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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4권 (7)

카지모도 2022. 12. 12.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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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령서 나셨는가요? ” "아니, 내가 옹진서 이리 이사온 지가 한 이십 년밖에 아니

되었어. " "녜, 옹진 사시다 오셨어요? 그러면 나시기도 옹진서 나셨겠구먼요. " "그래,

옹진이 내 고향이야. " 유복이가 그제는 그 노인이 확실히 원수 노가가 아닌 줄을 알

고 의심이 풀리었다. 유복이가 다른 말을 물으려고 할 제 그 노인이 짚었던 지

팡이를 들면서 "내가 지금 둘째아들에게를 가는데 얼른 가야 할 일이 있어. " 하

고 말하여 "녜, 그렇습니까? 그럼 어서 가십시오. " 하고 유복이는 그 노인을 보

내고 그 뒤에 여기저기 다니며 물어보아서 읍내에 노가 성 가진 사람의 집이 칠

팔 호나 되는 줄 알았고, 또 그중에 본토 사람으로 자손 많고 농사지어서 요부

하게 사는 집이 단 한 집인 것을 알았다. 유복이가 전에 이모부에게 들어두었던

말에 맞는 노가는 그 집뿐이라 그 집을 찾아와서 문 밖에서 주인을 만나자고 하

였더니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하나 나왔다. "당신이 이 집 주인이오. " “그렇소.

" "당신 아버지 있소? ” “녜. ” "지금 집에 계시오? “ "등산 볼일 보러 가셨

소. ” "등산이라니? “ "등산곶 나가셨단 말씀이오. " "당신 아버지 연세가 올

에 몇이시오? ” "그건 왜 묻소? “ "좀 알아볼 일이 있소. " "올에 쉬흔여덟이

시오. " "쉬흔여덟? ” 하고 유복이는 고개를 비틀었다가 다시 "당신 할아버지

기시우? “ 하고 물었다. “기시지요. ” "올에 나이 몇이시오? “ "아흔 한두엇

되셨소. " "아흔 한두엇? 너무 넘고 처지는걸. " "무엇이 넘고 처진단 말이오?

” "내 셈으루 말이오. " "별사람 다 보겠네. " 하고 그 젊은 사람은 곧 집 안으

로 들어가 버리었다.

유복이가 그 노가의 집 문 앞에서 돌아설 때 해가 벌써 다 진 뒤라 그 길로

어느 여염집에 가서 하룻밤 얻어 자고 이튿날 식전부터 나서서 강령읍내 노가

성 가진 사람의 집을 줄뒤짐하여 찾아 다니었다. 유복이의 원수는 본바닥 사람

이라는데 타곳에서 이사 와서 사는 노가가 두 집이고, 유복이의 원수는 대대로

농군이라는데 관속 다니는 노가가 두 집이고, 훈장질하는 노가가 한 집이고, 또

백정질하는 노가가 한 집이고, 유복이의 원수는 자손이 번성하다는데 식구 단출

한 노가가 세 집이고 그 외에 자손 많은 집은 곧 유복이가 전날 저녁때 찾아가

서 양대 나이가 넘고 처진다고 말하던 노가이었다. 유복이의 원수가 자식 손자

가 많았다고 하지마는 이십여 년 동안에 혹시 집안이 폭 망하여서 지금은 식구

단출하게 지내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라 단 내외 사는 노가라도 원수의 자식이

나 손자가 아닌가 유복이는 의심하여 반드시 그 집안의 내력을 캐어물었다. 읍

내 사는 노가 여덟 집을 모조리 찾아다닌 뒤에 유복이가 원수 노가는 필경 어디

로 이사를 간 모양이니 그 이사간 곳을 뒤밟아가야 하겠다 생각하면서 잘 곳을

찾으려고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다니는 동안에 어느 집 앞에를 와서 보니 사

람들이 많이 들락날락하는 것이 무슨 일이 있는 집 같아 보이었다. 유복이가 사

람 많은 데서 혹시 듣는 말이 있을까 하고 그 집에서 하룻밤 자기를 청하였더니

젊은 사람 하나가 "오늘 밤에 우리 집에서는 자지 못하우. " 하고 거절하였

다. 유복이가 그 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본즉 "오늘이 우리 돌아간 조부님 대상날

