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Books/Reading Books

임꺽정 3권 (9)

카지모도 2022. 11. 6. 06:14
728x90

 

 

13

임형수가 이황을 찾아왔을 때 자리에 다른 손이 없었다. 임형수가 "서용 처분

은 감축한 일일세. " 하고 올곧게 인사하지 아니하고 "자네는 제법 시비를 아니

까 쓸 만한 사람이야. " 하고 농으로 말을 붙이니 이황이 웃고 대답이 없었다.

주객이 잠자코 한동안을 지낸 뒤에 주인의 도리를 차리려는 것같이 이황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인산 발인날 반차에 참예하지 못하게 된 것이 비록 나의 죄가 아

니라 할지라도 황송한 맘을 지금껏 금할 수 없어. " "자네가 그날 문밖에 나가서

망곡하였다데그려. " "안연히 집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문밖에 나갔었지. " "

그러면 도리는 다하였지, 황송할 것이 없네. " "원래 재능 없는 위인이 환로에

나서기가 불찰이니까 수이 시골로 내려가서 문 닫고 들어앉을 작정이야. " "선생

이 산중에 들어가 누우시면 불쌍한 창생을 어찌하시렵니까? “ 하고 임형수가

허허 웃으니 "어, 실없은 사람. " 하고 이황이도 적이 웃었다. 임형수가 흘저에

태도를 거만하게 가지고 "위방불입하며 난방불거라는 방자의 뜻을 자네가 알겠

나? ” 하고 어두운 밤의 홍두깨 격으로 말을 물으니 이황은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리 하노?' 하고 생각하며 임형수의 얼굴을 치어다보았다. "자네가

모르지? 가르쳐 줌세. 그 방자가 이방, 타방이란 방자이지, 부모지방이란 방자가

아닐세. 이런 글자 뜻이나 좀 알고서 시골 가든지 아니 가든지를 작정하게. " "

그렇게 할 말이 아니야. 자네더러 말이지 나의 위인이 문자에나 유의하면 다소

진취가 있을는지 모르나 당초에 거관임직할 재목이야 되는가? 자네는 또 조충소

기라고 조롱할 터이지만 조충소기가 곧 나의 장기라면 장기대로 힘쓰는 것이 좋

지 않겠나? “ "그래, 시골을 가야만 하겠단 말인가? ”"가는 것이 옳으니까 가

야지. " "잘들 가네. 유희춘이는 벌써 일전에 떠나갔지. " "참, 인중이 떠났단 말

을 나도 들었어. " "그 사람 떠나던 날 장관이었었네. 그 이야기도 들었나? “ "

무슨 장관? ” "송희규가 술을 가지고 작별하러 나왔데그려. 그래 그 사람들 둘

하고 나하고 남문 밖 길가에서 술자리를 벌이지 않았겠나. " "그래서. " "한참 술

을 먹는 판에 공신 두 분이 행차를 하셨겠지. " "공신이라니 누구 말이야? “ "

제인이하고 광준이하고 동행해서 작별을 나왔어. " "그래. " "제인이는 잠자코 있

었지만 광준이가 잘하는 체하고 하는 말이 너희들이 우리 말만 들었더면 오늘날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인데 서생이란 할 수 없어. 시무를 알아야지 하고 틀을

빼지 않았겠나. 송희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광준이를 노려보더니 '위사공신이

어떠한 훌릉한 공신인데 우리 같은 서생이 감히 참예한단 말이오' 하고 방약무

인하게 허허 웃었네그려. 광준이와 제인이가 얼굴이 빨개지고 말 한마디 못하데

그려. "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천장이가 보기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말조심이 너무 없어 탈이야. " “탈은 부슨 탈이란 말인가? 그 꼬마가 그렇게 쾌

한 말을 하다니, 사람이란 외모 가지고 알 수 엄는 것이야. " 이때 부리는 아이

가 방으로 들어와서 충청감영에서 하인이 왔다고 말하였다. 이황의 형 이해는

대사헌으로 있어서 이기를 탄핵한 일이 있는 까닭에 얼마 전에 충청감사로 밀려

나가게 되었었다. 이황이 영창을 열고 감영 하인의 문안을 받은 뒤에 편지를 받

아오라고 아이에게 일러서 온 편지를 뜯어보더니 그 미간이 스스로 찌푸려졌다.

