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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8권 (3)

카지모도 2023. 6. 27.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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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전댁이란 배돌석이의 안해 말이다. 아무 두령이니 아무 두령이댁이니 하는 칭

호는 도중 밖에 나와서 쓰기 어려운 까닭에 이번에 청석골서 나올 때 사내들은

모두 성밑에 서방을 붙여서 아무서방이 부르기로 하고 여편네들은 본집의 골 이

름을 따라서 아무댁이라 부르기로 하여, 황천왕동이의 안해는 봉산댁이 되고 길

막봉이의 안해는 죽산댁이 되었는데, 백손 어머니는 본집이 없는 사람이라 전에

살던 양주로 양주댁이라고 하고 배돌석이의 안해는 마전 무당의 집을 본집이라

고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대로 마전댁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아버

지 대신 따님이 울구 동생 대신 누님이 빌었으면 고만 쓱삭 다 됐구려. 그래 그

말 할라구 부르셨소?” “마전댁 낯을 보아서 내가 다른 데로 안 가고 여기서

자겠다고 빌었으니까 그리 알란 말이야.” “대체 빌긴 무얼 잘못했다구 빌었

소? 난 잘못한 것이 없소.” “무슨 사정이 있어서 늦게 왔나 말이나 들어보고

시비를 해야지 말도 안 들어보고 대번 손찌검한 것이 잘못 아니냐?” “그래 그

건 누님 말대루 잘못이라구 칩시다. 그러니 우리가 여기서 푸대접받구 잘 것이

무어 있소?”“나 하나뿐 아니라 우리 안식구들은 다 여기서 자기로 공론했다.

” “그럼 우리 사내들두 다른 데루 못 가는 게지.” 황천왕동이마저 주저물러

앉게 되어서 사내 네 사람은 다시 아랫방에 들어앉았다. 김억석이는 네 사람이

아랫방에 들어앉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건넌방 앞에 있다가 관솔불을 가지

고 와서 두 방으로 다니며 등잔불을 당겨놓고 “밥을 새루 또 짓는데 곧 뜸이

들겠답니다. 시장들 하실 테지만 조금만 더 참아 줍시오.” 말하고 다시 간 뒤

한동안 지나서 저녁상들이 나왔다. 건넌방에는 셋 겸상이 둘이요, 아랫방에는 겸

상이 둘이었다. 밥은 갓 지은 것이라 기름이 흐르고 찬은 상이 어둡도록 가짓수

가 많았다. 김억석이가 술 양푼을 들고 아랫방에 와서 반주를 권하는데 술맛이

좋지 않아서 서림이와 황천왕동이는 갱지미로 두엇씩 받아먹고 그만두고 청탁을

안 가리는 배돌석이와 길막봉이는 갱지미를 여남은 번 둘이 서로 주고받았다.

