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Books/Reading Books

임꺽정 4권 (10)

카지모도 2022. 12. 17. 06:12
728x90

 

한다리에서 사령 둘이 하나는 면상에 생채기가 과히 났을 뿐이고 또 하나는

머리가 조금 깨어졌었는데, 저희들은 죽어간다고 핑계하고 한다리 주막에 편히

누워 있고 사람을 대신 읍에 들여보냈었다. 배천 관가에서는 이 소식을 듣고 홍

살문 안이 발끈 뒤집히다시피 되어 수교 장교와 사령 군노가 한다리로 쏟아져

나갔는데 그날 저녁때 범인이 버드내 근처에 숨어 있단 소문이 들리어서 한다리

서는 곧 버드내로 내려가서 우터버드내, 비선버드내로 돌아다니며 가가호호 적

간들 하고 벽란나루서는 밤에 삼거리로 을라가서 길목을 지키게 되었었다. 삼거

리 간 장교들이 밤들도록 술타령하고 늦잠을 자고 있어서 벽란나루는 비었었는

데, 유복이가 마침 이틈에 와서 말썽없이 배를 타고 나루를 건너게 되었다. 유복

이가 배 안에 있을 때 이 길로 곧 다시 평안도로 갈까 생각하다가 꺽정이와 봉

학이를 이번에 못 만나면 언제 만날는지 모르고, 또 평안도까지 멀리 가자면 붙

잡힐 염려가 더 많아서 양주 꺽정이에게 가서 만나도 보고 피신도 하다가 차차

보아가며 평안도로 가리라 고쳐 생각하고 나루를 건너왔다. 송도 가는 큰길을

버리고 사잇길로 들어서서 얼마 오다가 인가에 들어가서 밥술을 얻어먹고 모르

는 길을 이리저리 헤매어 오는데, 작은 냇물과 큰 냇물을 수삼차 건너서 한냇골

이딴 동네에 와서 요기를 얻어 하려고 어느 농가를 찾아들어가니 가는 날이 장

날이라고 그 집에서는 마침 사돈 대접을 하는 중이었다. 유복이가 부전부전한

손이지만 문전 나그네를 흔연 대접하는 인심 좋던 세월이라 그 집 주인이 유복

이를 맞아들여서 점심 한 끼를 대접하였다. 유복이가 여러 날 변변히 먹지 못하

고 굶주린 끝에 배불리 먹고 음식에 감기어서 길 갈 기운이 없어졌다. 주인의

눈치는 가기를 조이는 모양이나, 유복이는 염치 불고하고 그대로 눌러앉았다가

저녁까지 얻어먹고 하룻밤을 붙어 자고 이튿날 아침 그 집 사돈이 떠날 때 같이

떠났다. 그 사람이 길에서 “댁은 어디루 가실라오? " 하고 묻는데 유복이는 구

태여 양주로 간다고 말할 것이 없어서 "서울루 갈라오. " 하고 대답하였다. "장

단으루 나가서 서울을 갈라면 우리 동네까지 동행해두 좋겠소. " "어느 동네요?

" "가는골이오. " "내가 초행에 잘 되었소. 동행합시다. " 유복이는 그 사람과 동

행하여 가는골 와서 동행한 연분으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또 하룻밤 자고,

이튿날 장단 나가는 길을 배워가지고 떠나서 나가는 길에 장띠산골이란 동네 못

미쳐서 길에서 포교를 만났다. 강령 살인 범인이 벽란나무를 건너서 송도로 들

어간 형적이 있다고 배천 기별이 송도에 와서 유수가 전날 포교를 각처에 늘어

놓게 한 것이었다. 유복이 만난 포교가 복색을 평인같이 차리어서 유복이는 처

음에 포교인지 모르고 장지산골을 이 길로 가느냐고 말을 물었더니 그차가 유복

이의 아래위를 유심히 훑어보고 대번에 "당신 배천서 오지 않소? ” 하고 물었

다. 유복이가 그 묻는 것이 수상하여 얼른 대답 안 하고 우물우물하였더니 "이놈

아, 네가 배천서 오지? " 하고 그자가 눈결에 육모방망이로 유복이의 골통을 내

리쳤다. 방망이가 다행히 미끄러져서 한쪽 어깨만 얻어맞고 유복이는 그제야 포교인

줄 짐작하고 그자에게로 대어들어 끼어안고 잠시 동안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그자를 지

지눌러 걸터앉고 그자의 방망이로 그 자의 어깻죽지와 등줄기를 실컷 먹여주고

일어나서 도망질하여 미촌골이란 데서 길도 없는 덕적산 속으로 들어갔다,

 

4

덕적산은 딴 이름이 덕물산이니 진달래꽃으로 이름 높은 진봉산 남쪽에 있다.

