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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6권 (26)

카지모도 2023. 4. 11.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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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아프시지 않으시오" "얄미운 소리 하지 마라" "나도 맹세를 치리까?" "

암, 너두 쳐야지” 돌석이가 옷고름을 앞으로 내어미니 처녀는 고개를 숙이고

“저는 당신의 안해가 되겠습니다. 만일 못 되면 칼로 자결해 죽겠습니다” 먼

저 마디는 어물어물 말하고 나중 마디는 또박또박 말하고 나서 정성스럽게 옷고

름에 매듭을 맺었다.

새벽이 가까워서 닭이 자칠 때 돌석이가 처녀를 보고 “나는 고만 갈 테다”

말하고 일어나려고 하니 처녀가 붙들었다. “왜 붙드느냐?”,“ 아버지가 내려오

거든 아주 보고 아퀴를 짓고 가시오" "너의 아버지를 여기서 보기는 면괴스러우

니 이따 내가 조용히 청해다가 말하마" "이따 언제요?" "아침때나 점심때나 틈

나는 대루 청해다가 말하지" "그럼 그러세요”

돌석이가 자기 처소에 돌아와서 밤에 잠 못 잔 오력을 내느라고 개잠 한숨 늘

어지게 자고 여러 두령이 도회청에 모일 때 비로소 일어났다. “오늘 웬 늦잠이

오?" "무슨 잠을 눈이 붓두룩 잔단 말이오" "코가 다 삐뚤어졌네그려" "어젯밤에

무슨 짓을 하느라고 잠을 못 잤소?” 이 사람 저 사람이 돌석이를 조롱할 때 길

막봉이가 웃으면서 “월궁선녀를 생각하고 달 아래서 건밤을 새운 모양이오”하

고 말하니 돌석이도 역시 웃으며 “내가 월궁에를 갔다왔네”하고 길막봉이의

말을 대꾸하였다. “월궁에 가니 선녀가 많습디까?" "선녀 하나를 만났네" "거짓

말이 난당이구려" "자네가 거짓말을 시켰지 내가 거짓말을 했나”

돌석이 말에 길막봉이만 웃을 뿐 아니라 여러 두령도 거지반 다같이 웃었다.

아침때가 지나고 점심때가 지나고 저녁때가 다 되었을 때, 돌석이가 억석이를

불러볼까 말까 주저하다가 기왕 늦었으니 내일 불러보리라 생각하고 길막봉이와

둘이 도회청 마당에서 거닐며 한담하는 중에 억석이가 대문 밖에 와서 기웃기웃

하다가 길막봉이 눈에 먼저 뜨이었다.

“그게 누구냐?" "앞산 파수꾼 김억석이올시다” 길막봉이가 다른 말을 묻기

전에 배돌석이는 얼른 대문간으로 나왔다. “무슨 할 말이 있어 왔느냐?" "두령

께서 소인을 불르러 보내신 일이 있습니까?" "누가 그러더냐?" "소인이 잠깐 어

디를 나간 동안에 사람이 왔다갔다고 딸년이 말씁하옵디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식전에 일찍 오너라" "두령 분부내에 옷고름을 잊지 말라고 합셨다 하오니

그게 무슨 분부를 잘못 전한 것이 아니오니까?" "긴말 할 것 없이 내일 오너라

” 돌석이 뒤에 따라나와 섰던 막봉이가 억석이 간 뒤에 “여보, 옷고름을 잊지

말라는 게 무슨 소리요?”하고 물으니 돌석이는 우물쭈물하고 대답을 못하였다.

“억석이란 자의 딸년이 몇 살이오?" "열팔구 세가 되었는가 부데" "자세히 물

어보지 못했소?" "내가 기집애 나이 물어보러 다니는 사람인가" "억석이의 딸을

불러다가 좀 물어봐야겠군" "기집애 나이가 그렇게 알구 싶은가?" "우선 옷고름

이란 말부터 물어봐야겠소" "내가 일러보낸 말을 그 기집애가 알 까닭이 있나"

