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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3권 (32)

카지모도 2026. 5. 22.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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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음...어디서 자겠느냐?"

"뒷봉 귀틀집서 쉬겠습니다."

운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칸 토방에서 운부와 함께 잠자리를 같이 하기도 두 사람에게

는 오히려 송구스러웠던 것이고, 운부도 그들을 만류하지 않았다. 길산과 유징이 나간 다음

에도 운부는 한참 동안이나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강진의 쓸쓸한 바닷가가 운부의 뇌리에 떠올랐다. 낮은 산과 좁다란 들판, 밑바닥에 펼쳐

지던 남해의 쪽빛 물결, 그리고 탱자나무들. 운부의 부친은 가끔 그를 찾아든 한양 손님들과

박주를 나누며 시를 짓고는 하였다. 강진에 귀양와서 동네를 격하여 지내는 이들도 있었고,

제주로 귀양가는 길에 거쳐서 가는 이도 있었다. 배다리내에 있던 그의 집은 언제나 손님으

로 들끓었다. 조부가 왜란 때에 강진, 장흥, 영암 등지에서 십여 인의 유생들과 거병하였고

정유년에 장렬히 산화하였으니, 강진 일대에서는 일컬어 충신열사의 집안이라 하여 선비들

의 왕래가 잦았다. 운부의 부친은 광해조 때에 천거가 되었으나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으

니, 이미 조정은 권세다툼에 의한 혈족의 살륙장으로 화하여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많은 양심적인 관료들이 벽지로 귀양올 때 자연히 강진에 오거나, 거쳐가는 자들

은 운부의 부친과 친교를 가지게 되었다. 월초 이수가 태호 이원진과는 같은 문하였는데, 우

연히 운부의 부친 김유학을 알게 되어 그의 해박한 지식과 재주를 흠모하게 되었었다. 태호

이원진은 그중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당대의 낙백하였던 선비들 중에 몇사람만

이 벼슬길에 올랐는데, 그중에서도 이원진의 출세는 감사에까지 오를 정도로 으뜸이었다. 반

계 유형원은 네살 적부터 삼촌 이원진으로부터 글을 배웠다. 운부가 일곱살 적에 부친의 친

구들이 찾아왔을 때 큰사랑에 불려나가 경서의 문답을 했었고, 시를 지었는데 운자를 불러

주던 선비들이 모두들 신동이라고 혀를 찼었다.

"내 여지껏 재주 있는 아이들을 여럿 보았으나 그 이치의 깊이까지 꿰뚫는 소년은 역시

태호의 조카와 이 아이로다. 유도령은 일곱살 적에 이미 [서경]의 우공기주편을 읽으며 무릎

을 쳤다지만, 이 아이의 문장과 해박한 견해는 또한 조숙한 경지를 넘어섰으니 놀랄 만한

일이다."

하며 이수는 감탄하였던 것이다. 운부가 소년 유형원의 재주를 풍편으로 들었던 것은 그때

가 처음이었다. 그가 아홉살 적에 호란이 일어나매 운부의 부친 김진사 역시 전라도의 유생

들과 힘을 합쳐 임금을 구하기 위하여 의병을 일으키고 북상하다가 남한산성이 함락되었다

는 말을 듣고 허탈하게 돌아왔었다. 김진사는 임금이 청태종으로부터 받은 모욕을 국치라

하여 화의를 주장하는 일파들은 오랑캐에게 간을 떼어 준 자들이라고 타매하였다. 운부 십

오세 때에 김진사가 세상을 떠났고, 운부는 그의 유언대로 학문에 정진은 할지언정 벼슬길

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운부는 삼년상을 벗던 십구세 때에 부안의 유생 집안의 장녀인 한씨

와 결혼하였다.

운부는 어찌하여 출사하지 않은 선비로서 그치지 않고 불승이 되는 것으로 철저하게 세상

과 인연을 끊게 되었던가. 효종 육년 을미 팔월께에 그는 강진에서 홀연 자취를 감추게 되

었고 소백산과 지리산을 넘나들며 홀로 수도의 길에 나섰던 것이었다. 그에게는 가친이 물

려준 전장이 얼마간 있어서, 그것으로 굶지는 않을 정도의 생계가 되었었다. 그러나 둘째아

이가 태어나던 스물여섯살 적에 지팡이 하나만을 들고 팔도 섭렵에 나섰으니, 그 기간은 이

년간이었다. 누구든지 젊은 날은 고뇌의 세월이요, 더군다나 큰 뜻과 재주를 가슴에 간직한

운부로서는, 책상물림으로 세상에 이름없이 살다가 돌아간 수많은 선비의 한 사람이었던 부

친의 생애를 뛰어넘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은 어린 시절부터 그의 집 사랑에 몰려와 울분의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을 비관하던 선비들의 영향이 더욱 깊어졌던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운부는 우선 팔도 섭렵을 통하여 백성이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였고, 세상을 개혁하는 것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를 배우고자 하였다. 방랑의 이 년 동안 그는 시골 향반

