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산 2권
제2장 수초
옥은 객사 건너편에 있었는데, 원래 영에서 군기고로 쓰던 것을 개축하여 옥으로 바꾼 건
물이었다. 일자로 길게 지어진 두 채의 기와집이 마주보고 섰는데, 사방에 돌담을 쌓아 막아
놓고 네 귀퉁이에 옥리들이 번을 서고 있었다. 죄수들의 가족들이 감옥 부근 일가에 들어
밥을 붙이면서 뒷바라지를 하느라고 옥전거리는 언제나 음식장수들이 모여들게 마련이었다.
관에서 죄수에게 먹일 양곡을 내는 법이 없으니 가족이 없는 죄수들은 동료나 옥리들이 먹
다 남은 찌꺼기 음식으로 겨우 연명하다가 굶어서 죽는 수밖에 없었다.
좌옥 우옥이 있는데 우옥은 좀도둑이나 부녀자들이 갇힌 곳이요, 좌옥은 전과자와 강도와
살인자들의 옥이었다. 창고로 쓰이던 일자집의 앞쪽 벽을 완전히 허물고 굵은 나무 칸막이
로 막았으니 옥마당에 서서 둘러보면 좌우옥의 구석구석이 환히 들여다보였다. 길산은 좌옥
의 가운데 칸으로 끌려갔다.
제일칸은 전과자의 칸이요, 제이칸은 살인 도형수의 칸이며, 세 번째 칸은 관리로서 중죄
를 지은 자들의 칸이었다. 가장 중한 형벌이 역시 참형인데, 그 다음에 목숨을 구한다 할지
라도 사람 구실을 못하게 만드는 중형이 있었다. 이른바 다섯 가지 벌이라 하여 세인을 경
계하였으니 쪄서 죽이든, 사지를 토막내든, 목을 치든, 사형을 대벽이라 하였고, 불알을 까버
리는 궁형, 발꿈치를 베어내는 월형, 코와 귀를 베어내는 의괵형, 그리고 바늘 수십 개를 묶
어서 이마와 얼굴을 꼭꼭 찌른 뒤에 먹물을 넣어 변상에 벌표를 한 자자형이 있었다. 감옥
안에도 죄수들끼리 정한 자리가 있었으니 이른바 삼칸이었다. 남쪽이 일칸, 북쪽이 이칸, 동
쪽이 삼칸이었고 감옥 안에는, 맨땅바닥에 널빤지를 깔아놓은 청이 있는데, 대개 연장자와
고참자는 청 위에 올라앉고 신참자와 연소자는 청 아래 앉도록 되어 있었다. 옥졸이 칼 쓰
고 차꼬 찬 길산을 끌어다 좌옥 이칸에 처넣는데,
"쌀과 무명을 낼 수가 있는가?"
물었으나 길산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옥졸이 발길로 내차며 그를 희롱하였다.
"신참 행하도 못할 놈이 살인은 뭣 땜에 저질렀느냐. 우리는 법대로 시행하거니와 옥 안
엣놈들이 너를 그냥두지 않을 터인즉 열흘이 못 가서 장작개비가 되어 나올 것이다."
옥문이 육중한 소리로 열리자 죄수들의 눈이 모두 길산에게로 집중되었다. 옥졸이 길산을
안으로 떼밀고 쇠를 채우면서 다시 희롱하는 말을 던졌다.
"귀한 객이 오셨으니 행수는 잔치를 베풀어 접대하라."
옥졸이 물러가고 길산은 스물 남짓 되는 죄수들을 잠시 대려다보았다. 모두들 상투가 풀
어헤쳐져 사방으로 산발되었으며 얼굴을 오랫동안 닦지 않아서 눈알만 번뜩이고 있었다. 길
산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여 엉거주춤하다가 간살 앞에 앉으려고 궁둥이를 내리는데 청 위에
앉았던 의복이 멀끔한 자가 호통을 내질렀다.
"이놈, 남의 집에 들어왔으면 예법을 지켜야지 어디에 앉으려느냐. 고이헌 놈이로다. 여봐
라 색장, 어서 거행하라."
