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Books/Reading Books

임꺽정 4권 (14)

카지모도 2022. 12. 23. 06:05
728x90

 

 

유복이의 안해는 사지를 오그리고 누워 있고 유복이는 아주 일어 앉아서

방문을 바라보고 있는데, 방문이 버썩 열리며 칼빛이 번쩍하였다. 유

복이가 손에 들고 있던 표창을 얼른 내쳤다. 칼이 쨍그랑하고 떨어졌다. 유복이

가 일어서는 결또 발길을 날리어서 그자의 가슴을 내지르고 쿵하고 마당에 나가

자빠지는 것을 뒤쫓아 뛰어나가 한 발로 가슴을 밟고 서서 "이놈, 네가 죽고 싶

어 성화냐! " 하고 호령하니 그자는 셈평 좋게 활개를 벌리고 누워서 "에라 발

치워라. 가슴이 답답하다. " 하고 핀등핀등 말하여서 유복이는 도리어 어이가 없

어졌다. 이때 안방에서 주인마누라가 뛰어내려오고 아랫방에서 유복이 안해가

쫓아나왔다. 희미한 별빛 아래 주인마누라가 한번 살펴보고 영감의 가슴을 밟고

섰는 유복이에게로 가까이 오더니 대번에 꿇어 앉아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

다. 유복이의 안해가 남편 옆에 와서 가만히 손을 잡아당기니 유복이는 그자를

내려다보며 "네 마누라의 인정이 갸륵하기에 십분 참구 용서한다. " 하고 발을

내려놓으니 그 마누라가 황망히 영감자를 붙들어 일으켰다. 유복이가 그자의 바

른손에 박힌 표창을 뽑아낼 때 그자는 "그게 무엇이냐? 꽤 아프다. " 하고 왼손

바닥으로 피 나오는 것을 눌렀다. 그자가 "일수 불길해서 봉변이로군. " 하고 투

덜거리며 그 마누라의 부축을 받고 안방으로 을라간 뒤 유복이는 아랫방 방문턱

에 떨어진 칼을 집어서 담 너머로 팽개치고 안해와 같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유

복이가 표창을 씻어넣고 바로 드러눕는데 안해는 뒤가 염려되어서 "여보, 앉아

샙시다. 그리고 내일 아침 새벽 떠납시다. " 하고 잡아 일으키려고 하였다. 남편

은 안해더러 누우라거니 안해는 남편더러 일어나라거니 내외가 실랑이하는 중에

안방 지겟문을 여닫는 소리가 나고 찍찍 끄는 신발 소리가 아래로 내려왔다. "손

님 누우셨소? “ 하고 주인마누라가 방문 밖에 와서 말을 물었다. 유복이가 누

워서 ”녜. “ 하고 대답하니 "좀 일어나시오. " 하고 마누라쟁이가 방문을 열었

다. "안방으로 좀 올라가십시다. 영감자가 화해술을 드린답니다. " 유복이가 말대

답하기 전에 안해는 가만히 옷을 잡아당기어 가지 말란 뜻을 보이었다. "술을 먹

구 싶지 않소이다. " "형제분 다 잠간만 올라가십시다. 도령 자실 떡도 있습니다.

" "동생은 속탈이 나서 밤뒤까지 보았는데요. " "그러지 말고 잠간만 올라갑시다.

수상한 음식이 아닙니다. 그런 음식이면 내가 올라가시자지 않습니다. " 하고

마누라쟁이가 간절히 청할 때 영감자까지 마저 쫓아내려와서 유복이를 보고

"사내자식이 싸우면 적수요, 사귀면 친구지 잔말 말구 올라갑시다. "

