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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8권 (4)

카지모도 2023. 6. 28.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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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아래 굽이진 길을 돌아서 올라가니 건너편 산등갱 위에 당집이 여러 채 있

고 또 이편 이편 큰 바위 비슷 뒤에 큰 당집 앞 비탈 위에 둥구나무가 섰고 그

둥구나무에 그넷줄이 매어 있었다.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길은 그네터 옆에 층

층대요, 건너편에서 이편으로 다니는 길은 장등 위에 있었다. 장등은 좌우쪽으로

휘어서 활등 같고 장등 아래는 비탈이고 비탈 아래는 평바닥인데 평바닥도 물매

되지 않는 지붕만큼 지울어졌다. 기울어진 평바닥에 멍석을 죽 늘여깔고 차일을

높이 친것이 굿할 자리를 만들어놓은 모양이었다. 여러 당집에 사람들이 들락날

락하고 장등길에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고 길 위의 잔디밭에 사람들이 웅긋쭝긋

섰기도 하고 또 퍼더버리고 앉았기도 하고 굿은 아직 시작이 안 되었는데 굿할

자리에도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쌍을 지었던 내외들이 각각 떨어져서 서로 뒤

섞일 때 황천왕동이는 먼저 층층대를 뛰어올라가서 큰 당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얼마 아니 있다가 김억석이와 같이 나오면서 층층대 아래에 모여 섰는 일행을

올라오라고 손짓하였다. 김억석이가 일행을 인도하여 여로 굿당을 잠깐잠깐 구

경시켜 주었다. 이편의 큰 당집이 곧 대왕당인데 대왕당 앞은 한편에 매로바위

가 있고 한편에 그네터가 있고 매로바위로부터 그네터까지 아래가 모두 낭떠러

지 아니면 비탈이라, 앞마당이 좁디좁아서 큰 당집에 어울리지 아니하였다. 건너

편에 있는 네 당집은 성황당 . 국사당 . 고녀당 . 부녀당인데 바로 북성문 안이

요, 북성문 밖으로 달리골이 내려다보이었다. 김억석이가 대왕당에서 가까운 비

스듬한 잔디밭에 미리 자리를 잡고 멍석 한 닢을 깔아두었는데, 멍석은 작고 사

람은 많아서 사내들이 안식구를 편하게 앉히려고 멍석 밖에 나가 앉으니 김억석

이가 이것을 보고 멍석 한 닢을 더갖다 깔아주어서 사내와 안식구가 모두 멍석

위에 다리들을 뻗고 앉았다. 조반을 설치고 왔단 말을 김억석이가 딸에게서 듣

고 요기할 떡도 가져오고 군입 다실 과실도 가져왔다. 김억석이가 뻔질 자주 올

뿐 아니라 억석이의 처 되는 무당이 그 바쁜 중에 일부러 와서 보고 또 억석이

의 아들이 심부름하려고 아주 옆에 와서 있었다.

해가 차차 높아갈수록 구경꾼이 더욱 올려밀려서 굿당 근처에 사람이 와글와

글하게 되었다. 구경꾼에 여편네가 사내보다 더 많은 듯 푸른 나무 사이에 울긋

불긋한 무색옷이 꽃밭을 이루었다. 서울서 내려온 상궁 일행이 늦게야 비로서

올라오는데, 상궁 탄 보교가 사람을 헤치고 오는 품이 기구 있어 보이어서 누가

보든지 부러울 만하였다. 황천왕동이의 안해가 올라올 때 고생한 것을 돌이켜

생각하고 옆에 앉은 배돌석이의 안해더러 “우리는 언제나 저렇게 기구 있게 다

녀볼까?” 하고 한탄하여 말하는 것을 황천왕동이가 어느 결에 듣고서 “나인이

되구 싶단 말이야?” 하고 빈정대어 책망하였다. 각 굿당의 무당과 박수들이 층

층대 아래로 몰여내려가서 상궁이 보교 밖에 나설 때 일제히 문안들을 드리었

다. 상궁은 좌우의 부축을 받고 층층대를 올라와서 대왕당으로 들어가고 상궁

일행과 같이 온 대왕당 큰 무당은 바로 굿할 자리에 가 서서 여러 무당 . 박수

를 지휘하여 차일 친 안에 기욋사람을 들어서지 못하게 금하고 전물상들을 날라

내다가 자리잡아서 벌여놓게 하였다. 이때 해가 벌써 아침때가 지나서 굿 시작

이 늦은 까닭에 전악들이 빨리 악기를 잡고 앉고 무당들이 지체 않고 복색을 차

리고 나섰다. 장고소리가 땅 하고 났다. 큰굿이 시작되었다.

