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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3권 (8)

카지모도 2022. 11. 5.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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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때 이기는 칠십 늙은이라 무엇을 구할 것이 없으련만 대왕대비께 아첨하는

품이 임백령이나 정순붕보다 조금이라도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아니하였다. 이

기가 대왕대비의 비위를 맞추려고 말씀 아뢰기를, 대행왕은 즉위한지 일 년이

못된 임금이라 대왕의 예를 쓸 것이 없으니 다섯 달을 기다리지 말고 곧 인산을

지내자고 하여 대왕대비가 마땅히 여기고 원형의 무리가 옳다고 떠들어서 시월 보름

께 인산을 지내기로 작정되었다. 처음에 병조정랑 정황이 상소하여 무고히 갈장

하는 것이 예법이 아니라고 다투고, 다음에 예문관 검열 윤결이 상소하여 대행

대왕의 신하는 오직 정황이 한 사람뿐이라고 정정랑을 칭찬하고 나중에 태학 유

생들이 상소로 갈장 주장한 대신들의 죄를 의논하였다. 그러나 이 상소들은 모

두 비답이 내리지 아니하였다.

양주 돌이가 인산을 구경하려고 아들 딸 사위 할 것 없이 집안 식구들 통히

끌고 서울로 올라와서 혜화문 안 김덕순에게서 이삼일 동안 묵새기었다. 김덕순

이가 돌이 부자와 같이 앉았을 때다. 돌이가 이번 인산이 어찌하여 빨라졌는가

물어서 김덕순이는 이기 무리의 비열하고 괴악한 것을 대강 이야기하여 들리고

나서 "나는 남곤, 심정이를 천하에 다시 없는 극악대대로 알았더니 그보다는 더

한 초현 놈들이야. " 하고 한숨을 쉬었다. 꺽정이가 "여보, 당신 말을 듣더라도

대비인가 무엇이 제일로 고약하오그려. 나머지 것들은 졸개가 아니겠소. " 하고

말하니 돌이가 "이 자식아, 제발 말 좀 마구 마라. " 하고 곧 "저 자식은 저게

병이오. " 하고 덕순을 돌아보았다. "임금 장사는 다섯 달 장사가 자고로 정한

법인데 그놈들이 함부로 갈장을 하는구려. " 하고 돌이가 예법을 아는 체한즉 덕

순이는 "그렇소.“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꺽정이는 "잘난 장사 달수를 가지고 좋

은 임금을 나삐 대접하려는 것이 망한 년놈들의 심사지. 다섯 달이고 넉 달이고

그거야 실상 무엇 이 대단하오. " 하고 탄하고 나섰다. "예법을 당초에 모르는 자식

이라 할 수가 없어.“ "예법이니 무엇이니 그런 것만 가지고 떠들기 때문에 세상이

망해요. " "누가 세상이 망한다드냐?" "이 세상이 망한 세상이 아니고 무엇이오.

공연히 죄없는 사람만 죽여내고. " "그러니 너도 고이 죽을라거든 가만히 닥치고 있어.

부자 말다툼하는 것을 덕순이가 듣고 있다가 "그렇게 하다가는 부자간에 주먹다짐

이 나겠네. " 하고 웃으니 돌이가 "예법만 없으면 저 자식이 족히 주먹다짐이라

도 하지요. " 하고 역시 웃었다.

인산날이다. 인산 기구까지 전과 같지 못하였다. 길거리에는 지송하는 인민들

이 무더기를 지어 섰는데 돌이가 이곳 저곳 좋은 곳을 찾아다니다가 늙은이 이

삼십 명이 한 무더기 지어 섰는 곳에 와서 끼여서니 돌이 뒤를 따라오던 돌이

의 집안 식구들은 한옆에 따로 뭉치어 섰다. "죽칸마도 망하게 만들었다. 속에

있는 채가 모다 보이네그려. " "능 역사도 말이 아니라데. " "요전 인산에 대면

기구가 절반도 못 되네. " "이런 초라한 인산이 어디 또 있겠나. " "쉬이. " "사

셔서 고생하든 양반이 돌아가셔도 한번 호강을 못 해보니 가엾지 아니한가. " "

