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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3권 (41)

카지모도 2026. 6. 2.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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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목의 뒤를 따라 들어가니 안은 컴컴하였다. 아이들 둘이 윗목에서 칭얼거리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부담농 몇짝과 원앙이불 한 채가 구석에 놓여 있었고 열두 폭 병풍이 반쯤

펼쳐진 채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었다.

"이거 원 산살림이라 뭐 대접할 게 없습니다. 조반들은 드셨습니까?"

"천천히 먹기루 하지. 그보다 어째 산채의 형세를 늘릴 생각은 없는가?" 강선흥이가 말하자 두목은 놀랐다.

"형세를 늘려요? 그렇지 않아두 이나마 식구들이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는데요. 좌편에는

수돌네가 달마산을 차지했고, 우편에는 불타산을 점거한 심백이가 있는데 저희들 따위야 정

말로 개뭣에 보리알이올시다. 겨우 탑벌이나 금동에 내려가 밥술 먹는 농군들의 나락이나

거두어오는 게 고작이지요."

"그래서 내가 왔다네. 수돌이네 달마산을 함께 빼앗아보자는 게여." 두목은 뛸 듯이 기뻐

하며 선흥이의 무릎을 와락 부여잡는다.

"참말...강장사께서 우리를 통솔하신다면야 달마산쯤 문제겠습니까."

"달마산 패는 몇이나 되는가?"

"예, 한 이십여 명이 됩니다. 모두들 제법 병장기를 다룰 줄 아는 모양입디다..."

"까짓 작대기 따위는 문제가 없네, 자네는 졸개가 몇이여?"

"네, 모두 여섯입니다. 군식구들이 여덟인데 모두 아내와 식솔들이니 어디 한군데두 쓰잘 데가 없지요."

강선흥이가 옆에 앉았던 첫봉이와 둘봉이를 돌아보았다.

"우리들 셋에다 여섯이면, 합이 아홉이로군."

첫봉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다, 그 아홉에 여덟을 더 보태야지. 모두 자그마치 열일곱이여." 백운산 두목은 상

대방이 말귀를 잘못 알아들은 줄로 믿고서 다시 말하였다.

"여덟은 저희 식솔들이라니까요. 여자가 셋에 늙은이 하나 그리구 갓난애와 아이들이라우."

첫봉이가 말하였다.

"싸우는 데 병장기만 쓰란 법은 없소. 속임수에 여기 식구들을 씁시다."

"좋은 꾀가 있습니까?"

"이제 차차 안이 나오겠지."

백운산 두목이 먼저 방바닥을 짚으며 인사를 건넨다.

"탑벌 두내리 살던 변가올습니다. 앞으루 잘 부탁허우."

"허초봉이우, 얘느 내 아우 이봉이라구 허우."

강선흥이가 백운산 변가를 안심시키느라고 곁에서 덧붙였다.

"이 사람들은 지난번에 식구들을 잃었네. 불타산 심백이네가 야습하여 살륙을 하구 갔지."

"아이구 저런..."

"그래서 우리 의논이 처음에는 달마산 수돌이를 찾아가 합세하여 심백이를 들이치자구 그

럴까 했었네. 허나 가만 생각해보니 수돌이란 놈이 호락호락 남의 일에 나서서 의리를 앞세

울 듯싶지도 않고 무었보담두 큰일을 저지르구 나서 우리두 산채에 주저앉아야 되지 않겠

나. 그놈의 소갈머리를 내 아는데...오래 붙여줄 것 같지 않더군." 변가가 연신 맞장구를 쳤다.

"아무렴입쇼. 그 수돌이란 놈이 저희 같은 오갈 데 없는 놈들의 목까지 빼앗아가구, 늘 정

탐꾼을 보내어 감시를 하구 그럽니다. 아주 쩨쩨한 놈입니다."

"졸개들을 이십여 명이나 거느리구 산주 노릇을 한다니 그냥 우습게 보아넘길 놈두 아닐 듯한데..."

첫봉이가 신중하게 한마디하였고, 변가는 코웃음을 쳤다.