의 집 사랑에 식객으로 얹히기도 하고, 풍수질도 하였으며, 사군자를 쳐서 밥값을 때우기도

하였다. 그가 돌아왔을 때 운부의 세상을 보는 눈은 원숙해 있었고, 그런만큼 집에서 농사나

짓고 있을 적보다는 훨씬 강경해져 있었다. 전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아전 서리배들의 횡포

가 너무나 잘 보였고, 고향땅의 주민들이 시달리고 있는 사정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던 것이

었다. 상기 을미년 유월께에 때는 큰 가물이 겹쳐서 온 마을 사람들이 타들어가는 벼를 보

고 망연히 한탄만 하고 있을 적에, 공물 진상을 서두르던 관헌과 몇몇 의기있는 상민들 간

에 작은 충돌이 있었다. 이것은 뒤에 반계도 그의 책에서 날카롭게 지적한바, 지방 향촌에서

는 공공연한 횡포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진상이란 일정한 기준이 있는 공납도 아니요, 그것을 맡고 있는 관청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어서, 매일 차려 올리는데 서울의 각 관청이 저마다 나서고, 달마다 진상을

하는데 외방의 각 고을이 저마다 분주하여, 국가 만사에 진상 관계의 사무가 십중 팔구는

될 법하다. 임금으로서 구중궁궐 고운 담요 위에 앉아, 내가 임금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어떻

게 이런 진상의 폐단을 아실것인가. 거기에 눈앞에 얼씬거리며 아첨이나 하는 신하들은 우

리만큼 임금을 공경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생각들을 하는 것이다. 만일 어느 누

가 이런 말을 내어 그런 짓이야말로 나라를 병들게 하고 덕을 망치는 일이라고 하는 이가

있다면, 당장에 임금께 불경한 짓이라고 지목을 할 것이다." 반계도 저와 같이 왕권에 대

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는데, 백성들의 뜻은 바로 이대로였다.

공납 진상물을 점고할 때, 이서배가 점퇴의 권한을 쥐고 있으니 퇴당하지 않으려면 공물 이

외의 뇌물을 따로 준비하여야 되었고, 흉년에 앞날이 감감한 터에 아무리 순박한 사람들이

라 할지라도 참지는 못하였다. 여럿이 달려들어 농기구를 들어 아전들을 두들겨 몰아내니,

그 책임은 모두 운부가 자청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운부는 고향의 전장을 버리고 어

디론가 피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가솔들은 부안의 처가로 보내고 자신은 다시 정처없는 방

랑의 길을 떠났던 것이었다.

이후 운부는 그의 김아무개라는 속명을 버리고 스스로 하늘 위에 정처없이 떠서 흘러가

는 구름임을 자처하여 운부라는 호만을 가지게 되었었다. 운부는 충청, 전라도의 여러 고을

을 전전하며 지사 노릇을 하였는데 이때로부터 장발에 남루한 도포를 걸치고 불승들이 쓰는

송낙을 깊숙이 눌러 쓰고 다녔으니 모두들 그를 도사라고 여겼다. 운부는 많은 사람들이 있

는 자리에서는 절대로 입을 열지 않았고, 피할 수 없으면 지필묵을 청하여 필담을 하였었다.

그리고 명당의 터를 잡아준다든가, 도가에 대한 얘기 외에는 일체의 답변도 언급하지 앟았

다. 이른바 청맹이나 청농, 청광은 세상을 거역하여 피해 살려는 선비들의 소극적인 편법이

었으니, 청맹은 눈뜬 장님이요, 청농은 거짓 귀머거리요, 청광은 생으로 미친 짓을 하는 것

을 가리킨다. 조선 초에 이성계의 입국에 대하여 스스로 저항하였던 정온은 진주에서, 조운

흘은 광주에서 장님 노릇을 하였었다. 이미 후한 시대에 이업이 청맹을 자청하며 숨어 살았

으니, 이것은 일정의 선비들의 고독한 항거였을 것이다.

