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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8권 (5)

카지모도 2023. 6. 29.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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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과 박수들이 그네터 가까이 들어섰는 사람들을 훨씬 뒤로 물리고 그네터

옆에 새 멍석을 깔고 멍석 위에 등메를 덧깔고 그리하고 풍악을 잡히면서 대왕

과 대왕부인의 목상을 조심조심 받들어 내다가 등메 위에 세워놓았다. 장고 멘

무당과 징 든 무당이 저, 피리, 해금 등속을 가진 악수들을 데리고 그네 뒤에서

멀찍이 둘러섰다. 장고소리로 풍악이 시작되며 대왕을 그네 위에 올려세웠다. 함

진아비의 질삐와 같고 내행 보교의 얽이와 같은 무명 끝으로 아래위를 동여매는

데, 아랫도리는 좌우쪽 그넷줄에 각각 따로 잡아매었다. 젊고 끼끗한 무당들이

그네 뒤에서 슬쩍슬쩍 물을 먹이면서 바로 세게 먹이는 것처럼 ‘이잇’소리들

을 질렀다. 얼마 동안 그네가 나갔다 들어왔다 한 뒤에 징소리로 풍악이 그치며

대왕을 그네에서 끌러내렸다. 대왕 다음에는 대왕부인이 차례인데 장고소리 나

며 올려세우고 풍악소리 중에 동여매고 물먹이고 징소리 나며 끌러내리는 것이

다 똑같고 동안만 좀더 길었다. 건너편 굿당으로 가던 김억석이는 어느 틈에 돌

아왔는지 무명 여러 끗을 풀어주고 사려놓은 것으로 일 한 몫을 보고 있었다.