그 흔찬 진달래꽃조차 진봉산같이 많지 못한 산이라 아무것도 보잘것이 없건마

는 이름은 경향에 높이 났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고 오직 산 위에 최영 장군

의 사당이 있는 까닭이었다. 최장군이 고려 말년의 영웅으로 당세에 큰 공로가

있었다고 유식한 사람들이 그 사당을 위하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또 최장

군이 무덤에 풀이 나지 않도록 원통하게 죽었다고 유심한 사람들이 그 사당에

많이 오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 사당을 누가 세웠는지 세운 사람은 혹

시 장군의 죽음을 불쌍히 여기고 또는 장군의 공로를 못 잊어 하였는지 모르나,

그 사당은 장군당이라고 일컫는 무당들의 밥그릇이 되고 최영 장군은 최일 장군

으로 이름까지 변하여 무당들의 고주귀신이 되었다. 장군당에 와서 치성을 드리

면 병 있는 사람은 병이 낫고 아들 없는 사람은 아들을 낳았다. 그 대신에 여러

사람의 재물은 무당의 손으로 들어갔다. 대체 귀신을 있다고 잡고 말하더라도

최영 장군 같은 인물이 죽어서 귀신이 되었다면 총명하고 정직한 귀신이 되었으

련만, 요사스러운 무당 입에 놀아나서 장춘의 귀신은 귀신으로 희한하게 잡탕스

러워서 죽은 귀신이 산 사람같이 마누라가 있었다. 그 마누라는 근처 동네에서

숫색시를 뽑아다가 장군당 옆에 붙은 별채에 두고 밤이면 귀신이 와서 동침한다

는 것이었다. 그 마누라가 나이 늙거나 죽을 병이 들면 일변 내보내며 일변 곧

대신을 뽑아오는 까닭에 장군당 별채 침실이란 곳에 계집이 떠날 날이 없었다.

여러 번 그 마누라가 바뀌어 내려오는 중에 한번 마누라로 뽑힌 색시의 부모가

딸 내놓기가 싫어서 도망하듯이 타관으로 이사 나간 일이 있었는데, 장군의 벌

역이 내려서 그 집은 그 집대로 염병에 전가가 폭 망하고 산밑 동네에서 그 해

가 미쳐서 그해 연사가 흉년이 들고 못된 병이 돌아서 사람이 많이 사망하였다는

것이 산밑 여러 동네에서 아이들까지 다 아는 이야기다. 장군의 귀신이 영검

스럽기 짝이 없는 까닭으로 근동 동민들은 이 이야기를 믿고 의심치 아니하여

누구든지 저의 딸이나 누이가 장군의 마누라로 뽑히기만 하면 으레 바칠 것으로

생각할 뿐 아니라 한동네 사람은 고사하고 근방 타동 사람까지 들싼들을 대더서

아니 바칠래야 아니 바칠 수가 없었다. 그 마누라를 뽑는 것은 무당이니 무당은

장군의 신을 빙자하는 것이요, 그 마누라를 바치도록 주선하는 것은 각동 동임

들이니 동임들은 장군도 위하고 동네도 위한다는 것이요, 그 마누라를 바치는

것은 그 부형이니 부형은 다시 말할 것 없이 장군의 벌역을 두려워하는 것이었

다. 이해는 전에 있던 장군의 마누라가 병이 들어 일지 못하게 되어서 새 마누

라를 뽑게 되었는데 날을 받아 각동 동임들이 한자리에 모여앉고 무당이 장군의

귀신을 청배하였다. 무당이 몸에 신이 실려서 위엄 있는 사내 목소리로 "나의 새

마누라는 산상골 최서방의 맏딸이다. " 하고 말끝을 길게 빼어 포함을 주었다.

최서방의 맏딸은 근동에서 얼굴이 이쁘기로 이름난 처녀니 나이 열여덟 살이고

보방골 박첨지의 막내아들 열네 살 먹은 아이와 정혼하고 금년은 쌍년이니 고만

두고 내년에 성취시키자고 두 집 부모가 서로 의논하여 작정하고 있는 터이었

다. 박첨지가 보방골 존위로 그 자리에 와서 있다가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내려