단오날 굿은 예전에는 다섯 굿당에서 각각 하던 것인데, 대왕대비가 왕비 적

에 몸받아 내려온 나인이 별비를 쓰는 데 공평치 못하여 굿당 사이에 말썽이 난

것을 왕비가 알고 이후는 굿을 한테같이 하라고 분부를 내려서 큰굿판 하나를

벌이게 되었고, 대왕부인의 그네놀음을 예전에는 점심 쉬는 동안에 하던 것인데

그네 덕을 입으려고 헛 애쓰는 사람이 연년이 엄청 많아지는 까닭에 큰굿판을 벌

이던 첫해부터 그네놀음을 점심 전에 일찍 하기 위해서 굿을 두세 거리 마친 뒤

에 한 차례 길게 쉬는 동안을 넣게 되었었다. 굿을 처음에 늦게 시작하면 오뉴

월 긴긴 해에도 해동갑하여 겨우 열두거리를 다하게 되므로 뒤를 몰아칠 때가 많

은데, 대왕대비의 치성굿을 겸친 특별한 큰굿은 함부로 몰아칠 수도 없는데다가

시작이 늦게 되었으니 굿판이 밤까지 걸리기가 쉬웠다. 굿판 근처 사람이 겹겹

히 둘러서서 평바닥에 선 사람들은 말할 것 없고 장등 위에 산 사람들도 굿구경

을 잘하기가 어려웠다. 청석골 일행 앉은 자리에서는 무당의 노는 꼴이 잘 안

보이건만, 그래도 보려고 앞에 와서 서는 사람을 비키라고 야단치고, 무당의 지

껄이는 소리가 통 안 들리건만, 그래도 들으려고 옆에서 떠드는 사람을 조용하

라고 책망하였다. 무당이 바가지를 들고 돌아다니며 무엇을 뿌리는 것 같으니

부정풀이가 끝나가는 줄 생각하고 무당이 너푼너푼 절을 하는 모양이니 가망청

배가 시작된 줄 짐작하였다. 가망노래를 하는지 만수받이를 하는지 모르면서도

그래도 바라보고들 있는 중에 굿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일어나더니 대왕당 큰

무당이 여러 무당과 박수들을 데리고 구경꾼을 헤치고 층층대를 올라와서 대왕

당 안으로 들어가고 그 뒤에 기대는 장고를 메고, 전악들은 제각기 악기를 들고

올라와서 대왕당 앞마당에 모여섰다. “대왕부인이 그네 뛰신다!”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리며 굿 구경꾼들이 그네터로 몰려들어서, 둥구나무 아래는 사람이 빽

빽하고 올라다니는 층층대도 사람에 묻히었다. 청석골 일행도 그네터 가까이 가

려고 잔디밭에서 길로 내려오는데 김억석이가 대왕당에서 올라오다가 보고도 사

람에 취하여 정신이 없는지 아무 말도 않고 그대로 지나가려고 하여 일행의 앞

에 섰던 황천왕동이가 그 어깨를 툭 쳤다. “어디루들 가실라구 내려오십니까?

” “자네는 어딜 가나?” “저 건너 무엇 좀 가질러 갑니다.” “자네 바쁜가?

” “바쁘구말구요.” “바쁘더래도 내 말 좀 듣구 가게.” “무슨 말씀입니까?

” “그네를 대왕부인이 뛰고 난 다음에 곧 우리 누님이 뛰게 해드리게.” “그

건 제 수로 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없으면 고만두게. 우리가 해보지.” “상

궁마마가 그네를 뛰신다니까 그 양반이 뛰신 다음에야 다른 사람이 뛰게 될걸

요.” “마마구 별성이구 다 고만두라게. 순리로 말해서 안 들으면 집어치우구

우리 누님을 뛰게 할 텔세.”“그러면 큰일납니다. 대왕대비전 몸 받아가지구 온

상궁마마를 조금이라두 건드리시기만 하면 뒤가 무사할 리 만무합니다.” “뒤

가 무사하지 못하더래도 겁 안 나니 염려 말게.” “굿당은 결딴나구 저는 죽습

니다. 제발 덕분에 고만둬 줍시오.” “바쁜데 고만 볼일이나 보러 가세.”“아니

올시다. 고만두시겠단 말씀을 듣지 않구선 갈 수가 없습니다.” “내가 고만두구

싶지 않은 걸 자네 말루 고만두어?” “나중 뛰시면 어때서 그러십니까. 그네

뛰는 보람은 대왕께서 굽어 살피시기에 달렸지 처음 나중에 달린 것이 아닙니

다.” “인제 잘 알았네. 고만 가게.” 황천왕동이는 그예 자기 누님을 상궁보다

먼저 그네뛰게 할 생각이 있어서 김억석이의 말은 귀담아 듣지도 아니하였다.