특히 조운흘의 침묵으로 일관한 생애에서 남겨진 절명시는,

누런 소를 타고 청산 옆에 있으니 추하고 추한 그 풍신은 베 한 필의 가치도 없구나.

라고 읊었으니 스스로 오욕의 일생임을 뼈저리게 한탄하였던 것이었다. 그러한 행동은 식구

들에게는 물론 자기 자신까지도 잊어버릴 정도로 철저하게 지켜져서 임종 때에나 가서야 밝

혀지곤 하였다. 청농의 전통을 이은 사람은 이조절의팔현으로 불린 김시습, 남효온, 원호, 이

생전, 조려, 정보, 성담수, 권절 등이었으니, 수양이 득세 집권하고 단종을 죽인 뒤에 스스로

숨어 살았던 선비들이었다. 특히 김시습은 청농에 청광까지 겸하여 베옷에 산발을 하고 세

상을 비웃으며 살아갔었다.

절개를 굳건히 지켜나가기 위한 방편으로써 제 육체의 어느 곳을 자해하여 스스로 그런

정신을 잃지 않으려는 형태였던 것이다. 벙어리나 장님이나 미친놈의 행세가 자기 보존에만

있음이 아니라, 그런 짓을 지켜나가는 사이에 절개도 잃지 않을 수가 있었다.

운부가 귀머거리 행세를 하며 필담이나 하였으니, 자연히 이 기이한 도사를 사람들은 제

각기 상상하였다. 멸망한 명나라의 학자로서 우리나라에 표류하여 왔다고 여기거나 권토중

래를 꿈꾸는 명의 유신들이 많이 입국하였는데, 그중의 한 사람으로 다른 패거리들과 모인

다거나 하는 소문이 따라다녔다. 더구나 언젠가 남원 고을에 머물렀을 때 한밤중에 일어나

한어로 한시를 노래한 일이 있었는데, 소문은 더욱 확실한 것이 되고 말았다.

실상 명이 망한 뒤에 중국에서 표류해 왔던 중국 사람들이 많았는데, 세상의 분위기가 또

한 오랑캐에 대한 적개심과 대명에 대한 왜란때의 의리 감정이 점증하여 그들을 대하기를

잃은 형제 반기듯 하였다. 서해한에는 가끔씩 명나라의 표류민들이 상륙하였고 관에서도 몹

시 동정적이었다. 그래서 운부는 그 기이한 행색으로 알려지게는 되었으나, 명나라의 유신이

라는 설이 굳어지게 되었었다.

효종 십년 기해에 운부는 드디어 반계와 만나게 되었으니, 그가 처가에 머문 식구들을 상

면코자 부안에 들렀던 것이다. 운부의 처가는 부안 한씨네 종가로서 배벌에 너른 장토를 가

지고 있었다. 운부의 장인은 다행히도 너그러운 사람이어서 운부의 출사하지 않음에 대하여

그리 섭섭히 여기지는 않았다. 다만 처자식을 버려두고 강산을 헤매다니니, 전답을 넉넉히

떼어주고 노비도 붙여주겠는데 이젠 그만 정착함이 어떠하냐고 조심스럽게 운부를 달래었

다. 운부는 짐짓 못 들은 체하며, 대풍이 일어나니 구름이 날리도다. 위력이 해내에 더하여

고향으로 돌아오다.라고 읊으니 한고조 유방이 천하를 정복한 뒤에 고향에 돌아가서 여러

어른과 형제와 식구들을 모아놓고 술을 마시며 부른 시였다. 즉 천하를 평정한 제왕의

시였으니, 방랑하던 운부가 읊기에는 너무나 호방한 시였다. 운부는 즉 사나이가

집을 떠나 흘러다님은, 바르지 못한 세상을 평정해보려는 포부 때문이다라는 뜻을

장인에게 전하려는 은근한 의도가 숨어 있었다. 운부는 집안 식구들에게까지 전혀

대꾸를 하지 않았다. 장인은 운부에게 부인 한씨를 통하여 몇번이나 주유천하의 생활을

간곡히 만류하였으나 운부는 돌로 깎은 불상처럼 단정히 앉아만 있었다.

드디어 장인은 운부가 일얼 저질러 집안을 망칠지도 모르는 놈이니 절연하자며 노기를

터뜨렸다. 그의 본심을 아는 사람은 역시 부인 한씨뿐이었다. 남편의 정경을 보다 못하여

노자와 길양식을 챙겨서 서둘러 떠나도록 해주었다.

