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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3권 (4)

카지모도 2024. 2. 21.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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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아아, 너도 위로넌 부모를 뫼시고, 아래로넌 자석 손자를 키우는 놈이라

먼 이렇게 헐 수가 있단 말이냐아. 내가 오널은 사생결딴을 낼라고 쫓아왔다. 니

가 아무리 가문 좋고 재산이 많다고는 허지마는, 사람의 탈을 쓰고 이렇게는 못

헐 거이다. 있는 사람의 문서에는 논 서마지기가 애기 콧구녁에 코딱지 같은 거

일랑가 모리겄다. 그런디이, 우리 없는 사람은 그거이 아니여어, 그거이 아니라

고오. 너느은 있는 재산에다가 귀 맞출라고 우리 논을 샀겄지마안, 우리는 목심

을 팔어 넹긴 거이다아.아이고오. 아이고오, 이런 천하에 날도적놈아아. 칼만 안

들었제에, 이거이 강도나 한가지제 어디 사람의 지서리란 말이냐. 어서 내 논 문

서 내놔라. 논문서 내놔아. 왜애, 아까워서 그리는 못허겄냐? 그러면 돈을 내놔

얄 거 아니여, 돈으을. 눈도 하나 깜짝 안허고. 넘으 목심을 그렇게 둘러 생킬

수가 있을지 알었냐아? 니가아, 가문 있고 재산 있다고 하늘 무서운지를 모르능

갑지마는, 내가 눈 뜨고는 안 당헌다. 그거이 어뜬 논이라고, 나락 모가지 시퍼

렇게 섰을 때 산 것을, 이때까지도 돈을 안 준단 말이냐? 천지에 백설이 날리

고, 냉돌방에서 자식 새끼가 얼어 죽었는디도, 이 에미가 눈 버언히 뜨고 그것을

쥑였다. 내 눈앞으서 그 에린 거이 배고프고 추워서 죽었다고오. 네 이놈, 너는

니 자식을 잘 멕일라고, 넘으 자식은 얼어 죽고 굶어 죽어도 좋단 말이냐. 이 천

하에 날도적놈아. 그것도 우리 집 논 문서 말어갈 적으는, 금방 돈을 준다고 큰

소리 땅땅 치고 가지가드니, 니 눈꾸녁으는 그거이 종우 쪼각으로 뵈이느냐? 그

거이 종우 쪼각으로 뵈이여어? 공으로 뺏어가다시피 해 놓고는, 그나마도 철을

넹기고 자식을 얼려 쥐이드락 돈을 안 주먼 어쩔 거이냐, 어쩔 거이여?”

쇠스랑을 거꾸로 치켜 든 쇠여울네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머리를 산발하고

저고리 앞자락은 풀어 헤쳐졌는데, 속에는 맨살이다. 쇠여울네 눈은 시뻘겋게 충

혈이 되어 금방이라도 핏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낯바닥이 누렇게 뜬데다가 검

은 기미가 버섯처럼 피어 있어 차마 볼 수가 없는데 입술에는 허연 거품이 물려

있다.

안서방네와 안서방은 그네의 양쪽 팔목을 붙들어 잡고, 쇠여울네가 몸부림치

는 대로 씨름하는 사람처럼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린다.

비록 여자의 몸이지만, 이토록 독이 올라 거품을 뿜으며 날뛰니, 두사람의 힘

으로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말로 허시오, 말로. 우리도 다 귀 있응게에, 말로 하라고요.”

안서방이 쇠스랑을 뺏으려 한다. 쇠여울네는 그런 안서방의 손을 홱 뿌리쳐

버린다. 그 서슬에 안서방은 맥없이 밀린다.

“말로? 말로해서 될 사람한테 말로 허능 거이제, 이런 짐승만도 못헌 놈한테

무신 말로 혀어, 말로 허기는.”

새끼머슴 붙들이와 바우네, 상머슴, 호제, 종들, 할 것 없이 뒤어나와 안팎으로

모두 겹겹이 둘러서서 창황 중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효원은 대청마루에 서 있고, 율촌댁은 댓돌에까지 내려왔다. 이기채는, 얼굴이

샛노랗게 질려서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무어라고 말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쇠여울네가 번쩍 치켜 세운 쇠스랑 끝에 차가운 겨울 햇빛이 섬짓하게 찍힌

다.

그는 이기채를 찍어 내리려고 그러는 것이다.

몇 번이나 허공 중에 헛손질을 하는 그네의 갈라진 손등에는 시퍼런 힘줄이

돋아나 있었다.

“네 이년, 네가 어디서 지금 이런 짓을 허는 게냐?”

이기채가 질려 있던 입술이 겨우 풀리면서 노기를 참지 못하고 발을 굴렀다.

“하이고오, 똥뀐 놈이 썽낸다드니, 날도적놈이 됩대 꼬깔을 씌우능구만 그리

여. 내가니 앞에서 무신 못헐 짓을 했단 말이냐. 내가 무신 못헐 지서리를 했느

냐고오. 오냐, 나는 너한테, 굶어 죽게 생게서 논 팔은 죄배끼는 없다. 그러고 그

돈 못 받은 죄배끼는 없다아. 니가 나를 혼자 사는 예펜네라고 우습게 봤능갑다

만, 나도오...나도오...”

