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패자의 내면은 문서로 남지 않는다. 그리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나는 일개 필부로서, 견훤이 왕건과 신검의 싸움을 지켜보던, 환장할
것 같던 지경을 혼자 상상해 보곤 한다. 거의 한평생을 두고 싸워 온 숙명의 적수 왕건에
게 제 발로 기어 들어가 늙은 몸을 의탁하는 비루함과, 그 숙적의 창검을 빌려 제 아들을
죽여야 하는 찢어짐. 그때 이미 견훤의 창자는 터져 버렸을 것이다.
어쩌면 견훤은 그 싸움에서 신검이 왕건을 이겨 주기 바랐을는지도 모른다. 비록 자기
가 아들의 칼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차라리 신검이 왕건을 보란 듯이 무찔러 단칼에 버
히고, 자신이 일으켜 세운 후백제 왕업을 자자손손 이어 주기 바랐을는지도 모른다. 엄청
난 이율배반이겠지만, 아마도 그것이 어버이요, 제왕의 마음이 아닐까.
역설과 역사.
못난 놈.
외마디 부르짖음을 토하는 견훤의 터럭은 갈기같이 뻗치어 부르르 떨렸다. 그 처참한
비명이 신검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쥐어뜯으며 터뜨린 것인지 아무도 알 수
가 없으나.
견훤은 황산불사에서 시시각각 신검이 쫓기고 있는 전황을 듣다가, 울분과 번민에 싸여
괴로워하던 끝에 홧병으로 등창이 나서, 며칠 후 파란만장한 풍운의 생애를 마치니, 그날
이 고려 태조 19년 구월 팔일 그의 나이 일흔이었다.
일찍이 청운의 뜻을 품고 무진주(광주)를 거점으로 일어선 견훤의 후백제는, 삼한 제패
의 꿈을 헛되이 무너뜨린 채, 백제의 이름을 다시 찾아 세운 지 이대 사십오 년으로 물거
품처럼 스러져 버렸다. 거품 같은 웅지.
견훤이 어려서 아직 강보에 있을 때 아버지가 들에 나가 밭을 가는데, 어머니가 밥을
나르면서 어린아이를 숲속에 두었더니, 범이 와서 젖을 먹였다 한다. 호랑이 젖을 먹은
견훤.
반세기의 세월을 두고, 닿는 곳마다 피비린내 진동케 하면서 왕건을 죽을 고비로 몰아
넣고 적병들을 낙엽의 산더미처럼 베어 넘기던 동방의 항우. 후백제 왕, 견훤은 이렇게
지고 말았다.
그가 숨을 거둘 때
하늘이 나를 세상에 보내면서, 어찌하여 왕건이 뒤따르게 하였던고... 한 땅에 두 마리
용은 살 수 없느니라.
길게 탄식하며 고요히 눈을 감았다고 한다.
초한 때 오강에서 자결하던 패왕 항우의 비극적인 죽음을 방불케 하지 않은가.
역사선생은 한숨 지었다.
견훤이 아들 신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금산사 절간에 유폐된 상황은, 조선의 태조 이
성계와 그 아들 태종 이방원의 관계와 너무나도 흡사하지 않은가. 태조도 태종을 죽이려
고 했었다. 그러나 왕조가 이어진 조선에서는 그것이 야망과 권력의 속성, 혹은 건국 초
기의 혼란으로 이해되고, 견훤의 경우에는 치명적인 결함이어서 천하에 다시 없은 패륜으
로 매도되며, 자식한테조차 버림받는 아비, 인격 파탄자, 웃음거리로 전락되었다.
그 누구의 그 어떤 꿈도 그 이름에 비비어 다시 불씨를 일으킬 수 없도록, 능멸당한 임
금. 후백제 왕. 견훤.
그는, 갔다.
왕건은 항복한 무리들을 모두 위로하고, 그들의 처자와 더불어 고려경에 올라와 살라.
고 허락하였다.
다만 신검을 부추겨 모의를 꾸미었던 능환에게 문책하기를 너는 처음 양검, 용검 등
과 함께 감히 역심을 품고 밀모하여, 대왕을 잡아 가두고 그 아들을 왕으로 세웠으니,
이것이 다 너의 음모다. 남의 신하 된 도리로서 이것이 합당한가. 하니, 능환이 고개를
떨구고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태조는 능환을 크게 꾸짖고 단칼에 베어 버렸다.
그리고 신검에게는
그대가 왕위를 찬탈한 것은 다른 사람의 협박 때문이었지 본심은 아니었으며, 이제 왕
명에 귀의하여 죄를 뉘우치므로, 특별히 죽이지 않고 용서한다.
했다고도 하고, 죽였다고도 한다.
한편, 견훤의 사위 박영규한테는
전왕이 나라를 잃은 후에 그 신하로서, 누구 하나 위로하는 자가 없었는데 오직 경의
내외만이 천리에 멀리 서신을 보내어 성의를 표하고, 겸하여 나에게 미덕을 돌려 보내니,
그 의리를 잊을 수 없다. 하여 벼슬과 후한 상금을 내리었다.
신검의 군대를 격파하고 후백제를 토평한 왕건은 그 길로 후백제의 도성 완산에 들어
가, 토호와 장자들을 찾아가 일일이 살피어 안위를 묻고, 창황망조 놀란 백성들을 어루만
져 진정시키며
편안히 생업에 종사하라.