청의 가운데 자리에 앉았던 자는 의복도 깨끗했고 머리도 봉두난발이 아니라 말끔하게 틀
어올린 상투 그대로였다. 나이는 한 오십 되어 보였으며 제법 어깨가 다부지고 체격이 탄탄
해 보였다. 색장이라 불린 사내가 좌중에서 일어서는데 키가 보통 사람보다 두어 뼘은 더
커 보였으며 눈알이 퉁방울 같고 수염은 뺏뺏이 곤두서서 체격은 고사하고 상통만 척 보기
에도 매우 우악스러워 보였다. 힘깨나 쓸 것 같은 그 사내의 목소리는 외모와 걸맞게 질그
릇 깨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예, 간장 어른 불러 계시오."
"추국청을 벌려라, 법대로 시행하리라."
길산은 빙그레 웃으며 그들이 주고받는 수작을 듣고 있었다. 색장이란 자가 다가와 길산
을 눌러 앉히려고 두 팔로 어깨를 잡고 힘을 썼다. 길산은 짐짓 힘을 주어 버티고 서 있었
다. 그의 어깨를 내리누르던 색장이 말했다.
"어랍쇼, 이놈 보게. 말뚝처럼 꿈쩍두 않네."
길산이 껄걸 웃어 대답했다.
"대체 왜들 이러시오, 앉으려니까 앉지 말라 해서 서 있는데 이거 장난이 너무 심하지 않소."
"허 이놈이... 감영 전옥의 규칙을 모르는구나, 꿇어앉아 추심을 받으라."
"나는 다리가 아파서 꿇지 못하겠소. 어디 앉혀보시구려."
청 위에서 간장의 짜증난 말이 떨어졌다.
"색장은 무얼 꾸물대는가. 빨리 꿇어앉혀라."
색장이란 자가 손을 쓱 비비고 나서 길산의 어깻죽지를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아래로 짓
누르며 힘을 쓰는데 얼굴에 홍조가 떠오르고 두 다리는 억세게 버키면서 팔이 부들부들 떨
렸다. 길산이 마주 힘을 쓰며 연신 빙글거렸다. 내리누르던 색장은 기운으로 못 견디겠는지
상대를 위로 치켜들려고 한 손을 길산의 사타구니 아래로 집어넣으려는 모양이었다.
"예끼 놈!"
길산이 목에 쓰고 있던 나무칼째로 휘익 돌려서 색장의 뒷덜미를 후려갈겼으며 그는 에쿠
소리와 함께 죄수들을 향해 앞으로 넘어졌다.
"몰매를 놓아라."
청에서 간장이 떠들고, 죄수들이 일어나 길산의 몸을 잡으려고 우왕좌왕하는데 두어 놈이
길산의 발길질을 얻어맞고 나뒹굴었다. 여러 놈이 감히 덤벼들지 못하고 안쪽으로 피해 들
어가자 자리가 널찍해졌는데 길산은 청 위로 쫓아 올라갔다. 당황해서 몸을 빼치려는 간장
의 멱살을 날렵하게 틀어쥔 길산이 바닥에 밀어 목통을 죄면서 말했다.
"다 같은 도적놈들끼리 추심이 웬말이며, 너 따위가 무슨 색장이니 간장이니 하느냐. 나는
곧 죽을 사람이매 시끄럽게 굴지 마라."
길산이 그를 옆으로 밀어내치고 청에 앉으려는데 소란한 기척을 눈치챈 옥졸들이 감옥 밖
에 모여들었다.
"어느 놈이 난동을 부리는가?"
죄수들 속에서 고하는 자가 있었다.
"신참이 말을 듣질 않습니다."
"저놈을 끌어내라."
옥졸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길산을 끌고 나갔다.
길산은 좌우옥의 끝에 가로질러서 지어진 옥리들의 숙소로 끌려갔는데 옥사장인 듯한 장
교가 기다리고 있었다.
"소란을 부린 것이 바로 이놈인가?"
"방금 들어온 광대 자식이올시다."
"광대라면... 살여울서 잡힌 그놈이란 말이지."
