에 예조참의 윤원형과 병조판서 이기와 호조판서
임백령과 지중추부사 정순붕과 공조판서 허자 등이 정원에 들어와서 국가 대사
가 있다고 고변하고 면대하기를 청하였다. 어린 왕이 대왕대비를 모시고 충순당
에 출어한 뒤에 이기가 여럿을 대신하여 앞으로 나가서 “형조판서 윤임이 오래
전부터 다른 뜻을 품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온데, 지금 와서는 수상한 거동이 많
삽고 좌의정 유관과 이조판서 유인숙도 또한 형적이 없지 않사외다. ” 하고 아
뢰니 대왕대비가 “윤임의 흉계를 품은 것은 미리부터 모른 일이 아니나 근일에
음모하는 것이 궁중에서 탄로되어 어찌하면 좋을까 하여 근심중이더니 지금 공
론이 나는 것이 실로 천지조종의 도우심인 줄로 안다. ” 하고 말씀하고 육경
이상을 불러들이어 이 일을 의론하게 하였다. 혹은 죄를 주자고 말하고 혹은 죄
를 주지 못한다고 말하여 의론이 분분할 때, 정순붕이 앞으로 나서서 “윤임, 유
관, 유인숙의 죄는 제인과 광중이가 논핵하려 하옵다가 하료들이 말을 듣지 아
니하와 중지하였다고 하옵니다. 처음에 윤임이 동궁을 보호한다고 하와 대윤, 소
윤이란 말이 나게 되었삽는데, 신민이 봉대하옵는 동궁을 윤임이 홀로 보호할
까닭이 어디 있었사오리까? 윤임 등이 종사를 위태케 하려 꾀하온 것은 현저히
드러나지 아니하였사오나, 이미 공론이 난 바에는 경중을 가리어 죄를 주심이
마땅하올 줄로 아옵니다. ” 하고 아뢰고 난 뒤에 영의정 윤인경이 “임이는 수
상한 거동이 있었은즉 찬배하옴이 마땅하고 인숙이는 형적이 있다는 물론이 있
사온즉 파직하옴이 마땅하고, 관이는 그 맘을 알 수 없사온즉 체차하옴이 마땅
한 줄로 아룁니다. ” 하고 구계로 아뢰어서 인경의 말대로 처분이 내리게 되었
다. 이튿날 집의 송희규와 사간 박광우가 민제인과 김광준을 걸어 피혐계를 올
리고 민제인, 김광준도 인혐계를 올리었더니, 좌찬성 이언적이 다같이 출사케 하
기를 청하였다. 송집의가 여러 대간들을 보고 “원형이가 밀지를 외조에 전파하
여 인심을 현란케 하였으니 원형 같은 간신을 첫머리로 탄핵하여 법전의 무서운
것을 알리어 주십시다. 그러나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 내일 다시 모입시다. ” 하
고 말하여 여러 대간들이 모두 물러나가는데, 헌납 백인걸이 혼자 뒤에 떨어져
있다가 밤에 독계를 올리어서 원형이 국가정사를 광명정대치 못하게 한 것과 제
인, 광준이 대간의 체통을 잃은 것과 또 송희규, 박광우가 사폐만 일삼는 것을
논핵하였다. 대왕대비가 전지를 내리어 “백인걸이 정대한 것을 칭타하고 역적
을 비호하였으니 먼저 파직한 뒤에 금부에 나수하고 송희규 이하 대간은 파직하
라. ” 하고 또다시 전지를 내리어 “윤임은 절도에 안치하고 관과 인숙은 중도
에 부처하라. ” 하여 일이 일층 커지었다. 이때 우찬성 권발은 대행왕의 고명을
받은 중신이라 중한 부탁을 돌이켜 생각하고 한번 죽음으로 국은을 갚고자 하여
계사를 초하여 품에 품고 예궐하였더니 좌찬성 이언적이 그 계사 초본을 보고
놀라서 과한 말을 다 없이 하였으나, 정대한 말이 오히려 간신의 간을 서늘케
할 만하였다. 권찬성이 계사를 올린 뒤에 원형의 무리가 공론한 결과로 정순붕
이 상소를 올리어 권발의 계사를 반박하였다. 왕과 대왕대비가 또다시 충순당에
전좌하고 원임대신 이하 중신을 불러 들이어 순붕의 상소를 돌려보인 뒤에 윤
임, 유관, 유인숙을 종사의 죄인이라고 사약을 내리게 하고, 정순붕 이하 이십여
인을 종사에 유공하다고 공신 칭호를 내리게 하였는데 이기, 임백령, 허자와 임
구령, 정현, 이만년 등은 물론이요, 민제인, 김광준, 이외 여러 사람들도 공신에
참예하게 되었다.
