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만에 강모는 그렇게 물었다. 설마 우리 집안 누구의 명을 받아서 심부름으
로 나를 데리러 온 것은 아니겠지. 무엇보다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
이 없었다. 또한 심부름길 나선 사람이 저렇게 거지꼴을 하고 이 엄동설한에 온
식구 가솔을 다 데리고 떠날 리가 있을까. 맨 처음 제일면점 잡화 점방에서 부
서방과 마주친 순간, 철렁, 하며 가슴에 얹히던 불길한 생각을 지그시 눌러 삼키
고, 강모는 부서방을 찬찬히 바라본다. 반갑기보다는 두려움과 탐색이 뒤섞인 시
선이다. 만주로 떠나와 무엇이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지금 다시 매안으
로 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멀리 와 버린데다가, 돌이키기에는 너
무나 큰 일들을 저지른 탓이었다. 봉천에서 매안까지의 그 메울 길 없는 거리만
큼 아득하고 첩첩이 가로놓인 장애들이 갑자기 부풀며 강모의 숨통을 막는다.
나 없이 매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울연한 심사를 가누기 어려워 강모
는 그저, 부형을 만난 듯 느꺼움에 겨워 좀체로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부서방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다.
"부모의 안부를 결코 남에게 묻지 말라."
이는 천하에 다시없는 불효자식 불한당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전에 어른들은 말
씀하시었다. 그러나, 강모는 지금 제 부모 안부를, 신분이 달라서 평소에 별로
상종한 일도 없었던 아랫몰 타성 부서방에게 물어야 할 처지에 놓이고 말았으
니, 명색이 반명으로서 차마 입을 떼지 못할 일이었다. 이를 어찌 다만 그가 객
리에 나와 있기 때문이라고만 말할 수 있으리오. 내 부모의 안부를 그 자식이
남한테 물어야 할 지경은 어떤 것이랴. 그 까닭은 어쩌면, 한평생 양반의 그늘
밑에서 버섯같이 습하게 살면서 눈치 하나로 세상을 견디어 온 상놈 부서방이
강모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먼저 짐작하여 알고 있을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속을 짚을 수 없는 강모로서는 이 가운데서도 자신의 심정과 위상이 상하지 않
도록 짐짓 태연하고 예사롭게 말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올 때 원뜸에는 들렀는가?"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그 말은 굳이 궁금함을 감추며, 부서방한테 붇는 것도 아
니고, 또한 혼잣말도 아니게 나직이 뇌이는 말이었다. 얼핏, 점잖으신 외간의 바
깥나으리가 남의 집 단비조차 거느리지 못한 댁 허름한 문간에 서서, 그 집 안
주인과 직접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마치 중간에 전언하는 비자가 있는 것처럼,
무엇이라고,
"여쭈어라."
"여쭈어라."
하는 것과도 같은 형국으로 비치게 에돌리어 묻는데,
"예."
부서방이 울음에 뒤엉킨 대답을 울컥 토한다.
"어르신도 뵈옵고?"
"예."
아버지, 이기채의 모습이 그 한마디 대답 속에 홀연 떠오른다. 한 번도 다정하게
마주앉아 부자로서의 온정을 나누어 본 일이 없었던 것만 같은 이기채, 아버지
의 여위고 작은 체수가 떠오르자, 순간 팽팽하던 조여진 바이올린 줄처럼 강모
의 신경이 베일 듯 아프게 당겨졌다. 그 신경줄에 돌멩이보다 단단하게 뭉친 깡
치가 날아온다. 그것은 아버지 이기채가 강모한테로 내던지던 퇴침이었다.
"네가 공금을 유용했다고? 자알 했다. 그래. 무엇에 썼느냐? 무슨 좋은 일에 썼
어? 조상의 선산 치레를 했느냐아, 집안에 논밭을 샀느냐. 입 두었다 말을 왜 못
해? 아니면, 아니며언, 무엇에다 썼느냐아."
그해 여름, 놋뙤약볕 지질 때... 호출을 받고 전주에서 오는 강모를 보자마자, 사
랑의 이기채는 퇴침을 들어 내던졌던 것이다. 옆에 있던 숙부 기표가 얼른 이기
채의 팔목을 잡았다. 강모는 아슬아슬하게 피하여 다행이었으나, 그 대신 강모의
귓불을 스치고 등뒤로 날아간 퇴침은 위칸의 차탁자에 정통으로 맞아, 와그르르,
다기들이 쏟아지면서 박살이 나고 말았었다. 그 부서지던 소리.
"네 이노옴, 이노옴. 차라리 썩 나가서 죽어라. 너 같은 놈은 일찍 죽어야 다른
사람한테 덕이 된다. 내 눈앞에 보이지도 말어. 도대체 네가 이날 이때까지 똑바
르게 사람 노릇 헌 게 무어냐. 으응? 참, 못된 송아기 새파란 녀석이, 나이 주먹
만한 것이 벌써부터 기생 첩질로 가산을 탕진시키기 시작허네그려. 패가망신이
다른 게 아니다. 어떤 소갈머리 없는 위인이 전답을 날리고 패가를 허는가. 내
속으로 웃었더니 그게 바로 내 일이 되었구나. 허이구우."