대왕과 대왕부인의 어우렁그네는 그네 너비에 두 목상을 어울려 세울 수가 없으

므로 몹쓸 장난꾼들이 부끄럼타는 신랑 신부를 마주 앉히고 한데 동이듯 두 목

상을 배 맞춰서 잔뜩 동인 뒤에 따로 유난히 크게 만든 밑싣개 위에 반을 타서

올려세우고, 위니 아래니 중간이니 할 것 없이 모두 좌우쪽 줄에 단단히 잡아

매었다. 어우렁그네를 사내끼리 뛰는 것도 좋고 여편네끼리 뛰는 것도 좋으나,

사내와 여편네가 섞여서 뛰는 것은 난잡한 짓이라 대왕과 대왕부인이 난잡한 짓

을 하는 까닭인지 풍악소리도 먼저와 달라서 간드러지고 자지러질 때가 많고 물

먹이는 무당들도 ‘이잇’소리 대신에 “잘 뛰신다. 어허 잘 뛰신다!” 말하는

것을 노랫가락 하듯 하였다. 한동안 지난 뒤에 대왕과 대왕부인의 어우렁그네가

끝이 났다. 두 목상을 그네에서 끌러내려서 등메 위에 세웠다가 당집 안으로 받

들고 들어갔다. 무명 끗을 거두고 멍석과 등메를 말고 그네 밑싣개를 바꾸어 끼

우느라고 분주할 때 벌써 한편에서 그네 뛰려는 사람들이 밀려들어서 무당과 박

수들이 결진한 듯 늘어서서 그네 앞을 막으며 그중의 한 박수가 큰소리로 “대

왕대비전 몸을 받아오신 상궁마마께서 뫼시구 상궁마마를 뫼시구 온 여러분이

뛰신 다음에 그네가 날 테니 좀 참으시오.”하고 외치었다. 대왕대비전 몸받은

상궁마마란 말 한마디에 밀려 들어오던 사람들이 겁이 났는지 모두 슬금슬금 뒤

로 물러나섰다. 그 뒤에 상궁이 여러 여편네의 옹위를 받고 그네 앞으로 나오는

데 사람은 늙었지만 복색은 젊어서 아래에는 남치마요, 위에는 옥색 삼회장 겹

저고리다. 그러나 시골서 다들 홑적삼을 입을 때에 겹저고리를 입은 것은 서울

풍속이 아니면 나이 늙은 탓일 것이다. 늙은이가 복색을 젊게 차린 것도 궁중의

항습을 모르는 시골 사람들 눈에 설거니와, 그보다도 더 눈에 익지 못하여 기이

하게 보이기는 머리에 쓴 것이 있으니 그것은 곧 개구리 달린 첩지이다. 젊은

무당 너덧이 상궁을 떠받들어서 그네 위에 올라서게 하고 한번 물을 먹이니 나

간 그네가 다시 들어오기 전에 주저앉으면서 “아이구 어지럽다. 내려다구.”하

고 소리를 질렀다. 무당 하나가 그넷줄을 붙잡고 또 무당 서넛이 상궁을 받들어

내린 뒤에 곧 좌우에서 부축하고 전후에서 호위하고 대왕당으로 들어갔다. 상궁

이 나올 때 옹위하고 나오던 무당 외의 여편네 너덧은 상궁의 뛰는 그네를 피하

여 한옆에 물러섰다가 상궁이 내려온 뒤에 한 사람씩 차례로 나와서 그네를 뛰

는데 제법 줄을 벌려가며 잘 뛰는 사람도 있고 그네터 아래가 비탈진데 겁이 나

서 어린아이들같이 앉은 그네를 뛰는 사람도 있었다. 여편네들이 다 뛰어갈 때

또 복색 다른 사내 서넛이 당집에서 나와서 여편네의 뒤를 대었다. 그네 나기를

고대하는 사람들 중에 여편네들만 뛰고 말기를 바라다가 사내들마저 뛰는 데 속

이 상하든지 “잠깐 잠깐 뛰구 그네 내노시우.” “다른 사람두 좀 뜁시다.”하

고 소리들을 지르니 그네 위에 올라섰는 송기떡빛 군복을 입은 사람이 소리나는

곳을 내려다보며 “소리들을 지르면 일부러 더 오래 뛸 테니 아무 소리 말구 가

만히 있거라.”하고 맞소리를 질렀다. 그 사람 외에 두 사람이 그네를 마저 다

뛰고 나자, 박수 하나가 여러 사람들을 향하고 “자, 인제 그네 났습니다.”하고

소리질러 외쳤다.

대왕당 대왕부인의 그네놀음을 청석골 일행은 멍석자리에 편히 앉아서 구경들

하였다. 그 야단스러운 어우렁그네가 끝나고 상궁이 그네 앞으로 나올 때 백손

어머니가 “우리도 인제 고만 그네터로 내려가지.” 들떼어놓고 말하고 곧 먼저

일어섰다. 다른 사람들이 백손 어머니를 따라서 부산하게 일어서는데 황천왕동

이는 앉은 채 누님을 치어다보며 “나인 일행이 한둘이 아닐 테니 좀더 있다가

가두 좋소.”하고 말하였다. “잠깐 잠깐 뛰면 얼마나 걸릴라구 그래. 미리 가서

기다려야지 남에게 뺏기지 않지.” “첫번은 벌써 뺏겼는데 더 뺏길 거 있소?”

“잔소리 말구 어서 일어나.” “일어나라면 일어나리다.” 황천왕동이가 벗어놓

은 미투리를 발에 꿰면서 “그런데 여보 누님, 이따가 내가 어떻게든지 먼저 들

어가서 그네를 차지할 테니 누님은 내 뒤만 따라오두룩 하시우.” 말하여 백손

어머니가 미처 대답을 하기 전에 길막봉이가 불쑥 중간에 나서서 “그런 구차한

짓 할 거 무엇 있소? 우리 넷이 여러 사람 앞에 나가 섰다가 저기 저 사람들 하

듯이 팔을 벌려서 그네에 못 덤비두룩 막읍시다.” 말하니 여러 안식구들이 모

두 길막봉이의 말을 좋다고 하였다.

일행이 그네터에 가까이 와서 사람이 박히어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 사

내들은 억지로 틈을 뚫고 앞으로 나가서 사람이 많은 층층대 쪽에 힘이 센 길막

봉이가 서고 사람이 적은 대왕당 앞마당 쪽에 힘이 약한 서림이가 서고 황천왕

동이와 배돌석이가 그 중간에 띄엄띄엄 서고 안식구들은 사람 틈에 끼여서 꼼짝

을 못하다가 조금씩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대왕당 담 모퉁이에 여섯이 함께 뭉

쳐섰다. 안식구 중의 백손 어머니는 성미가 겁겁한 사람이라, 상궁 일행의 그네

뛰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홧증이 나서 곧 대왕당 담을 상궁으로 보고 주먹질이

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나기까지 하였다. 그네 났다고 외치는 소리가 나자마자,

여러 사람이 와 하고 그네터로 달려드는데 사내 네 사람이 그네를 등지고 팔을

벌리고 서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못 들어오게 막았다. 사내 네 사람은 곧 청석골

사람들이니 길막봉이는 힘으로 내밀고 배돌석이는 악지로 막고 서림이는 뒤로

차차 밀리는데 황천왕동이가 의사스럽게 박수의 외치던 것을 본떠서 “먼저 일

행들 외에 또 그네 뛰실 행차가 기시니 잠깐만 더 참으시우.”하고 소리를 질렀

다. 여러 사람이 다 무춤하였다. 그 동안에 청석골 안식구들은 앞마당 쪽으로 들

어왔다. 그중의 백손 어머니가 제일 앞서서 거의 그넷줄 앞에 다 왔을 때, 그악

스럽게 아래 비탈로 기어올라오는 여러 여편네 중의 한 사람이 손을 내밀어서

그넷줄을 먼저 잡았다. 김억석이가 청석골 일행 까닭에 일부러 나와서 그네 앞

에서 돌다가 이것을 보고 얼른 그넷줄을 채쳐 뺏어 백손 어머니를 주었다. 백손

어머니가 그네 위에 올라서니 그네 아래로 올라오던 여편네들은 굴러떨어지듯

내려가고 그네 뒤로 들어오던 여러 사람은 등겁들 하여 비켜나섰다. 그러나 억

지를 쓰고 속임수를 써서 그네를 차지하였으니 다른 사람의 마음이 좋을 까닭이

없었다. “행차가 무슨 기급할 놈의 행차야.” “대체 그놈들이 웬놈들인가?”