아따 쉬이. " "통곡할 일이야. " "잘못 통곡하다가는 금부로 잡혀가네. " "눈물

흘리는 것도 죄란 말인가7" "이번 국상에는 뚱땅거리고 노는 놈이 상 받을 놈이

라네. " "기가 막혀. " 하고 늙은이들이 지껄이다가 한 늙은이가 "저기 대여가 납

시네. " 하고 말하여 일제히 대여 오는 곳을 바라보는데, 그 눈에는 모두 눈물이

어리었다. 돌이가 다른 사람과 같이 바라보고 있던 중에 흘저에 돌아간 임금이

몹시 가엾게 생각되어 앞으로 지나가는 대여를 향하여 절하며 곡소리를 내니 여

러 늙은이가 누가 시키는 것 같이 모두 일제히 엎드려 통곡하였다. 인산에 따라

가던 사관이 이것을 보고 “발인하던 날 늙은 백성 삼십여 명이 통곡하며 지송

하였다.” 는 뜻을 사초에 적어 올리었다.

 

11

육칠 년 동안 내려오며 연년이 흉년이 든 끝에 이 해 가을에 늦 장마가 심하

여서 곡식이 많이 물어서 주저앉고 또 곡수머리에 연일 바람이 불어서 주저앉지

않은 것도 실념이 못 되었다. 전에 없는 큰 살년이라, 배 주린 까마귀 빈 뒷간을

기웃거린다는 말이 동요가 되다시피 하였다. 사람은 고사하고 까막까치까지도

먹을 것이 없어서 인분이나마 먹어 보려고 뒷간에 와서 기웃거린즉 인분까지 없

어서 뒷간이 비었다는 말이니 이 말이 거의 사실이나 다름없었다. 양반은 편지

로 살고 아전은 포흠으로 살고 기생은 웃음으로 살지마는, 가난한 백성들은 도

적질 아니하고 거지짓 아니하면 굻어죽을 수밖에 없었다. 도적으로 뛰어나와서

재물 가진 사람을 죽여내고 거지가 되어 나와서 밥술 먹는 집에 들싼대기도 하

지마는 북망산에는 굶어죽은 송장이 늘비하였었다. 이와 같은 흉악한 살년에 갸

륵한 상감이 수상하게 돌아갔다, 득세한 간신들이 살육을 몹시 한다, 이것저것이

겹치고 덮치어서 서울 사람은 서울 인심이 송구하다고 시골로 내려가고 시골 사

람은 시골인심이 소란하다고 서울로 올라왔다.

인산 전에 김덕수가 양근 미원으로 낙향하려고 아우들과 의논한 일이 있었는

데 그때 덕순이가 처음에는 “인심 소란하기는 시골 서울 일반이니 서울서 그대

로 지냅시다.” 하고 냑향하지 말자고 말하였으나 일반이면 시골로 가자. 우리는

경궁지조가 되어서 서울서는 제일로 옥사에 맘이 송구하다.“ 하는 형의 말을

억지로 우기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서울 떠나는 것을 좋게 여기는 노인 어머니 의

향을 어기지 못하여 나중에 형제 다같이 낙향하기로 작정하였다. 인산 이튿날

돌이 식구가 양주로 내려갈 때, 꺽정이는 덕순 형제의 집 이사를 보아 준다고

서울에 떨어졌다. 덕수는 먼저 양근으로 내려가고 덕순이가 덕무를 데리고 세간

을 수습하느라고 큰집에 가서 많이 있게 되었는데, 어느 날 밤에 혜화문 안 집

에 와서 꺽정이와 같이 자며 서로 이야기하였다. "떠나실 때 짐들은 다 어떻게

하실라오? " "큰집은 하인들을 맡기고 아우의 집은 팔기로 하였지만 이 집은 어

떻게 할 작정이 없다. ”"그러면 이 집은 내가 올라와 살까요? " "좋지. 그렇지

만 올라와서 살수 있겠니. " "장난의 말이오. 누가 귀찮게 살림하고 살겠소. 얹히

어 먹는 것이 편하지.“ "너는 생전 살림 아니할 작정이냐? 너의 아버지도 늙은

이니 얼마 아니 가서 푸줏간을 네게 내맡길라.” "우스운 소리 마시오. 내맡기면

누가 맡소.“ "푸줏간이라고 아니 맡아? ” "당신도 꽤 남의 속을 모르는구려.

