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같이 성난 거멍굴의 분원이 뜻밖에 제 발로 나타난 강호한테로 쏟아져, 쇠도리깨
곡괭이를 내리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밤은 깊고 매안은 멀며, 거멍굴 사람들은 한
무리로 여럿이고 강호는 혼자인데, 만일에 순전히 힘만으로 덤빈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
는 아가리로 그는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공배네를 토방에다 세워 둔 채로 보란 듯이 옹배기에다 미영걸레를 담아 가지고 나왔던
옹구네는, 투닥투닥 방망이질 몇 번을 시늉으로 한 뒤에 다시 춘복이 농막으로 들어간다.
자알 헌다. 오밤중에 방맹이질허고, 귀신 불를 일 있능가? 그네가 하는 일마다 못마땅
한 공배네는 방망이 소리보다 더 크게 혀를 찬다. 그리고는 옹구네 따위야 무어라고 하
든지 말든지 지게문짝을 잡아당겨 덜크덩 열고는 방안으로 들어선다.
그 소리에 놀란 미영씨 기름 등잔의 심지가 펄럭하는데, 춘복이가 얼핏 눈을 뜨는 것처
럼 보였다.
아이고 야가 정신이 드냐 어쩌냐.
공배네는 깜짝하는 반가움에 얼른 춘복이 옆에 바싹 다가앉는다.
춘복아. 야. 눈 떠 바아.
잘못 본 것인가 싶게 여전히 부어터진 눈두덩을 무겁게 닫고 있는 춘복이 눈자위를 뚫
어지게 들여다보며, 공배네는 행여 아차 옹구네한테 춘복이 눈뜬 모습을 빼앗겨서는 안되
는 사람같이 다급하게 말한다.
아이, 나 누군지 알겄냐? 응? 내 소리 딛겨?
공배네는 애가 타 춘복이 귀에 대고 거푸거푸 풀무질을 한다.
저노무 여펜네 들오기 전에 내가 꼭 너한테 헐말이 있단 말이다.
그렁게 내 소리 딕기먼 눈 쫌 떠 바야.
아니 그렁게 니가 머이 모지래서 어쩌다가 저런 홀에미 더런 년 불여시한테 잽헤 갖꼬
옴짝달싹을 못험서, 내가 저년 눈치를 저렇게 보게 맨드냐아, 긍게. 저년 속은 내가 알
수가 없고 저년 재주는 내가 알 수가 없단 말이다. 정신채려라아. 잉. 정신채려어. 여시
한테 홀리먼 우선은 좋겄지만 종당에는 혼 다 뺏기고 간 다 멕히고, 죽능 거이여. 죽어
어. 이놈아. 아이고. 폭폭허고 속상해서 꼭 내가 너보돔 몬야 죽을랑게비다.
맞아터져 아픈 자리 걱정보다 옹구네 때문에 상한 속이 더 분하고 아파서, 공배네는 춘
복이를 붙들고 입속으로만 궁얼궁얼 누르며 한숨 범벅이 된 말을 굴리고 짓이기고 하였다.
저녁은 잡샀소?
어느결에 옹배기를 들고 들어선 옹구네가 언제 내가 퉁명스러웠느냐는 낯빛으로 감치게
묻는다. 공배네는 그 옹배기의 물을 쳐들어 옹구네한테 쫙 찌크러주고 싶은 충동을 참는
다. 공배네로서는 늘 당하는 일이지만, 옹구네의 그 천연스러움을 도대체 이길 수가 없었
다. 그래서 늘 돌아앉아 부글거리었는데. 오늘은 안될 일이었다.
저녁? 자네 참 한가헝갑네에?
목소리에 갈고리가 걸려 있다.
한가나 마나. 나물 먹고 물 마셰도 먹기는 먹어야 살제. 냉수 먹고 이빨을 쑤셰도잉?
내가, 저녁이다아, 허고 먹으먼 그게 저녁잉거이제 머.
입심도 좋아.
우리 어매가 나 뱄을 때 아매 가난해서 밥은 못 먹고 맨 풀칠만 했등게비지. 긍제 내가
뱃속으로서부텀 입에 풀이 올라 갖꼬 그렁가아?
그런 씰닥쟁이 없는 소리는 딛기도 싫고.
그러먼 머언 보드란 소리를 해 디리까요잉? 요렇게 마실이랑 오셨는디. 손님 대접 헐
것도 마땅찮고.
머? 손니임? 손님은 저나 나나 마찬가지제 내가 무신 손님? 인자 이 사람 일어나먼 몰
라도, 그때끄장은 내가 경황이 없잉게로 성님이 이해를 허겨 어. 콩팔칠팔 숭보지 말고.
아니, 이노무 여펜네가 시방 누구를 데꼬 노능 거이여, 머여? 애들 장난도 아니고. 능
구렝이 담 넘어 가디끼 살살 넘 약올려 감서 머얼 어쩌겄다능 거잉고? 잉? 경우지고 아능
것도 많은 자네가 어디 말을 좀 해 바. 머얼 어쩌겄다는 거인지.
옹구네 수작에 드디어 화통이 터진 공배네가 앞뒤 없이 맞대거리고 정면을 치자, 옹구
네는 샐쭉한다.
머얼 어쩌다니요?