길산은 뻣뻣하게 대답했다.
"기왕에 죽을 놈인데 귀찮게 다루지 마시오."
"네가 장길산이란 놈이냐?"
"그렇소."
"음, 그렇다면 용댕이 우대용이를 아는가?"
"얘긴 들은 적이 있으나 안면은 없소이다."
"그가 너를 보고자 한다. 말썽을 부리지 않고 얌전히 있겠다면 관곡을 내어 먹여줄 터이
니 옥내의 규칙을 지켜라."
하고 나서 옥사장은 옥졸들에게 말했다.
"외자수의 칸으로 이놈을 데려가거라."
옥졸들은 길산을 끄로 제일칸의 곁에 따로 간막이를 해놓은 작은 옥으로 데리고 갔다. 옥
졸들이 간살 앞에서 외쳤다.
"대용이, 네가 찾던 자가 왔다."
한편 문이 열리고 죄수가 마주 나오며 길산은 안으로 떠밀려 들어가는데 얼굴이 시커먼
자가 대뜸 길산의 손을 잡는 것이었다.
"어서 오슈, 오늘 아침부터 종일을 기다렸소이다."
"용댕이 우서방 말은 오래 전에 들은 적이 있으나 이런 데서 만나리라곤... 뜻밖이오. 댁이
어찌 나를 알며 어떻게 내가 잡혀온 것을 알았소?"
"좀 앉읍시다."
옥 안에는 그외에도 두 사람이 더 있었는데 모두 신수가 멀쩡하고 산발한 머리는 뒤로 가
지런히 넘겨 무명끈으로 질끈 동여매었다. 하나 한결같이 인상이 험악하고 눈빛이 날카로웠
다.
"인사를 합시다."
먼저 우대용이와 길산이가 맞절을 하고 나머지 사람들과는 반절을 나누었다. 우대용이가
말했다.
"송도 박대인을 아시오?"
"예, 오늘 새벽에 살여울에서 헤어졌으나 무사히 송도로 향했는지는 나두 모르겠소. 거기
서 혼자 잡혔으니까."
"아마 지금쯤은 연안 근처에 갔을 거외다. 아침에 용댕이 사창 군관에게서 연락이 왔소."
하고 나서 우대용이는 제가 잡혀 들어온 앞뒤의 사연을 대강 얘기했으며, 박대근이가 용당
포 사창 수직 포교를 통하여 뇌물을 써서 자기를 회자수로 빼돌려 구명해준 사실을 말하였
다. 또한 통기한 자의 말에 의하면 살여울을 건너간 박대근이 차인을 용당포로 보내어 길산
이 잡힌 사실을 전했고, 길산의 급식비로 어음을 들여놓았다는 것이었다. 우대용이는 회자수
로서 당분간 목숨을 부지하겠지만 길산은 이미 한달 안으로 참수당할 판결이 내려졌으므로
송도부중이 아니라 직접 한양에 손을 써서 구명을 하겠다는 전갈이 있었다.
"옥사장이란 자는 내가 갇힐 때부터 많은 뇌물을 주어 인심을 얻어 놓은 사람이오. 앞
으로 박대인이 사창군관과 옥사장을 통해 연락을 해줄 것이니 장서방은 몸이나 튼튼히 하고
서 기회를 봅시다."
"꼼짝없이 죽는 목숨에 세상이 적막하더니 이젠 달리 생각하게 되었구려. 그나저나 내 방
의 놈들이 신참례를 하길래 혼을 내던 참이었소."
"그놈들 내가 잘 아는 강령 뱃놈들이오. 옥중 관습이라고 놈들이 행패를 했나 보우. 근성
은 모두 착한 백성인데, 몹쓸 죄를 짓고 이판사판이 되어 악착스러워진 거요. 어쨌거나 오늘
은 우리 방에서 함께 지내고 내일부터 이칸으루 건너가우. 소문이 옥내에 파다히 돌고 나면
섭섭히 대하지는 않으리다."