5
유관은 인망 있던 정승이요, 유인숙은 명절 있는 재상이나 다시 말할 것이 없
고, 윤인으로 말하더라도 출신이 무변이요, 처치가 국척이라 그 처신이 단정한
선비와는 같지 못하나 큰 죄를 범한 일이 없는 것은 온 조정이 다 아는 바인데,
거동이 수상하다고 하여 성주로 찬배하라 하고 불과 사흘 만에 화심을 품었다고
하여 남해에 안치하라 하고 또다시 사흘 뒤에 역모가 있었다고 몰아서 사약을
내리게 하였으니, 보통 인정에 해괴하게 생각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때 경기감사 김명윤이 간신의 비위를 맞추려고 비밀히 서계를 올리어서 해괴
한 일을 더욱 해괴하게 만들었다. 김명윤은 전날에 학행과 지조가 있다고 현량
과에까지 천거되었었으나, 현량과가 파과된 뒤에 형세가 비루 막심하여 전후가
두 사람같이 변한 인물이라, 그 서계는 계림군이 윤임의 역모의 주인이니 속히
처치하여야 하고 나이 어린 봉성군도 역시 미리 조처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 것
이었다. 계림군 유는 당시 종실 중에 명예 있는 사람일 뿐 아니라 윤임의 생질
인 까닭으로 원로, 원형의 말밥이 된 것이니, 처음에 윤가 형제가 부언을 주작하
여 계림군의 이름이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을 때 그의 처남 되는 사람이
도망하라고 권하였다. “이장곤과 같은 사람도 망명하여 온전하였는데 종실 한
사람쯤 도망한 것을 누가 그리 대단히 알고 찾겠소. 도망하시오. ” 계림군이 맘
에 그럴싸하게 생각하여 첩에게 의논하니 그 첩이 도망하지 말라고 말리었다.
“남의 집 종이 매를 맞게 되었을 때 도망하다 붙잡히면 매를 더 맞게 되는 법
입니다. 도망할 생각 마십시오. ” 계림군이 또 맘에 그럴싸하게 생각하여 앞을
보아가며 어떻게든지 할 생각으로 하루하루 지나는 동안에 일이 차차 급하여졌
다. 그 처남이 “대장부가 소견없이 여자의 말을 곧이듣고 있다가 화를 당하다
니 말이 되지 않는 일이오. ” 하고 구박하다시피 하여 계림군은 모야무지에 서
울서 도망하였다. 계림군을 잡으러 갔던 금군이 빈손으로 돌아와서 도망한 연유
를 고한즉, 원형의 무리는 죄가 있으니까 도망한 것이라고 떠들며 체포하라는
명령을 각도 각군에 내리었다. 고변에 고변이 뒤를 이어서 안세우란 경망한 자
가 윤임의 집 계집종 모린이를 잡아바치며 고변하되, 윤임이가 역모를 꾸밀 때
에 궐내에 들여보내는 편지를 모린이가 전하였고 윤임의 역모를 그 첩 옥매향이
가 아는 까닭으로 임 귀양길을 떠날 때 창의문 밖에 앉아서 그 사위 이덕응을
보고 “옥매향을 데리고 가지 아니하면 나의 일이 전부 탄로될 염려가 있으니
곧 말을 태워 내게로 보내라. ” 하고 말하는 것을 모린이가 들었은즉, 이것은
다 모린에게 물어보면 알 것이라고 하여 옥매향과 이덕응이 모두 잡히어 갇히게