인데 밤에 밤새임을 할 터이니까 손님이 잘 수가 없소. " 하고 손의 잠 못 잘 것

을 이유삼아서 거절하는 것이라 유복이가 같이 밤새움을 하여도 좋으니 하룻밤

새고 가게 하여 달라고 떼쓰다시피 말하니 그 젊은 사람이 한참 생각하다가 "그

러면 초저녁 제사 지낸 뒤에 이웃 사랑방에 가서 주무시게 해드릴 테니 아직 저

기 가서 앉으시오. " 하고 바깥마당메 깔아놓은 멍석자리를 가리켜 주어서 먼저

앉아 있는 사람들을 한번 죽 돌아보고 그중에 나이 제일 많아 보이는 사람 옆에

와서 앉았다. 노인들은 딴 자리에 모인 모양인지 거기 앉은 나이 제일 많아 보

이는 사람이 불과 사십여 세쯤 되어 보이어서 유복이가 평인사로 인사를 붙였

다. "우리 인사합시다. " "녜, 뉘 댁이시오? “ "나는 박서방이오. " "나는 고서방

이오. 어디 사시오? ” "나는 떠돌아다니는 사람이오. " 한동안 지난 뒤 관가의

폐문하는 삼현육각 소리가 들리더니 집에서 초저녁 제를 지내려고 준비가 분주

하였다. 안팎 마당에 톳불이 밝아서 바깥마당에서 집 안을 환하게 들여다볼 수

가 있었다. 처음에는 깎은 머리 중들을 한밥 잘 먹이는 모양이고 그 다음에는

그 집 식구들이 제청 안팎에 모여 서서 울며불며 제를 지내고 제가 끝난 뒤에는

곧 손님들을 대접하는데 안팎 마당 멍석자리에 널린 것이 음식이었다. 탁주동이,

도야지다리는 말할 것도 없고 해산이 본곳 소산이라서 여러 가지 말린 생선에

홍합, 해삼까지 있고 그외에 떡에 과실에 또는 부침개에 먹을 것이 많아서 유복

이는 의외에 배불리 잘 먹었다. 여러 손들이 먹을 것은 먹고 쌀 것은 싸서 음식

이 다 끝난 뒤에 제각기 주인보고 새벽제사 잘 지내라고 인사를 하고 일어설 때

유복이를 맞아들인 젊은 사람이 유복이에게 와서 인제 잘 곳을 지시할 터이니

같이 가자고 말하다가 유복이 옆에 있는 고서방이 마침 일어서려는 것을 보고 "

고서방 지금 가실라우? “ 하고 묻고서 그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가시는 길에

이 손님 주무실 데 좀 지시해 주시구려. " 하고 부탁하였다. "어디루 지시하란

말인가? ” "응선이네게나 취옥이네게나 어디든지 바깥방 있는 데루 지시하

시구려. " "그 사람들이 좋다구 할까? “ "좋다구 않거든 고서방 당신네 집 머슴

방두 좋지 않소. " 하고 그 젊은 사람은 곧 유복이를 보고 "이 고서방만 따라가

시면 하룻밤 편히 주무실 수 있을 것이오. 내일 아침에는 다시 우리 집으루 오

셔두 좋소. " 하고 말하여 유복이는 그 젊은 사람에게 치사하고 곧 고서방이란

사람과 같이 일어섰다. 유복이가 고서방의 뒤를 따라오는 길에 고서방이 ”뉘집

뉘집 할 것 없이 숫제 바루 우리 집으루 갑시다. " 하고 딸하여 유복이는 고서방

집 머슴방으로 오게 되었다. 깜박깜박하는 기름불 밑에서 고서방의 머슴은 짚신

을 삼고 놀러들 온 동네 머슴은 아이 어른이 섞이어 앉아서 씩둑깍둑 지껄이고

있었다.

머슴방 앞에서 고서방이 유복이더러 "자, 이 방으루 들어가시우. " 하고 말한 후

자기 집 머슴에게 "김서방, 이 손님 거기 좀 주무시게 하게. " 말을 이르고 자기

는 안으로 들어갔다. 여러 머슴들이 유복이 들어 오는 것을 보고 자리를 비키어

주고 한동안은 잠자코 앉았더니 주인 머슴이 "손님, 거기 누우시우. " 하고 말하

여 유복이가 한옆에 떨어져서 벽을 향하고 누운 뒤에 머슴들은 또다시 지껄이기

시작하였다. "작은쇠야, 너 오늘 어디루 나무 갔었니? “ "먼 산으루 갔었소. ”

"또 강서방하고 같이 갔었구나. " "작은쇠 나무는 강서방이 맡아놓구 해주는데

같이 가구말구. " "자네두 작은쇠 나무를 못 해주어서 샘이 나지. " "미친 소리

말게, 이 사람. " "작은쇠야, 강서방 어디 갔니? “ "강서방 어디 간 걸 내가 아

오? " "네가 모르면 누가 아니? ” "대상집에서 밤새임한다더라. 어서 가보아

라. 너 줄라구 떡 싸놓더라. " "여보, 김서방, 짚신 고만 삼구 이야기 좀 합시다.

