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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8권 (1)

카지모도 2023. 6. 25.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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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8권

 

 

송악산

 

송악산은 송도의 진산이요, 국내의 서악이니 산신 송악대왕이 영검하기로 유

명하였다. 태조 개국 후 2년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기 전에 팔도 성황을 벼슬을

봉하는데 송악산 성황은 진국공을 봉하고, 화령, 안변, 완산 성황은 계국백을 봉

하고, 금성산, 계룡산, 감악, 백악, 삼각산 성황과 진주 성황은 호국백을 봉하고,

그외의 성황들은 몰밀어 호국지신이란 칭호를 주었다. 이로써 송악산은 성황 중에

지위가 가장 높았다. 성황과 산신이 이름은 다르되 나라에서 봉한 진국공과 민

간에서 일컫는 송악대왕이 실상 한 귀신이건만, 진국공 위패를 받드는 성황당과

송악대왕 목상을 뫼신 대왕당이 각각 따로 있고 그외에 출처 모를 귀신들을 위

하는 국사당, 고녀당, 부녀당이 있어서 송악산 위에는 신당이 자그마치 다섯이나

되었다. 다섯 신당에 매달려 사는 무당과 박수들은 서울 반연이 많아서 재상가

와 궁가는 고사하고 대궐 안에까지 셋줄이 닿는 까닭에 유수부 관속들이 함부로

침책할 마음을 먹지 못하였다. 대왕대비나 왕대비의 몸을 받은 내인들이 치성이

나 기도하러 내려와 있을 때는 유수사또도 끔쩍을 하지 못하니 그 아래 관속들

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궁중으로부터 여염간에까지 송악산을 위하는 것이 성

풍하던 시절이라, 다섯 신당의 굿 장고 소리가 사시사철 그치지 아니하는 중에

봄, 가을보다 여름, 겨울이 심하고 겨울보다 여름이 더 심하고 여름에는 오월굿

이 가장 많고 오월에는 단오날 굿이 제일 굉장하였다. 단오날은 다섯 신당에서

함께 모여 큰 굿판을 차릴 뿐 아니라 대왕부인이 그네를 뛴답시고 대왕당의 목

상을 들어내다가 그네 뛰는 시늉을 내게 하였다. 대왕부인이란 대체 무엇인가.

어느 때 어떤 무당이 대왕의 신이 내렸다 하고 홀아비로 지내기가 적적하니 부

인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말하여 대왕 목상 옆에 계집의 목상을 해 앉히게 되었

는데, 이것을 대왕부인이라고 일컬었다. 그네 뛰는 것은 사내, 여편네가 다같이

하는 놀음이라, 대왕부인이 그네를 뛴다고 말하지마는 대왕부인의 목상만 그네

를 뛰게 할 뿐 아니라 대왕의 목상도 그네를 뛰게 하고 더구나 대왕과 대왕부인

의 두 목상을 함께 쌍그네도 뛰게 하였다. 목상이란 나무토막이니 나무토막이

그네를 어찌 뛰랴. 목상을 그네 밑싣개 위에 올려 세우고 떨어지지 않도록 잡아

매고 무당과 박수가 뒤에서 물을 먹이는 것이니 송악대왕이 염검한 귀신이라면

무당과 박수에게 벌역을 내릴 듯한 설만한 장난이다. 대왕부인과 대왕이 쌍그네

뛰고 난 뒤에 그 그네 위에 한번 올라만 서도 불화한 내외 화합하고, 무자한 사

람 생자하고, 또 다병한 사람 무병장수한다고 무당, 박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