되었다. 전 주서 이덕응이 나수된 뒤에 그 아우 문응이가 임백령을 가서 보고
형을 살려달라고 애걸한즉, 백령이가 문응의 사람이 변변치 못한 것을 알고 “
윤임의 역모한 것이 적확하다고 말하고, 또 봉성군을 옹립하려고 한 일까지 있
었다고 분명히 말만 하면 비단 살 뿐이 아니라 공신에 참예까지 될 수 있지. ”
하고 꾀이었더니 문응이가 그 말에 덕응에게 전하여 덕응은 그 말을 곧이듣고
살아나갈 욕심에 무복하기 시작하였다. 이덕응의 친한 친구 수찬 이휘의 이름이
이덕응의 구초에 나서 잡히게 되니, 이휘의 친구 이조정랑 이중열이 화가 몸에
미칠 것이 두려워서 평일 휘와 상종할 때에 시휘에 걸리는 말이 있는 것을 가지
고 고변하여 몸이 빠지려고 생각하고 그의 부친 이윤경에게 말한즉, 윤경은 “
죽는 것도 아깝지만 친구는 팔지 못하느니라. ” 하고 붕우의 의리를 말하여 금
지하고 또 그의 숙부 이준경에게 말한즉, 준경은 “친구를 위하여 죽는다는 것
도 생각해 볼 일이거니와 너는 부형이 재당한 처지라 너 한몸이 아니니 생각하
여 하라. ” 하고 문호 보전할 것을 말하여 이중열은 마침내 이휘 고하는 초계
를 올리었으나, 이중열도 역시 잡히어 갇히게 되고 장령 정희등과 사간 박광우
와 그외의 여러 문신들이 이덕응의 구초로 잡히어 화초장이 박수경도 역시 이덕
응의 구초로 잡히어서 허무한 옥사가 나날이 커지었다.
6
이때 죄인들을 국문하는 국청은 대궐 안에 설치되었었다. 대행왕의 재궁을 모
신 빈전이 지척에 있건마는, 이기, 임백령, 허자 등이 추관으로 죄인을 국문할
때 방자하고 무엄하게 행동하여 사가 사랑에서 종의 죄를 다스릴 때보다도 더
심한 일이 많았었다. 이기와 허자와 임백령이 국청에 앉아서 위의를 베풀고 모
린을 잡아들여 문초를 받는데, 임백령이는 옥매향의 집 뒷문으로 출입할 때 모
린에게 신세를 진 사람일뿐더러 모린의 말대답할 것을 미리 가르쳐 준 사람이라
아닌보살로 틀만 빼고 앉아 있고, 또 이기는 상좌에 잠자코 앉아 있어 허자가
말을 묻게 되었다. 허자의 큰 말소리는 고사하고 모린의 작은 목소리도 아래위
에 들리건만, 나장이가 중간에 서서 위의 말을 받아내리고 아래 말을 받아올리
었다. “그년이 저의 상전의 편지를 가지고 궐내에 드나든 일이 있다느냐?” “
혹시 가다 있었답니다. ” “편지를 가지고 들어오면 누구를 주었다느냐?” “
왕대비전 나인의 무수리를 주어서 그 나인의 손을 거치어 왕대비전에 올리게 했
었답니다. ” “무수리는 한 사람이라느냐?” “한 사람, 아니 녜, 한 사람뿐입
니다. ” 하고 모린이가 말 더듬는 것을 보고 그 말을 받아올리기도 전에 허자
가 “기이지 말고 바로 아뢰래라!” 하고 호령을 내리니 받아내리는 호령 바람
과 따라 일어나는 긴 대답 서슬에 모린이는 간이 달랑하도록 놀라서 “여러 사
람이올시다. ” 하고 발발 떨며 대답하였다. “무수리들의 이름은 무엇이라느냐?
