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Books/Reading Books

임꺽정 4권 (6)

카지모도 2022. 12. 11. 06:30
728x90

 

 

유복이는 불출이의 형편을 보고 늙은 어머니와 어린 자식즐 데리고

호구하려면 도적질이라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불출이는 유복이의 사정을 알고 종적이 생소한 서울 가서 면례

하는데 내기 시행이 아니라도 가서 보아 줄 성의가 생기었다. 이튿날 식전에 유

복이가 짐을 끄르고 보니 무명이 네 필이라 네 필 중에 한 필을 꺼내서 양식

바꾸어 먹으라고 불출이 어머니를 주고 불출이와 같이 서울로 떠나 왔다. 불출

이가 걸음이 본래 유복이만 못한데다가 무겁지 않은 짐이라도 유복의 짐을 대신

진 까닭에 동안 뜨게 뒤떨어질 때가 많아서 유복이는 노량으로 걸음을 걸었다.

같이 걷게 된 뒤부터 두 사람 사이에 이야기가 별로 그치지 아니하였는데, 불출

이가 재미나게 듣고 유복이가 신이 나게 하는 이야기는 대개 꺽정이의 원력 이

야기와 봉학이의 활재주 이야기였었다. 이야기 끝에 불출이가 꺽정이와 봉학이를

한번 만나지라고 하여 유복이는 자기가 이번에 꺽정이를 만나게 되면 말하여

둘 것이니 이 다음 찾아가라고 말하였다.

"그럴 것 없이 이번에 양주까지 같이 갑시다. " 하고 불출이가 졸랐다.

"꼭 만나게 될는지두 모르는데 같이 갈 것이 무엇 있나. 이 다음 혼자

가서라두 내 말하구 만나자면 반갑게 만나줄걸. " "집이라두 알아두면 좋지 않소.

못 만날 손 잡더라두 같이 갑시다. " "정 그러면 같이 가세. "

유복이와 불출이는 이렇게 양주까지 동행하기로 작정하였다. 빨리는 걷지

아니하여도 강 건널 때 이외에는 쉬지 않고 오는 길이라 아침때 좀 지나서

서울을 들어왔다. 유복이는 면례하는 것을 당초에 구경도 한 일이 없는

까닭에 면례에 소용 닿는 물건을 불출이에게 훈수받아 가며 바꾸게 되었다.

무명 한 필을 끊어서 상포 백지, 기직 한 닢까지 바꾸어가지고 유복이는

이만하면 더 들 것이 없으려니 생각하면서 가래, 괭이 등속을 세내려고 상두도

가를 찾아왔다. 상두도가 주인이 유복이와 불출이의 의표를 한번 훑어보더니 사

람 하나 끼지 않고 물건만은 세를 놓지 않는다고 말하여 유복이가 사람 품삯과

가래, 괭이 두 가지 물건세를 물은즉, 한 사람의 하루 품삯으로 무명 열 자, 가

래 하나 괭이 하나에 면례에서 제일 긴용된다고 무쇠 지레 하나를 더 넣어서 세

가지 물건 세로 무명 예 자 도합 십육 척을 달라고 하고 거기다가 세를 먼저 내

고 가라고 말하였다. 불출이가 나서서 우리를 시골뜨기라고 업신여겨서 비싸게

달라느냐고 다투는 것을 유복이는 고만두라고 말리고 달라는 대로 다 끊어 주었

다. 상두도가 일꾼과 세 사람이 수구문 밖으로 나오는 길에 그 일꾼 말이 아무

리 관은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땅속일이란 것은 알 수 없어서 이십여 년은 고

사하고 몇 백 년이라도 썩지 않는 송장이 있으니 칠성판 하나는 사가지고 가는

것이 좋다고 말하여 유복이가 그 말을 옳게 여기고 칠성판을 구하러 가려고 한

즉 그 일꾼이 무명 댓 자만 저를 주면 제가 얼른 가서 사오마고 자청하고 가더

니 백짓장 같은 박판 한 쪽을 들고 왔다. 불출이가 이것을 보고 증을 내며 이런

송반은 무명 댓 자는 커녕 한 자도 아깜다고 타박하니 그 일꾼은 서울 물가가

시골과 다른 줄을 모른다고 도리어 불출이를 핀잔주었다. "서울은 날도적놈들만

사는 게야. " "그러면 시골은 밤도적놈들만 사나. " 빨리는 걷지 아니하여도 강

건널 때 이외에는 쉬지 않고 오는 길이라 아침때 좀 지나서 서울을 들어왔다. "