네 사람이 밥을 먹기 시작한 뒤 김억석이는 한옆에 앉아서 아까 다 못한 발명을

하였다. “지금 저의 처고모의 집은 서울서 오신 노상궁마마 일행이 통차지하다

시피 했습니다. 원채, 아래채에 방이 넷인데 안방에는 상궁마마가 기시구, 건넌

방은 상궁마마 뫼시구 온 여인네들이 쓰구, 아래채에 있는 방 하나두 역시 상궁

마마 뫼시구 온 사내 하인들이 쓰구 아랫방 하나 남은 것을 주인 성관이 엊그제

까지 쓰다가 의외에 또 서울서 무예별감 한 분이 내려와서 그 방마저 뺏기구 지

금은 안방에 가서 상궁마마를 뫼시구 있습니다. 몸이 부실하 주인 성관두 방 한

간을 따루 못 쓰니까 다른 식구야 더 말할 것이 있습니까. 굿당에 가서 일보는

사람은 게서 자구, 여기서 일하는 사람은 잘 때가 되면 모두 이웃집에 가서 붙

여잡니다. 원집안 사람은 몇 안 되지요만, 난데서 일 봐주러 온 사람이 많습니

다. 저 집에 사람 들끓는 것 보셨지요? 굿당은 더합니다. 먼데 사람 이웃 사람

모두 와서 일한답시구 먹습니다. 그래서 종일 먹는 빛입니다. 우선 이 집의 여섯

식구두 넷은 굿당에 가 있구, 둘은 저 집에가 있습니다. 일하러 온 사람보다 먹

으러 온 사람이 더 많으니까 일은 뒤죽박죽이에요. 여러분이 오시거든 서울 손

님과 층하 말구 대접하라구, 저는 말할 것 없구 주인이나 다름없는 제 처가 집

안 사람에게 미리 일러두었는데, 일러둔 보람이 뒤쪽으루 났습니다. 아까 가서

말을 들어보니까 서울 손님 대접하느라구 정신들두 없었지만 첫째 제 자식놈이

똑똑치 않아서 어떤 손님이 오신 것을 알두룩 잘 일러주지 못한 모양이에요. 그

러구 그 자식은 저녁 재축 한번 안 허구 아비 오기만 기다리구 있었답니다. 그

런 탯덩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김억석이의 긴 발명이 아들 사살

로 변할 때 서림이가 “참, 자네 저녁은 어떻게 했나?” 하고 물었다. “아직 안

먹었습니다.” “그럼 우리하구 같이 먹을 걸 그랬네 그려. 지금이라두 밥 한 그

릇 더 내오래서 여기서 같이 먹세.” “아니올시다. 나중 먹겠습니다.” “그럴

것 무어 있나?” “저는 이따가 굿당에 가서 먹을랍니다.” “여기서 자지 않구

또 산 위에를 갈 텐가?” “오늘 밤에는 밤들을 새울는지 모르는데 가봐야지요.

” “어둔데 산에를 어떻게 올라가나?” “날씨가 익어서 불 없이두 다닙니다.

” 서림이가 일변 밥을 먹으며 일변 김억석이와 수작하는 동안에 다른 세 사람

은 거의 밥들을 다 먹어서 서림이도 수작을 그치고 수저를 부지런히 놀리었다.