"출사하시란 건 아닙니다. 저 변산 아랫녘에두 반계라는 높은 선비가 계신다는데 당신은

굳이 집을 떠나 객지 사방을 떠돌아다니실 필요가 무에 있습니까?" 운부는 변산 아랫녘의

반계라는 말을 듣고는 귀가 번쩍 틔었다. 그는 말없이 아내의 손을 꼭 잡아주고는 아내가

지어준 새옷에 역시 송낙을 쓰고 대지팡이 짚고 부안 한씨네 종가를 나섰다. 이것이 운부와

가족의 마지막 상면이었다.

운부는 처음에 전주 쪽으로 가려던 발길을 돌려 서해를 향하여 치달린 변산을 바라고 걸

었다. 배벌서 변산까지는 이십 리 상거였으니 반계의 집을 찾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운부가 물으니 들에서 일하던 농부는 공손히 하정배를 드리며 가르쳐주었다. 반계 유형원은

보안에서 변산 쪽으로 나아간 우반골의 삼간초가에 살고 있었다. 붉은 흙이 말끔하게 다져

진 소로가 솔숲 사이에 뚫렸는데 집 뒤편은 굵기가 두어 뼘 되어 보이는 울창한 대숲이 빽

빽하였고 참새들이 요란하게 지저귀고 있었다. 가끔씩 서해의 바닷바람이 대나무의 가지 사

이를 스칠 적마다 싱싱한 푸른 잎사귀들이 팔랑거리면서 솨아하는 소리를 냈다.

반계가 부안에 칩거한 것은 계사년이었으나, 나이 이미 삼십 팔세요, 칩거한 지는 육 년이

되는 셈이었다. 반계는 스물세살 적에는 조모상, 스물일곱에 모친상을 당한 뒤에 탈상되면서

연이어 두 번이나 과거를 보았으나 모두 실패하고, 서른 살 되던 해에 조부상을 당하여 탈

상된 이듬해인 서른세살에 다시 과거를 보아서 겨우 진사과에 급제 하였었다. 그러나 그뒤

로는 과거를 단념하고 선비의 최하 직함인 진사로서 만족하여 일찌감치 세속의 출세와 명예

에 등을 돌려버렸던 것이다. 반계란 옛날, 시대를 기다리던 태공망이 곧은 낚시를 담그던 곳

의 지명이었으나, 유형원에게는 꼭 들어맞는 호였다.

운부는 닫혀 있는 사립문 밖에서 잠깐 서 있었다. 대숲이 바람에 휘날리는 소리와 집 앞

을 휘돌아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집 주위에는 청정한 기운이 감도는 듯하

였다. 운부가 울타리 사이로 안을 살피니 따로 지은 마구간이 보였고, 하인인 듯한 자가 말

털을 빗겨주고 있었다. 조랑말이 아니라 다리가 길고 가슴이 떡벌어진 준총이었다. 선비의

집안에 준마가 매어져 있으니, 기이하게 보였다. 운부는 헛기침을 하고 나서 하인을 불렀다.

"주인장 계시느냐?"

"예, 어디서 오시는 뉘시옵니까?"

"지나가던 나그네인데 너희 주인의 함자를 듣고 만나뵈러 왔다고 여쭈어라." 하인이 들

어가서 아뢰는데 잠시 후에 유건 쓰고 도포 입은 준수한 선비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키는

후리후리하게 컸고, 넓은 이마와 정기에 넘치는 눈과 칠흑처럼 윤기나는 수염이 가슴에 드

리워졌는데, 첫눈에 보기에도 비범한 인물이었다. 그는 몸소 삽짝문을 열고, 바깥에 서 있

는 괴이한 차림의 운부를 내다보았다. 넓은 이마 아래서 빛나는 안광이 마치 운부의 속을

꿰뚫는 것만 같았다.

"무슨 일로 이런 천유를 찾으셨습니까?"

공손히 말하는데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힘이 있었다. 운부도 예의를 갖추어 고개를 숙이

면서 말하였다.

"전부터 반계 선생의 덕망을 듣고 한번 뵈오려 하였더니, 이제 우연히 처가에 들렀다가

소문에 접하였습니다."

"어서 들어오시오."