" "내일 나무하러 갈 때 맨발루 가구. “ "나무하러 갈 때 신을 신이오. 나는 도

망질칠 때 유렴이라구. " "왜 도망질은? ” "인제 모르는 사람이 없이 다 아니까

말이지만 고서방이 별른다며. " "공연히 별른다구 애매한 사람이 도망질칠 까닭

이 있나. " "아까두 김서방한테 말할 때 고서방 눈이 곱지 않습디다. " "이애 작

은쇠야, 고서방이 칼 가는 것을 너두 보았다지? “ "그럼 칼을 갈구 나서 연눔을

한번에 하구 중얼거리며 일어설 때 상호가 무섭기라니 나는 그날 밤에 꿈을 다

꾸었소. " "아니 자기 여편네 버릇을 잘못 가르쳐놓구 아무나 함부루 죽인단 말

이야? 그렇게 사람을 죽일래서는 사람 씨 지겠네. " "하여튼 김서방 조심하오. "

"고서방이 이날 이때껏 안해 덕에 사는 사람인데 마누라를 죽여 밥을 죽이라지.

" "큰골 노첨지네 떼서리가 언간히 세야지. 섣불리 날뛰다간 고서방만 경치네. "

"고서방이 안해에게 쥐어지내지만 지렁이두 밞으면 꿈질한다구 누가 아나? ” "

여기 고서방이 노첨지 둘째사위지? “ "그렇지, 맏사위는 쇠우물 조서방이구 끝

엣사위는 두뭇개 이서방이지. " "이서방이 셋째사위지, 끝엣사위가 다 무어요?

” "아니, 노첨지 딸이 삼형제 아니야. " "시집 간 딸은 삼형제지만 시집 안 간

딸은 셈에 치지 않구. " "시집 안 간 딸이 어디 있어? “ "작년에 난 딸이 있는

데? ” "옳지, 서른 몇 살 먹은 여편네를 얻어가지구 작년에 났다더군. " "요전

에 내가 큰골 호미씻이에 갔었는데 칠십 먹은 늙은이가 젖먹이 딸을 가루 안구

다니는 꼴이라니 눈꼴이 시어 못 보겠더군. 모르는 사람은 손녀나 증손녀루 알

것이야. " "그럼, 노첨지 증손자가 열 살 넘은 아이가 있는데 말할 것 무어 있나.

