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왜 이리여? 정신채려. 무조건 앞뒤 없이 저질르고 보자능 거이며, 머여? 시방.
어디로 뫼시고 와? 뫼시고 오기를. 일의 사단도 모름서. 마른 하늘에 날베락 맞일라고.
잉? 앉어 바, 어서. 그러고. 내 말좀 들어 부아아. 급헐수록이 돌아가라고 안히여? 그년
이 도독년이랑게. 아까도 기양 사리반서방님이 그으 살갑게 주고 가신 돈을, 눈 깜작새
잡어채 갖꼬는 어따가 슁킷능가 날 름 줏어채케 불고, 어디 주댕이 씻은 자리도 없
드랑게요. 미꼼허니.
도적년이고 도첵이고 간에 넘의 일이여. 넘의 일.
아 왜 넘의 일이여어? 시방 작은아씨 짐보따리도 그년이 요절을 낼 판인디. 얼릉 안
가 보면. 시얌가에 깟난애기 빠질라고 허능 걸 보고만 있으란 말이요? 이러고 있을 때
가 아니제.
공배네는 미영치마 앞자락을 잘못 밟아 우두두둑 말기 터지는 소리가 나게 헛디뎌 서두
르며 방문고리를 잡는다. 시각이 급했던 것이다.
이 단칸방에 뫼시고 와서 어쩔 작정이냥게에?
단 메칠 간인디 어디 가서 꼬부리고 자먼 잘디 없을랍디여? 자개가 금생이네 가든
지 택주네고 가든지.
휘잉 달아나는 발걸음 소리에 어이가 없어진 공배는 앞일을 가늠해 보느라고 골 패인
이마를 깊이 찡 기는데, 공배네는 옹구네 방문짝을 사정없이 열어제친다. 마음이 급한
탓이었다. 옹구네가 아직 농막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얼른 일을 도모해야 탈이 안 붙
을 터이니.
옹구야.
부르고 들어갈 겨를도 없었다.
옹구는 새비처럼 꼬불친 채 방 귀퉁이 한쪽에 잠들어 있었다.
천만다행히도 옹구네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다고 누가 열녀 정문을 세워 줄 거이냐. 쎄 빠지게 수발 듬서 맻날 메칠 눌러
붙어, 지 말마따나 지 배 아퍼 난 자식새끼 팽개치고 농막에만 맴돌때는, 다 그만헌
잇속이 있잉게 그러능 것을. 한 가지 일을 보면 백 가지 일을 알 수가 있제. 훤허다.
훤해.
그네는 성큼 방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재빨리 강실이 머리맡에 놓인 보퉁이를 쏘아보
았다. 아직 그 보따리를 풀어 본 흔적은 없는 것 같았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옥색 물들인 보자기가 이불보만이나 한데, 들고 난 자국 하나 나
지 않게 편편한 모양새로 채곡채곡 쟁여 싼 물건들은, 피륙과 보패 의복들이 분명해 보
였다.
니가 감히 이것들을 독차지헐라고 모사를 뀌미다니. 하늘이 무심치 않으시먼 니 손모
가지가 썩고도 남을 거이다. 매안으서라고, 알먼 가만히 지시겄냐? 대관절 그년은
전생에 멀 허다 왔이꼬? 나허고는 또 무신 웬수 척을 졌었간디 이렇게 일마동 꾀이고
얽혀서.
아이고, 작은아씨. 눈 뜨겼네요?
찬 기운이 끼쳤는지 아니면 아까 문짝 벌컥 당기는 소리에 놀랐는지, 강실이가 홀연
눈을 뜨고 공배네 를 바라보자, 그네는 반색을 한다.
얼매나 놀래겼능기요?
언감생심 강실이가 손을 잡을 수는 없었지만,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보듬을 것 같은
기색으로 공배네는 강실이 얼굴을 들여다본다.
까우룩한 등잔불 탓도 있겠지만, 이토록 가까이에서 작은아씨 얼굴을 본 일이 없었
던 공배네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미 그 옛날 아리잠직 어여쁘신 모습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숨이 붙어 산 사람이
랄까, 도무지 살아 있다고는 보기 어려울 만큼 검누렇고 푸른 빛 도는 낯색에 사색이
짙은 때문이었다.
즈그 집으로 가십시다. 어서 일어나계요. 지가 업고 가지요.
불문곡절하고 이불을 걷어차며 강실이를 일으켜 앉힌 공배네는 순간 보따리에 눈이 가,
공배와 함께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도저히 한 몸에 업고 이고 할 수가 없는 탓이었다.
저 짐 보따리를 몬야 갖다 놓고 와서, 작은아씨를 업고 가까? 앙 그러먼 작은아씨를
몬야 업어다 놓고 와서 짐 보따리를 갖고 가까.