"무슨 편지인가? ” 이때껏 잠자코 있던 임형수가 무슨 걱정이 있는가 생각하여

말을 물은즉 "아니야, 내가 고향으로 가시자고 형님께 상서를 했더니 평일 공부

한 것을 무엇에 쓰려느냐고 형님은 나까지 시골 가지 말라셨네. “ 하고 이황이

는 아직도 찌푸려진 미간을 펴지 못하는데 임형수는 "형만한 아우 없다더니 참

말이다. " 하고 손뼉을 치며 웃었다.

 

14

그 뒤에 임형수는 제주목사로 나가게 되었는데 홍문관 부제학이란 좋은 벼슬

을 띠고 있던 사람이 수륙 이천 리의 제주로 나가는 것은 좌천이라고 말하느니

보다 허을 좋은 귀양 살이라고 말하는 것이 도리어 합당하였다. 그러나 임형수

는 소란한 조정에서 구차히 날을 보내다가 큰 바다를 건너게 되어서 시원한 맘

이 없지 아니하였다. 숙배하고 나온 뒤에 제주의 신영 아전은 나주 본집으로 오

라고 기별하고 서을 살림 거두어치울 것을 그 아버지와 같이 의논하였다. "여간

세간 나부랭이는 다 없애버리고 가시지요. " "육중한 물건은 못 가치고 가더라도

가벼운 것은 다 가지고 가자. " "먼 길에 짐을 끌고 다니기가 고역입니다. 줄 것

은 주어 없애고 팔 것은 팔아 없애지요. " "그럴 것이 무어 있어. 어지간한 것은

가지고 가지. " "도대체 저를 맡기십시오. " "아무리나 해라. " 임형수가 모든

세간을 헌신짝 없이하듯이 처치하는 것을 그의 아버지는 아까워하면서도 아들이

어려워서 간섭하지 못하다가 임형수가 타고 다니던 말을 팔려고 할 때에 "말까

지 없앨 것이야 무엇 있나7" 하고 책망하듯이 말하였다. "말은 손놓기가 아깝습

니다마는 시골 가서 말은 무어 합니까? “ "시골서는 말 타면 못 쓰는가? ” "