시골 쇠도적놈두 서울놈들에게 대면 부처님이지. " "서울은 시골서 온 부처님이

큰 도적놈이야. " 불출이와 일꾼이 말다툼하며 뒤에서 오는 것을 앞서 가던 유복

이가 돌아보면서 "이 사람 쓸데없는 소리 고만 지껄이게. " 하고 불출이를 나무

라고 "여보 입 좀 봉하우. 듣기 싫소. " 하고 그 일꾼을 눌렀다. 그 일꾼이 아무

말 없이 얼마 동안 따라오다가 "면례하는데 제사는 아니 지내우? 산신에두 지내

구 분상에두 지내는 법이오. " 하고 가르쳐주어 유복이가 제 지낼 생각이 나서

제물 장만할 것을 걱정하니 불출이가 이번에는 자기가 가서 사가지고 오겠다고

하고 무명 끝을 가지고 제물을 바꾸러 가고 유복이는 그 일꾼과 먼저 산소 자리

로 향하여 왔다. 유복이가 산소 근처에 와서는 먼저 사방을 돌아보고 그 다음에

누누중총 틈에서 봉분이 거의 형지 없이 헐어진 한 무덤 앞에 와서 한동안 살펴

보다가 일군더러 괭이를 달라고 하였다. 일꾼이 제사부터 지내고 동토하는 법이

라고 법을 찾는 것을 유복이가 잔소리 말고 달라고 하여 괭이를 가지고 우선 봉

분 앞을 파보니 얼마 아니 파서 괭이 끝에 다치는 것이 있었다. 유복이가 그곳

을 파헤 치니 과연 사기 그룻이 하나 나왔다. 봉분 뒤와 양옆을 다 파헤치

고 사기 사발을 하나씩 찾아내었다, 유복이는 그 사발 안에 무엇이 쓰이어 있으

려니는 미처 생각지 못하였더니, 일꾼이 가까이 와서 지석을 사방에 묻은 것은

처음 본다고 하면서 사발 하나를 들고 그 안에 있는 흙을 긁어내서 글자가 드러

났다. 유복이가 동소문 안에 있을 때 천자권을 배운 덕으로 자기 성인 박자 외

에 임오 칠월 십일이라는 연월일 글자는 분명히 알아보았다. 나머지 사발 세 개

를 유복이가 낱낱이 씻고 보니 글자는 다 있는데 먼저 사발과 똑같은 글자들이

었다.

얼마 동안 뒤에 불출이가 참외 대여섯 개, 수박 한 덩이, 술 한병을 사람 들려

가지고 왔다. 인제 제물은 있지만 제기가 없어서 한참 공론하다가 불출이가 의사

를 내어 지석으로 묻었던 사기 사발을 정하게 닦아서 제기 대신 쓰게 되었다.

일꾼은 면례에 미립이 난 사람이라 먼저 산신제를 지내라고 권하였지만, 유복이

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 아버지 무덤에만 제사를 지내는데 참외 두 사발, 수박

한 사발, 술 한 사발을 무덤 앞에 벌려놓고 손을 높이 치어들어서 공손히 절 한

번 하고 그대로 엎드려서 한바탕 통곡하였다. 유복이의 곡이 끝난 뒤에 세 사람

이 참외와 수박을 안주삼아서 술 한 병을 나눠서 먹고 무덤을 파기 시작하였다.