앉았으나 의뭉스러운 늙은이라 선뜻 무당 앞에 나와 꿇어앉아서 "최가의 딸이

여러 가지루 다 합당하오나 장군님과 동성이라 어떠하올지. " 하고 슬며시 말썽

을 일으켜보았다. 이것도 전에 없던 일이라 다른 사람들은 혹시 장군의 노염이

내릴까 겁이 나서 눈이 둥그래졌다. 아니나다를까 신 내린 무당이 기를 길길이

펴면서 "이놈, 무슨 잔소리니 ! 나는 마누라가 동성동본이라도 좋지마는 더구나

본이 다르다. 그 색시는 너의 며느리감이 아니다. " 하고 통통이 호령하여 다른

사람들이 일제히 꿇어앉아서 "옳소이다. 옳소이다. " 하고 말하는 중에 박첨지는

"미련한 인간이 무엇을 아오리까. 장군님 분부가 지당합소이다. " 하고 빌고 다

시 두말 못하였다. 최장군의 새 마누랏감이 이와같이 작정되어서 다시 생기 복

덕 좋은 날을 받아 장군당 침실로 맞아오게 되었다.

최장군이 새 마누라를 맞자면 굿이 여러 번 있지마는 색시를 침실로 맞아오는

날, 사람으로 이를테면 초례 겸 신부례 날은 큰 굿이 있는 법이었다. 사흘 전기

하여 각동 소임들이 장군당에 모여 와서 마당 앞에서 당집까지 황토 스무 무더

기를 간격 맞춰 펴놓고 그날은 첫새벽부터 각동 존위 이하 동임들이 모두 와서

무당들과 같이 큰굿 준비를 차리었다. 당집 안 일정한 자리에 작고 큰 전물상들

을 벌여놓는데 삼색 실과와 백설기에 소찬 소탕을 곁들여 놓은 것은 불사상이

요, 무더기 쌀과 타래실과 고깔 꽃은 두부를 놓은 것은 제석상이요, 약주와 안주

외에 장군에 드리는 삼색 예단을 놓은 것은 대안주상이요, 떡시루 탁주동이 외

에 도야지를 통새미로 잡아놓은 것은 대감상이요, 그 외에 군웅상과 상산상과

조상상은 큰 상들이요, 지신상, 호구상, 영신상, 선왕상, 걸립상은 작은 상들이다.

경사굿이라 상문상이 없고 안굿이 아니라 성주상과 터줏상이 없고, 풀물상이 없

는 굿이라 무당 차지의 대신반이 없었다. 최서방의 딸은 벌써 머리를 얹히어 당

집 안 특별한 자리에 앉히고 그 부모가 딸의 양옆에 갈라앉고, 당집 추녀 아래

에는 각동 존위 이하 동임들이 문길만 틔워놓고 늘어앉고, 추녀 밖 멍석을 연이

어 깐 굿자리에는 기대와 잡이와 전악들이 각기 제구를 가지고 자리잡아 앉고,

마당가에는 각곳에서 모여 온 구경꾼들이 남녀노소 섞이어 빈틈없이 들어섰다,

구경꾼들이 굿 시작을 고대고대한 뒤 원무당이 비로소 굿자리에 나와 앉고 소위

주당물림이라고 추녀 안에 있던 사람을 모두 추녀 밖으로 내세우고 나서 기대가

장구를 울리고 잡이가 제금을 치고 전악들이 저를 불고 피리를 불고 해금을 켰

다. 주당을 물리고 나섰던 사람이 작각 저의 자리에 가서 앉은 뒤에 기대가 다

시 장구를 땅 치니 이로써 큰굿 열두거리의 첫거리 부정풀이가 시작된 것이다.

기대가 장구를 치면서 영정 가망이 놀아나느니 부정 가망이 놀아나느니 한동안

지껄이고 나서 처음에 진부정을 푼다고 잿물 한 바가지를 들고 당집 안팎을 돌

아다니고 또 마른부정을 푼다고 냉수 한 바가지를 들고 먼저와 같이 돌아다니고

그 다음에 부정 소지를 올린다고 백지 한장을 태웠다. 부정풀이가 끝난 뒤에 진

작이라고 장군과 상산신령에게 술잔 올리는 절차가 있고 잠깐 동안 쉬었다가 둘

쨋거리가망 청배가 시작되었다.