"누군들 손발 맞는 이들만 있다면 그만한 통솔을 못하겠소이까. 입산한 놈들이란 모두가

살 방도를 잃고 못 먹어 배곯고 오도 가도 못하게 된 놈들입지요. 이판사판에 어찌됐든 밥

이나 한번 배불리 먹어보자구 올라온 놈들입니다. 산채 두령이란 안을 잘 내구 좋은 목을

잡아서 졸개들의 배를 곯리지 않으면 그만이지요. 달마산 수돌이가...강장사두 알다시피 어디

몇 년 전만 하여도 이름이나 있었습니까."

"그렇지, 가끔 사금터에 나와서 행패나 놓던 왈짜였지."

"놈이 사금터에서 잠채를 따라다니다가 관에 쫓기기 시작했지요. 수돌이가 다른 건 몰라두 꾀가 많습니다. 소문나지 않는 벌이만 골라서 할 뿐만 아니라, 크게 털구 나면 각군의 장교들게 사람을 보내어 은밀히 선사품을 보냅니다. 그러니 보장이 대수롭지 않게 올라가거든요. 헌데 여우는 꼬리 감추기가 고역이라고, 약점이 있다구 합디다." 첫봉이가 문득 눈을 빛내며 고개를 들었다.

"그게 뭐라던가?"

변가는 낄낄거리며 혼자서 한참이나 웃었다.

"새벽 물건 꼴리는 건 애비두 못 막는다는데, 그 자식은 바루 끓는물에 데친 무를 달구

있습지요. 무골 대감입지요."

변가의 말을 되씹던 첫봉이도 빙그레 웃으면서 덧붙였다.

"그래, 수돌이가 고자란 말이로군."

"예, 우리네두 계집이라면 저자바닥의 홍합만 봐두 고이춤이 보릿자루가 되지만서두...그

자식은 못쓸 것 중의 바닥 첫쨉니다. 어린애 배 큰 것, 노인 부랑한 것, 처녀 발 잰 것, 맏며

느리 입 빠른 것, 사발 이 빠진 것, 중 술 취한 것, 지어미 거기 헐렁한 것, 그리구 바루...고

자가 계집 밝히는 거올시다."

변가의 말에 모두들 껄껄대며 배를 잡고 웃었다. 변가는 이어서 말하였다.

"놈이 깐에는 장가를 들구 싶어서 몇번 계집을 들인 모양이오만, 첫째는 샛밥 먹다가 들

켜서 수돌이 칼날에 죽었고, 둘째는 산채를 비운 사이에 패물을 챙겨가지고 졸개와 달아났

답디다. 그러고도 수돌이가 계집을 잊지를 못한다구 합디다. 며칠 데리구 살다가 밤 사이에

죽여 암장해버린다지요. 생각이 나면 마을에 나가서 업어오기를 하거나, 목을 지켰다가 길

가는 여인네들을 잡아가기두 하는데 달마산의 큰 일거리가 되구 말았지요."

"그것 참 우리에게는 달마산이 거저먹기의 논두렁 콩이로다!" 첫봉이가 무릎을 치고 나서 이리저리 하자며 의논을 내니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고 변가는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졌다. 준비하랴, 일을 꾸미랴, 한 닷새 걸릴 터인즉 마을에도 내려갈 일이 있고 정탐꾼도 뽑아야 하였다. 변가가 나가서 제 졸개들 다섯을 모두 들어오게 하고 대략 이야기를 해주니 도적들은 희희낙락이었다.

"여기 이 둘은 저희 탑벌 두내리 한고장 사람들이구, 나머지 셋은 노비 노릇 하다가 도망

친 사람들입니다."

"자네들 병장기 다룰 줄 아나?"

첫봉이가 물으니, "그저 우격다짐으로 두들겨 팰 줄은 압니다."하며 자신들이 만만해 보였다.

둘봉이가 말하였다.

"언니, 뭐 힘쓰기가 꾀쓰기를 당합니까. 시골 왈짜 무뢰배라는 것이 부딪치면 다 어슥만

하지요."

