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하는 자들이 고담준론은 그럴 듯하고 도니 이니 다퉈대지만, 실제로 사람과 물건
의 일에 적용하지 않으면 모두 허황한 물거품이 아니겠습니까. 저울이나 자의 눈금이 올바
로 찍혀지지 않았다면 제아무리 훌륭한 대목이 집을 지어도 기둥이 서지 못함과 같지요. 선
비는 백성을 위하여 이런한 눈금을 정해주는 일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니 선비가 독서한 것
을 남을 위하여 쓰지 못한다면 그는 남에게서 곡식을 빼앗아 먹는 도적놈이지요. 놀고 먹는
한유의 선비는 농업이나 상공업에 종사시켜야 합니다." 반계의 얘기는 선비들의 소명에
대한 것에서 곧 국정으로 옮아갔다. 나라의 법과 제도가 백성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권력
을 차지한 자들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한 것이라서, 그것이 오래되어 돌이킬 수 없도록 혼란
되었으니 뿌리부터 뒤흔들어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백성의 대부분이 농군인데 땅의 경계를 바로잡지 못하면 민산이 떳떳해지지 못할 것이며
부역이 끝내 고르지 못할 것이요, 호구가 끝내 밝혀지지 않을 것이요, 징병이 정비되지 않을
것이며, 송사가 끊이지 않으니 형벌이 그침없을 것입니다. 자연히 뇌물을 막을 수 없고, 풍
속이 후하지 못하겠고, 이런 처지에 정치와 교화가 있을 수 없으니, 그 까닭은 땅이 대본이
기 때문이지요."
운부도 고개를 끄덕이며 반계의 말에 찬동하였던 것이었다.
"그렇지요. 대저 아조의 붕당이란 것이 그런 세도의 혼란으로 생긴 것이죠. 관직의 수는
정해져 있는 터에 벼슬을 살았던 사대부들만 늘어가니 그들은 모두 드넓은 전장을 마련하여
제 혈족의 연이 닿는 고장을 만듭니다. 자연히 유파가 생겨서 밀고 당기는데, 이가 적고 취
할자는 많으니 싸움이 생기는게 아니겠습니까."
"능력이 없는 자가 너른 땅을 물려받고 계속하여 불려나가니 소작하는 자들은 물론이요,
땅 한뙈기 붙여볼 수 없는 무전지민은 기근 때마다 수없이 죽어갑니다. 부자의 땅은 경계가
서로 닿아 끝이 없고, 빈자는 송곳 하나 세워놓을 만한 땅도 없게 되어, 부익부 빈익빈으로
모리하는 무리들이 땅을 모두 차지하며 양민은 식솔을 이끌고 저자를 구걸하며 헤매거나 남
의 머슴살이로나 들어갑니다. 양반과 천인은 갈수록 많아지고 양인은 점점 줄어 십에 일이
되는 괴이한 형편이지요. 그 다음엔 공납을 고르고 가벼이 해주어야 합니다. 진상 때문에 빈
한한 촌락가에 관리들이 들이닥쳐 남녀 불문코 묶고 때리고 아우성을 쳐도 어디 호소조차
할 수 없으니, 이런 실정을 임금이 안다면 아무리 마음에 합당한 진상물이라도 두려운 생각
에 그것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겠지요. 수세가 문란하니 지방 사창의 고지기가 일 년만 술수
를 쓰면 곧 삼사십 석의 횡령을 하고, 둔별장이 백여 석을 남긴다 합니다. 서리의 횡령 부정
은 또한 수령이 조종하는지라 기탄이 없어 민생은 그야말로 암흘과도 같소이다. 또한 역은
어떠소이까. 군병을 보비하는 남은 군사는 보포를 내어 병의 비용을 대고, 출병자도 군포를
내어 출병을 면하는데 이것이 문란하여 군역이 가장 썩어서 혹독한 부역이 되었습니다. 양
병이 너무 적으면 유사시에 쓰기가 부족하지만, 반대로 너무 많으면 백성이 멍들어 나라가
무너지게 됩니다."
한참이나 잠잠히 듣고 있던 운부가 고개를 번쩍 들더니 반계를 똑바로 노려보면서 물었
다.
