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들은 늦은 봄볕에 겨워 독한 향기를 뿜어내며 어질머리를 일으켰다. 어떻게
나 야무지게 묶었는지 손톱이 아프게 단단한 밥 보자기의 홀맺음을 풀어 내는
강실이의 손등으로 눈물이 떨어진다. (어쩌다 그리 되시었소... 마음 고생이 얼마
나 자심했으면 이 지경이 된단 말씀이요... 그래도 여기는 어찌 잊지 않고 오시
었소. 아무도 없는데... 형님이 만나실 분도 이제 떠나고 없는데. 형님 못 잊으시
는 그 혼백은 이제 여기 안 계시오. 저재작년 엊그저께 혼인하여 멀리 멀리 구
천으로 떠나셨다오.) 이미 진예는 진예가 아니었다. 그네는 바로 강실이 자신이
었던 것이다. 저물어서야 밭에서 돌아온 오류골댁 내외는 한눈에 진예가 성치
않은 것을 알아보았다. 아무리 방으로 들어가자고 권해도 끝내 마루끝에 쪼그리
고 있는 그네를 그만 그대로 두고 이만치 평상에 마주앉은 내외는 한숨만 쉴 뿐
이었다.
"저것이 실성을 했구만."
"쫓겨나면 어쩔꼬 했드니만."
"차라리 정신이나 성하다면 쫓겨나는 쪽이 백번이라도 낫지 않겠는가. 어느 때는
온당한 벌을 받어 버리는 것이 외나 떳떳할 때도 있는 법이니. 수모받는 바늘방
석보다 차라리 쫓겨나는 것이 나을 때도 있지. 허나, 이것은 제 발로 걸어 나왔
으면서 실성까지 했으니 이런 불쌍헌 노릇이 어디 있어?"
"강수 소문이 거기까지 갔든 모양이지요?"
"아 왜 안 들어가? 징 치고, 장구 치고, 굿허고, 왁짜하게 이쪽에서 들으라고 외
장쳐서 소문을 낸 셈인데."
오류골댁은 대답을 못한다. 원통하게 죽은 강수의 원혼만 생각했지, 설마 그 일
이 엉뚱하게도 진예한테까지 덮어씌워질 줄은 몰랐던 일이었던 탓이다.
"최서방이 거 웬만큼 깡깡헌 사람인가 말이야. 털 뽑아 낸 자리에 그대로 갖다가
박아 놓는 성품 아니던가. 한 치 한 오라기도 틀림이 없는 사람이 오죽했을라
고."
"꼬장꼬장헌 줄이야 누가 모른답디까? 그렇다고 사람이 저 지경이 되게 핍박을
하면 되겠소...?"
"다 저 할 탓이지 무어. 형상은 불쌍허게 되었지만, 최서방 쪽에서 보면 당연히
정이 떨어지고 닥달을 할 수도 있는 일이지. 그래, 처지를 바꿔 놓고 생각을 해
봐. 나라도 최서방만큼 안하란 법 없지."
"무슨 말씀을 그렇게 매정하게 허신다요? 사단이야 어디서 생겼든지 일이 심상
치 않게 되어 벼렸구마는."
"속상허니까 허는 말이지. 누구는 지금 지붕 위에 올라가 춤추게 생겼는가?"
기응은 부싯돌을 찾는다. 따악, 소리가 나게 쳐도 한번에 불이 붙지않는 것이 그
도 어지간히 산란한 것 같았다.
"부모라도 살어 있다면 좀 덜 짠헐텐데."
"살어 있으면 무얼 해? 공연히 생사람들 가슴만 더 뒤집는 것이지. 애당초 이런
일이 나지를 말었어야지. 이왕에 저질러진 일인데 이제 와서 부모가 구존해 있
으면 무슨 수가 생길 것 같아서? 우세 망신에 복장만 터지고 도리어 애꿎은 부
모 속만 상허지."
"그래도 제깐에는 우리가 의지라고 생각되었던 모양이지요?"
삼종숙. 아버지의 팔촌 형제요, 진예한테는 구촌 아저씨가 되는 기응이 가장 가
까운 살붙이란 말인가. 그 한 가닥 촌수의 언저리에 그나마 마음을 두고 찾아들
만큼 진예는 사위가 적막한 처지에 놓인 셈이었다. 물론 남달리 자상한 오류골
댁이 진예를 유독 귀여워한 탓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꼭 그래서만 그네는 이 마
음에 왔을까.
"밥 바구리는 왜 끌어안고 왔을까요? 다른 건 다 놔두고."
"그 속을 어찌 알겄는가. 무슨 포한진 일이 저대로 있을 테지."
"얼른 봐서는 성헌 사람도 같지요?"
"그래서 더 걱정 아닌가..."