반계의 안내로 운부는 그의 서재에 들어갔다. 사방 벽에 서가가 올려져 있었는데 책이 빈

틈없이 쌓였고, 한쪽에는 거문고가 기대어져 있으며 어옹이 강심에 배를 띄우고 앉아 있는

산수화 한 폭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또한 강궁이 전통과 함께 걸렸다. 책과 거문고와 활은

그이 드넓은 관심을 말해주는 듯하였다. 서로 맞절을 하고나서 좌정하자 운부가 자기 소개

를 한다.

"저는 아이 때부터 선생의 학문에 대하여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본가가 강진에 있었는데

태호 선생이나 월초 선생께서 저희 부친과 교유가 있었지요. 부안에 칩거하신단 얘기는 전

혀 몰랐소이다."

"강진에 사셨다면 저두 삼촌과 월초 선생께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운부 선생님이시지요?"

"천학을 기억해주시니 부끄럽습니다."

반계는 몸소 화로에 불을 붙여 차를 달여서 내었다. 차를 마시면서 그들은 처음에는 각자

의 생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반계가 책상 위에 펼쳐진 것들을 바라보며 자탄하였다.

"여기에 머문 지 벌써 여섯 해가 되었건만 하나두 제대루 이루어놓은 것이 없소이다. 진

리는 무궁하고 세월은 한도가 있는데 옛사람들은 무슨 정력으로 저 같은 업적을 이루었는지

실로 놀랄 뿐입니다. 저야말로 밥버러지입니다. 이렇게 나날을 허송하구 있지요."

"저두 고향을 떠나 단신으로 객지를 헤맨 지 어언 반십 년이올시다."

"왜 방랑하십니까?"

"선생께서야 마음이 침잠되어 이렇게 고요히 앉아 저술에 힘을 쏟으시지만, 저 같은 천학

은 성품이 조야하여 한 곳에 칩거하지를 못합니다. 세상 공부두 할 겸 지기두 만날 겸 하여

팔도 섭렵을 하는 중입니다."

반계는 웃음을 머금었다.

"실은 저두 모양이 머물렀을 뿐이지 이미 떠난 사람이올습니다. 부안은 제 고향두 아니지

요. 다만 저와 같이 당세에 대하여 낙을 잃은 사람이 숨을 만한 외진 곳이어서 잠시 의탁하

고 있소이다. 이미 칠 년 전부터 쓰기 시작한 책이 있는데 생전에 완성하게 될지 모르겠습

니다."

"그것은 어떤 책입니까?"

운부의 물음에 반계는 슬며시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무슨 주장을 세상에 내세우는 게 아니라, 그저 혼자서 생각하는 바를 기록해두어 스스로

검토해보려는 뜻으로 적고 있습니다."

"임금께 상주하실 책입니까?"

"저는 왕권에 대하여는 잘 모르겠소이다. 이렇게 초야에 파묻혀 숨어 사는 자가 무슨 자

격으로 그런 일을 하겠소. 그저 백성의 복리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할 뿐이외다. 제

가 촌에서 살며 느낀 바대로 적을 뿐이지요."

그 무렵 반계는 수록을 칠 년째 집필하고 있었는데. 틈틈이 농사일을 돌보고 마을 사람들

에게 만일의 일을 당하여 대비할 수 있도록 활과 조총 쏘는 법을 가르쳤던 것이다. 뿐만 아

니라 청의 지리요새 등을 기록한 중흥위략을 쓰기도 하였다.

"제 집에는 낮에도 인기척이 없으면 사슴이 울안으로 찾아들어오고, 밤에는 거문고를 뜯

기도 하는데, 선조의 공음으로 이나마 독서에 풍류에 편안히 지냅니다. 그러니 공밥 먹는 버

러지가 되지 말아야겠는데.백성들이 땀흘려 일하는 동안 저는 책을 써야지요. 선비가 무엇

때문에 글을 읽는 자인가 하는 것이 희미해진 세상입니다." 운부는 반계가 그저 은사인

체하며 사실은 허명을 바라는 그런 류의 선비가 아님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의 얘기를 듣

는 동안에 운부는 반계의 원대한 경륜에 접할 수가 있었다. 선비들은 저마다 시문이나 공

부하여 과거를 보아 관직에 등용되는데, 관리가 되면 실제의 정사는 서리나 아전에게 맡기

고, 스스로는 허망한 수신만을 중시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선비들은 으레 성리학이나 논하며

실제로는 대체만을 강구하면 된다는 것이 일반 사류들의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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