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만큼 옹게는, 동산이 한나 나오드래. 그래 다리도 아푸고해서 풀밭에 앉었
는디. 마침 거그 꺼멍 소 한 마리허고 삘헌(붉은) 소 한 마리가 나란히 엎대어
누워 있어. 배를 깔고. 점심밥 먹고 새김질이나 허고 그러고 있었등가 모르제."
그걸 보고 원효 대사가 물었어.
"너 어뜬 소가 몬야 일어나겄냐?"
그렁게 사명당이, 잠깐 지달르시라고 그러고는 괘를 요렇게 빼봉게 화괘가 나
와. 불 말이여. 불은 빠알간 안헝가?
"옳지."
하고는
"저 삘헌 소가 몬야 일어나겄소."
했단 말이여?
"그러냐? 나는 꺼멍 소가 몬야 일어나겄다."
스승의 말씀에, 어디 보자, 허고 조께 있응게. 아니 꺼멍 소가 펄떡 일어나네
그려. 아, 이거 웬일이냐, 이상허다, 내가 괘를 잘못 뺐능가.
"화괘가 나왔으면 뻘건 불잉게 삘헌 소가 몬야 일어나야 허는디 어째서 꺼멍 소
가 몬야 일어났습니까?"
사명당이 괴이해서 스승에게 여쭤봤겄다. 그렁게는 원효대사 왈.
"그것이 변동천하란 거이다, 이놈아."
허고는 지팽이로 딱, 소리가 나게 사명당 머리빡을 때려 부리네.
"이놈아, 불을 얻을라고 부싯돌을 팍 긁어대먼 처음에는 꺼믄 연기가 뭉실 올라
오잖냐, 꺼믄 거이. 그리고 나서야 뻘건 불이 붙지. 그래서 아무리 화괘가 나왔
지만 꺼멍 소가 몬야 일어나고 삘헌 소는 나중 일어나는 거이다. 알겄냐?"
"변동천하요?"
춘복이의 눈이 번뜩 불빛을 받는다. 아까는 심드렁하던 춘복이가 어느결에 공배
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있었는지 그 말 한마디를 입 밖으로 툭, 떨구며 되뇌
인다. 어금니를 힘주어 문 것 같은 음성이다. 쑤실쑤실한 눈썹의 꼬리에 말린
검은 소용돌이가 금방 회오리를 일으킬 것 같이 휘익 돈다.
"하아(그럼), 변동천하. 그 말 헐 일이 또 한가지 더 있제. 아까막새 그 동산에
서 인자 두 시님은 어떤 아는 집이를 찾어갑능갑드라."
공배는 춘복이가 대꾸해 주는 것이 마음에 좋아서, 주름이 패인 입시울에 웃음
까지 머금으며 이야기를 잇는다.
"걸어 걸어가다 봉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저녁때가 되얐네. 그 집에 당도를
해서는 방에 들으가 앉어 갖꼬 저녁밥을 먹을라는디, 아직 상이 안 나왔어."
그렁게 원효대사가 또 물었제.
"너 오늘 저녁에 머 먹겄냐?"
그래서 아까맹이로 사명당이 괘를 뽑아 봤을 꺼 아니여? 그런디 사괘가 나와.
비얌. 비얌 사짜, 사괘. 그런디 비얌은 이러어케 길지 않어?"
"국수 먹겄소."
그 말에 원효대사는
"나는 수제비 먹을 괘가 나온다."
그런단 말이여. 동글동글 수제비. 사명당이 생각했지. 우리 선생님은 참 요상허
시다. 아, 사괘가 나왔으먼 그거이 국순디, 비얌도 지댄허고 국수 가닥도 지댄
헝게 그게 맞는디, 왜 수제비라고 그러싱고? 그런디 조꼐 있다가 밥상이 나오는
디 봉게로 참말로 수제비가 나온단 말이여. 이게 무신 속이여?
"선생님, 왜 사괘가 나왔는디 수제비가 나온다요? 국수가 아니고."
"이놈아, 내가 아까 그리 안 허든? 변동천하를 알어야 헌다고."
"변동천하요?"
"그렇제. 우리가 이 집에를 낮에 당도했으먼 국수를 먹지마는, 밤에는 비얌이란
놈이 굴 속으로 들어가서 이렇게 사리고 안 있능가? 똥글똥글.그렁게 이놈아,
사괘가 수제비가 된 거이다."
"아하."
그러고 있는디 주인이 와서
"오늘 낮에 식구들이 국수를 해먹고는 밀가루 반죽이 조께 남었는디,마침 남은
밥은 없고, 새 밥 헐라면 지달르기 시장허실 것 같아서, 헐 수 없이 있는 반죽
으로 수제비를 급히 띠여 왔그만이요."
허드란다. 공배의 이야기에 방안에 앉은 사람들은
"아이고, 우숴 죽겄네."
"그게 그렇게 되누마이."
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렁게 그 괘 속이 묘헌 거이라고. 내 손에 뽑아 들고 앉었어도 그 속을 못 읽
으먼 헛거이그던. 변동천하를 읽을 줄 알아야여, 긍게. 그런디, 사명당맹이로
유명헌 큰 시님도 못 읽는 변동천하를 우리같은 상것들이 무신 재주로 읽어 내
끄나. 안 그러냐, 춘복아."
그러나 춘복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웃지도 않았다. 뻣뻣한 눈썹
터럭이 솟구쳐 일어선 그의 눈빛은 새파랗게 빛났다. 그것은 등잔 불빛을 받아
벌겋게 이글거리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는 어금니를 지그시 물고는 몸을 부르
르 떨었다. 그러는 그의 눈앞에 강실이의 모습이 선연히 떠오른다. 작은 아씨.
내 자식 하나 낳아 주시요. 나는 작은 아씨한테 양반 자식 하나 얻고, 작은 아
씨는 나한테 상놈 자식 하나 얻으시요. 춘복이의 손이 안으로 오그라진다.그는
병아리를 채려는 솔개처럼 발톱을 모으며 눈에 모를 세운다.
"인자는 더 안 지달를란다."
춘복이는 하마터면 소리 내서 말을 할 뻔하였다. 속에서 솟구쳐 터지려는 그 말
대신에 그는 이 말을 자르듯 토했다.
"변동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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