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Books/Reading Books

혼불 3권 (20)

카지모도 2024. 3. 10. 06:06
728x90

 

방안에서는 벌써 수시를 하고 있었다. 정갈한 햇솜으로 청암부인의 입과 코와

귀를 막고는 백지로 부인의 얼굴을 덮었다. 그리고 그네의 좌우 어깨를 베로 단

단히 동이며 묶은뒤, 두 팔과 두 손길을 곧게 펴서, 그 두 손길을 부인의 배 위

에 올려 놓는다. 부인은 여자이니, 오른손을 위로 가게 하였다. 무감하고 담담한

손이었다.

이승에서의 한평생을 경영하던 두 손은 이제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다만 하

나의 형체로 남아, 그 무엇에도 아무런 집착이나 아무런 저항도 보이지 않으면

서 조용히 묶이고 있는 것이다.

그네의 두 다리를 반듯하게 붙여 곧게 펴고는 마지막으로 두 발길을 똑바로

모은다. 걸어오고 걸어온 길을, 또 걸어가고 걸어가야 하는 발이 고단하고 무심

하게 모아진다. 그 발목을 베로 동여 묶는다. 시신이 어그러지면 그런 난감한 일

이 다시 없는 까닭에, 있는 정성을 다하여 몸을 고르게 주물러서 펴고 단단히

동이어 묶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인월댁은, 자신의 손발이 묶이는 것처럼 가슴이 끅, 끅,

조여들었다.

아아, 무엇 하러 저렇게 묶고, 묶는고, 사대를 자유로이 풀어헤쳐서 그냥 훨훨

떠다니게 두지 못하고, 이승에 남은 사람들은 저승으로 가는 사람의 그 무엇을

저렇게 묶고 있는고.

부인의 살아 생전에야 누가 감히 그네의 몸에 임의로 손을 대며, 더욱이나 손

과 발을 동이어 묶을 수 있었으랴. 이제 숨이 떨어져, 빈 집처럼 남아서, 빈 바

람이 드나드는 시신이 되고 보니, 사람들은 애통하여 울부짖으면서도 그네의 몸

을 땅에 묻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버리러 가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월댁은 청암부인의 머리맡에 흰 적삼을 두 손으로 받쳐들었다. 속적삼이다.

청암부인이 임종하기 조금 전에, 새 옷으로 갈아입힐 때 벗긴 옷이다. 아직도 부

인의 밍밍한 체온이 남아 있는 적삼은, 땀이라도 젖어들었던 것일까. 흘리지 못

한 눈물이 그렇게 적삼에 배어났던 것일까, 축축한 기운이 느껴진다. 어쩌면 그

것은 인월댁의 손에서 배어나는 눈물일는지도 몰랐다.

인월댁의 부인의 흰 적삼을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간다. 지붕의 동쪽 추녀에 대

어 있는 사다리의 한 단 한 단을 밟고 오르는 인월댁의 눈에 검은 구름이 내려와

덮인다. 그것은 구름 같은 지붕이었다. 그 지붕의 이쪽 끝에서 한 얼굴이 슬픈

듯도 하고 먼 곳을 바라보는 듯도 한 눈빛으로 인월댁을 본다. 망와였다. 그러나

그 기와에 새겨진 얼굴은 청암 부인인 것도 같았다. 벌써 그 혼백이 지붕 위로

올라와, 집안을 지켜 주는 귀면 기와, 망와에 잠시 그 얼굴을 맡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인월댁은 홀로 그 망와를 우러르며 사다리 위에 선 채로 숨을 모두었다.

마치, 부인이 아직 살아 있을 적에, 서로 고요히 눈이 마주치던 그 마지막 순간

에 나눈 기운을 다시 나누듯이.

그리고는 지붕 위로 올라선 인월댁은 북쪽 하늘을 향하여 섰다. 승옥중운, 지

붕 위는 구름 속이었다. 그곳은 높았다. 지붕 아래 땅 위의 일이란 한낱 꿈속의

것들인가 싶었다. 청암부인의 혼백이 지금이 지붕 위에 어리어 있다는 것이 인

월댁의 심장을 저리게 하였다.

이윽고 그네는 청암부인의 적삼을 활짝 펼쳐 들었다.

그리고, 왼손으로는 적삼의 깃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옷 허리를 잡아 허공으로

크게 반원을 그리며 천천히 휘둘렀다. 캄캄한 겨울 밤하늘에 흰 적삼이 선연하

게 나부낀다.

인월댁은 크고 긴 목소리로 청암부인의 혼백을 부른다.

저 깊은 속의 골짜기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소리이다.

“청아암 부이인 보오옥.”

인월댁이 목메이게 고복하여 혼을 부르는 소리는 바람이 실어가 먼 곳으로 아

득하게 흩어졌다.

돌아오라, 혼백이여.

인월댁은 두 번, 세 번, 청암부인의 혼백을 불렀다.

