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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5권 (51)

카지모도 2024. 9. 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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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누구네 집으로 굿을 하러 가거나, 어디서 문복하러 오는 사람들한테서도

사람들 소식은 가랑니야 서캐야 들을 수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비오리네 주막에

떨어지는 소식이 제일 빨랐다.

그리고 제일 정확했다.

그것은 여러 갈래 여러 골의 여러 사람이 하는 말을 한자리에서 모아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탓에 백단이는 고리배미에 갈 일이 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렇

지 않을 때도 유난스럽지 않을 만큼 비오리네 주막에 들러 비오리와 그 어미를

만나는 척하면서 요령껏 소문을 흡수하였다.

그러나 아무래도 백단이보다는 만동이가 주막에는 이무러워. 틈만나면 그는

마치 일없이 막걸리나 한 사발 마시러 온 것처럼 혼연스럽게 평상에 앉아 있곤

하였다.

어려서부터 남다르게 생김새 곱상하고 자세에 태깔이 있어 반드롬한 만동이

가, 아무 동무도 데불지 않고 호젓이 개다리 소반을 앞에 놓고 앉어, 한 보시기

김치를 안주로 술을 마시는 모습은, 비오리가 훔쳐보기 딱 알맞아

"비오리란년한테 갱기기만 해 봐라 기양."

하고 백단이는 쥐어박으며 눈흘기는 시늉을 만동이한테 하곤 하였다.

그런 말을 만동이는 귀담아 듣지도 않았다.

그의 마음은 거기에 있지 않은 탓이었다.

그러던 작년 세안 동짓달, 동지를 바로 앞둔 어느 날, 그네는 매안의 청암부인

병세가 위중하여 심상치 않다는 말을 거기서 듣게 되었다.

"암만해도 오래 못 가시겄다."

근심스럽게 낮은 소리로 주고받는 말을 들은 지 얼마 안된 때였다.

"오늘 밤이 고비라대. 못 넹기기 쉽겼다든디."

사람들은 수상하게 수군거려졌다.

그 말을 얼핏 들은 그네의 가슴은 그때, 저도 모르게 퉁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후드르르 떨리더니 이윽고 가슴의 밑바닥에서부터 육중한 힘으로 서리

를 틀며 희오리져 밀고 올라오는, 그 어떤 다른 말로도 형언할 길 없이 오직 벅

차면서 터질 듯

"드디어."

라고밖에 하지 못할 희열을 지그시 누르며 눈을 감았다.

"드디어 아부님을 뫼시게 되얐다."

그리고 그날 밤, 밤이 깊어 고비에 이른 검은 어둠 속에서

"청아암 부이인 보오옥."

목메이게 부인의 혼백을 부르는 소리가 아득히 울려 왔다.

거멍굴에서야 그 소리가 들릴 리 천만 없지만, 그네는 대단챦은 핑계로 매안

의 아랫몰 타성바지 임서방 집에 들러, 문청문청 머뭇거리며 밤 깊은 줄 모르는

사람처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흰 적삼을 캄캄한 빈공중에 하염없이 흔들며 인월댁이 목메이게

돌아오라, 혼백이여.

부르고 있는 그때, 백단이는

떠나시라. 부디 떠나시라.

빌고 있었다.

그리고 달도 없는 깊은 밤, 명부의 베폭처럼 나부끼는 흰 저고리 옷소매와 옷

고름에 몸이 잡힌 청암부인의 혼백은 바람 소리로 울며,

놓으라, 나를 놓으라.

이제는 제발 나를 놓으라,

흐느끼었다.

"음양이 서로 달른디 한자리다 그렇게 써도 될랑가?"

청암부인 산소에다 시아비 홍술의 유골을 투장하자는 그네의 말에 멈칫 의아

한 얼굴로 아낙을 바라보며 만동이는 백단이한테 그렇게 물었다. 백단이는 눈은

흥분으로 번들거렸다.

"안될 거이 머 있다요? 이 세상 천지 만물이 다 서로 음양의 조화로 이뤄져서

하늘이 양이먼 땅이 음이고, 꽃이 음이먼 나비가 양인디, 음양이 아니먼 무신 조

화로 비가 오고, 음양이 아니면 무신 재주로 열매를 맺을까. 이 세상 사람들이

모다 살어서도 음양을 좇아 살고 죽은 뒤에도 음양이 만나 함께 살먼 혼자보다

좋제 멀. 내우간에 합장허능 거 듣도 보도 못했소?"

"그거사 내우간잉게."

"아, 날 때부터 내우간이 어디 있다요? 여그 저그 이 집 저 집이서 각각 부모

따로 따로 뫼시고 살다가 나이 차서 성혼허먼 그때사 서로 한 집서 살고 내우간

이 되는 거이제. 우리는 머 어내 뱃속으서부텀 내우간이였소 머?"

"그래도."

"참, 걱정도 팔짜요잉, 왜 혼백들끼리 합장허능 거이 어째 합방이나 허능 것맹

이로 넘사시럽고 내우 개레지시오? 외나 아부님은 그렇게도 엄청난 마님허고 신

방을 채레서 좋으실 거인디?"

만동이는 대꾸 대신 얼술을 붉히었다.

"생각해 보시오. 애러울 거 머 있능가. 우리가 사방 멩사 씨고 지관 써서 우리

자리 정당헌 산소를 씨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도적질, 맹당 도적 허는 거인디,

아 왜 마나님끄장 훔쳐 불먼 금상첨화지, 머이 걸려서 망설인다요? 망설이기를,

그것도 다 인옌잉갑제. 아부님 복이고, 그렇게도 눈이 빠지게 지달르던 맹당이

헤필이먼 그 대갓집 종부 마님 산소에 날지를 누가 알었겄소. 기가 맥해서. 그렇

게 맞촤서 찾일래도 인력으로는 못 찾겄소, 원. 그 가문에 그뼈대에 그 풍모에

그 인품에, 아 오직허먼 추상 같은 그 서슬에 안 떠는 남자가 없고, 그 기상이

천하라도 다스릴 만허다 해서 청암대신 칭호끄장 붙은 냥반 아니요. 그만허신

인물이 아부님허고 혼백이라도 짝이 되야 우리 엄씨가 되시먼 머이 좋아도 좋제

나쁠 거이 머 있어? 사실은 우리 자손들은 그 마나님이 누린 세사, 그런 세상

살게 되라고 이런 투장도 다 허능 거 아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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