이기채의 입술이 까맣게 타들어가던 형상이 지금인 듯 역력하다. 경위와 내막이
잔정 그런 것은 아니었건만, 변명의 말씀 한 마디 드리지 못한 아버지. 만약에
부서방이 심부름으로 이 곳에 왔다면 이기채가 보냈을 것이어서, 강모는 저도
모르게 오금을 조이며 긴장한다.
"평안하신가아."
이 역시 범연하게 짚어 보는 척 지나치는, 혼잣말 같은 질문이다. 아무리 그가
버리고 떠나온 집과 부모였지만, 원뜸에 오게 되면 이씨들을 뵈올 적에, 뜰 아내
마당에서 땅에 엎드려 절을 해야 하는 상것앞에 하고, 제 부모의 안부를 까마득
히 몰라 묻는 것이 도대체 양반의 자식으로서 경우에 닿지 않는 까닭이다. 강모
는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렇게도 그 굴레가 싫어서 벗지 못해 안간힘을 썼건
만, 결국 나도 관습의 하잘것없는 거미줄에 매달린 한 마리 거미에 불과한 것일
까, 이 세상 어디로 도망쳐도 결국 매안에서 발효된 가치관을 이 몸뚱이에 끈끈
이 실낱으로 달고 다니는, 나는 아마 끝내 혁명가는 못될 모양이다.) 이전에 이
미 굳건히 뿌리 박고 있었던 기존을 뒤집어엎고 그 자리에 새로운 질서를 세운
다는 것은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리라.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도,
"평안하신가아."
비스듬히 돌리어 묻는 이 말에, 부서방은 잠시 머뭇머뭇하더니,
"율촌샌님께서는, 상주가 되시다 봉게 헹상이 영 뵈입기 민망허시지요잉. 작은
상주도 안 지시고... 큰 상주 혼자서만 감당을 허시장게 고단도 허시고, 상청도
훠엉 허시고요."
고하여 올리듯 말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이기채가 상주 큰 상점이라면 작은 상
점이란 강모 자기를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 강모는 호되게 뒤통수를 맞은 것 같
아, 너무 놀라서
"상주라니?"
되짚어 묻는데 음성이 속에서부터 떨리며 흩어졌다.
"누가, 누가 돌아가셨기에... "
더듬거리는 강모의 목소리가 마른다. 그의 머리 속으로 와병중이시던 할머니 청
암부인의 모습과 근심스러운 어머니 율촌댁의 얼굴이 겹쳐서 번개처럼 지나가며
뇌리를 후빈다.
"모르고 지셨그만요잉."
당혹스러운 낯빛을 감추지 못한 부서방이 두루룩, 눈물을 떨군다. 강모는 망연하
여 부서방의 입시울만 바라본다.
"청암마님께서 작고허겼어라우우."
울음 섞어 토하는 부서방의 말, 어조에는 원망이 어려 있다. 아이고, 이 양반아,
당신이 무슨 손자여어. 할머니, 아아, 할머니가 돌아가셨구나. 강모는 우두망찰
실색이 된 얼굴로 숨을 멈춘다. 이럴 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황
망으로 하얗게 바래어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강모의 귓전에, 부서방이 눈
물을 흘리며 슬피 우는 소리가 차 오른다. 이 곳이 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조
금 전까지만 해도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매안의 집이 이 순간에 강모는 사
무치게 그리워, 잇살이 저린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다니. 내가 설령 천하에 다시
없는 불한당이요, 오사리 잡놈이며, 불효막심한 자식이라 할지라도, 마지막에 할
머니 임종을 할 수만 있었더라면. 생의 한 자락을 용서받을 수가 있었을 것만
같은데. 이제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 세상 어디에도 계시지 않는다. 불러도
대답하실 수가 없다. 그 사실이 이렇게도 허전하고 애통할 수가 있을까. 강모는
제 목숨 깊이 뿌리를 박고 있던 커다란 기둥 하나가 어금니 뽑히듯 뽑히어 쓰러
지고, 스러지는데, 그 뿌리 뽑힌 잇몸에 검은 구덩이 하나가 차고 습한 아가리를
동굴처럼 벌리고 있는 것을 본다. 무섭고, 슬펐다. 강태형, 형한테 얼른 알려야
지. 가까스로 그 생각 한 오라기를 건져낸 강모의 눈에 허이옇게 누워 계시던
할머니 청암부인의 모습이 비친다. 그 날, 그 모습 뵈온 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
랐다. 나는 몰랐다. 사람이 한 세상에 살러 나왔다가, 그 어떠한 인연으로 애증
간에 질기게도 뒤얽히어 끝끝내 풀어 주지 않으며 서로 함께 지내다가, 이대도
록 힘없이 영영 헤어질 수 있는 것일까. 그 무슨 언질이나 표시도 남기지 않고,
그냥 혼자서 없어져 버리는 죽음. 강모는 고개를 꺾으며 떨어뜨렸다. 두 손을 메
마른 나뭇가지처럼 시름없이 모아쥐고 만지작거리는 강모의 엄지손톱 위로 툭,
무거운 눈물이 떨어진다. 투둑, 투두둑. 그 눈물에 할머니 청암부인의 명주 수건
에서는 눈물 냄새가 끼쳤었지. 강모는 그 눅눅하고 다스운 체취가, 살아 생전 쓰
다듬어 주시던 할머니의 손바닥처럼 가슴에 온기로 닿는 순간, 모세혈관이 오그
라드는 것을 느낀다. 추운 겨울날 얼어붙은 빙판에서 팽이를 치고 놀다가 꽁꽁
언 손을 불며 할머니 계시던 큰방으로 들어가면, 막바로 따끈한 아랫목에 손 넣
으려는 강모를 이끌어,
"동상 걸릴라."