아랫방과 건넌방에 저녁상을 다 물려내고 김억석이가 무당의 집에 간 동안에

서림이가 다른 세 사람을 보고 “우리가 여기 와 있는 것을 김천만이에게 기별

만 하면 오늘 밤에 술을 먹게 될 테니 억석이 가기 전에 기별 좀 해달라구 부탁

합시다.” 하고 공론을 내어서 세 사람은 다 좋다고 찬동하였다. 김억석이가 굿

당으로 올라간다고 인사하러 왔을 때, 서림이가 보은리에 사람 하나를 보내달라

고 말하니 김억석이는 자기가 분봉상시옆에 사는 김천만이의 집을 짐작한다고

그리 다녀서 굿당으로 가겠다고 하였다. 밤이 이슥하였을 때 서림이의 요량과

틀림없이 과연 김천만이가 술방구리와 도야지 다리와 그외의 다른 음식을 큰 목

판에 담아서 사람을 지워 가지고 왔다. 건넌방의 안식구들은 밤참도 싫고 잠자

는 것이 달다고 일어나지를 아니하여 아랫방에서 김천만이까지 다섯 사람이 닭

이 두서너 홰를 치도록 술장을 보았다. 밤 지나니 단오날이다. 지난 밤에 김억석

이가 굿당으로 올라갈 때 딸보고 말하기를 구경할 자리는 미리 잡아두지마는 늦

으면 남에게 뺏기기 쉬우니 일찍들 나서시게 하라고 한 까닭에, 건넌방의 안식

구들은 첫새벽부터 일어나서 발동하고 아랫방의 늦잠 든 사내들은 안식구들의

성화 같은 재촉을 받고 할 수 없이 일어났다. 술 취하고 밤 깊어서 가지 못하고

한구석에 쓰러져 잔 김천만이는 저의 집에 가서 보고 나중 굿당으로 찾아온다

하고 일어나는 길로 바로갔다. 외인이 간 뒤에 안식구들이 잔소리를 퍼부어서

네 사람이 바쁘게 소세를 마치고 나니 조반상이 알맞게 나왔다. 안방에서 자고

나간 사람들이 건넌방의 일찍 서두르는 것을 보고 가서 말한 모양이었다. 조반

이 일러서 좋건마는 사내들은 입이 습사하고 안식구들은 구경에 들떠서 모두 조

반을 먹는지 만지 하고 상들을 내놓았다. 안식구들이 청석골에서 나올 때는 행세

하느라고 일제히 삿갓을 썼지마느 구경을 가는 데는 삿갓이 말썽이 되어서 쓰자

거니 말자거니 두 패로 갈리었다. 사람 붐빈 구경터에 삿갓을 쥐고 다니기 주체

궂다는 건 쓰지 말자는 패의 말이고, 난잡한 구경터에 얼굴을 내놓고 다니기 창

피하다는 건 쓰자는 패의 날이었다. 마음이 사내와 같은 백손 어머니는 쓰지 말

자는 패의 괴수가 되고 꽃과 같은 황천왕동이 안해는 쓰자는 패의 괴수가 되어

서 나이 젊은 올케가 어머니 비슷한 시누님을 겨우 항거하는데 황천왕동이가 안

해를 버리고 누님에게 가담하고 다른 세 사내마저 황천왕동이를 조력하여 원래

힘이 기운 쓰자는 패가 다시 더 힘을 쓰지 못하게 되어서 안식구는 모두 삿갓을

두고 맨얼굴로 나섰다. 햇살이 아직 퍼지기 전이라 풀섶의 이슬을 염려하여 검

은학골서 나섰으니 무던히 일찍 나선 폭이건만 진언문안을 들어오기 전부터 동

행이 띄엄띄엄 생기고 구융바위 동네 옆을 지날 때는 구경꾼이 앞뒤에 그치지

아니하였다. 송악산 산길을 잡아들었다. 사내들과 안식구 중에 백손 어머니는 평

지나 다름없이 힘 안 들이고 수월하게 걷지마는, 안식구 다섯 사람은 그렇지 못

하여 발을 떼어놓는 것이 차차로 더디어졌다. 황천왕동이의 안해가 맨 뒤에 떨

어지기를 잘하므로 황천왕동이는 올라간 길을 되내려와서 안해의 걸음을 재촉할

때가 많았다. 산 중턱을 채 오기 전에 황천왕동이의 안해가 다리가 아파서 한

걸음 떼어놓기가 약약한데 산꼭대기는 눈에 보이지도 아니하여 남편에게“인제

얼마나 남았소?” 남은 길을 물어보다가 “아직 멀었어.” 대답을 듣고는 다리

가 갑자기 더 아파져서 “난 다리가 아파 못 가겠소. 좀 쉬어나 갑시다.” 하고

길가에 주저앉았다. 황천왕동이가 웃으면서 “내가 업혀가 보지.” 안해를 조롱

한 뒤 앞서 가는 일행에게 쉬어가자고 소리를 쳤다, 한 굽이 위에 앉아 쉬기 좋

은 널으석바위가 있어서 황천왕동이가 안해를 끌고 더 올라와서 길 옆에 있는

반석 위에 일행과 같이 앉아 쉬었다. 일행 중에 여편네가 많고 여편네 중에 나

이 젊은 새댁네가 많고 새댁네 중에 얼굴 고운 황천왕동이의 안해가 여러 사람

의 눈이 반석 위로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옆으로 보며 가다가 다시 뒤로 돌아

보는 사람까지 더러 있었다. 황천왕동이의 안해가 길을 걸어올 때는 길만 보고

걸은 까닭에 남들이 자기를 보는지 안 보는지 잘 몰랐다가 앉아 쉬는 동안에 비

로서 아니, 여러 사람의 눈에 많이 자기 몸에 와서 실리는 듯 몸이 근지러워서

옆에 앉은 남편을 보고 “삿갓을 쓰고 왔으면 좋을 것을 공연히 쓰지 말라고 해

서 남들이 보는 것 창피해 못 견디겠소.” 하고 매원하였다. 황천왕동이는 속으

로 은근히 자랑할 일같이 생가되어서 싱글벙글 웃기만 하는데 백손 어머니가 올

케를 돌아보며“어떤 놈이 보든지 자네만 본체만체하면 고만 아닌가.” 하고 타

박을 주었다. 쉬고 일어난 뒤 한동안은 “아이구 길도 험해라.” “이런 데를 어

떻게 밤에 올라다닐까?” “무서워 못 가겠소. 나 좀 붙들어 주우.” “먼저들 가

지 말고 같이 가요.” 이런 말들을 지껄이던 안시구 다섯 사람이 한참 동안 가

파른 길을 도두밟고 나서는 숨이 턱에 닿아서 말 한마디 지껄이지 모하고 땀을

철철 흘리고 걸음을 통히 걷지 못하였다. 사내 네 사람이 걸음 못 걷는 안식구

다섯 사람을 앞세우고 올라오면서 떠밀어 주기도 하고 붙들어 주기도 하게 되었

다. 그러자니 자연 내외끼리 손을 맞잡을 때가 많아서 곽능통이의 안해 하나만

외톨로 비어지는 것을 백손 어머니가 보고 “여게, 마누라 이리 오게. 우리도 손

붙잡고 가세.” 사내의 목소리를 흉내내서 말하여 일행이 다 웃을 뿐 아니라 같

이 가던 다른 구경꾼까지 웃었다. 참내외 네 쌍, 거짓 내외 한 쌍 각각 쌍을 지

어서 붙들고 올라왔다. 서림이의 안해는 부끄럼이 없을 나이라 말할 것이 없고

배돌석이의 안해는 사람이 당돌하고 길막봉이의 안해는 사람이 어리무던하여 모

두 부끄런 줄을 모르나, 오직 황천왕동이의 안해만은 외모와 같은 고운 마음에

여러 사람 보는데 사내에게 손목 잡힌 것이 부끄러워서 걸어가는지 끌려가는지

발이 건공중에 놓이는 것 같았다. 올라가고 도 올라가고 올라 가는 길이 끝이

없는 듯 지루하여 이렇게 고생할 줄 알았다면 오지 아니할 것을 공연히 왔다고

구경온 것을 속으로 후회까지 하였다. 앞서 가던 사람 중에서 누가 “인제 다

왔다!” 하고 외치는 소리에 황천왕동이의 안해는 귀가 번쩍 뜨이어서 줄곧 들

지 못하던 얼굴을 비로서 쳐드니 집체 같은 큰 바위가 머리 위에 솟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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