탈 때 되면 또 생기겠지요. " "좋은 말을 구하기가 어디 쉬운가? “ "아깝더라도

없애버리는 것이 편합니다. " "대체 별사람이야.” 하고 임동지가 마침내 그 아

들의 말을 우기지 못하여 말은 구경팔아 없이하게 되었다. 윤원형이 임형수를

미워하는 까닭에 이조판서 임백령에게 당부하여 제주목사로 내쫓게 하여 놓고

임형수가 작별 갔을 때는 "영감 같은 분을 제주로 보내다니 말이 되나요. 내가

이판보고도 말을 하였소. 지금은 이왕 그렇게 되었으니까 조변석개야 알 수 없

겠지만 아무쪼록 수이 내직으로 옳기시도록 주선하여 보리다. " 하고 도리어 생

색을 내려고 하였다. 임형수가 총총히 수어하고 일어서려는 것을 "작별로 술

이나 한잔 자시고 가오. " 하고 붙들어서 임형수는 원형의 술대접을 받게 되었

다. 주객이 각각 몇 잔씩 마신 뒤에 원형이 "여보 영감, 나는 주량이 적은 사람

이라 대작가기가 어려우니 영감 혼자 자시오. " 하고 방자한 태를 보이기 시작하

니 임형수는 "술이란 운에 먹는 것인데 혼자 무슨 맛이겠소. 영감이 더 잡숫기

어렴거든 그만 상을 치우라시오. " 하고 듣기 좋은 말로 거절하였다. "그러면 영

감 두 잔에 나 한 잔씩 먹읍시다. " "한 잔에 한 잔이 아니면 수작되지 않습니

다. " "역량이 불급이라 수작의 도리를 차리지 못하니 용서하고 이 잔부터 두 잔

에 한 잔으로 셈합시다. 자, 어서 자시오. " 하고 술잔을 들어서 권하니 임형수가

"여보시오, 영감. " 하고 그 술잔을 받아 앞에 놓고 손을 목에 대고 목 베는 시

늉을 내면서 "영감이 이렇게 하려는 생각을 먹지 않으신다면 영감의 주시는 술

을 양껏 먹으리다. " 하고 허허 웃으니 원형은 얼굴빛을 붉히고 말을 못하였다.

임형수가 그 아버지를 모시고 나주 집으로 내려가서 있다가 신영 아전들이 나온

뒤에 도임길을 떠났는데,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서 거의 복선이 될 뻔한 일이 있

었다. 이때 제주 아전들은 고사하고 뱃사공들까지도 머리를 싸고 배 속에 들어

앉았는데, 임목사는 혼자서 태연하게 뒷짐을 지고 뱃머리에서 왔다갔다 하였다.

뱃사공 한 사람이 "여봅시오 영감마님, 이리 들어오시지요. 널쪽 너머가 저생이

올시다. 우습게 보시지 마십시오. " 하고 위태한 것을 말하니 임목사가 "에끼놈,

가만히 있거라. 내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사람이냐?" 하고 도리어 뱃사공을 꾸

짖고 나서 고개를 젖혀들고 허허 웃었다.

 

제 3장 익명서

 

1

살육이 난 뒤에 이 년이 채 지나지 못한 때다. 당시 부제학 벼슬을 가지고 있

던 정언각이란 자가 전라도로 가는 딸자식을 전송하여 과천 양재역말까지 나갔

다가 들어와서 익명서 한 장을 봉하여 위에 바치며 아뢰는 말이 "양재역말에 익

명서 한 장이 붙어 있삽는데 국가에 관계되는 말씀이옵기에 도려다가 바치옵나

이다. " 대왕대비가 정언각의 올리는 익명서 봉을 뜯고 펴서 보니 "여자가 정사

를 알음하고 간신이 권세를 농락하니 나라 망할 것은 서서 기다릴 수 있다. 이

것이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랴. " 하고 주서로 쓴 것이었다. 대왕대비가 화가 나

서 즉시로 삼공 이하 중신을 불러들이어 익명서 처치할 도리를 의논하라고 전교

를 내리었다. 윤인경, 이기, 정순붕, 임백령, 허자, 윤원형, 민제인, 김광준 등이

빈청에 모여 앉아 익명서를 돌려보고 의논을 시작하였다. 윤인경이 멀저 입을

열어 "어떻게 하면 좋겠소? 좋은 의견을 들읍시다. " 하고 좌우를 돌아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자코 앉았는데 임백령이 앞으로 나서서 "양재역 찰방부터 역졸

들까지 모두 잡아올려서 엄형으로 국문하면 익명서 단서가 자연치 드러날 줄로

생각합니다. " 하고 의견을 말하였다. 정순붕이 백령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

흔들며 일어서서 "역졸들을 국문하여 무슨 단서를 얻겠습니까? 재작년 옥사에

경하게 처단한 죄인들이 화근이 되어서 이런 익명서까지 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근래에 옥은 무옥이고 훈은 위훈이라는 말이 세상에 떠돌아다닌다니 이