“그래 저놈들을 가만두어!” “다리뼈들을 퉁겨놨으면 좋겠다.” 이런 욕설이

여기저기 나던 끝에 층층대 쪽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동인 막된 사내 하나가 사

람을 헤치고 앞으로 나오더니 다짜고짜로 발길을 날려서 길막봉이의 등판을 내

찼다. 길막봉이가 백손 어머니의 그네 뛰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무심결에 이

것을 당하였으니, 여느 사람 같으면 반드시 앞으로 고꾸라졌을 것인데 막봉이는

아무 일 없는 것같이 예사로 돌아서서 그 사내를 보았다. 그 사내가 주먹을 부

르쥐고 달려드는 것을 막봉이가 한손으로 그 주먹 쥔 손목을 붙잡으니 그 사내

입에서 대번 아이구 소리가 나왔다. “쌈났다!” 다른 사람들 외치는 소리에 막

봉이는 창피한 생각이 나서 손목을 놓고 그대로 용서하기는 싫어서 괴춤과 허리

끈을 겹쳐서 움켜잡으며 곧 팔이 머리 위로 쪽 뻗치도록 치켜들고 걷어차려고

놀리는 두 팔을 다른 한손으로 제어하였다. 황천왕동이가 쫓아와서 “그깐 놈을

왜 하늘 구경을 시켜주나, 땅 구경을 시켜주지.”하고 부추겼다. “땅 구경이라

니?” “꺼꾸루 들면 땅 구경을 하지.” “어디 하늘 구경, 땅 구경 다 시켜줄

까.” 막봉이가 그 사내를 내려세우며 곧 허리춤을 비틀어 뒤잡고서 꺼꾸로 치

켜들고 다른 한손으로 그 두 손을 놀리지 못하게 하였다. “아이구 죽겠다.” 다

죽어가는 소리가 그 사내 입에서 나자, 곧 옆에 구경꾼들 사이에서 “살인이야!

” 아우성 소리가 났다. 장난꾼 한두 사람이 거짓말로 아이 났다고 떠들어도 사

람들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하는 구경터의 일이라, 사람이 죽지도 않았는

데 살인났다고 헛소동이 생겨서 여러 사람들이 한참 술렁거리었다. 서림이와 배

돌석이가 급히 와서 공연한 소동을 내지 말라고 말들 하고 그네 뛸 차례를 기다

리던 막봉이가 자기 안해와 그네를 다 뛰고 내린 백손 어머니까지 쫓아와서 말

썽을 부리는 것이 부질없다고 말들 하여, 길막봉이는 그 사내를 내려 앉혀놓고

소위로 말하면 단단히 속일 것이지만 그만하고 용서하니 다시는 그런 버릇을 하

지 말라고 바로 점잖게 일러서 놓아주었다. 허위대 큰 장정을 어린아이처럼 다

루는 것을 목도한 여러 사람들은 무서운 장사니 천하 장사니 하고 떠드는데 그

중에 “저게 임꺽정이 아니까?” “임꺽정이는 수염이 좋다는데.” “수염을 몽

탁 잘르고 온 게지.” “구경을 오자구 수염을 잘라?” 이렇게 쑥덕거리는 사람

들도 있었다.

헛 살인소동이 났다가 가라앉는 동안에 그네는 처음에 백손 어머니가 실컷 뛰

고 그 뒤에 서림이의 안해와 곽능통이의 안해와 배돌석이의 안해가 잇대어서 뛰

고 황천왕동이의 안해가 배돌석이의 안해의 뒤를 받아서 뛰는 중인데, 여러 사

람들의 눈이 모두 그네판으로 쏠리게 되었댜. “선녀가 하강하지 않았나?” “

그네터가 홀저에 환한 것 같애.” “고 아주먼네 한입에 꼴딱 집어삼켰으면 좋

겠다.” “나하구 어우렁그네 좀 뛰지 않나.” 사내들 입에서 된 소리 안된 소리

칭찬하는 말이 나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여편네끼리도 “저렇게 이쁜

사람 처음 보았어.” “참말 얌전한데.” 이와 같은 말로 칭찬들 하였다. 황천왕

동이의 안해가 뛰고 난 뒤 끝으로 길막봉이의 안해가 뛰어서 안식구 여섯은 모

조리 다 뛰고 사내 넷은 그네를 다른 여펀네에게 내주라고 하나도 뛰지 아니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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