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권이나마 떼어 나라가 무엇이며 임금이 무엇인지를 제법 조리있게 말할 줄 아는 형인
인흥이보다는 못했으나, 선흥이는 그런대로 충효가 어떤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이제
충효 따위는 속임수에 지나지 않음을 선흥이는 깨달았던 것이다. 사람다운 생활을 하고 사
람다운 대접을 받는 이들에게나 가당한 것이리라 느껴졌다. 다시는 고향 땅에 발길을 내딛
지 않겠다고 작정하였다. 땅은 모조리 궁방전에 흡수되어 땅임자는 궁의 환관과 계집들이
차지하였고, 이제는 그들의 먹다 남은 찌꺼기나 핥는 노비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 고향 사
람들이었다. 실상 기부에서 멀리 떨어진 북변이나 산골짝에 은거하기를 대부분이 바라고 있
었으나 마음대로 이사를 할 수도 없었고, 그나마 정들었던 산천과 조상이 물려주었던 땅뙈
기를 잊을 수가 없는 사람들이 아닌가. 왕실의 사돈의 팔촌이 되는 것들까지 가해서 곳곳에
전장을 마련하고 있었으니, 평생을 부역의 뼈저린 노역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어느결에
중농이었던 선흥이네는 궁의 소작인으로 떨어져버린 것이다. 그의 아버지나 형은 마치 그런
사실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있었고, 오히려 선흥이의 울뚝불뚝하는 짓을 철없다고 핀잔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선흥이가 마당에 나와 앉아 장작을 패고 있는데, 그 사이에 수척해지
고 폭삭 늙어버린 것 같은 둘봉이가 울 너머로 기웃이 들여다보았다.
"이제 좀 나았냐?"
"응...어서 와라. 조니포엔 별일 없지?"
선흥이도 도끼를 내려놓고 웃으면서 안부를 묻는데, 곁에 와서 털썩 주저앉은 둘봉이는
공연히 나뭇조각을 만지작이면서 대답이 없었다. 선흥이가 찬찬히 살펴보자니 녀석이 콩알
만한 눈물을 두 발 사이에 뚝뚝 떨어뜨리고 앉았다.
"얘, 왜 그러니...무슨 일이 생겼구나?"
둘봉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두 못 들었니? 심백이놈이 와서...세봉이하구 어머니를 해치구 갔단다. 우리 언니 여
기 오던 날이다."
둘봉이는 한참이나 말을 못하고 소리없이 눈물을 흘린 연후에 거칠케 코를 풀어 땅에다
뿌리쳤다. 그리고는 담담하게 그날 밤의 일을 얘기하였다. 선흥이는 눈을 부릅뜨고 그 얘기
를 듣더니, "그 돌중놈이 이제는 아예 사람 백정으로 나섰구나, 느이들 조니포를 정 못 떠
나겠니?" 하고 입을 떼었다.
"떠나다니..."
"나는 이따위 장연엘 다시 발 들여놓지 않을라구 작정했다."
"그럼 어디루 갈 테냐?"
"글세 차차 생각해봐야지."
"구월산에 의형들이 있다며?"
"거긴 안 간다. 남의 마당에 불쑥 끼여들어 공연히 눈치 대접 받기 싫어." 선흥이는 둘봉
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아무래도 형수나 모친이 있으니 마음놓고 얘기할 수가 없는 까닭
이었다. 그들은 텃밭가에 서로 쭈그리고 앉아서 의논을 하였다.
"우리끼리 밤에 잠입해서 심백이놈의 모가지를 도려낼 수는 없을까."
"요행히 성사하면 몰라두, 그르치면 개값두 안되는 게다."
"하여간에 우리두 조니포를 떠야겠어. 어디 뭐 맘붙일 구석이 있어야지." 선흥이가 둘봉이를 밀어내며 말하였다.
"오자마자 냉수 한그릇 못 먹이구 보내어 안되었다. 허지만 오늘밤에 집을 떠나려는데 어
머님께 눈치를 채이기 싫어서 그래. 내가 집으루 간다구 첫봉이한테두 얘기해두어라."
"아직 몸이 불편한 건 아니냐?"
"이놈아, 까짓 몽둥이 매 몇대에 강선흥이 삭신이 녹을 줄 알았니? 며칠 누워 지냈더니
뼈마디가 부대껴서 몸살이 날 지경이여."
강선흥이는 어깨를 부풀려 보이며 껄껄 웃었다. 둘봉이가 다짐에 또 다짐을 두고 선흥이
와 헤어져 간 뒤에, 그는 한참이나 밖에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형수가 물동이를 이고
오는 것이 보였으므로 그는 재빨리 일어나 마주 달려가서 물동이를 받아 끼었다.
