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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4권 (31)

카지모도 2024. 6. 6.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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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저 이불과 요대기를 깔고, 덮고, 년놈이 한자리에 기고 뒹굴었을 것을

생가하니, 우억, 더러운 살내가 숨에 끼쳐들어, 그네는 그것에 손을 대 보기는

커녕 두 번도 더 안 쳐다보고 그냥 방에서 나오고 말았었다.

"대관절 그거이 꼬랑지 아홉 개 달린 여시냐, 비얌이냐."

공배네는 옹구네의 도톰하고 동그람한 낯바나대기가 떠오르자 콱 무지르듯 머리

속에서 쫓아내 버리며, 이번에는 춘복이를 탓하였다.

"에라이, 천하에 못난 놈. 지멋에 지쳐서 거러지 서방을 얻는단 말도 있기는 허

드라만, 그래 어디 지집이 없어서 그 얌전헌 시악시 다 마다허고, 기껏 골르고

골라서 자식 딸린 홀에미도 홀에미 나름이제. 어쩌다 저런 옹구네 같은 것한테

걸려 갖꼬 벵신맹이로 빠져 나오들 못허고, 소 발에 개 다리 꼴을 허고 앉었냐,

긍게."

어흐그으, 속 터져. 옹구네 얄미운 마음이 속에서 부글부글 괴어 오르는데다 춘

복이한테 조차 무슨 말을 어찌 해 볼 수도 없어, 오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빈 농막만을 한 번 바라보고는, 중얼중얼 검은 밭머리를 걸어오는 공배네의 찡

긴 이마에는 깊은 금이 그어졌었다. 그것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 기색에

는 아랑곳하지 않고 옹구네는, 각시도라지 연보라꽃이 밭모퉁이에 피는 봄 밤에

한들거리며, 못쉰 소쩍새 귀밑에서 검은 소리로 우는 여름 밤에 다무락의 흰 박

꽃 하나 따 들고, 도토리 상수리나무 마른 잎사귀들 솨스르으 솨스르으 바람에

스산하게 쓸리는 가을 밤에 종종걸음으로, 문고리 손꽅에 쩍쩍 들러붙게 추운

겨울 밤에 두 달음질을 치며, 고샅을 지나 농막으로 갔다. 마치 김제 금산 청도

리의 험하고 어두운 계곡을 무서운 줄도 모르고 물에 빠지며 건너가, 속이 맞은

귀신사의 중을 만나던 '홀에미다리'의 홀어미처럼. 그러나 춘복이는 언제나 새

로 만난 남정네처럼, 어설프고 약간은 시그둥한 표정으로 그네를 맞이하였다.

옹구네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아랫목에 버티고 앉은 마나님이 있는 것도 아니

고, 눈치를 봐야 할 다른 식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허물이

고 부끄러움이고 없을 만한 때도 되었으련만, 아직도 파겁을 하지 않는 춘복이

가 야속하게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런 낯빛을 대하면 옹구네는 순간 살이 움츠

러들었다. 그것은 옹구네가 아무렇게나 파고들어갈 수 없도록 저만큼 밀어내며

일단 어떤 금을 긋는 것 같은 얼굴인 때문이었다. 배암과 나무 뿌랭이가 뒤엉키

듯이.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이윽고 서로에게서 풀리어 물러나면, 춘복이는

삿자리 방바닥에 시커먼 그림자처럼 누운 채로 팔베개를 하고는, 옆엣사람 생각

은 하지도 않고 캄캄한 천장만을 멀거니 올려다보았다. 그럴 때 옹구네는 혼자

서 부스럭부스럭 일어나 앉아, 어둠 속에서, 짚수세미같이 엉클어진 머리를 대

강 더듬어 나무비녀를 다시 꽂고는, 무명 저고리 고름을 매고, 몽당산이 검정

두루치 치마를 챙겨 입었다.

"잔당가?"

버선까지 다 신고도 선뜻 일어서지 못하고 오도마니 세운 무릎에 두팔을 깍지

끼고 앉은 채 옹구네가 말을 던져 보면

"자기는요."

