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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8권 (14)

카지모도 2025. 2. 7.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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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는 일찍이 우리 조선의 발상지다, 해서, 예로부터 경향간에 두루 지중히 받드는 곳

이니라.

이기채는 이제 시험을 보기 위해서 전주로 출행하는 열네 살 아들 강모를 큰사랑으로

불러 이렇게 말했다.

그러기에 왕조에서는 이 부성을 가리켜 풍패지향이라고 높여서 불렀다.

풍패지향이요?

오냐. 이는 중국의 고사에서 따낸 지칭이지, 내력인즉.

진이 쇄약해지자 남지인 진승과 오광 등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필두로, 중원 천지는

온통 군웅들의 싸움터가 되어 밤낮 없는 말발굽 회오리를 칠 때. 일어나고 스러지는 것이

뜬구름 같은 중에 끝내 남아서 청룡과 황룡으로 쟁패전을 벌이던 두 영웅이 있었으니. 이

둘은 초나라의 항우와 이에 맞서 일어난 일개 필부 유방이었다.

그는 고향땅의 정장이라는 시시한 몸으로 일어나서, 산을 뽑아 내던질 만큼 강성한 항

우와 겨루기를 사 년여. 마침내는 해하에서 항우를 무찌르고, 오강에서 자결하게 하였다.

이리하여 유방은 드디어 천추락 만세향의 기틀을 마련하고, 한나라를 세워 고조가 되엇

다.

이 한고조 유방의 향당, 즉 고향이 바로 풍패였느니라. 그래서 이 고사에 비추어, 한고

조가 태어나 자란데다가 후일에 큰 왕업을 이루어 잘된 땅을, 우리 아조의 성업에다 견주

어 비유한 이름이 곧 풍패지향이다. 알겠느냐?

예.

그러하매 아조에서는 전주를 선영의 선원조발지기로서, 아름다운 옥과도 같은 왕조의

근원이 시작된 곳이라 하여, 이 땅에 웅숭 깊은 경의를 다하였으며, 시방동천 부성을 두

루 성역으로 삼아서 신성하게 가꾸고 애중히 여기었다. 그리고는 한양에 버금가는 고을로

이 고장을 존중하였더니라.

알겠습니다.

거기다가 무엇보다 전주는 우리 성씨의 관향이다.

시조께서 나신 땅이란 말이다.

무릇 별과도 같이 무수히 총총하고, 풀과도 같이 흔하디 흔한 것이 세상의 사람이지마

는, 그 중에서도 어느 성씨를 막론하고 한 성씨의 시조가 되는 이는 그 태어남부터가 남

과는 다르고, 품행, 덕망, 학문이 뛰어나게 거룩하여 하늘도 아신는바, 후인의 추종 숭앙

을 받지 않으시는 이 없도다.

따라서 이만하온 어른이 태어나 자라고 연고 가진 땅이라면, 가히 군자의 지덕을 갖추

지 않았으리오.

이러한즉 그 땅은, 그 성씨의 시조로부터 대대손손 뻗어 나간 후손들의 줄기와 가지와

뿌리가 창성하면 할수록 추앙하여 지명을 일컬을 것이요, 마지막 잎사귀 단 하나 남을 때

까지도 그 종족에게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관향의 관자가 꿸 관인 것은 참으로 의미 심장하다.

무엇에 무엇을, 무엇과 무엇이, 왜, 어떻게 서루 꿰어지겠느냐.

전주에 들어가거든 애비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 보아라.

일개 성씨의 과냥도 이처럼 지귀하거늘, 한 나라 왕업의 탯자리이랴. 일러 무삼 하겠느

냐.

땅의 덕이 이토록 융융하매, 전주를 본으로 하는 성씨는 매우 많으니. 전주 이씨를 비

롯하여, 백제시대 팔대 성의 하나였던 전주 국씨, 그리고 전주 김씨, 전주 도씨, 문화 유

씨 전주파, 전주 박씨, 전주 애씨, 전주 연씨, 전주 오씨, 전주 운씨, 전주 임씨, 전주

장씨, 완산 전씨, 전주 정씨, 전주 주씨, 완산 최씨, 전주 최씨, 전주 필씨 등등 미처 다

헤아리기 어려웁다.

전주의 옛이름은 완산이었다.

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다음, 막 산수유 꽃들이 사운사운 노랗게 잎도 없는 마른 가지에

서 피어날 무렵, 까칠한 중로의 역사선생은, 둥그렇고 두꺼운 안경을 밀어 올리며 조근조

근 찬찬히 이야기하였다.

제군들이 앉아 있는 여기는 백제, 마한의 옛땅이다. 한반도 서남지방에 자리한 전라도

의 행정과 군사 및 교통과 산업, 그리고 문화의 중심지로서 전주는 그 이름을 떨치고 있

지. 흔히 전주를 천 년 고도라고 한다. 천 년이란 이 고장이 전주라고 불기기 시작한 이

후의 세월을 말하는 것이다.