봉분은 거의 평토나 다름없고 회는 쓴 적도 없는 까닭으로 얼마 동안 아니 파

서 광중이 드러났다. 횡대도 썩고 관도 썩었으나 시체만은 썩지 않고 홑이불 같

은 것이 덮인 채로 착 가라앉았었다. 무덤 앞 적이 편편한 곳에 기직자리를 펴

고 칠성판을 놓은 뒤에 광중 아래윗막이를 떠고 유복이가 불출이를 데리고 시체

를 맞들어내다가 칠성판 위에 눕히는데 바짝 말린 가벼운 나무 토막 드는 것과

같았다. 유복이가 불출이와 일꾼의 방조를 받아서 시체를 상포로 감고 종잇매를

여러 겹쳐서 군데군데 묶은 뒤에 기직으로 싸고 칠성판은 짊어지는 등판에 닿

게 좋도록 한옆에 붙이어 새끼로 동이었다.

일을 마치고 나서 보니 해는 거의 저녁때가 다 되었었다. 먼저 일꾼을 보낸

뒤에 유복이는 시체를 짊어지고 불출이는 양식과 무명을 걸머지고 수구문 밖 인

가로 내려와서 하룻밤을 자고 가려고 한즉 시체를 꺼리어서 재워 주는 집이 없

었다. 나중에 유복이는 밤을 걸어 양주로 내려가려고 생각하고 불출이의 의향을

물으니 불출이 역시 그것이 좋다고 말하여 두 사람은 한 노파의 집에서 저녁밥

을 부치어 지어먹고 곧 양주를 향하여 밤길을 떠났다. 아무리 친한 사람의 집이

라도 송장을 지고 첫새벽에 대드는 것이 좋을 것이 없어서 유복이와 불출이는

길에서 지체하고 이튿날 해 뜬 뒤에 꺽정이의 집을 찾아왔다. 애기 어머니는 말

할 것도 없고 다른 식구들도 반갑게 맞아들이는데 팔삭동이만은 지고 온 것이

송장이란 말을 듣고 오만상을 찌푸리었다. 꺽정이가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아니한

것을 알고 유복이만 섭섭할 뿐 아니라 불출이도 대단 서운하여 하였다. 유복이

가 애기 어머니를 보고 불출이와 같이 온 사정을 대강 이야기하고 이 다음 찾아

을 때 정답게 대접하도록 꺽정이에게 말하여 달라고 부탁하였다. 유복이가 시체

를 가지고 한만히 묵을 수 없는 까닭으로 아침 뒤에 곧 떠나가기로 작정하고 아

침밥 대접을 받는 동안에, 유복이는 잠간 꺽정이 아버지를 들어 보고 곧 마루로

나와서 애기 어머니에게 대사의 안부를 자세히 전한뒤 "내가 누나보구 청할 일

이 두 가지 있소. " 하고 말하니 애기 어머니는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면

열 가지 스무 가지라도 사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나서 곧 그 청하는 일이 무엇

인가를 물었다. 유복이의 두 가지 청이 한 가지는 길양식을 보태어 달라는 것이

요, 또 한 가지는 환도가 있거든 한 자루 달라는 것이었다. 애기 어머니가 길양

식은 두말 않고 허락하고 환도는 꺽정이가 전장에 가지고 가고 집에 없다고 거

절하더니 다시 생각하고 환도라고 할 것도 없는 짧은 칼이 한 자루 있으나 소용

될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안방 다락에 가서 칼을 찾아내다가 유복이를 보여주었

다. 그 칼이 과연 짧아서 자루까지 넣어도 한 자 길이가 못 되었다. 유복이가 칼

날을 뽑아 보고 다시 집에 꽂으면서 "좀 작으나 그대로 쓰겠으니 나를 주시우. "

하고 청하니 애기 어머니는 말이 없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아침밥들을 먹을 때

옆에 앉아 있던 애기 어머니가 "여보게 동생. " 하고 유복이를 보면서 “요전에

물어볼 말이 있는데 잊고 못 물어보았네. " 하고 말하니 유복이가 "무슨 말이오?