쇠여울네는 말을 잇지 못하고 목이 메어 통곡을 한다.

“그께잇 노무 논밭 뙈기, 느그집 행랑살이만도 못헌 거이다마는, 그것을...어

치께 일군 거이라고...황소 공출해 가고는, 내가...내 모가지에다가...이, 내 모가지

에다가 쟁기 걸고...가래질했던 논이 다아...그 논바닥에 내 눈물로 거름을 줌서

이날끄정 목심같이 여겨왔든 논이라고오...시상에도 웬수에녀르 가뭄 땀새, 딸

자석 하나있능 거 보리쌀에 팔어먹게 생겠길래, 딸년을 팔어 먹느니 논을 팔자,

허고, 내가, 자식을 파는 심정으로 팔었든 논이다, 그 논이...”

쇠여울네는 발을 버르적이면 이기채를 향하여 쇠스랑을 여지없이 내리찍는다.

차가운 햇빛이 파랗게 잘린다.

이기채는 무망간에 옆으로 피한다. 눈 깜짝할 순간의 일이었다.

“허허어. 이런 고약한 년을 보았나. 내가 언제 네 논 판 돈을 떼어 먹었단 말

이냐.너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로, 누구 앞에서 이러는 것이냐. 네 이녀언.”

“오냐, 나는 배운 거이 없어서 이 모양이다마는, 잘 배운 너는 무신 그렇게

잘날 일이 있냐. 너나 나나, 창씨개밍을 허고 일본놈 성씨 따고 이름 따고 일본

놈맹이로 살고 있는디, 머어이 달르냐. 니가 가문이 좋아도 그건 다 옛날 고리쩍

이얘기다. 이께잇노무 집구석, 조상 팔고 이름 갈기는 너나 나나 마찬가지다. 머

어이 그렇게 잘났냐. 머어이 그렇게 잘났어어. 자식 쥑인 년이 겁날 거 하나 없

다. 내가 이놈 니 자식놈도 내 자식 쥑이디끼 쥑일란다아.”

쇠여울네는 홱 몸을 돌이키더니, 맨발로 내리달아 안채의 대청마루까지 단숨

에 뛰어올라간다. 창졸간에 온 집안에 공포가 뒤덮인다. 효원은 건넌방 문고리를

몸으로 틀어 막으며 두 팔을 벌린다. 댓돌 위에 서있던 율촌댁이 뒤따라 치솟으

며 쇠여울네의 뒤에서 팔을 틀어쥔다. 뒤쫓아 올라온 안서방과 머슴, 호제, 종들

이 한꺼번에 쇠여울네를 싸잡는다. 그러나 순식간에 놓치고 만다.

그네는 쇠스랑으로 대청마루를 찍는다.

쿠웅.

쿵.

쇠여울네는 흡사 미친 여자 같았다.

대청마루의 바닥에는 여기저기 쇠스랑 자국이 나서 패어 나간다. 그네는 마루

기둥을 찍는다. 눈에서 푸른 불꽃이 번쩍 번쩍 한다. 그 눈빛과 쇠스랑에서 튀는

살기에 질린 사람들이, 장정인데도 차마 덤벼들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만 있

다.

이기채는 온몸이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한다.

“네 이녀언.”

하더니, 그냥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다. 그의 얼굴이 샛노랗다. 집안의 수라장

에 놀랐는지 철재가 건넌방 안에서 자지러지게 울어짖힌다. 이 뜻밖의 난리에 놀

란 문중 사람들이 창황하게 모여들고, 집안으로 문중의 머슴과 노복, 장정들이

몰려왔다.

거멍굴의 춘복이도, 옹구네와 평순네도 혼비백산 달려왔다.

그 중 한 사람이 눈 깜짝할 사이에 쇠여울네의 뒷머리를 후려쳤다. 춘복이였

다. 그 바람에 그네는 쇠스랑을 놓치고 앞으로 거꾸러졌다.

아랫것들은 한꺼번에 그네를 덮어 누르고 몰매를 때렸다. 춘복이도 장작을 내

리쳤다. 피가 튀었다. 쇠여울네는 온몸에 몰매를 맞으며 방성대곡을 하였다. 창

자가 찢기우는 것 같은 처절한 울음 소리였다.

마을 사람들이 구름같이 둘러서서, 이 영문 모를 참담한 일에 입을 다물지 못

하였다.

“수천샌님을 불러라.”

이기채는 목안에 잠긴 소리로 말했다. 그의 얼굴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낯빛이 백지장같이 질려 있었다. 입술은 안으로 말려 들어가 가느다란 검은 줄

만 보일 정도였다.

붙들이가 달음박질로 중문을 나선다.

“왜 이런당가?”

평순네가 구경하는 사람들 틈으로 얼굴을 비집어 넣으며, 팔짱을 끼고 서 있

는 옹구네에게 묻는다.

