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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8권 (40)

카지모도 2025. 3. 11.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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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여인이 갖추어야 할 일곱 가지 어진 모습에, 첫째는 보행이 단정하여 흔들리지 않

는 것이요, 둘째는 얼굴이 모난 데 없이 둥글고 몸 또한 두터워야 하며, 셋째는 귀.

눈 코.입. 눈썹의 오관이 모두 반듯하게 바르고, 넷째는 이마와 코와 턱, 삼재가 균등

한 것, 그리고 다섯째는 그 언어가 단정하면서도 차지 아니하고 허풍이 없는 것이다.

여섯째 용모는 엄숙하면서도 인정이 넘치며, 일곱째는 눈동자의 검은 모공이 크고 눈

은 항시 바르게 정시하는 것을 이른바 칠현이라고 하느니라. 이렇게 일곱 가지 덕을 두

루 갖춘 상호를 가진 여인의 심상에는 선덕과 현숙함이 가득하여, 부명자수로, 남편

의 운을 일으키어 앞 날을 밝게 하고 자식을 빼어나게 길러서 가문의 명성을 드높인다

고 유장상법에 일렀느니라. 한 집안이 크게 융성하거나 무참히 쇠락하는 것이 여인 하

나 들고 나는 것에 달린 경우가 허다하니, 부디 명심하여라.

아직도 귀에 쟁쟁한 청암부인의 목소리가 이 곡경의 누옥에 울리는 순간, 강실이는

저도 모르게 주루 륵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할머니, 할머니.

사람의 얼굴 형상에 따라 성격이 나타나고, 그 성격은 종신토록 운명에 영향을 끼치

나니. 나는 극부의 상이라. 여인으로서 다스운 세상을 못 살아 보았다만, 예전의 어

른이 말씀하시기를, 사덕이라 일컫는 네 가지 덕성을 꼭 갖춘 여인은, 심성이 바른

까닭에, 비록 어느 부위가 흉한 상을 띠고 있다 할지라도, 모 든 재앙을 물리치고

도리어 복록을 받아 가문을 일으키며 남편 운을 훌륭하게 북돋아서 커다란 행복을 누

리게 된다고 했다.

그 사덕을 짚어 보면, 첫째, 평소에 남과 다투지 아니하고, 둘째, 고난 중에도 상대

를 원망하지 않으며, 셋째, 쌀 한 톨이나 음식 찌꺼기 한 옹큼이라도 결코 버리지 않

고, 넷째, 급한 일을 당해도 놀라거나 기뻐하지 않는 것.

이라고 조목조목 일러 주시던 청암부인의 모습이, 이와 같은 순간에 떠오르는 것이 강

실이는 너무나도 송구스러워, 차라리 덕석말이 몰래를 맞다가 절명을 하는 한이 있을

지라도 매안에서 당하는 것이 떳떳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매안이 구슬 같은 자손으로 나서 어쩌다 이처럼 치욕적인 정황에 이르고 말았던가.

찢어라, 나를 찢어 갈갈이 흩어라. 내 이 자리에서 더 살고 싶은 마음 실오라기만큼

도 없으니, 더 못 당할 수모도 또한 없으리라.

몸을 내맡긴 강실이를 붙들어 잡은 두 아낙은 서로 지지 않으려고 거품을 물다가, 누

가 먼저라 할 것 도 없이 강실이를 동댕이치고, 저희끼리 맞붙어 머리끄덩이를 쥐어

틀었다.

그 서슬에 강실이는 비틀 저만큼 떠밀려나 벽모서리 귀퉁이에 쿵, 구겨 박질러졌다.

강실이는 바람벽에 등을 기댄 채, 써늘하게 끼쳐드는 냉기 때문만은 아닌 소름에 소

스라친다. 등골을 훑어 내리는 손바닥의 불길한 차가움.

와드득, 저고리 옷고름이 떨어져 나가고 머리털은 산발이 되어 미친 것처럼 흩어진

옹구네가 공배네를 메다붙이며 내뱉는다.

아무리 미워도 춘복이와 내쳐 살 양이면 공배네한테 아주 끝까지 막보기로 덤벼들어

서는 안된다는 것 쯤을 모를 옹구네가 아니었다.

다그치기는 하되 여지는 남겨 두어야 했다.

그래서 힘으로 하려 들면야 다 늙어 쉬어빠진 공배네 정도를 못 이길리 없었지만 적당

히 몇차례 쥐어 뜯겨 주고, 그 대신 이쪽에서도 야물게 긁어 할퀸 다음, 더 넘보지 못

하도록 쐐기를 박으려는 것이다.

두 아낙이 야차들 같이 뒤엉키어 붙어서 쥐어 뜯는 것을 보는 강실이는 머리 속이 백지

처럼 얇아지면서 핑그르르 돈다.

청암부인의 무섭게 일그러진 얼굴이 노여운 질책으로 덮쳐오고, 그 옆에 어머니 오류

골 댁의 가엾게 질린 낯빛, 위의가 후중하면서도 기상이 있는 효원과, 입이 단정하고

작은 율촌댁의 모습들이 겹겹으로 강실이를 둘러선다. 깐깐하고 메마른 듯한 수천댁도

보인다.

이마가 넓고 인중이 곧은 저 부인은 누구일까. 희고 맑은 귓바퀴에 귓밥이 도톰한 부인의

모습도 얼핏 비친다. 반달처럼 아름다운 눈썹에 머리털빛도 윤택한 부인이 엄숙한 눈초

리로 강실이를 직시한다.

조상들이신가 보다.

어느 댁 따님으로 고이고이 자라시다 어느덧 연기되어 매안의 문중으로 시집오신 후,

사덕 칠현을 두 루 갖춘 부상 귀상을 조금치도 흠 내지 않을 생을 정숙하게 사시었던 부

인들.

처음에는 한두 얼굴 그린 듯이 드러나더니, 그 옆에 하나 서고, 그 뒤에 하나 서고,

또 저 뒤쪽에 나타 나고, 이만큼에서 솟아나고, 다시 보면 새로 비치는 얼굴들이 강실

이를 둥그렇게 에워싸면서 점점 좁혀 들 어오는 기척이, 소리 없어 무섭고 차가웠다.

그 눈매들은 한결같이 강실이를 뚫어지게 정시하고 있었다.

덕석에 말리는 것보다 더 숨막히게 조여오는 그 부인들의 무리가 일제히 손가락을 들

어 올린다. 그리고 는 칼끝같이 꼿꼿이 날을 세워 강실이 배를 가리킨다.

손가락들은 표창이었다.

손가락들이 날아온다. 비 쏟아지는 것 같다.

표창들은 속수무책 강실이의 온몸을 난자하며 박혀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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