전주라는 이름은 신라 경덕왕 16년에 처음으로 비롯되었고, 그 이전에는 완산이라 불렀

었다.

신라 천 년 이전에는 백제 칠백 년이 있었고, 백제 칠백 년 이전에는 마한의 세월이 있

었다. 마한의 이전에도 이 고을에 햇살은 다사로웠으니, 그 세월을 다하면 이천 년이 어

찌 모자라겠는가.

잘 들어 보라.

세상의 삼라만상 모양 가진 것 중에 혹 이름이 있는 것도 있고 이름이 없는 것도 있지

마는, 역할이 분명한 것치고 이름이 없는 것은 없다. 또 그 이름에는 분명한 뜻이 있다.

정명으로, 바로 붙은 이름을 바로 쓸 때 사문을 줄기가 바르게 잡히는 법이다.

전주의 이름을 보자.

이제 제군들이 부조의 함자와 휘자를 똑바로 아는 것이 당연한 일이듯이, 그 음덕을 입

고 살아갈 땅의 이름 또한 잘 알아야만 한다. 땅은 어버이이기 때문이다.

역사선생은 칠판에 백묵으로 강렬하게 전주라고 썼다.

전주는 온전 전과 고을 주로서 온전한 고을이라는 말이요, 완산은 완전할 완에 뫼 산이

니, 산의 고어가 달인 것을 안다면 온 들이라, 완전한 외와 어울려 다함없이 완전한 산과

들, 즉 완전한 누리를 일컫는 말이다.

이는 전주가 나지막한 산자락에 둘러싸인 원형분지로서, 동남쪽 저만큼 산악지대를 우

뚝우뚝 장수처럼 첩첩이 늘어 세우고, 서북쪽 비옥한 평야지대를 아득히 풀어서 펼쳐 놓

아 비산비야를 적절히 이룬 지형인데다가, 서해 바다 또한 지척인지라, 산과 들과 바다의

산물이 사시사철 풍요롭게 모여들고, 기후조차 온화 따뜻하여, 사람들의 성품은 명랑하

고 낙천적이면서 남방인 특유의 개방적인 호방함을 넉넉하게 가진 바를 기리어, 만물이

은성하며 모든 것을 완비하여 원만하다는 뜻을 글자로 표현한 것이리라.

이 글자 속에는 무궁하면서도 아늑한 이상이 담기어 있다.

전자나 완자나 모두 온전하다는 뜻으로, 온이란, 흠이 없다. 혹은 모든 것, 그리고 갖

추어져 부족함이 없는 상태, 백, 천, 만 숫자를 가리킬 때, 백의 옛말이다.

온 세상, 온갖 것, 온 힘을 다하여, 온통.

백제 사람들은 이 온이란 말을 즐겨 써 온 것 같다. 그 시조인 온조왕의 이름 첫 글자

인 온에도 드러나 있고, 국호 백제의 백도 훈으로 읽는다면 온이다. 이 온 속에는 완전

원만, 광대함을 사모 숭앙하는 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렇다면 전주 이전에 완산, 완산 이전에는 다른 이름이 없었던가.

찾아보면 마한이 멸망한 뒤에 백제에 병합당하지 않으려고 최후까지 버티던 고을 명칭

가운데 원산과 금현이 있는데, 이 원산이 바로 지금의 전주 일대로서 완산과 같은 이름인

것이다. 우리 글자가 아직 없었던 때라 그 훈만 빌려다가 이두 혹은 한문으로 적은 것이

니, 무슨 말인지 짐작이 가리라.

또 하나 예를 들면, 부족국가 시대, 마한을 이루었던 오십오 개 소국 중에서 전주 지방

을 중심으로 세운 전라도 지역 나라의 이름은 원지국이었다.

이 원 역시 완상의 완과 소리가 비슷하니 같은 말이다.

이처럼 전주의 옛이름은 온 들을 나타내는 한자말이, 때마다 표기는 바뀌었으되 그 뜻은

변함없이 이어져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유구한 이름이 아니냐.

비록 아직은 국가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동맹 마한이었지만, 일찍이 삼한을 제압하던

나라 마한의 마지막 도읍을 낀 중심지로서, 그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몸소 보았으며, 끝

까지 백제에 항거하여 복종하지 않았으나 결국은 분한 눈물을 삼켰던 땅, 원산, 원지국.

청동기 내지는 초기 철기문화를 배경으로 나라의 기틀을 잡은 이 마한 소국 원지국은

토착적인 지배 세력과 지배 기구를 토대로 독립적인 성장을 지속하였으나, 끝내는 백제에

복속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벌어진 생살 아물 듯이 백제의 몸 되었다.