춘복이는 심드렁하게 받았다.

"아무 소리도 없기에 자는지 알고."

그러고 나서도 멈칫멈칫 뭉그적거리며 옹구네는 못 일어섰다.

"멀 꼭 갈라고, 기양 여그서 자고 가시요."

하는 말을 그네는 은연중 기대하고 그러는 것이었다. 그것보다 사실은

"옹구네, 우리 이대로 살어불제."

이 말 한 마디를 애가 잦게 바라고 있는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춘복이는

그런 말을 하는 일이 없었다. 둘이 엉키어 있을 때는 모르겠다가 혼자 일어나

앉으면, 벌어진 바람벽과 비글어진 문짝의 틈바구니로 귀때기 시리게 끼쳐 들어

오는 외풍에 가슴팍까지 선뜩하여, 문득 그 바람벽 벌어지듯 가슴속이 쩌억 갈

라지는 것 같은 허전함에, 옹구네는

"하이고오, 저 바람 소리. 어뜬 집 독아지 뚜껑 날러가능게비. 사람도 기양 날

러가겄네잉."

짐짓 바람 소리를 듣는 척하면서 춘복이 눈치를 옆눈으로 살펴보는 때도 있었다.

"어치게 간다냐아, 심란시러라."

아무리 그래도 춘복이는

"자고 가시요."

소리를 하지 않았다. 흥, 내가 왜 여그서 못 자고 집으로 가야여? 이렇게 사능

것도 살기는 같이 시능 거인디. 안 그렁가? 너 사나 지집이 귀영머리 마주 풀고

육리 찾어 예 갖촤야만 꼭 내우간이간디? 범절 따지고 문서 챙기는 양반들이라

면 넘으 눈이 무섭다고 허겄지마는, 부모 자식 낯 알어보먼 그만인 상것들이,

한 이불 속으서 살 맞대고 지내먼 그거이 내우간 이제, 떠 머이 더 있어야여?

자개도 아니라고는 말 못헐 거이그만. 내가 암만 자식 딸린 홀에미라고 허드래

도 말이여. 곧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말을 구겨 삼키며 앵돌아진 마음에

춘복이를 내려다보면, 일부러 들으라고 그러는 것처럼 끄응, 소리를 내며 몸을

뒤채 바람벽 쪽으로 돌아누워 버리는 것이었다. 그럴 대의 춘복이 뒷등은 방안

의 어둠보다 더 캄캄하게 뭉친 바위 덩어리같이 보였다. 거기에는

"이제 그만 가 보라."

는 기색이 역력히 드러나, 순간 샐쭉해진 옹구네가 쫓겨나듯 엉거주춤 일어서며

무망간에

"나 갈랑게."

하게 되고 말았다. 그럴 때는 허망하고 무안하였다. 그러나 그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문고리를 잡고 선 옹구네의 등위에서 움쩍도 하지 않는 춘복이를 홱

돌아보며, 그만 참지 못하고 억하심정에 한 마디 배앝아 그 끝에 투닥거린 일도

여러 번 있었다.

"아이, 사람 간단디 내다보도 안헌당가?"

"조심해서 가기요."

"말은, 옆구리 찔러 절 받기제."

"하루 이틀 댕겠소 머?"

"하이고, 정나미야, 도끼로 장작을 패도 원 그보다는 보드란 소리 나겠네, 누가

자개보고 길라잽이 등불 잡어 도라고 허능게비. 걱정도 마시겨, 호랭이가 물어

가든지 늑대가 뜯어먹든지. 나 같은 년은 머 마느래도 아니고 소실도 아닝게.

가다가 엎어지든 깨골창에 자빠지든 상관 없겠지맹."

"왜 또 그러시오."

"사람 그러능 거 아니여어, 참말로. 오뉴월 젓불도 쬐다 말먼 서운허드라고, 나

같은 년도 이렇게 있다가 없으먼, 없능 것보다는 있능 거이 낫을 거이여. 내가

동낭치 박적 들고 얻어먹으로 온 것도 아니고, 임자 잇는 물건을 도독질해 가자

는 것도 아닌디, 나를 이렇게 무참허게 쫓아내, 쫓아내기를."

