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그것은 잘못 아셌능갑소. 어뜨케 시신이 땅 속으서 재주를 넘는다요?
묻는 사램이 몰르고 깜빡 뒤집든지 엎었든지 헌 일이겄지.”
옹구네가 공배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자 공배는
“그렁가?”
했다. 처음에는 옹구네 말뽄이 얄미워서 눈을 흘기던 공배네도, 먼저 와 있던 평
순네도, 공배의 이야기에 섞여들었다.
“그런디, 영회가 어쩐다고요?”
평순네가 묻는다. 그네는 자신의 남편이 곰배팔이인 것이 혹시 누구 산소를
잘못 쓴 탓인가, 해서 마음에 걸린 것이다.
“그 영쇠가, 본디 여그 살든 백장이였는디, 그 아배 때도, 소도 잡고, 돼야지도
잡고, 개도 잡고, 다 잡었는디, 이 영쇠는 에레서부텀도 아배 일은 안 배울라고
그러고, 밥만 먹으면 휘잉허니 기양 나가 부러, 산으로만 댕겠드라네.”
“멩사 될라고요?”
“머 에레서야 꼭 그럴라고 그맀겄능가잉? 하이간이 머엇이 씨여서 그랬는
지는 모르겄지만 그랬드래. 아, 자고 새서 눈만 뜨면 뵈이능 거이 산 아닝가? 어
디를 가드래도. 그렁게 날이 날마둥 그렇게 댕게도 안가 본 디가 있었겄제. 첨으
는 그 아배가, 자가 약초를 캐로 댕긴다냐아, 꿩을 잡으로 댕기다냐, 그랬등갑서.
그런디 맨날 해 넘어가먼 빈손으로 털레털레 기양 오그덩.”
그래서 그 아버지도 물었다.
“야, 너 멋 허로 댕기냐?”
그때 영쇠는 겨우 여나믄 살이었다.
“아배. 산이 자꼬 나를 불르요. 나를 불릉게 가지요.”
“야가 머이 헛것이 씌였능게비? 무단헌 산이 너를 왜 불러? 소 잡고, 돼야지
잡고 살 놈이 왜 집구석으가 안 있고 산속으로만 헤매고 댕게?”
“아배, 나는 그렁 거 안허고 살라요.”
“안허면 너는 멋 처먹고 살라고?”
“까ㅈ신이나 갈쳐 주시요.”
“까ㅈ신?”
“소 잡고, 돼야지 잡는 일은 나는 헤기 싫고, 아무 일도 안허먼 먹고 살 수가
없을 거잉게, 까죽으로 짓는 이뿐 까ㅈ신이나 맹금서 살라요.”
저것이 어린 속에도 짐승 잡는 백정의 신세가 서러워 저러는가 싶은 그 아버
지는
“이놈아, 니가 팔짜가 기박해서 이런 집구석으가 났는디, 서러워도 어쩌겄냐.
바꿀 수도 없는 거이고.”
하며 한숨을 쉬었다.
“아배. 사람은 산에 지대서 살어야고, 산에서 얻어먹고, 산으 품으로 돌아가
는 거인디요. 산이 우리 어머이 뱃속이그던요. 산은, 하늘으 별자리가 땅에 떨어
져서 된 거이라데요. 그렁게 산으 탯자리는 하늘 아닝교? 우리 사람은 산이 탯자
리고요. 거그서 떨어져 나와 갖꼬 이 세상으서 살다가, 인자 죽으먼 다시 지가
나온 구녁으로 들으가는 거이 무덤이요. 나는 그 자리를 보로 댕기는 거이요. 가
만히 산을 보고 있으먼 그거이 자꼬 내 눈에 뵈이요. 그렁게 무단히 머에 홀린
것맹이로 자꼬 산속으로 가게 되야요.”
그 아버지는 어린 영쇠의 말에 입이 벌어져 다물지를 못하고는
“멩사 나겄다.”
하더니 더는 영쇠를 채근하지 않았다.
“인자 나 죽그덩 니가 존 디다 써 도라.”
하는 말을 덧붙이기는 했었다.
“그 영쇠가, 하도 쇠를 영검허게 잘 바서 영쇤지 본래 이름이 영쇤지는 몰르
겄는디. 세월이 마않이 가고는, 지 말대로 까ㅈ신쟁이가 되야 갖꼬 이 마을 저
마으로 떠돌아 댕김서, 부잣집으 까ㅈ신도 지어 주고, 신이 이뿌다고 대접을 자
허먼 그 집 행랑으로 잠도 자고 그럼서 사는디. 가다가 혹 어뜬 집이 초상이 나
먼, 지니고 댕기는 쇠로 묏자리를 바 주었드란 말이여. 그런디, 참 잘 본단 말이
여. 자연히 소문이 나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이름이 났지.”
그러면서도 그는 거멍굴에서 아주 어디로 가지는 않았다. 그저 얼마를 떠돌다
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한 철이고 얼마고 머물곤 하였다.
“그때가 아조 더운 여름이였는디, 영쇠가, 더워서 그랬등가, 어디로 안가고
여그 눌러 있었제. 하루는 매안으 어뜬 댁이서, 까ㅈ신 지어 오니라, 헝게는, 예,
그러고는 하나 잘맹그렁서 갖다 디리고 내리오는 질이었겄다. 시원헌 대청마룽
에 덩그렇게 울라앉은 양반을 뵈입고 내리오는 질인디, 여그 오자먼 왜 아랫몰
모퉁이에 다랭이 있잖드라고? 손바닥만헌 논 말이여. 거그서 어뜬 알 만헌 양반
하나가 논바닥에 꾸부리고 지심을 매고 있드란 말이여? 저거이 누구냐, 허고 가
찹게 가 봉게 대체나 아는 양반이여.”