는 어리석은 남녀들은 그네 맨 동구나무 아래 백차일치듯 모이어서 그네 참례하

려고 서로 떠밀다가 다쳐서 병신 되는 사람까지 생길 때가 있었다. 단오날 부중

에 편쌈이 있고 씨름판이 있어서 구경꾼이 더러 갈리지마는 대왕당 그네 뛰고

큰굿 구경하고 또 사람 구경하려고 부중에서 쏟아져나오고 촌에서 밥 싸가지고

들어오고 원처에서 노자 써가며 전위해 와서 송악산이 사람산으로 변하도록 사

람이 들끓었다. 남녀가 뒤섞여서 비비대기치는 판에 난잡한 일이 생기는 건 예

이제가 없겠지만, 그래도 일 년 전이 옛날로 해마다 점점 더 심하여 서로 눈이

맞은 젊은 것들이 으슥한 곳을 찾아다니는 것도 훨씬 많아지고 삼삼오오 떼를

지어 돌아다니는 왈자패가 처녀와 유부녀를 우격다짐으로 욕보이는 일도 종종

생기어서 예법을 아는 선비님네는 눈살을 찌푸리고 말세가 다 된 것을 탄식들

하였다. 이 해에 나이 열 살 된 왕세자를 관례시키고 장차 세자빈을 간택하게

되었는데, 대왕대비는 귀중한 손주님을 위하여 오월 오일 천중절에 송악산에 큰

치성을 드리기로 작정하고 미리부터 분부를 내리었었다. 사월 보름께 내인 두엇

이 먼저 내려와서 송악산 신당들을 봉심하고 사월 그믐께 대왕대비의 신임을 받

는 늙은 상궁이 무수리, 각심이, 교군꾼 여러 사람을 거느리고 미곡, 과품, 포목,

여러 바리 봉물을 영거하고 단골무녀에게 내려와 앉아서 모든 준비를 정성껏 차

리었다. 송악산에서 나라 혼인의 여탐굿을 한다고 소문이 굉장히 높이 나서 경

향 각처에서 전에 구경 안 오던 사람까지 구경을 오려고 벼르게 되었는데, 부근

사람들은 단오날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원처 사람들은 오월을 잡아들며 벌

써 송도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청석골 꺽정이패 도중에도 송악산 굿구경을 가