하고 너스레를 놓고 방안으로 들어오더니 "술을 이리 가져오랄까. 이왕이면 널찍

한 안방으루 올라갑시다그려. “ 하고 곧 유복이의 가짜 아우에게로 가까이 와

서 "도령부터 일어서게. " 하고 동여맨 바른손을 아끼느라고 왼손으로 등을 툭툭

두들겼다. 유복이 내외가 졸리다 못하여 주인 내외를 따라 안방에 올라와서 자

리잡고 앉은 뒤에 주인마누라가 계집아이를 데리고 크고 작은 상 둘을 차려다

놓는데, 큰 상에는 탁배기 한 방구리와 육포 대여 섯 쪽이 놓이고 작은 상에는

백설기 그릇과 꿀종지가 놓이었었다. "도둑놈의 술이라구 의심내지 마시우. 내가

먼저 맛보리다. " 하고 주인이 너털웃음을 웃고 탁주를 한 사발 떠서 들이키고

육포 쪽을 뜯으면서 "떡두 자네가 먼저 맛보구 도령을 권하게. " 하고 그 마누라에게

말을 일렀다. 유복이는 주인과 술사발을 주고 받고 하고 유복이 안해는 주인마

누라의 권에 못 이겨서 떡을 입에 넣는 중에 주인이 신세타령을 내놓았다. 오가

는 본래 강음 사람으로 서을 가서 노름꾼으로 떠돌다가 부평 계양산으로 불려가

서 화적 괴수의 사위가 되고, 장인이 죽은 뒤에 안해와 딸을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가진 재물로 전지를 장만하고 농사짓고 살려던 것이 전지를 토호에게

먹히고 분김에 남은 재물을 거두어가지고 이 산속에 들어와서 자리를 잡은 지가

십 년이 넘었는데, 낫살이 많아지니 자연 신산한 생각도 나려니와 슬하의 일점

혈육인 딸자식이 죽은 뒤에 상성한 마누라가 적악한 탓이라고 사설하는 것이 듣

기 싫어서 몇몇번 벌잇길을 고치려고까지 생각하였으나 입에 맞는 떡은 얻기가

어렵고 배운 도적질은 하기가 쉬워서 이내 길을 못 고치고 지내는 터이었다. 주

인의 신세타령을 듣고 나서 유복이도 자기의 신세를 이야기하는데 자기가 유복

자로 난 것부터 부모의 원수 갚은 것까지 속임없이 이야기하였더니 주인은 다만

"효자요. 하늘이 아는 사람이오. " 하고 칭찬할 뿐이고 주인마누라는 고개를 살

래살래 흔들면서 "유복자라면 이 도령이 누구요? " 하고 물었다. 유복이가 대답

을 못하고 한동안 우물거리사가 마침내 "실상은 내 안해인데 여자 복색이 먼길

가는데 비편해서 남복을 시켜서 동생이라구. 했소이다. " 하고 토설하니 주인이

듣고 대번에 "남의 처자를 빼가지구 도망하는구려. " 하고 말하여 유복이는 고개

숙이고 앉았는 안해를 돌아보며 덕적산 장군당에서 내외 만난 일판을 죄다 이야

기하였다. 유복이 내외가 닭 울녘에 아랫방으로 내려왔다. 안해가 "당신은 술 취

하면 수다스럽구려. 우리의 본색을 왜 토설한단 말이오? " 하고 나무라니 유복이

는 "낯간지럽게 거짓말할 수가 있어야지. " 하고 발명하였다. "거짓말하기 싫거

든 잠자코나 있지요. " "잠자코 있게 되지 못했으니까 말을 했지. " "아무래도 본

정신이 아니에요. " "술 몇 사발에 설마 본정신을 잃을라구. " "그러면 남의 생각

도 좀 해주어야지요. 내 꼴이 무엇이오. 당신이 본색을 토설한 뒤에 나는 내처

얼굴을 못 들었소. " "잘못되었네. 이 앞으루 다시는 본색을 드러내지 아니함세.

" 남편이 납고하여 안해의 말썽이 끝난 뒤에 내외는 누워서 눈을 붙이는 체 만

체하였다. 이튿날 식전에 유복이 내외가 길을 떠나려고 하다가 주인 내외가 다

진심으로 묵어가라고 붙드는데, 더욱이 주인마누라가 지성스럽게 붙들어서 못

떠나고 묵게 되었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유복이의 안해는 주인마누라를 따라서

안방으로 올라가고 유복이는 아랫방에서 주인과 같이 한담하는데, 이야기는 주

인의 벌잇길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무리 배운 재주라두 험한 벌이라 의외의 고생

