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부도사는 임진가서 임진 가서 하룻밤 숙소하려고 예정하였던 것인데 의외로
중로에서 이봉학이를 체포하게 되어서 예정을 변경하여 고양읍을 숙소참 대고
회정하였다. 도사가 봉학이를 보고 “고양읍에 가선 집교보를 변통해서 태워
주까?” 하고 묻는 말에 “서울까지 걸어가두 좋소이다.” 이봉학이는 대답하고
갖신 벗고 미투리 신고 나졸 군사들과 같이 걸었다. 이봉학이가 오랏줄 지우고
길을 걷는 것이 생외의 처음이라 마음의 창피한 것과 몸의 거북한 것이 이를 데
없으나 자기의 창피하고 거북한건 오히려도 여차이고, 계향이의 소리없이 우는
꼴이 차마 보기 어려웠다. 계향이가 처음에는 구상전 만난 종의 자식같이 정신
없이 떨기만 하다가 떠는 것이 진정되면서부터 두 눈에 눔물이 샘솟듯 하는 것
을 씻다 못하여 치맛자락으로 멀굴을 통히 가리었다. 그러지 않아도 부서부석한
계향이의 눈두덩이 얼마 동안 안 지나서 퉁퉁히 부어 올랐다. 이봉학이가 자주
뒤를 돌아보다가 계향이의 눈과 마주칠 때 울지 말라고 눈짓하면 계향이는 고개
를 끄덕이면서도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금치 못하였다.
두 일행이 한데 합한 뒤에 포도부장은 포도군사들을 데리고 앞을 서고 나장 나
졸들은 이봉학이를 데리고 또 금부도사는 말을 타고 중간에 들고 계향이의 승교
마당과 봉학이의 데리고 온 하인짐꾼은 뒤에 따랐다. 해지기 전에 고양읍을 대
어오려고 금부도사가 길을 재촉하여 두마니와 박화산 길목과 인화산 길목을 얼
른 지나서 동거리를 향하여 오는 중에, 아이놈 하나도 데리지 아니한 선비 한
사람이 이편을 바라보고 오다가 홀저에 돌쳐서서 오던 길로 도로 가는데 번쩍번
쩍 걸어가는 걸음이 예사 달음박질로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빨랐다. 앞에 선
포도군사들이 “지금 가는 시람 걸음이 빠르네.” “축지하는 사람인가베.” “양주
꺽정이의 처남 황가놈이 걸음이 유난히 재다든데 혹시 그 놈이 아닐까.” “그
런지두 모르지. 쫓아가 볼까?” “벌써 어디 갔는지 모르는걸, 쫓아가면 붙들겠
나.” 하고 지껄이는 말을 봉학이가 귓곁에 듣고 “천황동이가 서울을 다녀오다
가 포도군사들을 보구 어디루 피한게로군.” 하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분수니를
건너고 양짓말을 지나고 고골길목을 지나서 바라보고 올라오는데 길에 행인도
없고 산에 나무꾼도 없고 다만 길가 나무 위에 까막까치들만 지저귀었다. 금부
도사가 말 위에서 서산에 가까운 해를 치어다보며 “잘못하면 해 진 뒤에 들어
가기 쉽겠다. 얼른 고개를 넘어가자.” 나장들을 재촉하고 나장들이 “앞에서 좀
더 빨리들 가세.” 하고 포도군사들을 재촉하여 혜음령 밑에 다 왔을 때 고개
중턱에 사람 서넛이 뭉쳐 섰는 것을 보고 포도부장이 수상하게 여기어 뒤에 오
는 일행을 잠깐 정지시키고 포도군사들만 먼저 올려보냈다. 포도군사들이 사람
들 섰는 곳에 가까이 오자, 그중에 한 사람이 손에 굵은 몽둥이를 짚고 몇 걸음
앞으로 나서서 “이놈들아, 너희놈들이 포도청에서 낮잠이나 자빠져 자지 왜 여
기까지 나와 돌아다니느냐!” 하고 바로 호령하듯이 말을 붙혔다. 포도군사들이
제잡담하고 꽁무니에서 방망이를 뽑아들고 “으악!” 소리를 지르며 쫓아들어가
니 그 사람은 조금도 황겁한 기색이 없이 짚었던 막대를 들어서 방망이를 막는
데 방망이 너덧개가 몽둥이 하나를 당치 못하였다. 포도군사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는 중에 포도 부장이 칼을 빼어들고 쫓아올라왔다. 포도부장이 군사들을
한옆으로 비키고 몽둥이 든 자를 향하여 “너희가 웬놈들이냐?” “우리가 어떤
사람인 걸 알구 싶으냐?”“우리는 고개 임자다.” 하는 대답이 나왔다. “고개
임자란 게 무어냐, 이놈아!” “고개를 넘어다니는 행인에게 고갯세를 받는 사람
이다. 너희두 고개를 넘어가려거든 세를 갖다 바쳐라.” “쥐새끼 같은 도둑놈이
무얼 믿고 큰 소리냐!” 하고 몽둥이를 든 자가 한편 주먹을 내 보이니 “잘 믿
었다. 칼 좀 받아봐라.” 하고 부장이 칼을 두르며 달려들었다.