내가 부모의 천량을 맡는다면 고대광실보다는 푸줏간을 맡겠소. 고대광실 무어

하오? 푸줏간에는 피나 있지만.“ "이애, 쓸데없는 소리 고만두고 이 집을 어떻

게 하면 좋겠나 말이나 해라. 팔지도 못하고 맡길 만한 사람도 없고 비어 둔단

말이냐, 어떻게 한단 말이냐? ” "비어야 둘 수 있소. 그래도 맡길 만한 사람을

생각해 보시오. " "글쎄, 어디 있다고. " 하고 덕순이가 한동안 고개를 비틀고 있

다가 갑자기 손뼉을 치며 "남에게 좋은 일삼아 맡길 데가 있다. " 말하고 정장령

이 죽은 뒤에 양대 과부가 적시를 놓고 염습할 도리가 없었는데, 자기 형제가

이 말을 듣고서 비밀히 몇 사람과 의논하고 무명 몇 동을 갖다 주었다고 이야기

하고 그 다음에 그 가족이 지금 올데갈데없이 되었으니 이 집을 맡기어 두자고

말하였다. "과부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집이 있다고 어떻게 사오? “ "집도

절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니? ” "그건 그렇지요. " "남의 일가지라도 해주

고 살겠지 무어. " "아무리나 그렇게 합시다. " 하고 꺽정이도 덕순의 말에 찬동

하였다. 덕순이가 양근으로 떠나가던 전날 밤에 꺽정이와 같이 정장령 가족의

곁방살이하는 집을 찾아가서 부인들이 의심하지 아니하도록 사연을 꾸미어 이야

기하고 그날 밤으로 이사하여 주었다. 정장령의 가족은 굶으며 먹으며 목숨만을

간신히 부지한 터인데 낯모르는 두 사람의 덕에 집을 옮기어 와서 본즉 광에는

곡식섬이 있고 부엌에는 나뭇짐이 있고 살림 제구의 없는 것이 없었다. 정장령

의 모친이 "이것도 구경은 죽은 사람의 덕이다. " 하고 눈물을 흘리니 정장령의

부인이 "그렇습지요. 그렇지만 은안의 성씨나 알았더면 저것들 형제 자란 뒤에

일러줄 것인데. " 하고 두 아이를 가리키며 역시 눈물을 흘리었다.

 