이 많으시겠소. " "고생뿐이겠소? “ 죽을 곡경을 당할 때가 많지. 그렇지만 우

리 상사람으로서 양반에게 먹히지 않구 아전에게 발리지 않는 벌이가 달리 또

어디 있소? " "벌이는 여일히 어디서 나오? " "담을 넘구 지붕에 오르는 것은

이왕 배운 재주니까 전에는 송도부중까지 들어가서 집뒤짐을 다녔지만 지금은

낫살두 먹구 마누라가 하두 성화를 재서 집뒤짐은 고만두구 장내기나 뜨내기를

가지구 지내가우. " "장내기는 무어구 뜨내기는 무어요? " "장내기는 장꾼을 치

는 것이구 뜨내기는 예사 행인을 떠는 것이구 또 집뒤짐이란 것은 남의 집에 가

서 재물을 뒤지는 것인데, 주인 시켜 뒤져내는 것이 원뒤짐이구 주인 몰래 뒤져

오는 것이 까막뒤짐이오. " 변풀이 끝에 재주 자랑이 나오고 재주 자랑이 표창질

이야기를 자아내어서 .유복이는 주인의 청으로 표창을 꺼내서 구경까지 시키었

다. 이때 안방에서는 주인마누라가 유복이 안해를 데리고 이 말 저 말 묻다가

맹산 갈 것 없이 여기서 자기들과 같이 살자고 달래기 시작하였다. "단지 피신하

기로 말하면 여기 있는 것이 맹산 가는 것보담 더 든든하고 맹산들 간다고 해야

별로 시원할 것이 없는 모양이니 여기서 우리와 같이 지냅시다. 우리도 고적한

사람이니 같이 지내면 서로 다 좋지 않소. 여기서는 산상골이 가까우니 부모도

쉬이 만나볼 수 있지 않소. " 다른 말도 유리하려니와 부모를 쉬이 만나볼

수 있단 말에 유복이의 안해는 마음이 솔깃하여졌다. "내가 수양딸 노릇이나

하고 지낼까요? “ ”그러면 작히 좋겠소. 내 딸이 살았으면 당신 연갑세요. 말이 난

길에 우리 아주 작정합시다. " "영감님께 말씀을 하셔야지 나도 말을 해보아야겠

세요. " "아랫방에서들 올라오래서 한자리에서 이야기합시다. " 주인마누라가 소

리를 쳐서 아랫방에서들 이야기를 그치고 안방으로 올라온 뒤 주인마누라가 둘

이 지금 공론한 것을 말하고 의향들을 물으니 주인은 손뼉을 치며 "그것 참 좋

은 공론이 났네. " 하고 싱글벙글 좋아하고 유복이는 한동안 말이 없이 앉았다가

"글쎄요. " 하고 두동싸게 말하였다. 주인 내외가 번갈아가며 쾌히 허락하라고

졸라서 나중에 유복이가 "수양딸 노룻할 당자가 좋다면 고만이지요. " 하고 말하

여 수양딸 공론이 작정이 되었다. 주인 내외가 수양딸인 유복이 안해의 절을 받

고 나이를 따져보니 그 마누라보다 두 살 아래 마흔여덟인 주인 오가가 유복이

에게 십사 년 장이라 주인이 "우리 내외가 나이 장인 장모 노룻하기 넉넉하군. "

하고 유복이를 보고 웃었다.

유복이는 도적놈의 사위 명색 노릇 하기를 탐탐히 생각하지 아니하나, 걸음

못 걷는 안해를 데리고 맹산 갈 것이 한걱정이던 차에 먼길 아니 가고 안돈하게

되어서 다행히 여기는 맘도 없지 아니하였다. 유복이 안해는 곧 여복으로 갈아

입고 하루 이틀 지난 뒤부터 주인마누라의 살림살이를 거들어 주고 유복이는 흔

히 사냥질하러 다니고 간간이 오가의 벌이하는 것을 구경 따라다니고 틈틈이 쇠

끝을 가지고 자작으로 쇠 표창도 만들고, 또 그전 나무 꼬챙이 던지던 것을 생

각하고 왕대를 쪼개서 댓가지 표창을 여러 죽을 깎아 만들었다. 노인이 준 표창

스무 개는 보물로 여기는 까닭에 잃어버려도 좋을 마구 쓸 것을 만든 것이었다.