"선생께서 그러한 경륜을 가지셨는데, 세상에 널리 펴서 시행시켜야 되지 않겠소이까?"
"글쎄요...제 생전에 그러한 모든 제도의 혼란을 수습할 방책이나 마련할까 하지요."
"반계 선생! 아무리 광대한 포부가 있다 한들 시행치 못하면 뭣에 씁니까. 나는 이제 글을 버릴 작정입니다."
반계는 잔잔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글을 버리시면 무엇을 하시렵니까?"
"백성들과 더불어 세상을 바꾸겠소이다."
반계가 고개를 떨구며 깊은 한숨을 내리쉬었다.
"그것은 운부 선생의 길이올시다. 비록 천학이나마 죽을 때까지 글이나 쓰다가 가는 것도
또한 제 길입니다."
운부는 말하였다.
"선생의 경륜은 오래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에게는 두루 미치지 못하겠지요. 선생을
따르는 선비들 사이에서만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선생께서 계시니, 운부 같은 자도 있어야
되겠습니다. 제도는 소처럼 나아가고 인간세는 바람같이 달립니다. 혁파의 길을 가는 사람이
많아질 것입니다."
운부의 단호한 말에 반계는 잠시 침묵하였다. 대숲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눈을 감고 있던 반계가 운부와는 정반대로 부드러운 어
조로 입을 떼었다.
"무엇을 이루어낼 수가 있을까요? 아마도 이 천유의 몫이 있다면, 보를 터서 물줄기를 바
꾸는 데나 비할 겝니다. 아무튼 누구든지 물길을 내어야 하지 않겠소이까. 나는 살아 있는
날까지 저술을 할 작정입니다만, 그것이 허송이 되고 말지도 모르지요. 오직 하늘 같은 백성
의 마음만이 그 성패를 알려줄 따름일 게요. 내가 글을 쓰는 자로 있는 것이 어느 경우에나
세상을 가장 이롭게 하는 일인 듯합니다. 늘 생각됩니다만, 경륜은 근본을 백성에 두었다면
드러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출사를 않는 것은 아직 혁파할 시류가 아니기 때문입니
다. 좀 전에 선생께서 말씀하신, 제도는 소처럼 나아가고 인간세는 바람같이 달린다는 뜻과
같지요. 정사로써 베풀어지지 않는다면 당세의 문란은 종내에 빈핍한 민생을 낳고 세상이
끝없이 어지러워질 것입니다. 백성이 거역하는 일이 반복되겠지요. 그런 실제의 민생과 더불
어 선비들의 경륜도 함께 자라날 것입니다."
운부는 다시 의미심장하게 말하였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원망과 함께 서 있는 신하라면, 이미 불충이 아니올시다. 그것은
하늘의 뜻이니까요. 오랫동안 선생의 서재를 시끄럽게 하였습니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송낙을 머리에 깊숙이 눌러 쓰고 일어서는 운부를 반계는 말리지도 않고 따라서 일어섰
다. 운부가 방에서 나가는 걸음을 그치지 않고 삽짝 밖으로 나서려는데 반계는 그의 소매자
락을 가만히 잡아당겼다. 운부가 돌아보니 미목이 수려하고 풍채가 좋은 반계는, 이글거리는
안광으로 운부를 깊숙하게 들여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신민에는 교가 방편이외다. 우선 화목해져야 마음을 얻지요." 운부는 방랑중에 작심한
바 있었으므로 말하였다.
"그래서 저는 속명도 버리고 이제는 글도 버립니다."
"어디루 가실 작정이오?"
"행운유수, 발 가는 대루 갑니다. 불자가 되려 합니다." 운부는 우반골의 송밀을 휘적휘
적 헤치고 나왔다. 사립문 밖에는 키 큰 반계가 수염을 날리며 서 있었는데, 운부를 전송하
는 것인지, 아니면 껍질이 벗어진 듯한 모랫벌과 서해바다를 내다보는 것인지 알 수 없었
다. 그 뒤 십사 년 동안 반계는 변산반도 부안의 우반골을 떠나지 않고 청정하게 책 속에
파묻혀서 살아갔다. 그의 생활은 비록 유유자적한 전원생활이었으나, 그가 부안 시대의 전
기간을 통하여 십구 년 동안 저술한 수록에는 치열한 개혁의 의지가 번뜩이고 있었다. 그
는 스무 가지가 넘는 책을 썼고 수십여 문집을 써냈는데, 한유 선비로서의 자책과 각고의
나날 끝에 해놓은 업적이었다. 운부는 그 길로 소백산으로 들어가 삭발하고 불문에 들었다.