“머엇을 왜 이런당가여? 이런 꼴 진작 안 낭거이 됩대 요상시럽제.”

“무신 소리여?”

“내가 이럴 지 알었다고오.”

“무신 소리냥게?”

“샐인 안 낭 것만도 천신이 보살핑 거이여.”

“하이고오. 호랭이 물어갈 노무 예펜네에. 오늘따라 웬 주뎅이가 그렇게 무겁

당가? 싸게 말히여 봐아. 뜸딜이지 말고.”

“인자 이 집안도 다 망허능갑다. 예날 같어 봐라. 죽으라먼 죽어야제 어디다

가 짹, 소리라도 헐 수 있었간디? 시상 참 많이 변해 부렀다. 그렁게, 사램이 오

래 살어야 이 꼴 저 꼴을 보능 거이여.”

쇠여울네는 물 건넛마을 쇠여울에 살고 있는 타성 사람이었다. 마흔을 막 넘

긴 억척스러운 여자로 몇 년 전에 남편을 잃고는 혼잣손으로 서너 마지기의 농

사를 지어 왔었다. 그네는 본디 여섯 남매를 낳았었으나, 어찌 된 일인지, 가운

데로 넷은 차례로 숨이 지고,맨 위로 딸 하나와 맨 끝으로 아들 하나만 남게 되

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아까 낮에 숨을 거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슬아슬 실낱처럼 크던 어린 것은, 이제 일곱 살인데도 머리

만 수박통처럼 크고 맹꽁이배를 불룩 내밀고 다녀서, 그저 기껏 보아야 다섯 살

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거기다가 팔다리는 비비 꼬여 살거죽이 밀리며 히줄거

리는 모양이, 차마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그러등 거이 죽어 분 거이라.”

“왜 매급시 잘 놀든 애기가 죽어?”

“잘 놀기는 무신 지랄났다고 잘 놀아? 안 죽고 살어서 눈 껌벅거링게 목심

붙었능갑다했제잉. 그거이 막 나서도 비일 빌 했거등, 왜 그런디, 요번 여름에

가뭄이 엥간히 극성시럽등가? 봄부터 부황난 놈을 멕일 거이 없어서 그 가뭄에

패싹 말려 놨으니. 에미 맴이얼매나 씨러겄능가잉. 그래서, 독헌 맘 먹고 입도선

매를 했등갑서.”

“나락 모가지 시퍼렇게 선 놈을, 기양 팔어 넹겠구만이?”

“하아. 그런디, 그것도 돈을 바로 줬으면 누가 머이래야?”

“왜? 돈을 안 주었당가?”

“율촌샌님이야 주셌겄지맹.”

“그러먼?”

“머어이 그러먼 이여, 그러먼이?”

“무신 소리여?”

“율촌샌님 살림살이, 수천샌님한티로 아매 반절은 새 들으가 부렀을 거이네.”

“아이고매.”

“아 그렁게, 입도선매 해 부린 쇠여울네는 환장 복통헐 노릇 아닝갑서? 상하

가 있잉게로 차마 재촉도 못허고 눈치만 봄서, 똥마런 강아지 새깽이같이 끙끙

거릿겄제. 그리도 어디 수천샌님이 돈을 주간디?”

“왜 수천샌님이 쇠여울네한테 그 논값을 줘어?”

“아이고오. 이 웬수에녀르 귓구녁은 무신 귀뚝 속이당가? 율촌샌님 넨 논

사고 밭 사능거, 죄다 누가 허간디? 그거 다 수천샌님이 헌다고오. 아, 시방끄장

그것도 몰르고 살었간디?”

“그러먼 수천샌님네 가서 난리를 치제 왜 윤철샌님한티 그릿스까이? 율촌샌

님은 아무죄도 없구마는.”

“아, 그렁게, 수천샌님은 율촌샌님한티로 자꼬 미룬 거이제잉.”

“그리여잉...”

“그러다가, 혼자 사는 타성바지, 지께잇 거이 감히 율촌샌님한티로 대질허로

갈 거이냐, 핑계 대고 미뤄 두먼 제풀에 지치든지, 지친 끝에 타관으로 동낭치를

가든지 헐 거이다 싶었겄지맹.”

“어찌야 옳이여?”

“그런디, 덜컥 새끼가 죽어 놨이니 쇠여울네가 게거품 물고 쇠시랑 치키 들

고 안 가겄어? 참마로 샐인 안 난 것만도 천행만행이제. 아 개새끼도 지 새끼

넘보면 저 밥 주든 쥔이든 나발이고 다 물어 쥑이다잔이여. 눈에다 불을 씨고

미치는 거이제. 뵈능 거이 있겄능가?”

“그런디, 수천샌님은 어디 가셌능가? 왜 안 오시네?”

“시 살 먹은 애기라도 누가 이런 난장판에 꺼덕 꺼덕 오겄능가잉? 어디로 숨

었다가, 이 난리통이 지내간 담에 나와서는, 그 양반은 입심 좋고 수단 좋응게,

구변으로 또 어뜨케 헐티지맹.”

“아이고, 어쩌끄나.”

평순네는 탄식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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