고 싶어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그중에 배돌석이의 안해는 구경을 가면

반드시 오래 그린 동생도 만나보게 되고 아비의 데리고 사는 무당도 상면하게

될 터이라 기어코 몸을 달이었다. 대장의 허락을 맡아내라고 남편을 오복전같이

조르는 중에 그 동생아이가 아비와 계모를 따라서 송도를 온 길에

누이를 찾아보러 왔는데, 그 아비가 기별하기를 검은학골 대왕당 큰무당의 집

근처에 사처방까지 말하여 놓았으니 내외 같이 구경을 나오라고 하고 또 여러

두령댁 내권과 함께 작반하여 나온다면 널찍한 방 하나를 더 변통해 보마고 하

여 배돌석이의 안해는 동생의 얼굴 보니 반갑고 아비의 기별 들으니 좋아서 깡

충깡충 뛰다시피 하였다. 꺽정이 집 사랑에 여러 두령이 모여앉은 자리에서 배

돌석이가 김억석이의 기별한 사연을 말하고 자기의 의견으로 여러 두령집 안팎

식구가 다같이 구경을 갔으면 좋겠다고 말한즉, 맨 먼저 황천왕동이가 재치있게

“굿구경하구 떡이나 얻어먹으러 갈까? ” 하고 콧살을 짊어지고 그 다음에 곽

오주가 심술굿게 “나라 여탐굿은 무슨 별놈의 굿인가? ” 하고 입귀를 실쭉하

였다. 그 뒤를 달아서 다른 두령들이 구경가는 것을 좋으니 그르니 말하는데 꺽

정이는 잠자코 듣기만 하더니 남 나중에 “여러 집 식구가 다 간다면 사람이 여

간 많은가. ” 불쾌스럽게 말 한마디 하였다. 불쾌할 것도 없는데 불쾌스럽게 말

하는 것은 꺽정이의 버릇이고 그 어운으로 보면 꺽정이도 가고 싶은 마음은 없

지 않으나 동행이 많은 건 좋지 않아서 주저하는 모양이었다. 눈치 잘 채고 비

위 잘 맞추는 서림이가 꺽정이를 보고 “그렇지요. 여러 집 안팎 식구가 죄다

가면 사람이 좀 많습니까. 그렇지만 안 갈 사람두 있구, 못 갈 사람두 있을 테니

까 먼저 안식구들 중에 갈 사람이 몇이나 되나 물어보구, 그 담에 대장께서 몇

분 두령을 지정하셔서 데리구 가게 하시면 좋지 않을까요? ” 하고 말하니 꺽정

이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황천왕동이가 안에 들어가서 대장의 명령이라고 뒤설

레를 떨어서 각 집 안식구를 한 자리에 모아놓고 굿구경 갈 생각이 있나 없나

각기 말하라고 하였더니, 공연히 긴 사설들만 늘어놓아서 한 사람씩 차례로 가

느냐 안 가느냐 다져보았다. 꺽정이의 누님 애기 어머니는 구경가고 싶은 마음

이 없지 않았으나 나이보다 숙성하여 제법 계집아이 꼴이 박힌 애기를 난잡한데

데리고 가기도 싫고 구경 좋다는 소문을 듣고 지각없이 가고자 하는 애기를 떼

어놓고 가기도 어려워서 자기까지 고만두고 안 간다고 하고 꺽정이의 안해 백손

어머니는 태기인지 병인지 잘 먹지 못하고 시늠시늠 앓는 중인데 가겠다고 말하

여 가는 것이 부질없다고 애기 어머니가 타이르고 집에서 조섭하는 것이 좋다고

오가 마누라가 권하여도 그예 간다고 고집을 세우고 오가의 마누라는 한편 다리

가 불인하여 행보가 어려운 까닭에 안 간다고 하고 이봉학이의 소실은 아들아이

가 성치 않아서 못 가겠다고 하고 박유복이의 안해는 굿에 혼이 난 사람이라 굿

이란 건 꿈에도 보고 싶지 않다고 안 간다고 하고 배돌석이의 안해는 혹시 가지

못하게 될까 겁을 내는 사람이니 더 말한 것이 없고 황천왕동이 저의 안해는 시

누님이 가게 되면 따라간다고 하고 길막봉이의 안해도 간다고 하고 서림이의 안

해도 간다고 하고 이외에 또 곽능통이의 안해가 간다고 하여 안식구의 구경 갈

사람이 모두 여섯이였다. 황천왕동이가 사랑에 나와서 안식구들의 가고 안 가는

것을 자세히 말한즉 꺽정이는 백손 어머니의 간다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아니하여

“너의 누님은 가지 말라구 일러라. ” 하고 말하였다. 황천왕동이가 “녜. ”

하고 대답하면 고만일 것을 “왜 누님은 가지 말라세요? ” 하고 물어서 꺽정이

의 비위가 거슬리었다. “가서 이르라면 이르지 무슨 잔소리냐! ” “애기 어머

니하구 오두령 부인이 조만이 말해두 자꾸 간다구 고집을 세우던데 내가 말해서

고만둘라구요. ” “내 말루 이르란 말이야. ” “그럼 형님이 친히 말씀하시오.

” “내 심부름을 못하겠단 말이냐! ” 꺽정이의 언성이 높아졌다. 황천왕동이가

다시 안으로 들어간 뒤에 서림이가 꺽정이의 역증을 죽이려고 “태기시라구 말

들 하니 정말 태기시라면 근 이십 년 단산하신 끝에 희한한 일입니다. ” 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서림이를 돌아보며 “태긴지 무언지 누가 아우? 그렇지만 잘

먹지두 않구 앓으니까 앓는 사람이 구경이 다 무어란 말이오? ” 하고 대답하였

다. “태기시든 병환이시든 좀 행기하시는 건 해롭지 않을 걸요. ” 서림이의 두

번째 말을 꺽정이가 대답 않고 한참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안으로 들어갔다. “

왜 가지 말라느냐? ” “내가 가지지 말라우? 형님이 가지 말라지. ” “형님이

구 누구구 왜 가지 말란 말이야? ” “그야 낸들 아우. 형님더러 물어보시구려.