처음에 그의 뜻은 불도를 빌려, 천민들과 가까운 승려로서 무리들의 마음을 잡는다는 생각
이었으나 차츰 고승으로서의 수도 생활에 더욱 깊이 몸담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는 차츰 종
단 내의 젊은 승려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나 운부는 언제나 객승일 뿐이었다. 그가 묘
향산에 있다가 해남 대흥사로 내려갈 때 드디어 반계가 이미 작고하였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반계의 말년에 대하여 사람들은 이렇게 전하였다.
"고사께서는 부안에 계시는 이십여 년 동안을 한결같이 학문과 저술에 전념하셨습니다.
그리고 부근의 백성들을 제 혈육처럼 아끼셔서 관과의 쟁송에 늘 나서시곤 하셨지요. 그뿐
입니까, 중원을 정벌할 적에는 몸소 나서시겠다며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군사 조련도 하셨
는데, 언제나 대의명분에 좇아서 언행을 하셨습니다. 마흔 네 살 되던 해에는 재상들의 묘
당천으로 벼슬에 나가도록 천거되었으나,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말씀하시기를, 내가 재
상들을 아지 못하는데 그들은 어찌 나를 안다는 것인가, 라는 것이었지요. 이듬해에 다시 별
천이 되었으니 끝내 나가시지 않으셨습니다. 부안에 칩거한 지 이십 년 되던 계축년 삼월이
었지요. 선생께서는 쇠잔한 병석의 몸을 일으켜 깨끗이 목욕하시고 옷을 갈아입으시더랍니
다. 그리고는 아직 이루지 못한 초고를 가져오라셔서 태워버리고는 그대로 운명하셨습니다.
끊임없는 방대한 저작 생활이 건강을 해치신 게올시다." 운부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넋을
잃은 듯이 방성통곡을 하였다. 장시간의 곡을 하고 나서 운부는 목욕재계한 뒤에 백일기도
에 들었던 것이었다.
"그는 이루고 갔다. 허나 나는 지금 준비조차 못한 채 득도하지도 못하고, 백성의 생활 바
깥에서 한없이 맴돌기만 하였고나!"
운부는 법당에 가부좌하고 앉아 참선 대신에 반계의 평생을 되새기면서 한탄하였다.
"나는 부처님에게도 중생들에게도 마땅하지 않는 가승이다." 그러나 운부가 자신의 한탄
대로 헛되이 세월을 보낸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소백산의 오 년 참선을 통하여 자신의 길
이 보살행임을 깨달았고, 당시에 두 차례의 전란을 통하여 팔도도총섭으로 삼천 의승의 대
장이었던 벽암 대사를 지리산 화엄사로 찾아가 문하에 들었다.
벽암은 고승이었으나, 백성의 참상보다는 왕실에의 충성을 더욱 중하게 알았던 사람이었으
니 운부와는 애초 출발부터가 달았던 것이다. 그러나 벽암은 운부의 뛰어난 재주를 아껴서
문하에 두려 하였고, 운부는 학문, 병법, 무술의 다방면에 걸친 편력으로 당시에 이미 와룡
선생의 현신이라는 찬사를 들었었다. 운부가 후세에 위로는 천문에 통하고 아래로 지리에
통하며, 가운데로는 인간세를 꿰뚫는다는 말을 들었던 것은 사실 수십여 년에 걸친 정진 연
마의 결과였던 것이다.