"일러보냈다면 그게 무슨 소리요?" "그게 사산에 군호 준 말일세" "요새는 사산

군호를 파수꾼들의 집에 외치구 다니기루 했소? 대체 옷고름하고 군호하면 그

대답이 무어요? 어서 대답하우. 공연히 나를 속이려구" "내가 무얼 속인다구 그

러나?" "그러지 말구 똑바루 다 토설하우" "이야깃거리가 있기는 하나 있네. 그

런데 차차 이야기함세" "차차라니 명 짧은 놈 턱 떨어지거든 말이오”,“아따,

조급하게두 구네. 그럼 방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세”

돌석이는 막봉이와 같이 방에 들어와 앉아서 지난밤 일을 전부 다 이야기하였

다. 석후에는 여러 두령이 꺽정이에게로 모이는 것이 전례라 막봉이가 저녁 먹

고 나와서 방에 있는 돌석이를 나오라고 부르니 돌석이는 억석이 딸에게 놀러갈

마음이 긴하여 “오늘 저녁은 일찌거니 자겠네”하고 핑계하였다. “참말 초저

녁부터 잘 테요? 만일 다른 데 가면 무어요?" "다른 데 가면 무어라니?" "맹세

하란 말이오. 옷고름까지 맺을 것은 없구" "예 이 사람" "오래 굶주리다가 과식

하면 탈나는 법이오" "실없는 소리 고만두구 내 말 좀 듣게" "무슨 말이오?" "아

까 이야기한 일관은 아직 자네만 알아두게. 여럿에게 알리진 말게. 여럿이 알구

보면 나를 여간들 놀리겠나" "내 귀에 박힌 이야기를 도루 파가기 전엔 입으루

나오구 말 테니까 그런 부탁은 해두 소용없소" "내일 내가 이야기할 테니 오늘

밤만 참아주게" "참구 말구 할 것 없소” 길막봉이가 여럿에게 이야기 안할 리

없을 것을 안 뒤에 돌석이는 숫제 자기가 가서 이야기하고 먼저 일어서 올 생각

으로 “그럼 나하구 같이 가세”하고 방에서 나왔다.

배돌석이와 길막봉이가 꺽정이 집에 왔을 때 오가와 곽오주만 아직 오지 않고

그 나머지 두령들은 벌써 와서 방안에 늘어 앉았었다. 저녁인사들을 마치고 자

리에 앉은 뒤에 막봉이가 곧 좌중을 둘러보며 “배두령이 오늘 저녁에 좋은 이

야기를 한답니다”하고 말을 내니 배돌석이는 혀를 쩟쩟 차며 길막봉이를 흘겨

보았다. “좋은 이야기가 무슨 이야긴가?" "좋은 이야기 좀 들읍시다" "배두령

어서 이야기하우” 여러 사람이 돌석이더러 이야기하라고 조를 때 마침 오가가

오고 좌정되자, 또 곽오주가 마저 왔다. 오주가 돌석이를 보고 “뒷산 파수꾼의

패두놈 못 쓰겠습디다. 곧 태거해 버리우”하고 말하니 배돌석이가 “그놈이 무

슨 작죄를 했나?”하고 물었다. “그놈이 내 앞에 있는 아이놈을 살살 꼬여내니

그런 놈이 어디 있소" "고약한 놈일세. 내가 치죄해 줌세” 돌석이 말끝에 길막

봉이가 웃으며 “그 패두놈을 태거하고 억석이루 대를 냈으면 좋겠군”하고 말

하는 것을 오가가 듣고 “억석이라니? 앞산 파수꾼 김억석이 말인가? 그애 사람

이 신통하지”하고 말하였다. “억석이가 사람이 신통한가요? 아비가 신통하니

까 딸두 신통하겠구려" "억석이의 딸이 신통한 건 어떻게 아나?" "배두령이 잘

아니 물어보시우" "배두령은 어째서 잘 알까” 오가의 말 끝에 배돌석이가 “창

피한 이야기를 하나 할 것이 있습니다”하고 허두를 놓고 억석이의 딸과 관계된

것을 대강 다 이야기하였다.