"허긴 그렇다."

"자아 그런데 대접해드릴 게라곤 산채와 서속밥뿐이니 장사님들께 죄송해서 어쩌우?"하며

변가가 인사치레를 하자 첫봉이가 선뜻 봇짐에서 열 냥을 꺼내고 둘봉이는 삼목을 한 끝동

내주었다.

"이걸루 준비두 하구...그러구 술에다 돼지 한 마리 사올려오시우. 실컷 먹구 놀면서 운기

조섭두 해야지."

그때부터 한산하던 오두막집들에서는 부산한 활기가 감돌았고, 아래로 서넛이 물품을 구

입하러 내려갔다. 다시 첫봉이 둘봉이 선흥이 변가 네 사람이 토굴 밖에 자리를 깔고 나앉

아서 점심상을 받는데, 상을 맞들고 오는 아낙네 중에 한쪽의 얼굴이 제법 해끔하였다. 비록

누더기옷에 뒤꼭지 없는 미투리를 끌고 있었으되 눈이 검고 콧날이 오뚝하며 입술이 쫑긋한

것이 마치 산에 핀 도라지꽃같이 함초롬하였다. 상을 받으니 서속밥에 더덕구이와 고사리에

마른자반이 곁들여졌다. 첫봉이가 찬물에 서속밥을 말아 흩어지지 않도록 그릇에 대어 떠먹

다가, 슬쩍 고개를 들어 계집의 뒷모습에 눈을 견주었다.

"저게 누구요?"

변가는 싱긋 웃었다.

"아까 제가 말했던 고만이라구 합니다."

변가의 말에 의하면 고만이는 그의 졸개 중의 하나인 칠성이의 누이였다. 고만이는 탑벌

두내리에서 시집가서 살다가 남편을 여의고 칠성이를 따라서 입산해 들어온 여자였다. 변가

가 그런 얘기까지는 하지않았으나, 고만이는 칠성이네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는 장연 장터에

나가 앉아 들병장수를 하였었다. 장터에서 들병에 술을 담아 한두 잔씩 장꾼들에게 파는 것

인데, 파장될 적에는 꼭 먼 곳에서 온 차인들을 후려내어 두견산 깊은 숲에 끌어들여 실컷

사내를 녹여서, 취하여 잠든 사내의 봇짐을 털기도 하였다. 고만이가 칠성이를 따라서 산채

로 올라와서도 남의 눈을 피하여 변가와도 지분거렸고, 졸개들 몇과도 그런짓을 벌였으나

아무런 말썽이 없었다.

그 연유란 고만이 자신이 늘 치맛귀가 너른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보가 소탈하여, 남자와

몇판을 얼려도 도무지 마음을 한군데에 모아주지 아니하였던 때문이었다. 따라서 고만이가

다른 놈과 그짓을 벌이고 볼따귀와 귀밑이 발그레해져서 숲속을 나오면 모두들 저 녀석이

또 양기를 빨리었거니 우스개로 넘기고 말던 것이었다. 변가가 실실 웃으면서 첫봉이께 물

었다.

"허서방, 고만이와 정분 한번 맺어볼라우?"

첫봉이도 빙글빙글 웃었다.

"그럴까...아무래두 수돌이네로 갈려면 저애와 내가 부부궁합을 맞춰야겠으니 실지 겪는

것이 이롭겠지."

"이 자식아, 공연히 사타구니가 근지러우면 버젓하게 드러내고 긁어라. 핑계는 그럴 듯이

돌려대누나."

강선흥이가 첫봉이를 놀렸으나, 첫봉이는 한참이나 고만이의 호리호리한 허리께에 눈을

박고 떼지 않고 있다가 부지런히 밥술을 떠넣었다.