그가 승병 도감으로 있을 때 어찌나 젊은 승려들에게 엄격하였던지 추상천왕이란 별호를
얻었을 정도이다. 그러다가 홀연히 벽암 문하를 떠나 전국의 명산 대찰을 찾아다니며 각 선
방마다 활기를 불어넣고 구태의연한 숭려들의 수도를 질타하였으며, 물처럼 흐르는 강론으
로 청년 승려들을 매료시켰다. 일컬어 조선 십이대 명산이라는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태백
산,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 칠보산, 묘향산, 가야산, 청량산 등지를 두루 섭렵하며,
특히 불법에 영험이 있다는 금강산과 지리산과 구월산과 묘향산에 오래 머무니 철저한 객승
으로 일관하였던 것이다. 그가 금강산에 들어온 지는 오 년째이지만, 그를 흠모하는 청년 승
려들을 모두들 운부 문하에 모이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점사의 일여는 운부와 승려
들 간의 유대를 맺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운부가 고승들로부터 외면되고, 오히려 소장 승려들 사이에서 흠모를 받았던 것은 그가
조선 불교의 나태한 전통을 뒤집으려 했던 데에 있었다. 운부는 백성들이 바라는 바가 무엇
인지를 자세히 살펴서 부처님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 도회로부터
쫓겨나서 천민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있는 부처를 유현한 극락세로부터 생생한 현실세
로 끌어내려야만 하였다. 언제로부터 연유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되, 백성들 사이에서는 정진
인에 대한 믿음이 널리 퍼져가고 있었다. 연달은 외침으로 혹심한 고난에 시달리고 부패한
관료 제도에 의하여 수탈당하고 정치에서 소외된 양민들은 제각기 이러한 고난의 삶을 견디
기 위하여 선경비향을 정하여 꿈꾸더니 남조선이라는 낙토가 있다고 믿게끔 되었던 것이다.
미래의 영원한 조선을 이룩할 구세자는 정씨 성을 가진 진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뿐이랴, 도선국사로부터 비롯된 갖가지 비기가 나돌아서 함께 어우러졌으니 이 모두가
호랑이보다 더욱 무서운 압정의 고통에서 정신으로만이라도 해방되어보려는 백성들의 덧없
는 희망이었다. 운부는 그 점을 잊지 않았고, 그러한 백성들의 뜻에 부응하여 미래에 말세를
건지러 나타난다는 구세불 미륵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 지금이 말세라면 미
륵이 나타나는 시기는 오늘이다. 기다리던 미륵이 낡은 세상 멸하고 새 세상을 세우기 위하
여 나타났다 하자마자 이제까지 제 거울 닦아 제 혼자의 모습이나 자세히 들여다보겠다던
수도의 자세가 곧 생생한 중생의 그것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의외로 소장 승려들 가운데는
그런 생각을 가진 수도자들이 많이 있었으니, 그는 두 차례의 난리 속에서 제마다 고난을
겪었고 또한 종이나 천역에 있던 자들이 산간으로 숨어 흡수되면 은연중에 퍼졌던 것이다.
운부에게는 극락을 현세화하겠다는 뜻이 시대적인 요구로 비쳐졌던 것이다. 그는 반계가 헤
어지기 전에 해주던 말을 뇌리 깊이 새겨 잊지 않고 있다. "신민에는 교가 방편입니다." 교
란 무엇인가, 그것은 백성들의 기원과 소망이 뭉쳐진 것 자체이다. 운부는 서낭목과 돌무더
기와 빈촌의 솟대와 신당 모두를 이 땅의 소산으로서, 백성들의 기원의 덩어리로서 귀히 여
겻다. 그 가운데서 소용돌이쳐서 뭉친 덩어리가 뜨겁게 폭발할 것이다. 운부는 느닷없이 찾
아온 낙백 선비 설유징의 방문으로 해서 젊은 날의 강진 시절과 부안의 반계를 떠올렸고,
끝내는 잠들지 못하여 앉은 채로 밤을 새웠다.
이튿날 아침이 되어 길산과 설유징이 뒷봉에서 암자로 내려오니 운부의 자취는 보이질 않
았다. 그의 탁발과 바랑도 없었다.
"대사님께서 우리가 귀찮으신 모양이우."
길산이 낙담하여 투덜대니 설유징은 조용히 말하였다.