하면서 당신의 명주저고리 겨드랑이 사이에다 끼워넣어 주시던 감촉이 너무나
역력했다. 그 틈바구니의 한없는 포근함, 평화, 수용, 가장 좁은 그 틈새에 강모
는 제 온몸의 추위를 부비어 녹이며, 할머니 등에 얼굴을 묻고 업히듯이 한 몸
이 되었다. 그 얇은 솜 놓은 명주 핫저고리의 겨드랑이, 할머니 몸 기운이 강모
의 생에 고인 가장 따뜻한 온도였다. 강모는 이제 그것을 영원히 잃어버린 것이
다. 돌아갈 틈바구니를 한 조각 명주 수건에 담아서, 눈물 밴 돈 삼백 원으로 남
기고 가신 할머니가, 이제는 영영 돌아오실 수가 없다. 그 때 할머니는 이미 당
신의 모든 것을 내게 건네주시고, 정을 거두어, 떼어 버렸던 것일까. 이 무정하
고 몹쓸 놈의 손자, 피도 살도 안 섞인 놈, 사랑해서 쓸 곳 없는 이까짓 놈은 쓸
쓸히 버리고 가신 것일까. 아무리 하늘이 서로 다르고 국경이 달라서 남의 나라
남의 땅에 멀리 있다 하더라도, 혈육 지친은 핏줄이 땡기어서 예감이 있다 하고,
떠나시는 이는 자손의 꿈길에 작별의 현몽을 한다고 하건만, 마지막 헤어짐에
이처럼 아무런 징조도 징표도 없이, 안 만났던 것이나 다를 것 없는 공이 되어,
저 잡히지도 않는 허공에 걸린 존재... 할머니. 꿈이라도 하나 주고 가시지... 이
역의 베갯머리, 꿈결조차 밟지 않고 외면하여 그냥 버리고 가신 할머니의 저승
길, 할머니는 나한테 들르지도 않고 그냥 가셨다. 강모는 울었다. 억울하고, 원통
하고, 서럽고, 외로웠다. 살아서 그 육신이 그대도록 이 몸을 내어 가까이 있어
달라 원할 때는, 어디 가서 무엇을 하고 있다가, 이제 그 육신이 흔적 없이 자취
를 거두어 버린 지금에 와서야, 되짚어 거꾸로 목메이어 부르며 우는 것은, 몰라
서, 몰라서였다. 알았다면 이러할 리 있겠느냐. 다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날
이 이렇게 급히 올 줄 알았다면, 그러할 리 있겠느냐. 오래오래 영원히 계실 것
만 같아서 마음놓고 방자하게 떠나왔지만, 언제라도 돌아가면 거기에서 맞이해
주실 듯이 그렇게 믿도록 굳건히 계셔 놓고는, 믿게 해 놓고는, 소리도 소문도
없이, 남 버리듯 무정히 이렇게 버리고 가실 줄은 나는 몰랐다. 나를 사랑하신다
면, 나한테 한 마디 말씀도 없이, 기척도 없이, "나는 간다." 손짓도 없이. 옛말에
있기를, 부모와 자식은 한 나무의 뿌리와 가지여서, 우연히 어쩌다 태어난 것이
아니라, 조상의 염원이 어리고 세세생생의 인연이 지중하여 한 핏줄로 난다 하
며, 설령 죽어서 유명을 달리해도 그 연은 끊어지지 아니하니, 억겁을 통하여 이
승의 찰나에 단 한 번 만나고, 다시는 그와 똑같이 날 수는 없다 하나, 모양을
바꾸어 못 알아볼 뿐 그 관계는 영원하다 하는데. 그 몸 빌린 일없는 우리 할머
니와 나 같은 손자는, 머리카락 한 오라기 손톱 끝 한 조각, 피도 살도 섞이지
않았으니 살아 잠깐 배역을 맡고 나서, 이처럼 죽음으로 헤어지면 아무것도 아
니란 말인가. 내 살아서 할머니와 나눈 것이 무엇이었던가. 결코 작은 세월이 아
니었건만, 그 모든 시간과 삶의 기억들은 어디로 다 새어 버리고, 어쩌면 이다지
도 허망하여 오직 창자가 끊어지는 통증에 울음도 멍이 들게 아프면서, 언제 한
번 조손간에 마주앉아 속 깊은 이야기 해 본 일도 없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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