우대용이가 껄걸 웃으면서 말했다. 우가의 방에 함께 있던 회자수 중의 하나가 가는 쇠끝
을 들고 다가앉더니 길산이 차고 있는 차꼬의 쇠구멍에 끼워넣고 이리저리 비틀었다.
"우선 그 칼과 차꼬를 벗겨드리리다."
"옥리들이 꾸짖지나 않겠소."
"저들은 우리를 감히 괄시하지는 못합니다."
차꼬와 칼이 차례로 벗겨져나가자 길산은 상을 찡그리고 사지를 펴서 기지개를 켰다. 곤
장 맞은 궁둥이와 무르팍과 인두질당한 등때기가 몹시 쓰라리고 아팠으나, 워낙에 기력이
왕성한 나이인지라 그리 못견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시장하고 목이 말라서 견딜 수가 없었다.
"뭐, 요깃감이나 없수?"
"아직 밥때가 안되었으니 기다려야 하우. 가만있자... 회자수가 옥내에서 주린다는 법은 없
으니 먹을 게 있습지요."
우대용이가 널빤지 아래에 손을 깊숙이 넣어 부시럭거리더니 종이에 겹으로 싸둔 뭉텅이
를 꺼내었다. 종이를 끄르는데 콩 박은 무리떡이다.
"딱딱하지만 꼭꼭 씹다 보면 입맛이 제법 살아날 게유."
"이거 참 염치가 없소이다. 물도 한모금 마실 수 없소?"
"동이에 남았나?"
"다 떨어졌네. 까짓 거 옥졸에게 부탁하지."
동료 회자수가 창살 앞에 서서 번 서고 있는 옥리에게 외쳤다.
"봅시다. 물 좀 떠와야겠는데..."
"아예 옥바닥에 우물을 파든지 해야겠군. 젓국을 처먹었나, 물은 자주 찾구 지랄이야."
"젠장맞을 싫으면 그만두어. 술이나 한동이 들여주든지."
"술 처마시구 밤새 잠 못 자게 행악하려구, 물이나 떠다 주는 게 내 속이 편하지. 에이 더
러워서 느이들 망나니 자식들 땜에 어디 옥리 노릇 해먹겠어. 나라님보다 더한 상전이니."
"수틀리면 참수 귀신 붙어버리라구 악담할 테여."
길산이 듣고 보니 옥리와 망나니의 농지거리가 도통 기탄이 없어서 마치 한통속과도 같았
다. 우대용이가 말했다.
"의아할 게 없소이다. 우리가 행악질을 하거나 소동을 일으키면 저희들도 귀찮고 우리네
일이 비록 천역이되, 쓰임새로는 막중하니 깔보지 못하게 되어 있소."
"형을 집행하여보았수?"
"이 두 사람들은 삼 년이 넘었으니 수십 차례 될 것이나 나는 꼭 한번 참례했소이다. 참
말 못할 짓입니다. 목숨을 부지하기가 끔찍한 일이오. 일테면 제 목숨 붙이느라고 남의 목을
치는 사람 백정인 셈이우."
길산이 물을 말을 잊고 묵묵히 앉았는데, 회자수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래두 살아야지요. 나는 이제 육 년을 채울 것이며 이 사람은 칠년을 채우게 되면 풀려
날 것입니다. 회자수 십 년이면 제정신 가지구 세상 밖에 나가는 자가 드물지만, 혼만 똑똑
히 차리면 마빡에 먹물이나 들이구 세상을 등져 숨어 사는 수가 있소이다."
옥졸이 물을 떠다 주어 길산은 한편 달게 마시고 굳은 떡을 씹어 온종일 주렸던 배를 채
웠다. 그들이 저녁밥때를 기다리는 중에 자연히 신세타령들이 나오게 되어 먼저 감옥에 오
래 있었던 두 회자수가 번갈아 얘기들을 하였다.
'Reading Books > Reading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장길산 2권 (3) (1) | 2026.03.12 |
|---|---|
| 장길산 2권 (2) (1) | 2026.03.11 |
| 장길산 1권 (35, 完) (0) | 2026.03.08 |
| 장길산 1권 (34) (0) | 2026.03.07 |
| 장길산 1권 (33) (0) | 2026.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