저녁때가 다 되어 아래로 내려갔던 졸개들이 제각기 커다란 짐들을 지고 올라왔다. 수돌

이네를 치러 갈 때 쓸 물건들과 술과 돼지 한 마리를 짊어졌으니 고기에 주리던 판이라 모

두들 군침들을 삼켰다. 돼지를 잡고 칼질을 하고, 음식을 부치느라고 백운산 골짜기에 갑자

기 대갓집이 선 듯하였다. 그 소란중에도 첫봉이가 놓치지 않고서 아낙네들 틈에 섰는 고만

이를 노리고 다가갔다. 고만이는 쌀을 일어 함지에 담아 절구로 찧을 자세를 하다가 첫봉이

가 다가들어 말을 붙이는데, "그 아주머니 태 한번 곱소이다."

하니까 눈을 흘깃 떠서 연신 추파를 흘리면서 대꾸하였다.

"고우면 뭘 하우, 임자 없는 개꽃이라 나비두 없는데..." 첫봉이가 속으로 허허 그년 말

받는 솜씨로 보아하니 보통 자지간나희가 아니로다 하며 감탄을 하였다.

"얘기나 좀 물읍시다."

첫봉이가 고만이의 뒷전에 다가서니, 고만이는 떡쌀을 턱 내려놓고는 공연히 나물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는 쫄랑쫄랑 시냇가로 내려가는 것이다.

"음! 날더러 따라오라는 수작이렷다."

첫봉이도 이름난 왈짜패라 고만이의 샐쭉거리는 짓에 더욱 몸살이 날 지경이다. 큰기침 공

연히 두어 번 뱉고 나서 고만이의 뒤를 따라 시냇가로 내려갔다. 고만이란 년이 나물을 시

냇물에 담가 씻었다가 건져내는데, 치마를 무릎 위로 넌지시 끌어올려 백옥 같은 속살을 드

러내어 물에다 척 담그는 것이었다. 첫봉이는 서슴지 않고 바로 곁의 바윗돌에 가서 걸터앉

았다.

"이 사람은 아직 총각이라 그렇지만 댁은 꽃다운 나이에 홀몸이라니 참으로 가긍하오."

첫봉이가 능글맞게 후리는 말을 던지니 고만이가 아미를 들어 곁눈으로 곱게 흘기면서, "

내 홀몸 걱정해주시니 어디...중신 서줄라우?"

하였다. 첫봉이가 음심을 참지 못하여 시냇가로 내려와 고만이의 곁에 바싹 붙어 앉는 것이

었다.

"중신할 틈이 있나, 그만 내가 직접 나서기루 함세." 첫봉이가 고만이의 물 묻은 손을 잡

고, 한 팔로 잘쑥한 허리를 덥석 안으니 고만이는 방긋 웃으면서 궁둥이를 빼었다.

"아이 차암...백주에 이게 무슨 황당한 짓이오."

허리를 틀면서 두 손을 들어 첫봉이의 가슴을 밀치는데 이것은 사뭇 잡아당기는 것보다

더하게 보였고, 첫봉이는 끙하는 신음소리 내고서 더욱 억세게 고만이의 허리를 휘감았다.

"아이...정말 이이가..."

고만이는 숨을 발딱이며 첫봉이의 거친 손을 허리에서 잡아떼느라고 몇번 꼬집고 할퀴는

시늉을 하였다. 첫봉이는 총각이니 여유가 있을 리가 있나, 겁없이 치마를 걷어올리면서 고

만이를 쓸어넘기려고 힘을 주었다. 그러자 고만이가 첫봉이의 등을 두 손으로 안고서 다리

는 꼭 오므린 채 뒤로 넘어갔다. 고만이는 첫봉이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면서 달랬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우. 이곳은 자리가 합당치 않으니...저쪽에 조용한 곳이 있어요.

응? 잠깐만 참아요."

첫봉이는 머릿속에 열기가 터질 듯이 찼지만, 조용한 곳으로 가자는 말에는 귀가 번쩍하

여 힘을 풀고 반신을 일으켰다.

"다른 데루 가자구?"

고만이가 검은 눈을 똑바로 뜨고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첫봉이가 엉거주춤 일어나는데,

잽싸게 몸을 추스르고 일어난 고만이가 느닷없이 첫봉이의 사타구니 아래로 손을 넣었다.