그리고는, 찬연하게 융성했던 백제의 빛나는 고도였음에도, 그 청년 백제가 분하고도

아깝게 죽은 국망의 철천지원, 사무치는 원한으로 하늘을 우러러 울 수조차 없어서, 천추

에 시퍼런 멍 깊이깊이 다시금 엉기어 울형이 된 땅, 완산.

완산은 나라가 망하는 것을 또 한번 몸으로 겪었다.

늙어서 기진맥진 제 한 몸 가누지 못한 채, 기력이 다하여, 온갖 징조를 행패처럼 드러

내며 망한 나라였다면 이러했으랴.

밤 잔 원수 없다고 하는데, 국운이 하늘을 찌르게 융성하던 성세의 백제가 피를 뿜으며

요절한 망국의 설움이 얼마나 절통했으며, 왕손도 아니요, 귀족도 아닌 일개 필부 필부들

의 심장에까지 저미어든 한이 한두 날도 아니고, 일이 년도 아니고, 백 년 넘어, 이백 년

넘어, 백제 멸망 이백사십 년이 지나도록 풀리지 않아, 귀신도 질릴 만큼 질기게 깊어,

멍든 피, 속으로 울어 울면서 대대손손 흘러내리다가, 신라도 힘 다하여 기우는 말엽, 후

백제란 이름 들고 깃발을 드날리며 입성하는 견훤을 완산의 아들이라고 그토록이나 열광

하여 맞아들였으리오.

신라 진성여왕 3년

천 년 세월 이어 오던 왕조는 쇠잔의 징조가 뚜렷하여 여왕은 구중 궁궐 깊은 곳에 화

려하고 음탕한 잔치를 날마다 극치에 이르도록 벌이며, 오로지 행음을 즐기니, 나라의 기

강은 무너지고 백성의 원성은 실로 높았다.

이에 원종, 애노 등이 상주에서 반란하였다.

그 반란은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며 마른 장작을 태우듯이 온 나라 안에 걷잡을 수 없

는 회오리를 일으켰다.

신라는 늙은 것이다.

이 진성여왕 6년에 나이 스물여섯 난 무진 사람, 청년 견훤이 한 뜻을 품고 무리를 이

끌어 서남 주현을 치자, 한 달 만에 그를 따르는 사람은 오천이 넘었다.

날렵하고 강력한 견훤의 군사들은 가는 곳마다 승전하면서, 효공왕 4년에 드디어 전주,

완산주에 이르렀다.

문밖에 나와 길을 메우며 에워싸는 주민들의 환호를 받고, 그는 자기가 인심 얻은 것을

기뻐하며 크게 외쳤다.

백제가 개국한 지 칠백 년이 다 될 무렵 당고종은 신라의 청을 들어서, 장군 소정방을

보내어 십삼만 대군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왔고, 신라 김유신은 황산을 거쳐, 당병과 함께

백제를 합공하여 멸망시켰다. 비겁한 일이다. 나는 지금 감히 도읍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

라, 오직 백제의 사무친 숙분을 풀려는 것뿐이다.

이 말에 주민들은 주먹으로 눈물을 씻었다.

백제를 다시 일으키자.

견훤은 먼저 신라를 정벌하여, 지난날 나당 연합군에게 억울하고도 무참하게 짓밟히어, 저 찬란하였던 백제국 칠백 년의 사직을 멸절시키고, 당나라에 의자왕을 노예처럼 넘겨 주어 버린 것에 대한 설욕전을 기어이 베풀어서, 이역 만리 구천의 검푸른 바람 속을 아직도 헤매며 방황하고 있을 왕의 원혼을 달래 드리자 하였다.

그리고 백제 유민들의 가슴에 피못 박힌 통분을 기어이 갚아 주겠다고 맹세하였다.

서른네 살 강용한 견훤은 천성 2년 정해 구월, 곧 경애왕 4년에, 군사를 몰아 질풍같이

신라의 남해안 일대를 휩쓸었다.

삽시간에 상주, 산양을 공략하여 불바다로 태우고, 울산, 영천을 엄습하여 함락시킨

뒤, 그 길로 계림 서곽을 쓸면서 강토가 진동하게 왕도 경주로 휘몰아쳐 들어갔다.

견훤이 무리를 몰고 성난 파도처럼 공격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경애왕은 혼비백산 황

급히 왕건에게 급박한 정세를 알리면서

도와 달라. 하였다.

왕건은 장수 공훤에게 일만 명의 군사를 주어 지원하라.

했으나, 고려의 원군이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서라벌은 거대한 산더미와 같이 덮치며 몰

려오는 후백제군의 말발굽 아래 짓밟히고 말았다.

때마침 경애왕은 포석정에서 비빈 척신들과 함께 농탕하게 흩어진 오색 비단처럼 마시

고 취하며 흥겨운 풍류 놀이를 벌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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