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내비두어
온갖 짐생을 다 키워도 머리 꺼먼 짐생은 키우능 거 아니란 말, 내가 그전보톰 딛기
는 들었지만 왜 그렁가를 몰랐드니, 인자 봉게 옛말 그른디 한나도 없습디다. 무단헌
소리가 왜 나왔을 거이요잉? 다 그럴만 헝게로 그랬을 티지.
분이 안 풀리는 공배네가 바짝 마른 두 무릎을 깍지 끼워 옴킨 채로 부르르 어깨를
떤다. 이미 가짓빛 이 되어 버린 입술을 물어뜯어 짓씹는 그네의 낯색은 살기마저 느껴
지는 회청이었다. 그 잿빛 띠운 푸른색에 놀란 사람은 공배였다.
허, 이거 일나겄네.
어이 참, 철들자 망령난다고들 허등만 임자는 망령나기 전에 철이 몬야 들어서 갠찮
그만, 시방이라도 그 기맥힌 것을 알었잉게 잘 되얐어. 머. 참 큰 것 깨쳤네어이.
골골이 주름 패인 이마빡과 볼따구니 눈자위를 구기면서, 웃음엣소리 비슷하게 눙치
려드는 공배의 대꾸를 비웃적대는 것으로 맞받은 공배네가, 벌통 엎은 것처럼 부아
를 터뜨리며, 마치 그가 옹구네이기나 한 듯이 한꺼번에 덤벼들었다.
그 빌어처먹을 녀르 여펜네가 나를 보고, 이보시오 성님, 말 좀 물어 봅시다 예, 허드
니마는 어이구.
여우 꼬랑지를 감는 시늉으로 옹구네 음색을 본떠 흉내내던 공배네는 그만 화증이 북받
쳐 거친 숨을 토 하고 만다. 춘복이 농막에서 바로 아까 옹구네한테 당한 일이, 명치에
뼉다구 거꾸로 꽂힌 것같이 걸려 숨통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숨쉬여 감서 히여. 넘 이얘기 허다가 내 초상 치겄네.
공배는 곰방대에 담배를 일부러 천천히 잰다. 아낙의 모습이 전에 없이 격한 것이어
서, 잔뜩 허한 사람이 저러다 기색할까 겁이 난 탓이었다. 어떻게든 저 심정에 물꼬
를 터주어야 탈이 안 붙을텐데. 싶어서 그는 맹문이마냥 공배네는 우묵히 바라만 본다.
무어 한 마디 되물을 필요도 없는 것은, 일의 경위나 속내를 이미 다 짚고 있기 때문
인지도 모른다. 그는 대꾸 대신 탁, 타닥, 부싯돌을 친다. 부딪치는 불빛이 날카롭다.
오소리 잡을라요? 사람 복장 처지는디 불끄장 때니라고.
공배네가 눈을 꼬아 뜬다.
사램이 늙어 감서 겁이 없어.
그 소리도 못허고 살어? 내가 먼 죄 졌간디? 등신맹이로 암 말도 안허고 있는디끼
없는디끼 상게로 아조 농판인지 아능게비여.
누가, 내가?
봉사도 날짜 가는 속은 알드라고, 나도 지년 짚이는 거 있잉게, 지년도 나 짚이는 거
있겄지맹.
눈먼 큰애기 시라구 다듬능가. 건둥건둥 외딱 배딱 왔다갔다 허지말고 찬찬히 이얘기
히여. 밤은 징게로. 어채피 잠도 안온디.
잠? 참말로 태평헌 소리네. 이 판에 잼이 다 머이여. 그년이 아조, 나보고 그럽디다.
성님이 누구시요? 내가 하도 기가 맥헤서, 머? 그렁게로 요년이 눈꾸녁 차악 내리뜨고
목청 깔어서 허는 말이, 저 사람한테 누구시냐고오, 그렁만. 자빠져 누워 있는 춘복
이란 놈을 손꾸락으로 갈침서. 누구디 다. 내가 춘복이한테 누군디. 내가 누구요,
가한테. 어 디 이녁이 한번 이얘기 해 봇시요. 나 그것 좀 알 어야겄잉게.
공배네가 공배한테로 제 앙가슴을 내밀며 탕탕, 친다.
공배는 대답 대신 푸우우, 부옇게 연기를 뱉어 낸다.
몰르요? 그렇게 몰릉게 당허제. 그년이 머라고 그런지 아요? 성님이 배 아퍼서 저 사람
났냥만? 났니야.
아이고오. 천하 망해 때가리 부칠 년.
내 아들이다.
어쩔래?
라고 당당하게 외장치며 오금박지 못한 분통이 원통해서 공배네는 으드드득, 이를 갈
았다. 이빨이 부싯돌 치는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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