고만이는 첫봉이의 물건을 둘 다 한꺼번에 움켜잡고 놓지를 않았으며, 첫봉이가 때리려고

주먹을 쳐들자 그것을 쥔 고만이가 사정없이 힘을 주면서 쫑알거렸다.

"흥, 손을 내려, 내리라구. 어디서 함부로 내대는 거야?"

"아아아...에그그그."

첫봉이는 꼼짝 못하고 신근을 잡힌 채로 두 손을 축 늘어뜨리고 입을 쩍 벌리며 아픔을

참고 있었다.

"내가 누군 줄 아니? 아무리 양물이 좋다 하나 차서가 있는 법이야. 누가 생쌀 씹는대?

떡해 먹는댔지. 네 따위는 공연히 나대다가 문전이나 어지럽히기 똑 알맞겠다. 어찌...아예

터쳐줄까, 아니면 한 달포 그 맛이 싹 달아나서 오줌두 못 싸게 해주랴."

"하, 한번만...놓아다우. 제...제발이다."

"한번에 놓지 그럼 두 번에 놓아? 놓아주자마자 달려들려구."

"아아...아니여, 사내가 한입 갖구 두말하겠니. 노, 놓아다우."

"생각 있으면...이따 어두울 적에 내가 찾아가 부르면 고분고분 따라나와. 노는 계집이라구

그릇 마음먹구 설치면 아예 쌍둥해버릴 테야."

그때에 뒷전에서 변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만아, 그 손 못 놓겠니?"

고만이는 연신 코웃음을 치는 것이었다. 과연 장연 저자에서 원방 차인배들을 두견산으로

끌어들이던 솜씨가 있었던지라, 고만이가 남자를 다루기를 마치 관운장이 청룡도 휘두르듯

하였다.

"옜다, 뜨거울 젠 식혀야 오래 사느니."

하면서 고만이가 첫봉이의 사타구니를 놓아주는 것과 함께 가슴팍을 억세게 떠밀어냈다. 첫

봉이는 뒤로 벌렁 나자빠지면서 무릎까지 오는 시냇물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변가가 황급

히 내려오는데 웃음을 참느라고 입은 꾹 다물었고, 콧날개가 연신 벌죽거렸다. 고만이는 나

물 담긴 바구니를 옆에 끼고 태연히 일어나 돌아섰다.

"그래두 서루 아는 처지라길래 그만이나 하였지...두견산 기슭에서 만났더면 장도루 싹 잘

라버렸을걸."

하는 말을 종알거렸고, 변가는 고만이에게 노한 기색을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산채 두목

의 체면이었던 것이다.

"예끼 년, 그분이 뉘시라구 감히 어디를 잡아당기느냐. 네 이제 죽음을 면치 못할 게야."

그러나 고만이는 깔깔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두령님, 양물두 양물 나름입디다. 길고 굵어야 할 것은 작아서 쓸데가 없구요. 마땅히 크

지 않아야 할 발은 나날이 크니 어디에 쓴단 말이우. 그러니 똑 도적의 팔자지." 고만이가

계속 깔깔대며 달아나는 꼴을 변가는 더 나무라지 못하고 겸연쩍게 서 있었다.

변가는 고만이와 두어 번 어울렸으나 늘 시시껍절하게 해내어 주눅이 들어 있던 참이었다.

그때에 첫봉이가 엉기적거리며 시냇물 속에서 일어나, 오만상을 찌푸리며 물가로 걸어나왔

다. 그는 한숨을 푹 내리쉬며 땅바닥에 주저않아버린다. 온몸이 물에 젖은 것은 고사하고,

도무지 아랫도리가 뻐근하고 맥이 풀려서 걸을 재간이 없는 것이었다. 변가는 웃음을 간신

히 참고 첫봉이를 일으키려고 팔을 겨드랑이에 끼는데, 그가 가까스로 뿌리쳤다.

"아이구...이제야 좀 정신이 드는군."

"허, 참으로 죄송허게 되었수, 이런 봉변을 당하시다니! 그 고만이란 년이 합환에만 능수

가 아니라...아예 여우인 걸 몰랐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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