이르고 돌아갔다.
이러한 태도는 대단히 어질고 너그러워 보이지만 미화된 부분도 있을 것이고, 사실은
그렇게 하는 것이 그의 지략이었다.
나라를 세웠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지극히 불안정한 상태였던 고려 초기였으므로, 그 시
대의 사회적 지배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각 지방호족의 존재는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은 독자적으로 일정한 영토 영역을 지배해 나갔다. 따라서 지방 장
관은 조정에서 파견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니 자연 호기로운 지방 호족들의 반란도 잦았다.
당시 형편이 이러했기 때문에 고려 초기 수십 년 동안은 왕실이 호족들과 타협하지 않
으면 안되었다. 말하자면 각 지방에 대한 호족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유력한 호족을 포섭
하여 유대를 강화하면서, 이들을 철저히 감시하거나 상호 견제케 하여, 딴 마음을 품지
못하게 함으로써 왕실의 안정을 도모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태조의 호족정책을 확연하게 드러내는 것이 혼인정책이었다.
왕건 태조는 호족의 세력이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고, 왕실의 세력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각 지방 호족의 딸들은 스물아홉 명이나 후비로 맞이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부인들한테
서 난 스물다섯 명의 왕자와 아홉명의 왕녀를 다시 호족들과 혼인시키어, 서로간에 이중,
삼중으로 혈연적인 관계를 맺게 했다. 또한 왕녀를 신라 경순왕 즉 김부에게 출가 시킴으
로써, 지방 호족 출신인 고려 왕실이 신분으로나 실력으로나 명실 공히 신라 왕실과 대등
하다는 것을 과시하고, 대외적인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가히, 누대 송악 일대를 중심으
로 해상 활동을 하면서 호족으로 등장한 가문의 후예답게, 왕건은 지략이 출중했던 것이
다. 그는 신라와 후백제에서 귀순한 왕족, 귀족은 물론이고 지방 호족에 대해서도 융화정
책을 썼다. 이는 태조의 아량이나 덕망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전통적인 지위를 인정함으로
써 민심을 수습하고, 왕조의 권위를 떨치려 하는 데 실리적인 목적을 둔 것이었다.
이러한 왕건이 신검과 박영규에게 벼슬을 내리고, 항복한 무리들한테 위로 환대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그러나 신검의 두 아우 왕자 양검과 용검은 위리안치, 유배를 보냈다가 적소에서 죽이
고 말았다. 그리고 뒤미처 신검을 죽였다는 설도 있으니.
그것은 무슨 까닭이었을까.
또 하나,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이렇게 일단 백제땅을 손안에 넣은 태조는, 이 전주 완산 지방에 대하여, 한 나라의 어
버이 제왕으로서 자식인 백성들에게 결코 가져서는 안되는 편견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말
았던 것이다.
아마 지나간 한평생 몇 십 년 동안, 견훤과 격심한 쟁패전을 벌이면서 호되게 당했던
분이, 끝내 피해망상으로까지 나타났던 모양이다. 그것을 결코 지울 수 없는 지독한 증거
가 있지.
바로 소위 훈요십조다.
이 훈요십조에는, 고려가, 완산부성과 서해영지, 즉 호남지방, 그러니까 백제의 옛땅과
그 땅에 살고 있는 백제 유민들에게 어떠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다른 곳과 달리 어
떻게 대했었던가가 문서로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 내용과 언사가 너무나 편협하고 노
골적이어서 나는, 이 땅에 살고 있는 후예로서 오직 믿고 싶지 않을 뿐이다.
태조가 붕어하기 한 달 전, 그러니까 등극한 지 이십육 년이 되는 사월달. 자리에 누운
왕건은 전날 신검을 함께 쳤던 장군 박술희를 불러, 친히 이 훈요십조를 건네 주었다.
자손들에게 남겨 주는 열 가지, 꼭 지켜야 할 가르침.
즉 태조의 유언이 되는 유훈이었다.
왕의 자손들이라면, 그가 누구인가.
적장자라 할 시에는 왕일 것이요, 왕자들이라면 왕실을 이룰 사람들이니. 이것은 단순
히 민가 여염의 부모가 죽으면서 자식들한테 남기는 형제화목, 근검절약, 도덕적 훈계가
아니라 국가 백년지대계, 혹은 천년지대계를 내다보고 이끌어 갈, 왕실의 정책 지침으로
내려 주는 선왕의 지엄한 분부인 것이다. 더욱이나 개국시조의 계명이 아닌가.
이는 고려의 태조가 자손들을 훈계하기 위하여 몸소 지은, 고려 왕실의 헌장으로서 후
세의 귀감이 되도록 한 조항들이다. 여기에는 태조 왕건의 신앙과 사상, 그리고 정책과
규범이 단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역사적으로는 대단히 귀중한 문헌이지만, 통탄하여 마지
않을 항목이 바로 훈요십조 제8항이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불 8권 (18) (0) | 2025.02.11 |
---|---|
혼불 8권 (17) (0) | 2025.02.10 |
혼불 8권 (15) (0) | 2025.02.08 |
혼불 8권 (14) (1) | 2025.02.07 |
혼불 8권 (13) (0) | 2025.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