밤저녁 같은 때 유복이 내외가 단둘이 아랫방에 들어앉으면 안해가 하루바삐 부

모에게 통기하여 달라고 남편을 졸랐다. 유복이가 처음에는 차차 기별하자고 미

루다가 나중에 졸리다 못하여 오가를 보고 의논하니 오가 말이 "나두 펼쳐놓고

나다니기가 재미없지마는 자네버덤은 외려 나은 형편이니 내가 한번 산상골을

갔다옴세. " 하고 유복이 처가에 소식 통할 것을 오가가 담당하였다. 며칠 뒤에

오가가 이른 새벽에 떠나서 산상골을 갔다가 그날로 돌아오는데 소식만 전하고

올 뿐 아니라 최서방 내외를 데리고 왔었다. 최서방은 딸을 보고 눈자위만 붉었

지만, 최서방의 안해는 딸을 얼싸안고 방성통곡하여 옆에 사람도 말리려니와 그

딸까지 비오듯 하는 눈물을 억지로 거두고 "어머니 고만두시오. 고만 그치시고

인사들이나 하시오. " 하고 말리었다. 최서방은 나이 갓마흔이고 그 안해는 남편

보다 삼년 위인 마흔셋이라, 유복이가 사위라도 나이 많아서 사위로 대접하기가

뻑뻑하고 게다가 더욱이 초면이라 내외가 다 말이 서름서름한데 주인 내외는 그

동안 벌써 정숙하여져서 여보게 저보게 하고 말하여 유복이에게는 가짜 장인 장

모가 도리어 정말 장인 장모인 것 같았다. 최서방 내외가 그날 밤에 아랫방에서

딸 내외와 같이 자며 장군당에서 도망한 전후 곡절을 자세히 물은 뒤에 도망한

뒤 장군당 일을 들리어 주었다. 장군 마누라에게 시중드는 무당이 장군 마누라

없어진 것을 급히 선생 무당에게 알리어서 먼저 무당들끼리 공론하고 다음에 각

동 동임들에게 기별하여 곧 장군당에서 작은 굿을 차리고 장군 마누라 없어진

사정을 장군에게 취품하게 되었는데 장군의 신이 무당에게 내리어서 무당이 펄

펄 뛰며 "고년이 맨망스러운 년이다. 고년의 얼굴이 맘에 들기에 데려왔더니 고

년이 조석 분향하기도 죽기보다 싫어하고 더욱이 내 말이 없이 남복을 지어 입

었더라. 내가 노염이 나서 고년을 하인놈 내주었다. 산상골 최가는 딸의 죄로 벌

역을 받음직하지마는 아무라도 자식을 겉낳지 속낳는 것이 아니니까 특별히 생

각해서 용서하여 줄 터이다. 내가 마누라 없이는 하루를 지나기가 어려우니 저

기 앉은 마월동 일좌의 셋째딸을 하루바삐 새 마누라로 들여세워라, 너희들 다

알았느냐. " 하고 공수를 주었었다. 최서방의 안해는 그때 자기 귀로 들은 무당

의 공수 주던 말을 흥내까지 내어 딸에게 들려주고 "그래 우리는 네가 호환에

간 줄로만 알았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 하고 다

시 눈물을 흘리었다. 최서방 내외가 죽은 줄 알았던 딸을 찾아서 마음에 공생스

러웠으나 그래도 혹시 뒤에 최장군의 벌역이 있을까 겁이 나서 내외가 다같이

염려하는 것을 유복이가 "염려들 마시오. 벌역이 있으뎐 벌써 내렸지 이때까지

있겠소. " 하고 말할 뿐 아니라 그 딸까지 "염려 마세요. 장군도 사람 보아 가며

벌역을 내리시는가 보아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살아 있겠세요. " 하고 말하여

적이 안심들 하였다. 최서방 내외가 하루 묵고 떠날 때에 딸이 차차 보아가며

집에도 다니러 갈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그 아버지 최서방이 "천만의 말이다. 너

희 내외 다 올 생각 마라. 장군의 벌역이 없더라두 동네 사람이 알면 큰일이다.

우리가 너를 보구 싶으면 남 몰래 슬그머니 와서 다녀가마. " 하고 말하였다. 이

까닭에 유복이 내외가 청석골에 살면서 사십리 남짓한 산상골에는 끝끝내 발을

들여놓지 아니하였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꺽정 4권 (16)  (7) 2022.12.25
임꺽정 4권 (15)  (0) 2022.12.24
임꺽정 4권 (13)  (0) 2022.12.21
임꺽정 4권 (12)  (0) 2022.12.19
임꺽정 4권 (11)  (0) 2022.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