"대사께서는 이미 자네를 받아들이셨네. 계신 것으로 알고 혼자 수도하시게. 나두 틈나면
가끔씩 올라오겠네."
설유징이 내려간 뒤에 두어 달쯤 지나 최헌경과 정학 형제가 방문하기도 하였으나 길산은
그해 가을이 깊을 때까지 홀로 암자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강선흥이는 가을 들어서는 장사를 나갈 수가 없었다. 함께 장사를 나가던 형이 앓아 눕
게 되어 대신 장산곶으로 나무 베는 역일 지러 나갔던 참이다.
장연은 읍내의 판도가 적지만 열한 방으로 나뉘어 있으니, 대개 관할 관청이 많아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어청, 총융청, 어영청, 금위영, 훈련도감, 감영, 병영 등의 일곱 영에서 둔
전을 설치한데다가 또 서울의 여러 궁가에서 절수처를 설치한 곳이 열 세 군데나 되었다.
수령인 장연현감말고도 백령첨사, 오차포만호, 풍천감목관들도 모두 이곳에 있으니 각 아문
에서 소용되는 둔전과 절수처마다 제각기 백성들을 모집하여 부리는 것이었다.
따라서 어느 집에도 역을 짊어지지 않는 백성들이 없을 지경이었고, 생업에 종사하랴 부
역에 나가랴 혹심하게 시달려야만 하였다. 게다가 일 년에 두 차례씩 신곶과 장산곶의 재목
을 벌채하는 일에 겹치기로 동원되어 가을이면 눈코 뜰 새가 없었고, 허리가 부러지도록 노
역에 종사하였다. 장연의 부역이 심하여 일찍이 타읍으로 이사 나가는 자들이 많더니, 감영
에서도 요해지의 부역은 감할 수 없다 하여 타읍에로의 이사를 엄금시키는 형편이었다. 장
연이 일찌기 중국에서 막바로 내다뵈는 곳이니 황당선의 출몰이 잦았기 때문이었다. 해상에
출몰하는 낯선 선박들은 무시로 푸구를 드나들며 해물을 도적질 할 뿐만 아니라 가끔은 외
떨어진 마을을 침범하여 노략질도 하였던 것이다.
강선흥의 집안은 일곱 식구였는데 노부모와 형 부부와 조카가 둘이었다. 아버지와 큰조카
는 만석골 궁방전에 가을걷이하는 부역에 나가 있었고, 강선흥은 형의 역으로 장산곶에 나
가 재목 베는 일을 하는 중이었다 자신의 역으로는 원래 염장의 염간들 모두가 수군의 역을
지고 있었으니 멍구미로 나아가 추기 훈련을 받아야 했지만, 군포를 대납하여 모면했던 것
이다. 선흥이는 이까짓 못살게 구는 고장을 떠나 어디 구월산이라도 들어가 박히고 싶었지
마는 역을 버리고 달아났다간 가족이 받게 될 곤경 대문에 그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선흥
이는 소금짐을 지고 훨훨 나다니며 여러 고장을 떠돌 대가 제일 좋았다. 어쨌든 역이 끝날
때까지는 장연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장산곶은 곧 불타산의 서쪽 지맥이니 둘로 이루어진 봉우리가 뾰족뾰족 높게 치솟아 구름
사이를 이어서 바다 가운데로 처박힌 곳이었다. 고산서 곶의 끝까지의 연봉이 백여 리나 되
는데, 조수를 따라서 들쑥날숙한 바위벽 때문에 물길이 거슬러 휘돌고 부딪치고 깨어져서
배가 감돌아들 수가 없었다. 깊은 골짜기와 산간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빽빽하여 낮에도
햇빛 한점 들 새 없이 어두컴컴하였다.
선흥이는 여러 사람들과 더불어 감영에서 나온 관리 아래 소속되어 다섯이 한 오가 되어
서 하루 종일 톱질을 하고 나무를 날랐다. 둘씩 짝지어 앉아 긴 톱을 맞붙잡고 톱질을 하여
밑둥이 거의 잘렸을 무렵에 반대편을 쳐서 넘어뜨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열 둥치 한
뭇이 되면 아래의 벌채장 마당에 끌어내려 쌓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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