"쯔쯧. 전생에 무슨 죄를 짓고 나와 이 모진 꼴들을 당허는고."
한 사람은 비명에 가고, 남은 사람은 실진을 하여 저 살던 동네로 흘러들어왔다.
강실이는 감히 이야기에 끼어들지도 못하고 방안에 죽은 듯이 앉아만 있었다.
짓눌리는 숨이 밖으로는 터지지 못하고 속으로 잦아들어, 그네의 몸은 오그라들
것만 같았었다.
"날 새거든 사람을 보내야지."
"어디로요?"
"어디라니...? 아느실 제 집으로 데려가야 할 것이 아닌가? 저러다가 영락없이
거리에서 객사하고 말텐데, 광에다가 가뒤 놓든지 어디 골방에라도 오그려 앉혀
놔야지."
"거기서 데릴러 오겄소?"
"안 오면 이쪽에서 데려다 주기라도 해야 하고."
아직도 마루 구석에 웅크린 채, 옆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조차도 알아 듣지 못하
는 진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오류골댁이 쯧, 혀를 찼다.
"누가 반가워한다요?"
"아니 무어 반가우라고 손님 가는 일인가? 죽든지 살든지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하는 노릇이니 그러는 일이지."
"그나저나 큰일났소."
"... 큰일이야 진즉에 난 것, 자꾸 말해서 무엇 하누."
기응이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랑으로 가 버린 다음에도 오류
골댁은 한참이나 앉은 채로 움직일 줄을 몰랐다. 강실이는 진예의 이부자리까지
베개 세 개를 나란히 놓았다.
"최실아, 들어가자."
진예의 어깨를 감싸안듯 하며 오류골댁이 타일러 보았지만, 그네는 움쭉도 하지
않았다.
"들어가아, 바람도 차그만."
한낮의 따가운 햇볕에서는 여름 기운이 끼치다가도 해만 지고 나면 밤바람이 쌀
쌀했다. 그것은 매안을 에워싸고 있는 산의 그늘이 밤이면 더욱 깊어지는 탓
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막무가내로 버티는 진예를 붙들고 오류골댁과 강실이가
떼밀다시피하여 가까스로 방문턱을 넘겨 놓았을 때, 별안간에
"내 밥."
하고 진예는 제 앙가슴을 부여안는 것이었다.
"밥?"
오류골댁이 의아하게 되물었다. 강실이는 얼른 알아차리고 정짓간으로 나가 아
까 그네가 안고 왔던 밥 바구니를 챙겼다. 변덕스러운 기운에 쉴까 싶어 살강에
올려둔 대소쿠리에는 아직도 밥이 소복한 그대로 있었다. 그것을 내려 보자기를
걷어내고 밥 바구니에 넣는 그네의 손길은 더디고 떨린다.
"내 밥."
진예가 다시 똑같은 말을 한다. 이게 무슨 소리냐? 왜 밥을 찾어어? 하는 오류
골댁의 목소리가 정지서도 들린다. 강실이는 삼베 보자기로 아까처럼 꽁꽁 묶어
바구니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진예의 무릎에 그것을 안겨 주었다.
그제서야 진예는 바구니에 제 얼굴을 묻으며 조용해졌다. 마루끝에 웅크리고 앉
아 있을 때도 한사코 내놓지 않으려는 것을 억지로 빼앗다시피 하여 정지에 내
다 놓지 않았던가.
"층층이 시어른이요, 돌아보면 시숙, 시아재에다, 동서들 눈치에 저것이 배를 많
이 곯았는가 보다."
에이그으, 불쌍헌 것, 무슨 좋은 세상을 보자고 이런 간난신고를 아직 나이 젊은
것이 겪는단 말이냐. 어찌 그리 박명한고. 좀 모질게 마음을 먹지, 이왕지사 지
나간 일로 그래 창창헌 앞날에 먹물을 들이붓는단 말이냐. 오류골댁은 등잔불을
끄지 못한다. 구석지에 몸을 기대고 앉은 진예는 연신 바깥쪽으로 나가려 하고,
강실이는 그런 진예를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그런 중에도 깜박 잠이 든 모양이
었다. 부유스름한 새벽 빛이 덧문으로 비쳐드는 것에 놀란 강실이가 눈을 떴다.
선뜻한 느낌이 가슴을 지나가는 것을 누르며 방안을 둘러본 그네는 방안에 진예
가 없는 것을 알아챘다. 덧문이 비긋이 열려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
아직도 잠에서 깨지 않은 올류골댁의 어깨를 다급하게 흔드는 강실이의 목소리
는 두려움으로 끊어진다.
"왜?"