” 하고 애기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우리 올케는 지금 어디 있나? “ "올케라니

백손 어머니가 저기 계시지 않소. " "누가 백손 어머니 말인가. 자네 안해 말이

지. " "내가 웬 안해가 있소? ” "웬 안해가 있다니? “ "장가를 들었어야 안해

가 있지요. " "상투는 무어야? ” "상투는 외자요. " "참말이야? “ "참말이지,

내가 언제 거짓말합디까. " 애기 어머니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의외 말을 듣는

것같이 놀라는데 그 중 천왕동기는 ”이때껏 어른으로만 알았더니 알구 보니 우

리 동물세그려. " 하고 웃었다.

아침밥이 끝나서 유복이가 떠나려고 할 때 "배천까지라두 같이 가구 싶지만

어머니가 기다리실 테니까 나 는 여기서 집으루 가겠소. " 하고 불출이가 말하고

"암, 집으루 가야지 배천까지 무어하러가. " 하고 유복이가 대답하는 것을 애기

어머니는 옆에서 듣고 "시체를 지고 다른 짐은 어찌하나? “ 하고 유복이에게

물었다. "기든지 들든지 어떻게든지 하지요. " "그것이 될 수가 있나? ” 하고

애기 어머니는 가까이 섰는 천왕동이를 돌아보며 "백손 아저씨, 배천까지 좀 같

이 가구려. " 하고 권하듯이 말하였다. "같이 가도 좋지요. " 하고 천왕동이는 대

답하는데 유복이가 그리할 것이 없다고 고사한 즉 천왕동이가 웃으면서 "여게

동무, 고사할 게 무어 있나. 내가 짐 좀 져다 줌세. 그런데 배천두 장기 둘 줄

아는 사람이 있겠나? “ 하고 말하여 애기 어머니가 "장기에 미친 황도령이로군.

" 하고 웃으니 다른 사람들도 따라 웃었다. 유복이가 천왕동이와 같이 가기로 작

정하고 나서 천왕동이를 보고 "자네가 걸음을 잘 걷는다지? ” 하고 물으니 천

왕동이는 "왜 누가 빨리 걷나 내기 좀 하려나. " 하고 빙글거리는데 불출이가 나

서서 "총각이 걸음을 얼마나 잘 걷는지 몰라두 박서방의 걸음은 따라 가기 어려

울걸. 내가 이번 동행에 애를 여간 먹지 않았어. " 하고 말참견하였다. 천왕동이

가 불출이의 말은 대꾸하지 아니하고 유복이더러 "대관절 배천이 여기서 몇 리

나 되나? “ 하고 묻는데 유복이가 "나두 잘 모르네, 여기서 송도가 몇 린고? ”

하고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다가 "송도가 일백삼십 리라지. " 하고 신불출이가 가

르쳐 주는 말을 들은 뒤에 다시 천왕동이를 보고 "배천읍내가 송도서 육십 리밖

에 안 되니까 따져보면 알겠네. 일백삼십 리하구 육십 리하구 도합 일백구십 릴

세그려. " 하고 대답하였다. "오늘 일찍 들어가겠네. " "오늘이야 어떻게 들어가

나. 내일은 일찍 대일 수 있지. " "사람 갑갑해 죽을 일이 났네. 일백구십 리를

이틀씩 가구 있어? “ 천왕동이의 말을 듣고 유복이도 기가 막혔지만 불출이는

혀까지 내둘렀다.

유복이가 무명 자투리 남은 것은 불출이를 주고 남은 무명 온필 한 필과 길양

식 자루와 짧은 환도는 한데 묶어서 천왕동이를 지워 주고 자기는 시체를 지고

양주서 떠났다. 배천 한다리는 읍에서 오리길이 착실하지마는 벽란나루를 건너

서 오는 데는 읍을 다 가지 않고 중간에서 갈림길로 들어오는 까닭에 잇수가 거

의 읍이나 맞먹었다. 유복이와 천왕동이는 양주서 떠나던 이튿날 아침 사이때쯤

한다리를 대어왔다. 큰 동네에서 따로 떨거져 있는 외딴집에 이가 성 가진 사람

이 사는데, 그 집 늙은이가 전에 큰 동네에서 살 때 유복이 이모부와 이웃하여

산 까닭에 늙은이 내외가 유복이를 잘 알 뿐 아니라 그 아들이 유복이와 아이

적 동무이었다. 유복이가 평안도서 오는 길에 맨 먼저 어머니 무덤에를 다녀가

려고 왔을 때 그 집을 찾아들어가서 늙은이와 아들을 만나보고 면례에 일 보아

달자고 부탁까지 한 터이라 한다리 오는 길로 바로 그 집을 찾아왔다. 그 집에

서 유복이의 지고 온것이 관도 없는 맨송장이란 말을 듣고 반갑게들 여기지 아

니하는 중에 안늙은이가 더욱 심하여 "이 사람 집안으로는 지고 들어오지 말게.