복 부르는 사람은 망인의 혼백과 인신이 통할 만큼 서로 지극한 사람이라야만

한다. 그래야 그 정을 따라서, 떠나가던 허공으로부터 걸음을 다시 돌이켜 집안

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서로 무관하거나 마음 막힌 사람이 아무리 저고리를 내둘

러 형식적으로 부른다 한들, 한번 몸을 떠난 혼백이 옷자락 한 잎을 따라 돌아

올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조금 전까지도 자신이 내내 입고 있다가 금방 벗어

놓고 온, 자시의 땀도 묻어 있고 체취와 숨결도 배어 있는 저고리를, 간절하게

휘두르며

돌아오라, 혼백이여.

부르고, 또 부르고, 다시 부른다면, 몸을 벗고 떠나던 혼백이 어찌 다시 체백

으로 깃들어 합하지 않으리오.

“아, 내 냄새.”

혼백을 휘어감아 사로잡는 이승의 그리운 몸 애틋하여, 공기 중에 퍼지는 냄

새의 길을 따라, 가시던 분 넋이여, 도로 이리 들어오시라고.

마지막 입었던 속적삼을 그렇게 널리 흔들어 부르는 것이다.

죽어서도 못 잊을 정다운 목소리, 내 맘 같은 사람이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내상을 당하였을 때만큼은 아무리 유교의 규범이 엄격하다 할지라도,

여인이 지붕에 오르는 것을 나무라지 않는다.

본디의 뜻이 이와 같은 까닭이다.

더욱이나 남녀가 유별한 터에, 안부인의 살에 닿은 속적삼을 사후에라고 어이

연고 없는 남자의 손에 맡길 수 있으랴.

습렴을 할 때도 부녀자의 상사에는 오직 여인들끼리만 시방에 들어 수습하는

데.

하물며 일생을 홀로 산 청암부인의 경우에야.

더 말할 것도 없이 모든 것이 각별하였다.

일찍이 부인의 친정 동네 이름이 청암이어서, 이곳 매안의 이씨 문중 종가의

종부로 시집온 그날부터, 그네는 택호를 ‘청암’이라 하였다. 그러나, 시집을

왔다고 하지만 그것은 눈이 시리게 흰 소복을 입은 청상의 몸으로였던 것이다.

그때 그네가 들어선 종가의 형상은 참담한 것이었다.

대문은 비그러지고, 댓돌은 잡초에 묻힌 채 흙먼지 자욱한데, 기와는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 마치 험하게 두드려 잡은 고기 비늘 같았었다. 거기다가 거북의 등

짝처럼 이리저리 갈라져 금이 간 벽이라니.

그 삭막 황량한 집안에 의지할 곳 없이 혼자 앉은 청암부인은 허리를 곧추세

우고 말했다.

“내 홀로 내 뼈를 일으키리라.”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 부인의 연치 일흔을 가까스로 넘기 뒤, 일흔 세살에,

한세상을 가볍게 놓아 버리고 숨을 거둔 것이다.

“나는 이제, 너무 더운 날 삼복이나, 너무 추워 얼어붙는 동지섣달에는 안 죽

을란다. 일허는 사람들이 고생헌다.”

생전에 늘 그렇게 말하던 청암부인은, 그러나, 봄 가을을 다 두고 천지가 얼어

붙는 동짓달에, 그것도 일년 중에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짓날을 바로 앞둔, 기록

캄캄한 밤의 복판에서 운명하였다.

“나 죽은 다음에는 동네 사람들을 후히 먹이라.”

고도 말했었다.

“제사 때를 당허면, 아무 음식도 아끼지 말고, 술도 빚고, 떡도 허고, 돼지도

잡아서, 온 동네 사람이 재미나고 풍족하게 먹도록 해 주어라. 나는 생전에도 사

람을 좋아했으니.”

했다는 말은, 매안에는 물론이고 거멍굴의 우물가와 고샅에까지 번져 내려갔다.

문중의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과연 종부는 다르시다.”

고 하였고, 거멍굴 사람들은 입이 벌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비죽였다.

“아이고, 살아 생전에 엥간히 모질게 했어야 말이제, 소복 입고 시집와서 저

큰 재산을 다 모우도록 오직이나 넘 못헐 일 많이 시켰겄능가잉. 그렁게 죽어서

라도 인심을 조께 써야겄지. 그리야 누구한테 척을 안지고 존 디로 갈팅게.”

“그래도, 넘으 말잉게 쉽지. 우리 같음사 어디 그 마님매이로 살라고 하먼 살

겄등갑네? 그 양반이 산 세상 거 아무나 못 사능거이네잉. 열아홉 살 나이에

허물어진 대문으로 시집오계서 저 살림을 혼잣손으로 다 일우셌는디.”

“아, 왜 못 살아? 나도 양반으로 났이먼, 바가치 하나 달랑 들고 나서도 고루

거각을 지을 재주 있을 거인디.”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불 3권 (22)  (0) 2024.03.13
혼불 3권 (21)  (0) 2024.03.12
혼불 3권 (19)  (0) 2024.03.09
혼불 3권 (18)  (0) 2024.03.08
혼불 3권 (17)  (0) 2024.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