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그렁게 소코리나 조리에 쌀 일어서 두먼 물 떨어지능 거이나 같은
거이지요? 그래서, 방죽골양반은 영쇠가 일러 준 디다가 참말로 산소를 썼당가
요?”
“썼제, 방죽골양반 아부님 산소를 그리 이장해 디렸제.”
“그 말대로 되얐대요?”
“하먼, 그렁게 멩사라고 안허능게비.”
“그렁게, 당대에 삼백 석 추수를 바로 했드란 말이요?”
“하아, 남노여비를 거느리고 호제끄장 두었드래.”
“아이고, 그러먼, 또 그 당대에 참마로 조리쌀 털어 내디끼 그 재산을 다 엎
어 부렀으까요?”
“방죽골양반 살아 계실 때까지는 그대로 했제잉. 그러다가 그 아들대에 어찌
어찌 스름스름 다 없어지고, 나중에는 그 다랭이 논 한 마지기만 남었드라네.”
“아이고, 아까워라. 한 재산 이룬 거이 무신 꿈꾼 것맹이였겄네요.”
“그렁게 말이여.당대에 잘 먹고 살다 갔응게 그것만으로도 고생헝것보다는
갠찮지마는, 그래도 삼백 년 후를 기약해 두었드라면 그것도 갠찮했을 거인디.”
공배는 볼따구니가 우묵하게 들어가도록 담배를 빨아들이며 그렇게 말했다.
단 하나 어린 것도 무릎 아래 두지 못한 공배는, 삼백 년 뒤의 후손을 바라본다
는 호사는커녕, 지금 당장 자신이 죽으면 제삿밥을 챙겨 줄 자식 하나 없는 것
이 새삼 한심하였다.
그 공배의 심중을 헤아린 공배네는 얼른 눈짓으로 사람들을 보내고 말았었다.
그것이 불과 며칠 전 일이었다.
하루하루 뼈는 늙어가고, 아무 이루어 놓은 것 하나 없는 자신들의 처지가 처
량하여 공배네는, 같이 걸어가는 평순네에게
“그래도 이승이 더 좋은 것일랑가.”
하고 말을 붙였다.
평순네는 대답 대신 함숨을 쉬며, 지금 막 초혼 고복을 하고 있는 인월댁의
서럽고 긴 목소리를 바람결에 귀기울여 듣는다.
청아암 부이인 보오옥.
차갑게 끼쳐드는 바람이 옷갈피로 파고든다.
그 파고드는 바람에 인월댁의 삼키는 울음 소리가 묻어 있다.
평순네는 고개를 들어 노적봉의 캄캄한 산마루를 올려다보았다. 먹빛으로 쏟
아질 것 같은 그 산마루 저 너머로, 어둡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희부윰한 기운이
드리워진 하늘이, 가 본 일 없는 다른 세상 어디론가 그 자락을 아득히 펼치고
있었다.
저 너머가 저승일랑가.
그네는 얼핏, 그 노적봉 산마루 어디쯤으로 청암부인이 아무도 없이 홀로 고
적하게 가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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