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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6권 (24)

카지모도 2023. 4. 8.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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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봉학이를 놓친 죄로 금부도사는 삭탈관직 되고 포도부장은 병신 되고

낙사 되고 나장과 나졸과 포도군사는 모두 결곤을 당하고, 또 한편 이봉학이를

구한 공로로 황천왕동이와 길막봉이는 칭찬울 듣고 정상갑이와 최판돌이는 상급

을 받았다. 이것은 더 자세히 이야기할 것이 없는 일이고 이봉학이가 청석골로

들어온 뒤 그 소실 계향이가 산후에 실섭한 까닭으로 바로 병들어 눕게 되어서

의약을 짐작하는 서림이가 약을 써보았으나 병이 말을 듣지 아니하여 할 수 없

이 난데 의원을 구하여 들이게 되었는데, 박유복이의 처가 동네 산상골서 멀지

아니한 허풍골 사는 허생원이 의술이 도저하단 말이 있어서 유복이가 장인 최서

방에게 기별하여 허생원을 데려오게 하였다. 허생원이 와서 계향이 병에 약을

쓰기 시작하여 불과 몇 첩에 대세를 돌리고 그 뒤의 두어 제로 뒤탈도 없게

고치어 놓았다.

청석골 두령들이 허생원을 붙들어 두려고 공론하고 구변 좋은 오가가 쓸 만한

집도 치워 주고 온갖 살림도 차려주고 또 먹을 것도 대어 줄 것이니 청석골로

반이하라고 입이 닳도록 허생원을 달래보았으나, 허생원은 허풍골을 떠날 수 없

다고 고집을 세워서 도로 내보내게 되었을 때 꺽정이가 도회청에 나와 앉아서

허생원을 불러다 놓고 “들어올 때는 산 사람으로 들어왔지만 나갈 때는 죽은

사람으루 나갈 테니 그리 아우”하고 얼러메어서 허생원은 임꺽정이 말 한마

디에 움찔하여 다시는 나가겠단 말을 입밖에도 내지 못하였다.

청석골 안에 집이 째이는 판이라 허생원을 반이시키는데 집이 마땅한 것이 없

어서 우선 졸개의 초막 하나를 치워주었다. 허생원은 약국집은 고사하고 두령들

의 살림집이 부족하여 집을 몇 채 더 짓기로 작정되어서 곧 역사를 시작하여 도

회청 뒤 빈터에 새 집 다섯 채를 이룩하였다. 새 집 역사가 손떨어진 뒤에 여러

두령들이 공론하고 집들을 나눠 드는데, 오가는 식구가 단출하여 큰집이 쓸데없

다고 있던 집을 식구 많은 임꺽정이에게 내주고 새 집 중의 제일 번듯한 채로

내려앉고, 박유복이는 오가의 새 집과 격장한 집에 와서 딴살림을 시작하고, 봉

학이와 허생원과 서림이도 각각 새 집을 한 채씩 들었다. 서림이는 그 동안 양

지 처가에 사람을 보내서 처자를 데려왔던 것이다. 황천왕동이는 꺽정이 집 근

처에 있는 묵은 집을 한 채 들고 배돌석이와 길막봉이는 전과 같이 도회청 좌우

옆채에 들어 있고, 곽오주 역시 전이나 다름없이 등 너머 외딴집에 따로 가서

있었다. 오주는 여편네와 담쌓은 사람이라 여편네가 없다고 꼬물도 쓸쓸할 까닭

이 없지마는 돌석이와 막봉이는 홀아비 살림이 쓸쓸하여 밤저녁에 두 홀아비가

실없은 말로 서로 위로하는 때가 많았다.

어느 날 달 밝은 밤에 돌석이와 막봉이가 꺽정이 집 큰사랑에 가서 놀다가 밤

늦게 돌아와서 막봉이는 바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여보게, 달

아래서 좀 거닐다가 가세”하고 돌석이가 붙들었다. “밤이 늦었는데 졸리지 않

소?" "졸리면 거닐자겠나" "기집 생각이 또 간절하신 모양이구려" "자네는 기집

생각이 없나?" "젊은 놈이 기집 생각 없으면 변이지" "그럼 왜 나를 빈정거리

나?" "당신은 너무 과하니까" "여보게, 우리두 어떻게 기집 하나씩 변통해 가지

구 살림을 해보세그려" "어디 마땅한 기집이 있어야지" "나는 기집이 없는 사람

이니까 새로 구해야 할 테지만 자네는 안해가 있지 않은가. 서장사처럼 사람 보

내서 데려오게 그려" "데려올 만하면 벌써 데려왔지 남의 훈수를 기다리겠소" "

무남독녀라 잘 내놓지 않거든 장인 장모까지 다 데려오게그려" "그만 기집이 어

디 없어서 불천지위까지 맡아온단 말이오" "자네가 가끔 안해 말하는 걸 보면

옛정을 잊지 못해하며 딴소리 말게" "기집 낯짝은 별루 보잘것없어두 속살은 좋

거든" "그 따위 소리 하지 말게. 그러지 않아두 맘이 싱숭생숭해 죽겠네" "달 아

래서 밤을 새두 월궁선녀는 안 내려올 테니 고만 들어가 잡시다" "자네 먼저 들

어가 자게. 좋은 꿈을 꿀라거든 왼손은 가슴 위에 얹구 자게”하고 배돌석이가

하하 웃었다. 길막봉이가 방으로 들어간 뒤에 돌석이는 한동안 마당에 서서 달

도 치어다보고 그림자도 내려다보고 하다가 홀저에 무슨 맘을 먹고 대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돌석이가 도회청 대문 밖에 나서며 곧 앞산 밑에 있는 조그만 초막으로 발길

을 향하였다. 그 초막에 들어 있는 졸개는 앞산 파수꾼 김억석이니, 본래 풍덕

양반의 집 비부로서 자식들을 종노릇시키지 아니하려고 계집 자식을 데리고 양

반의 집에서 도망하여 처음에는 강음촌에 와서 숨어 살다가 종말에 청석골로 들

어 오게된 사람이다. 억석이가 청석골 들어온 뒤에 계집은 죽고 지금 남은 식구

는 딸과 아들 남매뿐인데 딸은 과년한 처녀요, 아들은 누이보다 나이 훨씬 치지

하여 아직 콧물 흘리는 아이였다. 배돌석이가 초막 방문 앞에 와서 “억석이 억

석이?”하고 불렀다. 억석이는 밤번 파수를 보는 중이라 산 위 파수막에 올라가

서 짝패 하나와 둘이 밤을 돌려 새우느라고 집에서 자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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