몽둥이가 워낙 칼과 맞서기 어려운데 더욱이 칼은 법수 있고 몽둥이는 함부로
라 몽둥이가 칼앞에 쩔쩔매었다. 산더미로 정수리를 누르는 듯 칼이 위에서 내
려오고 풀 헤치고 뱀을 찾는 듯 칼이 아래로 나와서 몽둥이가 칼을 막느라고 위
아래로 올지 갈지 하다가 그자가 몽둥이를 내던지고 고개위로 도망할 때 뒤에
섰던 자들은 앞서 뛰어올라갔다.
“너희들은 구경하구 섰느냐! 빨리 쫓아 올라가자.” 부장이 군사들을 몰고 셋의
뒤를 쫓아서 고개 마루턱으로 올라오자, 먼저 올라간 셋이 서낭의 돌무더기를
헐어서 돌을 던지는데 그중의 하나는 물박 같은 큰 돌덩이를 핑핑 내던졌다. 부
장이 돌을 무릅쓰고 올라갈까 피하여 내려갈까 잠깐 주저하는 동안에 군사 하나
가 면상을 돌에 맞고 "아이쿠!“ 하고 소리를 질럿다. 부장이 소리지르는 군사를
돌아보다가 앞에 떨어지는 큰 돌덩이에 발등을 짓찧고 펄적 주저앉았다. 옆에
가까이 섰던 군사가 쫓아와서 얼른 부장을 붙들어 일으키며 아래로 내려가자고
말하니 부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떡이었다. 군사 하나는 부장을 부축하고 앞서고
군사 둘은 상한 동무 군사를 양쪽에서 붙들고 뒤를 따라서 급한 걸음으로 몇 간
동안 내려왔을때 뒤에서 "이놈들 게 섰거라! " 고성이 들리며 아까 몽둥이
들었던 자가 두 손으로 돌덩이 하나를 치어들고 좇아오는데 그 돌덩
이는 크기가 조그만 집 주춧감이 될 만하였다. 군사들이 흘끔흘끔 뒤를 돌아보
며 아래로 뛰어가려고 하는데, 부장은 담기가 달라서 부축하는 군사까지 옆으로
치우고 돌아서서 칼을 바로 잡았다. 그자가 부장을 노리고 돌덩이를 내던져서 부
장이 자칫하면 얻어맞을 것을 날쌔게 가로뛰어 피하였다. 그러나 지덕은 험한데
짓찧인 발에 힘이 없어서 한편으로 쓰러졌다. 부장이 몸을 일으키려고 할 즈음
에 그자가 뛰어오며 곧 발길로 칼 잡은 팔을 걷어차서 칼이 손에서 떨어졌다. 부
장이 몸을 일으킬 사이 없이 그자가 연거푸 발길로 차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나중에 한번 몽굴러 차서 산골창으로 떼굴떼굴 굴러내려갔다. 여러 군사들이 부
장을 돌보지 못하고 고개 밑으로 도망하는데 그자가 부장의 칼을 주워들고 뒤에
서 쫓아왔다.