그는 매안의 문중에서도 형세가 몹시 빈한한 방죽골양반이었다.
그래서 그 당랑이나마 방죽골양반의 전 재산이었던 것이다.
“샌님.”
“왜 그러는가?”
“멋 허시오 예?”
“보면 몰라서?”
“아이고, 더운디 먼 지심을 혼자 그렇게 매고 지싱가요?”
“암만 더워도 일을 해야지, 내가 안허면 누가 해?”
“양반이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림서 지심을 맹게 왜 우습소예.”
“별 소리를 다 허네. 양반이라고 여름에 더운데 땀을 안 흘리는가?”
“논 안 매먼 땀도 안 나지라우.”
“종이 있어야지.”
“저 원뜸으로 강게 시원헌디 좋게 앉었든디, 샌님도 그러고 앉어 기시먼, 샌
님도 안 더웁고, 다른 사람 눈에도 좋아 뵈일 거인디요.”
“그 집은 부자고, 나는 가난허니 서로 여름 지내는 것도 다르지.”
“샌님.”
“왜 또 불러?”
“저 좀 따러오실라요”?“
“일허다 말고 어디를 가?”
“제가 봐둔 묏자리가 한 자리 있는디 일러 디리먼 쓰릴라요? 아 이렇게 더
운디, 같은 양반으로 나서 누구는 좋게 사고, 누구는 놉도 없이 지심 매서 어디
쓰겄능교? 샌님이 평소에 저를 백장것이라고 하대 안허시고 저 같은 것 말대꾸
도 해 주신 정리를 생각고, 아무한테도 말 안헌디 하나 일러 디리먼, 저를 믿고
쓰실랍니까?”
영쇠가 이끄는 대로 손에 쥔 풀을 놓고 논에서 나온 방죽골양반은 이윽고 한
곳에 이르렀다.
“산천으 꽃은 혈 아닝기요. 이 혈이 정기를 낳는디, 꽃이 한 가닥 가지에 의지
해서 피었다고 허드라도 그 피어난 자리에 따라 탐스럽기도 허고 안 그렇기도
허잖에요? 샌님, 제가 봐둔 디가 사실은 두간디가 있그던요. 한 간디는 지금 바
로 발복을 허는, 당대 발복멩당이고, 다른 한 간디는 좀 더 뒤에 후손 발복이라,
샌님 생전에는 그저 끄니 걱젱이야 않겄지만 벨 효력은 없고요. 샌님은 어디다
가 쓰먼 좋으시겄능가요?”
“후손 발복이라니, 그게 대체 얼마나 되는 후손을 말허는가?”
“한 삼백 년 뒤에 오는 후손이지요. 제세 인물이 나고, 한 나라를 다스릴 만
헌 자손이 나오는 자린디요.”
“당대 발복이라면 어느 정도고?”
“샌님 당대에, 한 삼백 석 추수는 실허게 허실 거입니다. 그런디, 여그는 샌
님 한 대에만 그렇게 발복허시고 바로 끝나는 자리지요.”
“삼백 석이면 적은 곡식이 아닌데, 내 당대에 그만큼 일어난 살림이 라면 못
가도 삼대는 내려가지 않겄는가.”
“여그가 조리 멩당이그던요.”
“조리 명당?”
“예. 왜 쌀이나 보리 일어 먹는 그 조리요.”
“조리 명당은 왜 당대 발복으로 끝나는고?”
“암만 수북허게 쌀을 일어 담어도, 가득 차먼 쏟아내 버리능 거이 조리 아닝
교? 그것허고 같은 이친디요, 샌님, 지금 저어그 저 산 말랭이 능선이 뵈이시지
요? 저그서부텀 바로 요 앞으까지 쭈욱 뻗어내린 기운이, 저 맥이 조리 자루고
요, 지금 서 잇는 여그는 조리 바닥인디요. 샌님이 지금 형편이 궁허시니 바로
발복허실 자리로 뫼시고 오다가 가만히 생각을 해봉게, 삼백 년 후에고, 삼천 년
후에고, 내 속으서 난 내 후손이라먼 다 내 몸이나 한가지라, 차라리 기왕으 일
러 디릴 바에야 한 나라를 다스릴 만헌 인물을 샌님 후손에서 나오게 해 디리먼
어쩌겄능가 싶어지등만요. 어쩌실라요?”
방죽골양반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가 한참 만에 말했다.
“지금 당장 밥해 먹을 쌀도 없는데, 언제 삼백 년 뒤에 오는 후손 발복을 기
다릴꼬.”
그런 후손이 내 핏줄에서 나온다면 좋기야 하겠지만.
애석한 마음을 떨어버리고 샌님이 하는 말을 들은 영쇠는
“알었습니다.”
하더니 땅에 귀를 대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소를 머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샌님, 이리 와서 이 소리 좀 들어 보겨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아니, 산중의 땅 속에서 무슨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가?”
“참 소리 좋다. 이게 맥을 바로 짚었다는 증거지요.”
“어디?”
영쇠처럼 귀를 땅에 댄 방죽골양반은, 저 알 수 없는 신령스러운 곳에서 은밀
하게 울리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톰방, 톰방.
그것은 참으로 맑은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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