아 그렁게 속 시연허게 말을 다 털아 놔 봐. 차라리. 아예. 그러먼 그런 줄이나 알게.
아니, 외나 내가 성님한테 물어야겄네? 머얼 듣고 잡은 거인지? 나는 암만해도 모르겄
잉게.
꼭 내가 내 입으로 말을 해야겄어?
헤기 싫으먼 내비두시요오. 나는 까깝헐 거 하나도 없소. 아쉬운 사램이 시얌 파드라
고., 머.
자네 이러기여?
아 긍게 머얼 이러기냐고요오. 하 참. 나는 모르겄다는디이. 성님 말을. 알어듣게 말을
해 바요오, 긍게.
공배네는 그만 입을 다물어 버린다.
묻는 내가 미친년이지.
그래, 내 더 긴 말은 안 물어 보겄어. 그런디, 내가 꼭 알어얄 일 있어서 왔는디.
알어얄 일 없으먼 머 못 올 디 외겼소? 아까부텀 자꼬.
공배네는 이제 더 물러설 수가 없었다. 머뭇거릴 수도.
자네 집에 오류골댁 작은아씨 뫼세다가 뉩헤 놨든디. 그거 먼 일이여? 항아장시 말로
는, 자기가 비접 뫼시고 가야 허능 거인디 사정이 그렇게 안되야서 만부득이 자네 집에
메칠 기실 거이라고 허등만. 대관절 어뜨케 된 사정잉가? 자네가 직접 둥구나무 밑에서
업고 왔다든디.
사실은 어젯밤 강실이를 본 순간부터 춘복이와 옹구네 사이의 사정보다 더 궁금하고 두
렵고 알 수 없는 일이라. 그에 관해서는 차마 먼저 말을 못 꺼냈던 공배네가 드디어 물었다.
소상히 자알 들었그마는 머이 더 알고 잡소? 성님은 애들맹이로 무신 궁금헌 일이 그렇
게도 많응고? 참 ㅈ소예? 힘이 남능게비네.
이게 그렇게 넘어갈 일이여 시방? 매안에서 알게 되먼 바로 그 당장에 모조리 다 끄집
혀 가서 물고가 날 일이 벌어지고 있는디. 덕석말이 한두 사람 당허고 말 일이 아니겄그
만, 이게 어디 예삿일이라고 그렇게 태평헌 소리를 허고 자빠졌디야? 금방, 당장에, 떼죽
으로 끄집헤 가서 저 송장이 다되야 갖꼬 온 것을 봄서나도.
애민놈 저테 베락맞는단 말도 몰라? 무단히 죄 없이 옆에 섰다가 날베락 뒤집어쓰능
걸. 춘복이 보고도 모르겄어? 왜 투장은 만동이 백단이가 했는디 춘복이는 짹소리도 못허
고 저 지경을 당했간디? 베락이 치먼 손잡은 놈은 다 같이 떼죽음당허는 거이 이치여. 이치.
그럴 일은 없을 거이요.
어찌 그리 장담을 허능고오?
그래 내가 속 시연히 이애기허먼 혼자만 알고 쥐도 새도 모르게 비밀을 지키실라요? 그
럴 자신이 있소? 아매 못허실껄?
아니, 옹구네맹이로 입이 싸고 ㅅ이 얕은 야발이도 지키는 비밀을 내가 못 지키게 생겠
어서 다짐을 받능가?
나허고 성님은 또 달체.
다르다니?
그 속은 나중에 알 것이고.
그러먼 나중에 알 건 알토란맹이로 냉게 놓고 시방 알어도 되는 것부텀 얼릉 말을 해 바.
옹구네는 공배네 옆으로 조금 당겨 앉는 시늉을 하며 목소리를 차악 낮추었다. 그러면
서 힐끗 춘복이를 쏘아본다.
작은아씨가 시방 태중이요.
그 말에 너무 놀란 공배네는 옹구네 기색이나 눈구녁 살필 생각은 엄두도 못 낸 채 뭐
라고?
라는 말조차 가슴뼈에 덜컥, 걸려 토해 내지 못하며, 아악, 벌린 입을 못 다문다. 그러
는 공베네 얼굴이 까맣게 질린다.
그렇게만 알고 지시요. 나는 그 속을 소상히 알고 있지만 그 말이야말로 시방 내가 입
밖에 내먼 너 죽고 나 죽고. 그 말 들은 사람도 죽소. 그렁게 더 알라 말고. 필유곡절에
무신 사정이 있능갑다만 짐작허고 계시요잉. 그러고, 작은아씨 기맥힌 사정을 내가 돕고
있단 것만 아시고.
아까 두 아낙이 서로 춘복이 곁에 앉아서 티각태각 말씨름을 시작할 때부터, 어렴풋이
정신이 들어 혼곤한 춘복이의 귀에도, 가물가물 그 말은 들리었다.
그는 부어터져서 철갑같이 잠긴 눈도 떠지지 않고, 매맞은 몸뚱이가 천 근이라, 바윗덩
이를 마주 문 입술도 벌어지지 않았으나, 오직 두 가지 사실만을 뚜렷하게 짚어 낼 수가
있었다.
작은아씨 강실이가 지금 거멍굴의 옹구네 닙에 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네가 지금 아이를 배었다는 것.
아아, 세상은 무너져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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