" 하고 삽작문 안을 들어서지 못하게 하니 그 아들이 "어머니는 가만히 기시우.

" 하고 안늙은이를 말 못하게 하고 유복이 보고 "집안에서 구기두 하두 많으니

까 성가신 일이 많아. 그런데 오늘 곧 면례를 지내려나? “ 하고 묻는데 유복이

가 "지금 곧 갖다가 묻을 테니 연장만 좀 빌려주게. " 하고 대답한즉 "그러면 될

수 있네. " 하고 안으로 들어가서 헌 멍석 한 닢을 갖다가 삽작문 밖 편편한 곳

에 깔아놓고 "여보게, 이리 와서 여기 내려 뫼시게. " 하고 말하였다. "내려놓을

것도 없네. 연장만 주게나, 그대로 산으로 갈 테니. " "나도 가서 보아줄 테니까

우리 같이 요기 좀 하고 가세. " 유복이가 그 집 아들 말에 못이겨서 시체를 멍

석 위에 내려놓고 그 앞에 앉으면서 "자네두 이리 와서 좀 앉게. " 하고 천왕동

이를 돌아보았다. 천왕동이가 와서 앉은 뒤에 그 집 아들이 역시 앉아서 천왕동

이와 인사하고 곧 고개를 돌이켜 안을 향하고 "여보게 여보게. " 하고 부르니 그

안해가 삽작문 안에까지 와서 나오지는 않고 "왜 그러오? " 하고 부른 뜻을 물

었다. "쌀 좀 떠가지구 핑하게 가서 술 몇 사발만 받아 오게. " 하고 그 집 아들

이 말할 때 바깥 늙은이가 나오다가 듣고 "이애 저 사람들이 어디서 아침을 먹

었는지는 모르지만 술만 가지고 요기가 되겠느냐? 찬밥이라두 물에 놓아서 같이

떠먹으려무나. " 하고 말을 이르니 그 아들은 "녜, 술두 먹구 밥두 먹지요. " 하

고 대답하였다.

그 늙은이 부자가 시체 까닭에 반가워 아니할 뿐이지 유복이를 푸대접은 하지

아니하였다. 탁배기와 찬밥으로 요기들을 한 뒤에 그 집 아들이 천왕동이 지고

온 짐을 집 안에 들여다 두고 연장들을 가지고 나왔다. 그 집 아들은 가래 하나

를 메고 천왕동이는 종가래 하나, 괭이 하나를 양어깨에 메고 유복이는 여전히

시체를 지고 무덤 있는 산으로 올라왔다. 산역을 시작하여 광중을 파헤쳐서 유

복이 어머니의 시신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 그 집 바깥 늙은이가 올라와서 이것

을 보고 "합폄이라두 광중은 따루 짓는 법인데 어떻게 날라구 구광중을 저렇게

파혜쳤는가? “ 하고 유복이를 나무라니 유복이는 "한데 묻을라구 그랬지요. "

하고 즉시 뒤를 이어서 "딴 광중을 맨들면 한데 묻는 보람이 있나요? ” 하고

구광 파헤친 까닭을 말하였다. 늙은이는 종시 유복이의 소견을 옳게 여기지 아

니하나 벌써 구광을 파놓은 뒤일 뿐 아니라 딴 광중을 지으려고 하지 아니하여

유복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한 광중에 묻게 되었다. 평토 치고 봉분 만들고 뗏

장까지 입히고 나 니 긴긴 해도 벌써 저녁때가 다 되어서 유복이와 천왕동이는

그 집에 가서 하룻밤 묵어 갈 작정하고 그 아들을 따라왔다.