"아 누가 쫓아냈다고 그래요? 매급시 생트집이제."

"나 설웁게 말어. 내가 헌지집이라고 깜보능게빈디, 나도 숫처녀 아닌지는 내가

앙게, 다 속이 있어서, 거마리맹이로 늘어붙든 못허고 가라면 내가 가아. 내,

그거이 설우워."

"누가 머이라고 했간디 무단히 나가다 말고 돌아서 갖꼬."

"그런디 자개도 다 속이 있겄지."

"속은 무신 노무 속."

"뒤집어 보먼 자개도 손해난 거 없지 멀 그리여?"

"장사허요?"

춘복이는 메다박는 소리로 말을 자른다. 옹구네는 무안하여 얼굴이 샐쭉해진다.

그리고는 더 무슨 말을 잇지 못하였다. 거기서 한 마디 더 지르면, 춘복이 성격

에 욱성이 치밀어 한 대 후려 치고는, 이 꼴 저 꼴 안 보려고 그나마 정을 떼어

버릴는지도 모를 것 같아 겁이 난 때문이었다. 춘복이는 그리 못할 사람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손해였다. 한 숟구락 더 얻을라다가 박적 쏟으면 나만 억울허

제. 이렇게나 저렇게나. 이렇게라도 지낼라면 어디 한 대목에서는 참어얀디. 내

가 이 대접을 참는 거이 낫제. 저 성질 건드렀다가 참말로 나를 안 볼라고 허

먼. 그러먼 나는 어쩔 거이냐. 그래서 옹구네는 한 발짝 물러나 입을 다물고 속

으로만 중얼거렸다. 아이고 설워라. 이래서 사나 지집은 꾀를 벗고 만나도 예를

치뤄야여. 허다못해 찬물이라도 한 그륵 떠 놓고. 글 안허먼 아무 쇠용이 없어.

글 안허먼 넘이여, 넘. 그 찬물 한 그릇을 떠 놓지 못한 사람이어서 옹구네는

방에 머물 수가 없었으니. 엄동의 깊은 밤중에 찬 바람 속으로 걸어 나와야 했

다. 그러나 그런 무참한 마음도 그때뿐, 옹구네는 또다시 물로 씻은 낯을 하고

농막으로 찾아가 춘복이 곁에 눕곤 하였다. 춘복이도 그러는 옹구네를 그냥 내

버려 두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인자 오지 마시오."

라고 무겁게 잘라서 말한 것이다.

"나 갈란디."

하며, 막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말고 느닷없이 그 말을 들은 옹구네는, 이게 무

슨 소린가. 싶어서 다시 주저앉았다. 가슴이 철렁하였다. 그리고 순간 뒤에서

솨아 하는 바람 소리가 써늘하게 들려 왔다. 그 바람 소리는 귓속을 우웅 채우

더니 그대로 쓸려 내려, 놀란 가슴팍에 가 차갑게 얹혔다. 그것은 검은 얼음 덩

어리 같았다.

"무신 소리여, 그게?"

속이 떨리는 옹구네는 가까스로 그렇게 물었다. 그러나 먹통 속인 방안에서는

움쩍하는 기척도, 단 한 마디 대꾸도, 침 삼키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구녁

처럼 회부윰한 지게문짝의 창호지를 날카로운 손톱으로 길게 할퀴며 우는 바람

소리만 침묵의 한복판을 깊게 갈랐다. 그 가른 자리가 쩌억 벌어지며, 컴컴하

게 누워 팔베개를 하고 있는 춘복이와 정신이 얼떨떨하여 우두망찰 앉아 있는

옹구네의 사이에 낭떠러지 절벽을 만들었다.

"일어나 보랑게, 좀."

절벽의 검은 아가리가 한 입에 옹구네를 삼키고 말 것만 같아서 그네는 숨이 컥

막혀, 춘복이한테 대고, 몽당산이 시커먼 치맛자락을 두 손으로 붙움켜쥐며 발

이라고 구를 기세로

"좀"

소리를 윽눌러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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