12

옥사에 살육을 당한 사람들의 집은 거지반 정장령의 가족과 같이 비참한 처지

를 당하였었다. 초종 장사에 부조한 사람들까지 간신들에게 치부되어 크면 죄,

작으면 미움을 받은 까닭으로 친척들까지 모르는 체하는 판이라 설혹 도와 줄

맘이 있는 사람이라도 화 받을 것이 겁이 나서 선뜻 도와 주지 못하니 의외의

은혜를 받아서 집간이라도 의지하고 지내게 된 정장령의 가족은 도리어 다행한

축이었다. 유관, 유인숙, 윤임은 가장 중한 죄인으로 몰린 까닭에 가산 적몰은

고사하고 처자 도륙까지 당하였었다. 유관의 집은 양자한 아들이 연좌로 죽은

뒤에 흘로 된 며느리 한 사람이 남아서 부자의 유해를 선영에 감장하였고, 유인

숙의 집은 아들 사형제가 함께 죽고 오직 출가 아니한 딸 하나만 남았고, 윤임

의 집은 둘째아들 흥의와 셋째아들 흥례가 장하에서 맞아 죽고 맏아들 흥인이

뒤에 율을 당하였으나 끝에 아들 흥충이만은 나이 어려 죽지 아니하였다. 처첩

은 관비 박히고 노비는 몰수당하여 사람도 없어지고 집도 없어지고 또 가산도

없어져서 엊그제까지 기구 있게 살던 대가가 일조에 형지 없이 되기는 피차 일

반이지만, 윤판서 집은 유정승 집이나 유판서 집에 비하면 다같이 망하는 중에

서는 여지가 있었다. 첫째 흥충의 살아난 것이 뒤끝 있는 일이고 파원부원

군 윤여필이 그때까지 생존하여서 아들의 죄로 관직은 삭탈 당하였으나 대왕대비

의 특별한 처분으로 녹을 종신토록 받게 되었으니 의식 걱정이 없고, 그외에 화

초장이 홍인서가 구외를 저버리지 않고 매사를 지성으로 돌보아 주어서 불편한

일이 적었었다.

윤판서와 한 동리에 살던 임동지는 옥사가 일어난 뒤로 화가 자기에게까지 미

칠까 겁이 나서 문을 닫고 들어앉았었다. 윤판서가 남해 귀양길을 떠날 때도 가

서 보지 못하고 윤판서가 충주까지 가서 사약을 받았는데, 그의 관구를 충주서

운반하여 올 때도 역시 가서 보지 못하고 윤부원군에게 인사도 한번 가지 못하

였다. 임동지가 주야 심려에 밤잠도 편히 자지 못하는 것을 그의 아들 임형수가

알고 "심려 말으십시오. 일을 당하게 되면 당하는 것이지요. 미리 심려하실 것이

없습니다. " 하고 위로하듯이 또는 간하듯이 말하였더니 임동지가 눈을 크게 뜨

고 "일을 당하다니? 우리가 당할 까닭이 무어 있는가? “ 하고 섰는 아들을 치

어다보았다. "그러면 더욱이 심려하실 것이 없지 않습니까? ” "글쎄. " "언평

이를 잘 알지 않는가? “ "알지요. " "요새는 더러 찾아가 보는 것이 좋지 않을

까? ”"찾아가서 무슨 청이나 한다면 창피하지만, 그저 심방해 두는 것은 상관없

지 않아? “ 임형수는 대답이 없이 섰다가 나중에 "걱정없으니 그렇게 심려 마

시오. " 하고 그 부친의 말을 막았었다. 옥사가 대강 끝이 나도록 임형수 부자는

간련되지 아니하였다. 임동지는 그래도 뒤를 염려하여 죽은 사람들의 가족을 찾

아보지 말라고 그 아들에게 신신당부하고 그 아들이 출입할 때에는 반드시 어디

가는 것을 물었다. 어느 날 임형수가 조반에서 나왔다가 다시 출입하려는 것을

보고 "어디를 가려는가? ” 하고 물었다. "경호를 좀 보고 오겠습니다. " "서소

문 안 이전한 말이지? “ 얼마 전에 이기가 이황을 논계하여 삭직을 시켰더니

이기의 조카 이원록이 이황이같이 염퇴하는 사람을 죄주면 사론이 불복한다고

말하고, 초 임백령이 이황이 같은 사람을 죄주면 먼저 죄받은 사람까지 모두 원

통하게 죄받았다는 풍설이 날 것이라고 말하여 이기가 십여 일 만에 다시 "이황

이는 시비를 아는 위인이오니 삭직 처분은 거두시기를 바랍니다. " 하고 품하여

서용하라는 처분이 대비께 이날 내리었었다. 임동지는 이황이 삭직된 것은 알았

지만, 다시 서용이 된 것은 아직 모르는 터이라 "삭직당한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

이 좋을 것 없지 않아? “ "그 사람 오늘 다시 서용되었습니다. " "서용이 되었

어? 그래 인사를 가려는가? ” "인사 겸 찾아보려고 합니다. " "좋겠지. " 임형

수는 말은 하지 못하나 속으로 그 부친을 딱하게 생각하며 말을 타고 서소문 안

을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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