황천왕동이가 김억석이와 수작하는 동안이 비록 잠시 동안이지만 적지 않은 일

행이 넓지 못한 길을 차지하다시피 하여 다른 구경꾼들에게 이아치고 부대껴서

가만히 섰을 수가 없으므로 길을 틔워놓고 대왕당 담 옆으로들 들어섰다. “이

야기가 길거든 이리 와서 이야기를 하게.” 배돌석이가 소리쳐 불러서 김억석이

는 먼저 오고 또 백손 어머니가 손짓하여 불러서 황천왕동이는 뒤에 왔다. 백손

어머니가 김억석이더러 “그네를 맨 첫번에 뛰면 보람이 더 날 것 같은데 참말

먼저 뛰나 나중 뛰나 매한가지요?” 하고 물어서 “아까두 말씀을 여쭸지만 보

람은 대왕의 영검이 내리시기에 달렸으니까 맨 처음에 뛴다구 보람 있으란 법두

없구요, 맨 나중에 뛴다구 보람 없으란 법두 없습니다.” 김억석이가 대답하는

것을 황천왕동이가 옆에서 “그건 자네가 공연한 말일세. 먼첨 뛰는 것이 좋기

에 상궁이 맨첫번에 뛴다는 것 아닌가?” 하고 타박을 주니 “제가 공연한 말을

할 리가 있습니까. 작년에 국사당 성관의 사촌되는 속병 있는 아낙네가 맨 첫번

에 그네를 뛰었다는데 그 속병은 지금두 전이나 마찬가지랍니다. 그러구

그 아낙네의 시누이는 십년 소박뜨긴데 나중에 뛰었건만 대왕의 영검이 내리셔

서 내외가 곧잘 살게 되었답니다. 지금 두 아낙네가 다 국사당에 와 있습니다.

만일 제 말이 미심하거든 그 아낙네를 대어 드릴께 친히 물어보십시오.” 김억

석이는 저의 말의 증거될 만한 사실을 들어서 주작부언 아닌 것을 구구히 발명

하였다. 백손 어머니가 대왕당 그네를 뛰려고 오기는 실상 신병 때문이 아니다.

남더러 말하는 신병을 내세웠지만 자기의 속생각은 따로 있었다. 남편이 원체

계집을 좋아하여 딴 계집 보는 일은 자기 알기에도 종종 있었지만 아주 들여앉

혀서 데리고 산 일을 한번도 없었는데 늦게 바람이 일었는지 서울 가서 계집을

들여앉힌 것이 첩도 아니고 안해라고 하고,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된다고 하니

남에 없이 된시앗을 본 셈이다. 그 뒤로 남편이 자기에게 하는 것도 전 같이 않

거니와 자기 역시 남편에게 대한 향념이 전만 바이 못하여져서 어떻게 하면 내외

사이가 전과 같이 탐탁하여질까 살풀이도 하고 싶고 예방도 하고 싶던 차에 대

왕당 그네가 보람 있단 말을 듣고 머리악을 쓰고 온 것 이다. 일심정념으로 그

네를 뛰러 왔으니 보람은 남에게 앗기지 않도록 남들 뛰기 전에 먼저 뛰고 싶었

으나, 김억석이의 말을 듣고 본즉 그네를 나중 뛰고도 신통한 보람이 있다는 바

엔 구태여 말썽을 내가며 첫번 뛰려고 할 것이 없었다. “먼저 뛰려고 애쓸 것

이 없으니까 말썽을 부리지 마라.” 백손 어머니가 동생더러 말을 일렀다. 황천

왕동이가 누님의 말은 대답 않고 김억석이더러 “그럼 상궁이 뛴 담에는 아무가

뛰어도 좋은가?”하고 물으니 “상궁 일행의 뛸 사람이 다 뛴 담에, 인제 그네

들 뜁시오 하고 외친다니까 외친 뒤에 뛰시두룩 합시오.”하고 김억석이가 대답

하였다. “한 년이 뛰나, 두 놈이 뛰나 남이 먼저 뛰기는 매일반이니까 아무래두

좋지.” “저는 여러분이 말썽을 내실까 봐 겁이 더럭 났었습니다.” 김억석이는

비로소 안심이 되는 것같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배돌석이의 안해가 앞으로 나

서서 “아버지 너무 지체되어서 지청구나 듣지 않으시겠소?”하고 말을 하니 김

억석이가 한번 웃고 “너두 그네를 뛸 테냐?”하고 물었다. “뛰게 되면 뛰지요.

”“참말루 여러분들이 그네 뛰는 법이나 다 아시나?” 김억석이가 딸에게 말하

면서 여러 사람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뛰는 법이 무어예요?” “이 그네는 남

이 뛰는 그넷줄이 몸에 와서 다면 지궐을 입는다구 대기다. 굿당 식구들만 기하

지 않는데 그 대신 굿당 식구들은 그네를 뛰어두 보람이 없단다. 그래서 처음에

그네를 차지하려구 우들 달려들다가두 한 사람이 그네에 올라서면 다른 사람은

그넷줄이 몸에 닿지 않을 만큼 피해 서서 그 사람이 다 뛰구 내려오기를 기다리

구 오래 뛰면 고만 뛰라구 소리는 질러두 가서 붙잡지는 못한단다. 만일 질감스

럽게 오래 그네를 놓지 않으면 굿당 식구가 가서 말한다더라.” “그네를 서로

뺏지 못한단 말은 우리도 듣고 왔세요.” “응, 듣구 왔어?” 김억석이는 딸과

말을 다한 뒤에 여러 사람을 보고 “인제 고만 갑시다.”하고 건너편 굿당으로

건너가고 여러 사람들은 “그네를 맨 첫번에 뛰지 않을 바엔 일찍 가서 사람들

틈에 부비대기치느니 도루 자리에 가서 앉았다가 나종 갑시다.” 황천왕동이의

발론을 쫓아서 다시 멍석자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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