오류골댁이 소스라치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강실이를 보는 대신 방안을 한
번 휘 둘러보고는 방문을 열어젖혔다. 바지런한 참새떼가 짹짹거리며 살구나무
가지를 차는 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밤새 이슬에 씻긴 찔레꽃 냄새도 쿡 찔렀
다. 그러나 마당에도 진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 아이가 어딜 갔는고?"
이불을 걷어낸 오류골댁이 무망간에 손바닥으로 머리를 쓸어 다듬으며 마루로
나섰으나 푸르께하게 밝아오는 마당과 헛간 쪽, 그리고 뒤안 어디서도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진예야."
마음이 급하여 소리끝이 잘린다. 강실이는 오류골댁보다 한 걸음 먼저 댓돌로
내려섰다. 그러다가 흠칫 놀라 신발을 꿰다 말고 발을 멈추었다.
"어머니, 여기 신이 그대로 있네요."
"응?"
"신이..."
눈을 몇 번 깜벅거려 눈정신을 가다듬은 오류골댁이 내려다본 댓돌에는 어제 진
예가 신고 왔던 신발이 그대로 놓여 잇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진예는 방안에
있어야 하는데 방안에는 없지 않던가. 허나 사랑채를 따로 지울 수 없어서 대청
건너 기응이 거처하는 사랑방으로 갔을리는 만무하다.
"이게 웬일이까... 좀 찾어봐라. 대관절 맨발로 어디를 갔으까... 아이고, 큰일났구
나."
"밥 바구리?"
그건 왜? 하는 시늉으로 강실이를 바라보던 오류골댁은 순간 짚이는 것이 있었
는지 황망히 방안으로 들어가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없다."
그 말이 들려오자 강실이는 진예가 이미 어디론가 가 버린 것을 짐작 하였다.
그리고 사랍문간 쪽으로 나가 이슬이 걷히지 않은 고샅을 내다보았다. 벌써 누
구네 집에선가 불 때는 연기가 푸른 새벽 공기에 맵싸하게 번지고 있었다. 연기
에 코끝이 매워진다. 코끝만이 아니라 눈자위도 맵다. 그리고 가슴에 매운 기가
속으로 스며들며 저르르 핏줄이 저렸다.
"어디 발자국이라도 있겄냐...?"
어느결에 등뒤에 다가선 오류골댁이 들판과 밭머리에 자욱한 새벽 안개를 아득
하게 바라보았다.
"신도 안 신고 젖은 발로... 에이그으, 불쌍헌 것."
강실이의 망연한 눈에, 바 바구니만을 두 팔로 끌어안고 허청허청 밭둑머리 저
쪽 어디론가 가고 있는 진예의 모습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선연하게 떠올
랐다. 그러다가도 자세히 보려 하면 아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꿈결
같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진예는, 풍문에만, 남원 장에서 보았다는 둥 그것이 아
니라 임실 쪽이었다는 둥 뒤숭숭하게 들려올 뿐 확실한 소식은 알 수가 없었다.
"그 놈의 신짝, 꼴 뵈기도 싫다. 어디 눈에 안 뵈는 데다 집어 내던져 버려라."
해가 저물고, 날이 새고, 몇 날 며칠을 기다려도 몇 달이 가도 소식이 없는 진예
의 신발짝에 눈이 간 기응이 속에서 끓어 오르는 가래가 걸린 소리로 거칠게 말
했다.
"그래도 제 정신 들면 찾으러 올는지 누가 아요? 임자 있는 신을 어디다가 팽개
치겄소? 그러다가 참말로 거리 귀신 되어 버리면 어쩔라고. 나는 지금도, 어디를
맨발로 헤매겄지 싶어서 맘이..."
"실성헌 년이 무어 다 떨어진 제 신짝 찾어 다시 올 것 같어서?"
"아, 마음이라도 담어 두면, 그 정성으로 정신이 깨어날지 모르니 허는 말 아닌
가요?"
에에이이, 집구석 되어가는 꼴 허고는. 기응이 마당에 침을 뱉었다. 평소의 그라
면 거친 소리 궂은 소리는 안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는 점점 모든
일에 역정이 잦아지고 무슨 말을 귀담아 듣거나 대거리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또 오류골댁 역시 보통 때 같으면 웬만한 일에는 내색을 잘 하지 않는 성품이건
만 기응과는 반대로 말대답을 꼬박꼬박 하기 시작했다. (나 때문에.) 강실이는
그런 부모의 모습에 가슴이 죄어들어, 날이 갈수록 그늘진 곳으로만 골라 앉는
버릇이 생겨났다. 할 수만 있으면 마주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그저 무심하게.
"강실아."
하고만 불러도 가슴이 먼저 뛰는 것을 진정하기 어려웠다. 어느 때는 논에서 돌
아오는 기응의 발짝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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