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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4권 (26)

카지모도 2024. 5. 3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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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복이 자만치 일 잘허는 일꾼도 흔찮을 거인디. 어디 살림 따순 집이 들어가

서 머심이라도 조께 살었으먼, 먹고 자는 거 걱정 없고 지 앞으로 다문 얼매라

도 뫼아 놀 수 있고, 갠찮지 않겠소잉?"

한번은 공배네가 넌지시 그렇게 말했었다.

"머심? 조선에 다른 오만 사램이 다 머심을 살어도 가는 못 사네. 머심이랑 거

이 거 아무나 사는 거인지 아능게비네. 머심이 꿍꿍 일만 허먼 되는지 알어? 주

인 대신해서 그 집 농사 다 맡어 지어양게 농삿속 궁리가 훤해야고, 사람도 부

릴지 알어야고, 일도 잘해야고."

"춘복이야 왜 그렁 거 못허께미?"

"허지. 허기야. 맽겨만 노먼 못헐것도 없겄지맹. 그런디, 머심은, 독불장군은

못히여. 그러고, 머심이 얼매나 성질이 자상허고 공손해야 하는지 아능가? 창시

빼서 걸어 놓고 지 속속까지 주인네 일로 꽉꽉 채워서 저를 통으로 내놔얀디,

가가 그 짓을 허겄능가? 어림없제. 아 어뜬 씰개 빠진 농판이 금쪽같은 새경 줌

서, 저한테 늑대맹이로 으르릉거리는 머심을 쓰겄어, 쓰기를."

"가도 맘만 잡으먼 잘헐 거인디. 속으가 불이 들어 갖꼬는."

"그 망헌 놈이 아아래는 또 그러드라고? 시이상이 달러졌단디 머이 어뜨케 달러

졌는지 귀경이나 한 바꾸 댕게오까아?"

"그래서요?"

"대그빡을 쥐어박어 줄라다가."

"멩색이라도 즈그 부모가 있었으면 조께 낫었을랑가."

"세상에 조실부모헌 놈이 저 하나간디? 그럴수락이 어서어서 장개를 가서 자식

을 낳고 내우간 재미도 알고 그러먼, 마음 붙이고 뿌랭이 박는 거이제, 저렇게

원. 저런 노무 쇠고집이 있어. 그렁게."

그런 공배 내외의 속정을 아는지라, 춘복이도 매안에서야 웬만한 일에 분별없이

눈 벗어나는 일은 안하지만, 일단 거맹굴로 내려오면 짚신 짝을 벗어 패대기 치

듯, 울화를 못 참고 울컥울컥 말을 토해 냈다.

"아니꼽고 더러워서 내 참. 도대체 양반이란 거이 머여? 내 손꾸락 내 발바닥

갖꼬 내 땀으로 논밭 농사 다 지었는디, 내 앞으로 빈 쭉정이만 수북허고, 양반

은 가만히 앉아서 그 전답 곡식을 혼자 다 먹어, 왜?"

"야가 시방 왜 이런다냐? 그거야 원래 자개들 꺼이제 니껏을 돌라는 것도 아니

고, 또 그 집에 일허로 가는 것은 우리가 우리 목구녁에 풀칠이라도 헐라고, 우

리 발로 우리가 가는 거이제, 누가 그쪽으로 끄뎅이 끄집고 잡어간 것도 아니잖

냐. 그렇게 다 양반 좋다고 허고, 상놈 설웁다고 허는 거이제, 머. 그걸 인자

알었냐? 새삼시럽게."

공배는 핀잔을 주었다.

"양반이 머 지가 공덕이 있어서 된 거이간다요? 부모 잘 만나고 조상 잘 둔 덕

에 거저 양반이 된 거이제. 이런 놈의 신세는 부모가 있이까, 조상이 있이까,

아무껏도 받은 것 없지마는, 부모 조상 싹 씰어서 빼불고, 우리 당대끼리만 저

랑 나랑 한판 붙으면 못해 볼 거 머 있어? 그께잇 거."

"야가 참말로, 너 덕석말이 맞어 죽을라고 환장을 했냐? 엉?"

"던지러서 안 그러요. 에에이, 참말로 개 멋 같은 노무 세상. 칵 엎어 불먼 뒤

집히는 꼴 좀 한번 보겄는디."

"양반이라고 다 부자고, 부자라고 다 양반이다냐? 안 그러잖이여? 또 칵 엎다

니. 니께잇 놈이 멀로 칵 엎어? 아 세상이 무신 소코리냐? 니 성질대로 칵 엎

게? 존 일 적선에 내가 빈다. 말 좀 조심해라잉? 어쩌든지 참어, 이놈아, 참는

거이 지일이여."

공배는 나무라기도 하고 간곡하게 타이르기도 하였지만, 그때마다 춘복이는 머

리를 털어 냈다.

"니가 아직 젊은 삭신이라 겁이 없는디, 자식만 하나 낳아 놔 봐라.그때는 참

니 문짜로 시상이 떠 달러질 거잉게."

"더러운 노무 상놈 신세, 나 하나로 여한이 없응게, 아재, 나보고 장개가라, 자

식 나라, 그런 말씸 허지도 마시오. 지집 없이 한 펭상 자알 살랑게요. 자식을

나먼 멋 해? 그것도 불쌍놈이제. 내가 사는 이런 속터지는 세상을 그넘이 커서는

또 그대로 살 거인디. 무신 웬수로 원통헌 신세 쳇바꾸를 돈다요? 내가 참말로

자식을 생각허고 그놈 위해서 부모 노릇을 한 번 해야 헌다먼, 그 놈 이 세상에

안 나오게 허는 거 이상은 없을 거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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