그날 밤자고 이튿날 식전에 유복이가 무명 한 필은 그 집에 주고 그 집 아들의

고의적삼 한 벌을 얻어서 짧은 환도와 같이 보따리에 싸서 양식자루와 함께

묶어놓았다. 옆에 있던 그 집 아들이 유복이를 보고 "총각하구 같이 양주로

가나? “ 하고 물으니 유복이는 "아니. " 하고 간단히 대답하고 나서 "운수

좋으면 또 수이 만나지. " 하고 말하였다.

유복이가 이가 집에서 떠나 나오는 길로 곧 천왕동이와 작별하고 한다리서 연

안으로 삽다리로 돌장승으로 일백오십 리 해주 와서 자고, 이튿날 영전들을 지

나고 쇠티를 넘어서 강령 팔십 리를 저녁 사이때쯤 대어 들어왔다. 유복이가 고

향이라고 발 들여놓기가 이번이 생외 처음이라 산도 설고 물도 설기가 타도 타

관이나 다름이 없으니 낯익은 사람이 있을 까닭이 없다. 원수 노가의 종적을 누

구를 보고 물어야 할지 몰라서 공연히 이리써리 지싯거리고 다니다가 장터 한 바

퀴를 다 돌고 나서 어느 노인 하나가 지팡이를 짚고 멀찍이 오는 것을 보고 옳지,

저 늙은이더러 좀 물어보겠다, 낫살 먹은 사람이면 옛일도 모르지 않으려니 생각하

면서 앞으로 나가다가 그 노인이 곧은길로 오지 않고 어느 집 모롱이에서 사이

골목으로 꺾이는 것을 보고 유복이가 "여보시우 여보시우. " 하고 소리를 지르며

손짓하였다. 그 노인이 처음에는 고개만 돌리고 두리번거리다가 유복이의 손짓

이 자기보고 하는 것인 줄을 알고 그제야 돌아서서 지팡이를 의지하고 섰다. 유

복이가 가까이 와서 두 손길을 마주 잡고 허리를 굽히니 그 노인이 물끄러미 유

복이를 보면서 "누군지 나는 모르겠는데...“ 하고 괴상히 여기는 빛을 얼굴에 나

타내었다. "잠깐 여쭤볼 말씀이 있습니다. " ”무슨 말인고? “ "이 읍내에 노

가 성 가진 사람이 삽니까? ” "노가 성 가진 사람? “ ”녜. “ "노가 성 가진

사람이 하나둘인가. 나부터 노가인걸. " 유복이가 그 노인이 노가란 말을 듣고는

이 늙은 것이 원수 노가가 아닌가 하고 의심이 들기 시작하였다. "노가 성 가진

사람을 어찌해서 찾는고? ” 하고 그 노인이 묻는데 유복이는 선뜻 대답할 말이

없어서 말똥말똥 그 노인의 얼굴만 들여다보았다. "괴상한 사람이로군. " "찾는

사람이 있소이다. " "대체 허구많은 노가에 누구를 찾는 거야? " "아들 많고 손

자 많은 사람을 찾습니다. " "아들 손자 많은 사람? 나두 아들이 삼형제에 손자

가 팔종 형제나 되는걸. " 유복이는 이자가 정말 원수인가 보다 하고 의심이 버

썩 들었다. "당신 서울 가보신 일 있소? “ "못 가보았어. " "젊어서 한 번두 못

가보셨단 말씀이오? ” "허허 시골 사람이 서을 구경하기가 어디 쉬운가. 볼일도

없이 구경하러 사백팔십 리 갈 엄두를 낼 수가 있나? “ 유복이가 당치 않게 헛

의심을 낸 줄 짐작하였으나 그래도 미심하여 더 캐어물었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꺽정 4권 (8)  (0) 2022.12.14
임꺽정 4권 (7)  (0) 2022.12.12
임꺽정 4권 (5)  (0) 2022.12.10
임꺽정 4권 (4)  (0) 2022.12.09
임꺽정 4권 (3)  (0) 2022.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