” “이름들은 모른답니다. ” “이름들을 모르다니 바로 아뢰래라. ” “나인
김씨의 무수리, 나인 박씨의 무수리, 나인 오씨의 무수리랍니다. ” 이기가 임백
령을 돌아보며 나직이 수어를 말하여 임백령이 대왕대비께 그 말을 품하고 나오
더니 얼마 아니 있다가 왕비 전하의 궁인 세 사람과 무수리 세 사람이 국청으로
잡혀나왔다. 모린이를 한옆으로 치워놓고 궁인과 무수리를 국문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주장으로 임백령이 말을 물었다. “모린에게 편지를 받은 일이 있다느
냐?” “없답니다. ” “없다니? 없다면 될 것이냐? 차례로 아뢰래라. ” 여섯
사람 중에 한 궁인이 “편지는 대체 무슨 편지 말입니까?” 하고 물어서 “무슨
편지? 윤임이가 왕대비께 올리는 편지 말이야. ” 하고 임백령이 호령기 있는
말을 내린즉, 여섯 사람이 여출일구로 “그런 편지 받은 일이 없습니다. ” 하고
대답을 올리었다. 임백령이 눈귀가 샐록하여지며 “왕대비전 궁인을 자세하고
기이면 될 줄 안다느냐?” 하고 다시 언성을 높인즉, 옳다고 입빠른 궁인 하나
가 대상을 치어다보며 물 퍼붓듯 말하였다. “우리는 성명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세가 무슨 자세입니까? 우리더러 자세한다면 두 발 가진 사람의 새끼는 고만
두고 대청 밑에 쥐새끼나 연못 안의 고기새끼가 모두 다 웃습니다.” “방자스
러운 년이다. 쥐둥이를 쥐어박아라.” 한동안 긴 대답 소리가 난 뒤에 “그년더
러 물어보아라. 모린이가 누구인지도 모른다느냐?” “모린이가 윤임의 첩 옥매
향의 종년인 것은 알지만 모린이에게서 편지 받은 일은 꿈에도 없답니다.” “
사람은 알지만 편지 받은 일은 없다? 그년을 자빠뜨리고 가슴을 짓찧어라!” 집
장 군사가 형장 머리로 궁인의 가슴을 내지르니 궁인은 뒤로 자빠졌다. 자빠진
사람의 가슴을 절구질하듯이 내리찧는데, 구르면 붙잡고 찧고 뒤채면 자빠뜨리
고 찧었다. 구르지도 못하고 뒤채지도 못하고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다가 손의
뼈가 부서졌다. 그 궁인이 눈을 홉뜨고 입으로 피를 토하기 시작한 뒤에 한옆으
로 끌어 치우고 다른 궁인을 잡아냈다. “너는 기이지 말고 아뢰렷다!” “조금
이라도 기일 가망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말 편지는 받은 일이 없습니다.” 내려
오는 말 한마디와 올라가는 말 한마디가 끝나자마자, 또 가슴에 절구질이 시작
되었다. 셋째의 궁인은 절구질이 시작되기 전부터 절구질 받고 숨이 그칠 때까
지 “애구 마마, 원통하게 죽습니다. 애구 마마.” 하고 마마를 부르짖고 통곡하
였다. 궁인 세 사람은 그만두고 무수리 세 사람까지도 말 한마디 횡설수설하지
아니하고 가슴에 절구질을 받았다. 임백령이는 문초 받느라고 헛애만 쓰고 나서
이기를 돌아보며 “여섯 년의 입에서 말거리 하나 못 잡아내게 되는 것은 의외
일이오.” 하고 말하니, 이기는 손가락을 들어 빈전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덕
화라고 할까?” 하고 빈정대는 구기로 말하는데, 허자는 그 말이 옳게 본 말이
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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