런 망상스러운 말을 지어 내는 자가 대개는 익명서를 써붙였을 것이고, 이런 흉

한 문자를 쓰는 자가 대개는 죄인의 여당일 것인즉 경한 죄인을 고쳐 다스릴 뿐

아니라 죄인의 여당까지 함께 죄주면 화근이 자연히 막힐 줄로 생각합니다. " 하

고 말하자, 이기가 순붕의 말이 옳다는 듯이 고개를 연해 끄덕이었다. "그것은

너무 심한 말씀이오. " 하고 허자가 말하고 "한 번도 심하거니 두 번이야. " 하

고 민제인이 말하다가 윤원형이 눈을 흘기는 바람에 고개들을 수그리고 다시 두

말 하지 못하였다. 잠시 동안에 의논이 귀일하여 같이 머리를 모으고 앉아서 죄

인과 죄인 여당의 성명 발기를 썩어 놓고 죽일 사람과 절도 안치할 사람과 및

원방 부처할 사람을 각각 구별한 뒤에 윤인경이 대왕대비께 회계하되 "죄인이

참죄인이 아니고 공신이 거짓 공신이라는 말이 근일에 떠돈다고 신들도 들은 일

이 있사오나 언근을 알지 못하와 감히 주달하지 못하였삽더니 지금 익명서를 보

온즉 떠돈다는 말이 바이 헛말이 아닌 줄을 알겠사외다. 또 이와 같은 익명서는

결코 용렬한 자의 능히 할 바이 아니외다. 지금 마땅히 죄줄 만한 자의 경중을

구별하여 아뢰오니 처분하시기를 바라옵니다. 그것은 익명서를 보고 비로소 청

하는 것이 아니옵고 당초에 죄들을 정하을 때에 사정없이 율을 켜지 못하와 후

환을 끼쳤삽기에 다시 청하려고 하던 차이외다. " 대왕대비가 죄인의 명록을 받

아 보니 봉성군의 이름이 죽여 마땅한 사람의 첫머리에 있었다. 봉성군은 윤임

옥사에 간련된 까닭으로 평창에 귀양 가서 있는 중이라 이미 원방에 내쫓은 것

이 족하니 가죄는 불가하다고 대왕대비가 봉성군의 목숨만은 살려주려고 하다가

양사 옥당에서까지 나서서 대의로 단정하라고 다투는 까닭에 마침내 봉성군도

사약하게 되었다. 이때 참판 송인수와 정랑 이약빙은 사약을 받고, 목사 임형수,

좌랑 정황, 정언 유희춘, 정언 김난상, 찬성 권발, 찬성 이언적, 헌납 백인걸, 장

령 이언침, 지평 민기문 등은 혹은 안치 혹은 부처를 당하였다. 정언각이 독계를

올리되 "임형수는 윤임과 이웃하여 살았고 윤임의 심복이 되어서 주인 광좌에서

윤원형은 죽여 마땅하다고 대언장담하던 위인이오니 안치가 헐할 듯하외다. " 하

고 임형수를 몰았더니 대왕대비가 "양재의 익명서를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련만

너 홀로 가지고 와서 바쳤으니 너는 신자 된 직분을 다하는 사람이다. " 하고 칭

찬한 뒤에 "임형수가 다른 사람과 죄는 같고 벌은 달라서 나도 괴이쩍게 생각하

는 바이다. " 하고 그릇 논죄한 것을 말하고 곧 임형수에게 사약하라는 전지를

내리었다.

 