그러나 둘다 마뜩찮은 방법이었다.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옹구네가 들이닥치면 이도 저
도 다 틀려 버리지 않겠는가.
저한테 지대고 조께 걸어 볼 수 있으시겄능교?
일으켜 세운 강실이 어깻죽지에 제 팔을 집어넣으며 공배네가 묻는다. 강실이는 희미
하게 고개를 끄덕 인다.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왜 나가야 하는지 영문을 묻지도 않는
강실이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다.
저것도 챙게 가시야지요잉?
묵근한 보퉁이를 냉큼 머리에 올려 인 공배네가, 벽에 기대어 세워 두었던 강실이를 부
축하며, 막 한 걸 음을 때려고 할 때.
아니, 이게 누구여어?
누가 바깥에서 돌쩌귀 떨어져 나가게 지게문짝을 잡아당기는가 싶더니, 옹구네가 기
겁을 하며 대꼬챙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벼락같이 달려들어 공배네 머리에 인 보
퉁이를 홱 나꾸어챘다. 제 무게를 못이긴 보퉁이가 방바닥으로 퉁 떨어져 나뒹굴
자, 꼬부리고 자던 옹구가 놀라 눈을 휘둥그래 뜨며 일어났 다. 겁이 난 옹구는 비죽비
죽 입귀를 비틀며 울려는 시늉을 한다.
옹구네 눈에는 그런 것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다.
머? 나한테 아까 약값 훔쳤다고 애민 소리 팡팡 험서 삿대질허드니, 성님 시방 멋
허요? 쥔도 없는 넘의 집이 들으와서 남 다 자는 오밤중에 시방 멀 훔쳐가시요? 말
조심히여. 말이먼 다 말인 중 아능게빈 디, 찢어진 입이라고 나발나발 아무케나 줏어
셍기네? 나는 시방 작은아씨를 뫼시고 가능 거이여. 보먼 몰라? 공배네는 뫼시고에 힘을
주어 말했다. 이상하게 그네는 옹구네와 말가릴 일이 생기면 우선 속이 떨 리고 식은
땀이 나서 차분히 따져나갈 수가 없었단. 그래서 이전에는 될 수 있으면 옹구네와 맞
붙지 않으려고 미리 눙치거나, 아예 가시 바르듯이 살을 빼고 알맹이 만 툭, 던져 한
마디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워낙 독이 올라 있어 보통때의 그네 같지가 않은 것이다.
뫼시고? 어디로?
이것이 옹구네였다. 한판 요란하게 벌어질 것이 분명한데도 그네는 마치 허리춤 추
키고, 소매 걷고, 행전 매는 사람처럼 차분히 말 고삐를 잡는 것이다. 고개를 배또롬
히 틀면서.
우리 집이로 가제 어디로 가아?
내 요년을 오늘 저녁에 반 쥑여 놔야제. 지렝이도 밟으먼 꿈틀헌다는디. 니가 나
를 멀로 보고 요렇 게 마구 밟어? 내가 아무리 농판 버꾸라고, 니가 이렇게끄장 막 대
헐 수 있능 거이여? 어디, 니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맞붙어 해 보자.
공배네 음성 끝이 갈갈이 갈라진다.
왜 그 집이로 간다요?
그러먼 왜 느그 집이가 지시야냐?
말을 허먼 들은 사람끄장 다 죽는 일이라고 안 그랬소? 내가.
부앙 떨지 말어, 누가 그 속 모를 지 아냐? 중이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정신
을 판다드니, 니가 작은아씨 씨러지계서 머 어쩠다고 헛소리 허지만, 속셈은 이 보따리
에 있능거 아니여어? 말이사 바로 말이지만 그 잘난 쌧바닥으로 항아장시끄장 꾀여서
띠여 불고.
오오, 그거이 성님 ㅅ이요? 어찌 그리 잘 앙고?
저리 치나. 걸려어. 갈랑게.
공배네는 긴 말 해 보아야 아무 득볼 것이 없어서 한 손으로 옹구네를 밀치며, 부축
하고 있던 강실이 를 더욱 바짝 조인다.
어디로 누구를 데꼬 간다고 이리여?
옹구네가 엉겁결에 주춤 밀리더니 반사적으로 퉁겨오면서, 매가 병아리 채듯이 강실이
팔을 모질게 잡아챈다. 공배네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강실이 몸통을 두 팔로 감아 안
고, 옹구네는 닭다리 찢듯이 강실이 팔을 잡아당기며 악을 쓰니, 옹구는 그예 울음을
터뜨렸다.
아아, 더러운 목숨.
강실이는 두 아낙이 제 몸뚱이 하나를 찢어 가지려고 악다구니 쓰는 와중에, 검불같
이 흩어져 버리지 도, 의연하게 나무라며 위의를 갖추지도 못하는 자신을, 차라리 이
들이 찢어 버렸으면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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