오가가 먼저 “그 기집애년이 여간내기가 아닐세그려. 우리 마누라에게 바누

질을 배우러 오는데 보니까 사람이 영리는 하데만 배두령같은 영웅을 개떡같이

주무를 줄은 몰랐네”하고 말한 뒤 이 사람이 한마디 돌석이를 조롱하고, 저 사

람이 한마디 억석이의 딸을 칭찬하는 중에 박유복이가 배돌석이를 바라보며 “

기집애가 사람이 똑똑하다니까 안해 삼는 것두 좋기는 좋으나 졸개의 딸을 안해

삼구 보면 좀 거북한 일이 있을 것 같군”하고 말하니 돌석이가 “나 하나 거북

한 건 말할 것이 없지만 다른 두령들 얼굴이 깍일까 봐서 주저하는 중이오”하

고 대답하였다. 꺽정이가 배돌석이의 주저한단 말을 귀 거슬리게 듣고 “사내대

장부가 나이 어린 기집애에게 언약해 놓구 주저하는 게 다 무언가”하고 나무란

뒤 “기집애를 어디 한번 불러보세”하고 곧 좌우에서 심부름하는 졸개더러 앞

산 파수꾼 김억석이의 딸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억석이의 딸을 부르러 간 뒤에 서림이가 앞으로 나앉아서 배돌석이를 바라보

며 “여보 배두령, 지금 임두령의 말씀이 옳은 말씀이오. 나이 어린 기집애에게

한번 언약한 것을 저버리는 법이 어디 있소. 언약해 놓구 주저하는 건 되려 사

내루 견모요. 그러나 박두령의 말씀과 같이 거북한 일은 적지 않을 것이오. 우선

억석이에게 대한 인사부터 거북할 것이, 존대하잔즉 명색없는 소졸이구 하대하

잔즉 뚜렷한 두령의 장인이구려. 생각해 보우. 거북하지 않겠소? 그래두 배두령

은 상감이 부원군에게 하우하듯이 하우루 대접할 수 있지만 우리들은 대접하기

가 썩 거북할 것 같소”하고 길게 늘어놓는데 돌석이는 어른에게 훈계듣는 아이

처럼 직수굿하고 듣고 있었다.

억석이의 딸 이야기가 난 뒤로 좌중의 여러 사람이 모두 지껄여도 입 한번 뻥

긋 아니하고 앉았던 곽오주가 서림의 하는 말을 듣고 “우리가 거북할 거 무어

있담. 아비는 졸개루 대접하구 딸은 제수루 대접하면 고만이지”하고 말하였다.

오가가 웃으면서 “배도령의 안해를 제수루 대접한다니 배두령이 자네 아운가?

”하고 오주의 말을 책잡으니 오주가 코방귀를 뀌며 “그럼 나이 어린 기집애를

형수 아주머니 대접하겠소?”하고 오가의 말을 뒤받았다. “나이 어린 기집애라

두 형 되는 사람이 데리구 살면 형수 대접해야지" "형수루 대접하구 싶거든 하

시우. 누가 말리우" "자네는 제수 대접하구 나는 형수 대접하면 을축 갑자루 셈

판이 잘되겠네”

오가의 말에 다른 두령은 고사하고 돌석이까지 웃었다. 오가가 다시 오주더러

“박서방댁 나이 자네버덤 몇 살이 아랜가?”하고 물으니 오주는 “난 모르우”

하고 무뚝뚝하게 대답하였다. “몇 살이 아래든지 아래지. 그런데 어째 자네가

제수루 대접을 아니하나" "나이 어슥비슥한 것과 여남은 살 아래와 같단 말이

오? 억지소리 하지 마우" "옳지, 자네 말을 듣구 보니 그럴듯해” 오주는 다시

말 않고 한동안 있다가 “나는 먼저 갈라우”하고 일어서려고 하는 것을 “좀

있다가 같이 헤어지자”하고 박유복이가 붙들어서 다시 주저앉았다. 서림이가

좌중을 향하고 “내가 아까 배두령께 말한 건 불과 허두 말이고 정작 할 말은

못하구 말았습니다. 내 생각에는 억석이 딸을 오두령 내외분이 수양딸루 정하시

구 혼인을 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말하고 여럿의

얼굴을 돌아보니 오가가 좋다고 말하고 박유복이가 좋다고 말하고 다른 두령은

좋다 그르다 말들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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