2

이보다 얼마 전에 윤원형의 수하 진복창이 사헌부 지평이 되며 원현의 뜻을

받아서 임형수의 부자가 윤임의 심복이니 그대로 둘 수 없다고 주장하여 여러

대간들과 함께 나서 탄핵한 결과로 임동이는 삭탈관직을 당하고 임목사는 파직

을 당하였었다. 이때 금부도사가 사약 전교를 받들고 나주로 내려가서 목사를

찾으니 목사는 마침 본집에 가고 판관을 물으니 판관은 공교히 병들어 누웠었

다. 시골 가는 사약 도사가 사약 전교를 봉행할 때는 본토 관원 하나를 대동하

는 법이라 목사와 판관이 모두 유고한 것을 안 뒤에 도사가 이방을 불러서 사정

을 말한즉 이방이 "교수 나으리가 계시니 같이 갑시면 될 것이올시다. " 하고 대

답하여 교수를 청하여 사약하러 갈 것을 의논하였다. 이방은 임목사의 문하인과

다름없는 사람이라 도사가 나오기 전에 달음질을 쳐서 임목사 집에를 왔다. 임

목사가 동리의 늙은 사람과 같이 바둑을 두는 중이라 정하에서 문안을 드리는

이방을 내다보고 "너 어째 나왔느냐? " 하고 말 한마디 묻고서는 "어서 두게, 자

네같이 질감스럽게 들여다보아서야 재미가 있나. " “두지요. " "그렇게 놓아. 가

만 있거라. 이러면 어쩔 터인고. " 하고 바둑에 재미를 붙여서 다시 내다보지도

아니하니 이방이 맘이 조급하여 몇 번 큰기침을 하다가 나중에 "영감마님, 급히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 하고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임목사가 그제야 이방의

창황한 기색을 보고 수상히 생각하며 "무슨 말이냐? 말해라. " 하고 재촉하니 이

방이 주저하다가 "잠깐만 조용히. " 하고 말하였다. 임목사가 줌에 바둑을 쥔 채

로 일어서서 마루 끝으로 나왔다. 이방이 댓돌 위에 올라서서 나직한 목소리로

사약 도사가 내려온 것을 말하고 "곧 나을 것입니다. 어서 뒷일을 처리하십시오.

소인은 물러갑니다. " 하고 절하고 다시 댓돌 아래로 내려가니 임목사가 말이 없

이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와서 바둑 두는 늙은이를 보고 "서을 손님이 나

를 찾아온다네. 바둑은 고만 치우게. " 하고 줌에 쥐었던 바둑을 통에 넣는다는

것이 태반은 방바닥에 떨어뜨리었다. "자네는 가게. " 하고 임목사가 말하여 늙

은이가 일어서 나간 뒤에 얼마 아니 있다가 금부도사가 교수와 같이 말을 타고

금부 나졸과 고을 하인들을 데리고 문간으로 들어왔다. 잠시 동안에 임목사 집

은 안팎이 물끓듯하였다. 그러나 범 같은 나졸들이 잡인을 금하여서 안사람이

나오지 못하고 바깥사람이 들어오지 못하였다. 임형수가 뜰 아래 꿇어앉아 전교

사연을 들은 뒤에 도사를 치어다보며 "노친이 계시니 하직할 틈을 주시겠소?“

하고 물으니 도사가 처음에는 미간을 찌푸리고 허락하지 아니할 모양을 보이더

니 어찌 생각하고 "특별히 허락하는 것이니 속히 하직하고 나오시오. " 하고 사

정을 써서 임형수가 안으로 들어가는데 나졸 하나가 그 뒤를 따랐다. 임형수가

안에를 다 들어가지 아니하고 중문 안에서 두 번 절하고 돌쳐서 나오니 도사가

이것을 보고 "자제에게 유언할 것이 있거든 자제를 불러 보고 하인에게 말 이를

것이 있거든 하인도 불러 보시오. " 하고 관대하게 허락하여 팔구 세 된 임형수

의 아들이 하인과 같이 나와서 아들도 울곤 하인도 우는데 임형수가 "울지 말고

아비의 얼굴이나 잘 보아 두어라. " 하고 말한 뒤에 "너는 글을 읽지 마라. " 하고

이르고 그만 들어가라고 말하여 아들이 절하고 돌아서서 엉엉 소리를 내서 울면서

몇 걸음 걸어가자, 임형수가 "나 좀 보아라. " 하고 말하여 그 아들을 다시 돌쳐

세워놓고 "글을 아니 읽으면 무식하니까 글은 읽되 과거를 보지 마라. " 하고 먼저

이른 말을 고쳐 일렀다. 그 아들이 들어간 뒤에 임형수는 "서산낙일에 명재경각이란

것이 나를 두고 한 말이구려. " 하고 빙그레 웃었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꺽정 3권 (11)  (0) 2022.11.08
임꺽정 3권 (10)  (0) 2022.11.07
임꺽정 3권 (8)  (0) 2022.11.05
임꺽정 3권 (7)  (0) 2022.11.04
임꺽정 3권 (6)  (0) 2022.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