가망청배는 신을 청하여 내리는 절차다. 기대가 전악들의 풍류를 맞추어 장구

를 치면서 가망 노랫가락을 부르고 난 뒤에 원무당이 장옷을 입고 좌우 손에 백

지를 쥐고 밖에서 동남서북으로 돌아가며 사방에 절하고 당집 안에 들어가서 장

군 신상 앞에 절하였다. 그리하고 다시 굿자리에 나와서 백지들은 접어두고 왼

손에 방울, 바른손에 부채를 쥐고 한바탕 풍류 맞춰 춤을 추다가 잇 소리를 한

번 길게 빼며 풍류는 뚝 그치고 공수를 주는데 공수는 받는 사람이 있는 법이

라, 보방골 박첨지가 각동 존위 중에 나이 제일 많고 입담이 제일 좋은 까닭으

로 여러 사람의 몸을 받아 공수를 받게 되었다. "내가 누구신지 아느냐? 위엄 있

구 공덕 많구 영검하신 최장군 아니시냐. 너희가 아느냐 모르느냐. 예 바르고 몸

바른 내 아니시냐. " "옳소이다. " "내가 새 마누라 맞아오는 오늘 같은 경삿날에

이것이 무엇이냐. 원숭이 입내냐 따짜구리 부적이냐. 욕심 많구 탐 많은 내 아니

시냐. 이놈들 잦혀놓구 배가르구 엎어놓구 목딸 놈들 같으니. 너의 죄상을 아느

냐 모르느냐! "

하고 무당은 부채를 확확 펴는데 "미련한 인간이 무엇을 아오리까. 쇠술로 밥을

먹어 인간이옵지 개도야지나 다름이 없사외다. 저희들은 이만 정성을 드리느라

고 낮이면 진둥걸음을 걷사옵고 밤이면 시위잠을 잤소이다. 용서하여 주옵시고

소례를 대례로 받읍소사. 입은 덕도 많습지만 새로 새 덕을 입혀 주옵소사. " 하

고 박첨지는 두 손으로 싹싹 빌었다. 원무당이 공수 주다 말고 다시 풍류 맞춰

춤을 추고 춤추다 말고 또 잇 소리를 지르고 공수를 주는데 나중에는 나는 무어

다, 나는 무어다 하고 오방제신을 다 끌어내었다. 공수 끝에 원무당과 기대 사이

에 한차례 만수받이가 있고 가망청배가 끝이 났다.

셋째거리는 산마누라다. 산마누라는 곧 상산 신령이니 농사에 도움주는 귀신

이라고 상까지도 여러 전물상 중간에 놓이었다. 원무당의 모양을 보아라, 붉은

빛 갓에 호수를 꽃아 쓰고 남철릭에 도홍띠를 눌러 띠고 굿자리에 일어섰다. 처

음에는 철릭 소매를 잡고 늦은장단의 풍류를 맞춰서 늘어지게 춤을 추다가 나중

에는 칼도 쥐고 삼지창도 쥐고 잦은장단에 신이 나게 뛰놀았다, 춤을 그치면 공수를

주고 공수를 그치면 춤을 추어서 춤과 공수를 번가르다가 공수며 춤이며 모두 그

치고 칼을 세워서 칼사슬 보고 창을 세워서 창사슬 보았다. 사슬은 점이니 점마

다 좋아서 장군님 새 마누라 잘 들어오셨다고 박첨지 외에 다른 동임들은 얼굴

에 희색이 떠돌았다. 산마누라가 끝이 났다.

넷째거리는 대감놀이다. 원무당이 전립을 쓰고 쾌자를 입고 부채를 들고 대감

들을 청배하는데 대감이란 것이 명색이 많았다. 밤이면 순력 도는 순력대감이며,

낮이면 어사 도는 어사대감이며, 이 담 저 담 넘어다니는 걸립대감이며 이외에

부군대감이니 목신 대감이니 열두 대감을 낱낱이 들추었다. 춤추고 공수 주고

하다가 나중에 무당이 부채를 내흔들며 사망을 주는데 일 보는 동임들이 손 벌

리는 것은 말할 것 없고 무당과 안면이 두터운 구경하는 여편네들까지 치맛자락

을 벌리고 앞으로 나와서 재수 사망을 바득히 받았다. 무당의 사설을 들으면 높

은 산에 눈 날리듯, 얕은 산에 재 날리듯, 억수 장마에 비 퍼붓듯이, 대천 바다

에 물밀듯이 재수 사망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사망을 다 준 뒤에 에라 만수대신

이야 소리가 연해 나오고 대감타령으로 대감놀이를 끝마쳤다. 이때 해는 벌써

점심때가 다 되어 점심 요기들 하느라고 한동안 늘어지게 쉬었다. 굿거리는 굿

을 따라 변동이 있어서 몇째 몇째가 일정한 것이 없지마는 큰굿에 열두거리 수

를 빼는 것은 없는 법이라 점심 뒤에 굿이 다시 시작되어 거리 수를 채워나갔

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꺽정 4권 (12)  (0) 2022.12.19
임꺽정 4권 (11)  (0) 2022.12.18
임꺽정 4권 (9)  (0) 2022.12.16
임꺽정 4권 (8)  (0) 2022.12.14
임꺽정 4권 (7)  (0) 2022.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