증손녀루두 몇째 증손녀지. " "칠십 먹은 늙은이가 기운두 좋아. " "그 작은마누

라는 새파랗게 젊은데 아직두 몇을 낳을는지 모르지. “ "늙은이가 남부끄럽지두

않은가 봐. " "제기, 우리 같은 젊은 놈은 기집맛을 못 보구. " "자네두 노첨지처

럼 천량만 있어 보게. 십리 밖 기집이 슬슬 기어들지 않나. " "딸 삼형제두 노첨

지를 닳아서 행실들이 부정한 거야. " "그런지두 모르지. " "오늘 밤에 노첨지 귀

가 가렵겠다. " "재채기는 아니하구. " 여러 머슴들이 잡상스럽게 지껄일 때 유

복이는 그 지껄이는 말을 그다지 귀담아 듣지 아니하다가 노첨지 말이 난 뒤부

터는 혹시 한마디다도 빠뜨리고 못 들을까 보아서 한편 귀 눌러 베었던 목침을

관잣놀이 위로 솟치어 베고 숨결까지 죽이고 듣고 있었다. "자네 대상집에 갔었

던가? ” "못 갔네. " "대상은 잘 차렸을걸? “ "지지난 장에 농우소까지 냈으니

까 잘 차렸을 테지. " 하고 머슴들의 이야기가 제사로 비꾸러지기 시작하더니 귀

신으로 도깨비로 한없이 다른 데로 흘러나나고 다시 노첨지에게로 돌아오지 아

니하여 유복이는 솔에 조바심이 났다. 나중에 유복이는 참다 못하여 오줌 누러

일어나는 체하고 밖에를 한번 나갔다가 들어온 후에 좌중을 향하여 "큰골이 여

기서 몇 리나 되우? ” 하고 물으니 어른 머슴 한 사람이 "십 리요. " 하고 간단

히 대답하였다. "어느 쪽으루 가우? “ "해주 가는 길가요. " "나는 이번에 해주

서 왔는데 큰골을 지나왔겠구먼. " "그러면 큰골 앞을 지나오셨겠지요. " "바루

길가요? ” "큰길에서 조끔 들어가우. " "동네가 크우? “ "그렇게 클 것두 없지

만 포실하우. " "큰골두 노첨지네 대소가뿐이지 동네야 포실할 것 무어 있나. "

하고 다른 사람이 말참례하고 "그럼 노첨지네가 큰골 주인 셈이지. " 하고 또 다

른 사람이 뒤를 달아서 유복이의 소망대로 이야기가 노첨지에게로 돌아왔다. "노

첨지네는 형세가 점점 더 는다데. " "큰골 동네 앞 좋은 땅은 거지반 노첨지네

대소가에서 다 지으니 형세 늘 것 아닌가. " "그 늙은이가 수단이 좋으니까 지금

은 형세가 늘지만 늙은이만 죽구 없어 보게. 그 아들 손자는 지금처럼 못 살

게니. " "그렇지, 갈모루 이서방네가 여간 잘살았나. 지금 노첨지네버덤 낫었지.

그렇지만 요전 등내 때 관가에서 한번 잡아 가두는 바람에 살림을 죄다

떨어바치지 않았나. " 주인 머슴 김서방이 삼던 신을 끝마치고 돌아앉아서

다른 사람의 말하는 것을 듣고 있다가 "노첨지는 난 사람이야. " 하고 말을

내니 유복이 가까이 앉아 있는 곰배팔이 한 사람이 김서방을 건너다보며

"잘났던 못났던 나씨는 났지. " 하고 말을 받았다.

"노첨지가 잘났단 말이야. " "노첨지의 심보루 보면 빌어두 못 먹어야 싸지만 그

래두 늙게까지 아무 근심 없이 잘사니 하느님이 귀가 먹었거나 눈이 멀었지그

려. " "왜 하느님이 곰배팔이는 아니든가? ” "내가 하느님이면 벌써 요정났네.

" 두 사람의 말이 여러 사람의 웃음을 자아내어 좌중이 웃음판이 되었다가 웃음

이 끝이 나며 한 사람이 곰배팔이를 보고 "오서방의 고모부 아저씨가 노첨지 때

문에 서울까지 잡혀간 일이 있었다지? “ 하고 물으니 그 곰배팔이 오서방이 "

그랬다네. 우리는 보지 못한 일이지만 우리 아주머니가 지금도 이야기를 하니까

그것만 보더라도 노첨지 심보가 젊었을 적부터 고약하던 걸 알 수 있지 않은가?

” 하고 김서방을 건너다보았다. 김서방은 잠자코 있고 작은쇠란 얼굴 나부죽한

아이가 "나도 한번 서울 잡혀나 가보았으면, 서울 구경하게끔. “ 하고 나서니

오서방이 "이 자식아, 서을 구경은 다 무어냐. 볼기가 맞구 싶거든 이 자리에라

두 엎드려라. 돌림매로 실컨 때려줄 테니. " 하고 박을 주었다. "누가 볼기 맞구

싶다나. " "서울 잡혀가면 볼기쯤은 툴맛이야. 이 자식아, 너 아니? ” 작은쇠가

무슨 말대꾸를 하려고 입술이 나불나불할 즈음에 김서방이 오서방을 건너다보며

"노첨지가 서울에만 났었더면 그때두 큰 공신 벼슬을 했을 것인데 원수의 시골

사람이라 무명 세 필 상타구 말았다데. " 하고 여전히 노첨지를 두둔하여 말하니

오서방이 한 자리 앞으로 나앉으며 "아니 이 사람차, 그래 친구 하나는 죽이구

친구 하나는 볼기 맞히구 무명 세 필 상탄 것이 장한 일인가? “ 하고 시비조로

대답하였다. 이때껏 말이 없이 듣고 앉았던 유복이가 "옳다! " 하고 손뼉을 치니

곰배팔이 오서방은 자기 말을 옳다는 줄로 여기고 "손님 그렇지요. 그런 법이 어

디 있겠소? ” 하고 유복이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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