고개 위에 화적이 난 것 같다고 포도부장이 칼을 빼들고 쫓아올라간 뒤에 금부
도사는 생각하기를, 포도군사 서너 명이 갔고 포도부장까지 갔으니 화적 몇 명
쯤 쥐잡은 듯 하려니 태평 마음을 놓고 말에서 내려서 길가에 앉아 있었다. 한
동안이 착실히 지나도록 포도청 패가 돌아오지 아니하여 도사가 나장. 나졸을
돌아보며 “어째들 이렇게 아니올까. 너무 오래 지체가 된다.” 하고 말하니 나
장이 하나는 “글세올씨다. 너무 늦소이다.“ 하고 도사의 입을 따라서 대답하는
데 나장이 하나는
“아마 도둑놈들이 도망질치니까 뒤쫓아갔는가 보오이다.” 하고 대답한 뒤 제
가 가장 요량이나 잘한 듯이 곤댓짓까지 하였다. 도사가 화가 나서 “그래 우리
더러는 여기서 기다리라고 해놓고 무작정 어디까지 쫓아간단 말이냐!”그 나장
이를 포도부장인 듯이 책망하고 “더 있다간 여기서 해 지겠다. 고개 넘어서 벽
제까지 가기전엔 홰를 잡힐 데도 없다. 화적을 잡거나 수적을 잡거나 우리겐 아
랑곳없으니 우리만 먼저 가자.” 여러 사람들을 다 일으켜 세웠다. 도사가 다시
말에 올라 앉을 때 고함치는 소리와 악쓰는 소리가 풍편에 가까이 들려서 고개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중에, 창과 몽치를 든 자 십여명이 뒤에서
풍우같이 몰려오며 곧 도사와 나장들에게 대들어서 창으로 찌르고 몽치로 조기
는데 이봉학이가 창든 자 하나를 바라보고 소스라치도록 놀래었다. 황천동이가
양반의 의관을 벗어버리고 다른 자들과 같이 머리를 질끈 수건으로 동이고 창을
들고 날뛰었다. “이 사람아 이게 웬 짓인가?“ "이 사람 이리좀 오게.” 이봉
학이가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지르니 황천왕동이가 창을 멈추고 돌아보며 “잠
깐만 기다리우. 이놈들을 다 처치하구 이야기합시다.” 하고 대답하였다. “어서
이리 와서 내 말 좀 듣게.” “무슨말이오?” 황천왕동이가 이봉학이 앞에 와서
섰다. “저자들을 자네가 데리고 왔나?” “그렇소.” “사람을 상하지 말라구
이르게.” “저까짓것들 살려 보낼 것 무어 있소. 아주 요정들 내게 가만둡시다.
” “자네가 나를 다시 안볼테면 모를까, 그렇지 않거든 내 말대루 이르게.” 황
천왕동이가 마지 못하여 채수염 난 자 하나를 가서 보고 말을 일러서 그자들은
창질과 몽치질들을 그치고 말에서 떨어진 도사와 땅 위에 자빠지고 엎드러진 나
장.나졸을 발가벗기고 상투를 풀어서 맞잡아매 앉히는데 봉학이가 데리고 온 하
인까지 도사의 하인으로 알고 발가 벗기어서 한테 앉히었다. 이 동안에 황천왕
동이는 봉학이의 오랏줄을 풀려고 하니 봉학이가 밀막으며 “줄을 가만두구 이야
기부터 하게. 이게 대체 왠 짓인가?” 하고 말하였다. “오라 푸르구 앉아 이야기
합시다.” “그대루 앉아 이야기하세.” “아따 고지식하게 굴지 마우.” 황천왕
동이가 이봉학이의 말을 듣지 않고 오랏줄을 풀러주었다. 이때 고개 위에서 도
망하여 온 군사들이 고개 밑에 광경을 바라보고 섰는 중에 칼든 자가 뒤에서 쫓
아 내려오며 “오냐 이놈들 게 있구나!” 하고 소리를 질러서 군사들은 다급하
여 고개 밑으로 뛰어 내려왔다. 여럿이 와 하고 대들어서 군사들을 붙잡아 앉힐
때 군사 뒤를 쫓아오던 사람이 언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황두령 게 있
소?” 하고 소리 치니 황천왕동이가 치어다보며 “길두령인가? 어서 내려오게.
” 하고 마주 소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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