” “너 좀 가서 물어보렴. ” “난 싫소. ” “누이 말은 하치않으냐? ” 백손

어머니가 황천왕동이와 아귀다툼하듯 말하는 것을 애기 어머니가 딱하게 여겨서

가로막고 나섰다. “자네가 몸이 성치 않으니까 조심이 되어서 가지 말라는 게

지. ” “조심이오? 그런 성가신 조심 고만두라시오. ” “엊그제

내가 대장더러 자네가 태긴가 부다고 말하니까 대장이 좋아하면서 .” “고만

두어요. 다 알았세요. ” “무얼 다 알았어? 남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말하게. ”

“태기가 무어요? 죽을 병이지. ” “글쎄. 내 말을 들어봐. ” “듣고 싶지 않

아요. ” “듣고 싶지 않다면 고만두겠네. ” 방문 밖에 섰던 졸개 계집들이 “

대장께서 듭십니다. ” 외치는 바람에 방안의 여러 사람이 일시에 모두 일어났

다. 혹은 윗간에서 대청으로 나가고 혹은 아랫간에서 윗간으로 내려갔다. 꺽정이

가 아랫간에 들어와 앉아서 고개만 끄덕끄덕하며 각집 안식구들의 인사를 받은

뒤에 아랫간 한구석에 비켜 섰는 백손 어머니를 보고 말을 내었다. “자네는 구

경 못 가네. ” “왜 못 가요? ” 백손 어머니는 한바탕 시비를 차리려는 것같

이 앉아서 몸을 도사리었다. “아프다구 밥두 잘 안 먹는다며 구경이 무슨 구경

이여? ” “구경은 고만두고 쌈을 하려 나가래도 나갈 테니 염려 마시오? ” “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마라! ” “글쎄, 내 몸은 염려 말아요. 그리고 그런 고

마운 염려는 두었다가 서울 기집년들이나 염려해 주시구려. ” 백손 어머니 말

에 강짜가 섞여 나오기 시작하였다. 꺽정이가 대번 불호령으로 윽박지를 듯한데

도리어 껄껄 웃고 “기집년의 소견이란 할 수가 없다. ” 말하며 보기 좋은 채

수염을 쓱쓱 쓰다듬었다. “소견 넓은 사내 다 보았소. ” “허 그거 참. ” “

나를 정히 못 가게 한다면 도망이라도 해서 갈 테니 그리 아시오. ” “어디 도

망해 보게. ” “어쨌든지 가고야 말 테요. ” “못 간다거든 못 갈 줄 알아. ”

“내가 따라가면 구경터에서 잡년들의 궁둥이를 쫓아다니기가 거북할 테니까 그

래 나를 못 가게 하지요. 나도 속을 다 알아요. ” “무엇이여? 별 우스운 년의

소리를 다 듣겠네. 자네만 가지 말라는 게 아니야. 나두 안 갈 텔세. 인제 더 할

소리 없지? ” “나는 꼭 한번 가야겠소. ” “꼭 갈 일이 무언가 말하게. ” “

꼭 갈 일이 있소. ” “공연히 악지를 부리느라구 자네가 그렇게 내 말을 어기

면 다른 사람까지두 다 못 가게 할 텔세. ” 꺽정이의 말 한마디에 구경을 간다

던 여러 여편네가 모두 낙심이 되었다. 꺽정이가 사랑으로 나간 뒤에 배돌석이

의 안해가 곧 울상을 하고 백손 어머니 옆에 외서 붙들고 매어달리다시피 하며

“우리들 구경 가고 못 가는 것이 형님 손에 달렸으니 형님 좀 생각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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