"아이...몸두 불편하신데."
"허허, 형수님두 나를 아주 병신 취급 하시는구려."
"어서 어서 한바퀴 빙 돌구 오셔요. 용선이 아버지두 삼촌이 어서 장삿길에나 내보내신다
구 오늘 염장에 나가셨어요."
"응, 언니가 염장에 나가셨구먼. 된병을 치르셨으니 당분간 집에 계셔야 할 텐데. 그나저
나 제 병치레 하느라구 형수님께서 고생이 많으셨수."
선흥이는 가난에 찌든 형수의 몽당치마 자락이 갈갈이 해어진 것을 모고 몹시 송구스러웠
다. 어머니는 텃밭에 웅크리고 앉아서 김을 매고 있었다. 용선이가 나무를 높직하게 한짐 그
득히 짊어지고 돌아왔고, 아버지는 읍내에 환자를 갚으러 갔다가 녹초가 되어서 돌아왔다.
선흥이는 그날따라 온 가족들과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면서 어쩐지 목이 자꾸만 막히는 것이
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금방 밤이 깊어지게 마련이었다. 기침소리가 들리고 나직한 말소리가 들
리는데 인흥이는 제법 기분이 좋은지 소리를 나직하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염장에
나가 염꾼들과 탁배기라도 한잔씩 돌려 마신 모양이었다. 선흥이는 잠들지 않고 밤이 깊어
지기를 기다렸다. 선흥이는 뒷방에 홀로 누웠다가 부모님들이 계시는 안방의 동정을 살핀
뒤에 건넌방 앞으로 갔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어 인흥이를 찾았다.
"언니, 언니...주무시우?"
"음...선흥이냐?"
"좀 나와보우. 할 말이 있소."
인흥이가 미닫이를 열며 고개를 내밀었다.
"낼 아침에 얘기하자. 밤이 늦었는걸."
하면서도 인흥이는 돌아서지 않는 선흥이를 바라보다가 저고리를 걸치며 나왔다. 그들은 선
흥이 기거하는 뒷방에 마주 앉았다.
"실은...저, 나는 집을 떠나려구 하우. 언니한테만 알려드리구 갈까 했지요."
"떠나다니..."
"집에 다신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우. 느긋이 눌러 배길 팔자가 아닌 모양입니다. 내까짓
게 집에 있어봤자, 식구들게 걱정이나 끼치구요. 어디 산골에 들어가 살든지, 대처에 나가서
장사나 해볼라우."
인흥이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에게는 단 하나밖에 없는 아우였고, 부모님들이 선흥이가
없어지고 나면 얼마나 낙망하실지를 잘 알고 있었다.
"너 지난번 관가 일루 그러는 모양이로구나. 다 참구 살아야지, 어딘들 네 성미대루 살 고
장이 있겠느냐. 가산두 없구 뒤댈 친척두 없으며 근근히 나라의 땅이나 매어 먹구 사는데,
이제 너의 행상벌이마저 끊어지게 되면, 부모님께서 얼마나 걱정하시겠니. 관가에 가서 매를
맞은 것은 올해 신수가 나빠서려니 여기구 잊어버려라. 내 오늘 염장에 나갔더니 직전 없이
한해 동안 소금을 내주겠다더라. 그리구 열 냥짜리 암말 한 마리 있는데 배내기를 시켜준다
하니 우리가 맡아다 기르면서 세를 조금만 물면 새끼를 낳을 게다. 그것이 성마가 되면 등
짐을 지지 않아두 행상을 다닐 수 있지 않니. 일 년만 참구 있자. 나두 이젠 몸이 꽤 좋아졌
으니 장사를 바꿀란다. 면화를 사서 북관이나 나다녀야겠다. 그래두 우리는 소작붙이 외에
형제가 행상을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식구들이 그나마 굶주리지 않구 살아가는
데 어찌 너만 빠져나가기를 바라겠니."
인흥이가 간곡하게 만류하였으나 선흥은 이미 결심이 굳어졌던 터여서, "당분간 어려우
시더라두 나는 찾지 마십시오. 내가 어디엔가 자리를 잡게 되면 부모님을 편안히 모시겠습
니다."
하며 잘라서 말하였다. 인흥이는 마음씨가 부드럽고 연한 사람이었으므로, 아우의 끊어내는
듯한 말에 대번 마음이 상하여서 눈물을 글썽거리는 것이었다.
"이 녀석아, 네가 집을 나간다면 필시 날불한당들과 어울릴 테고, 아예 세상을 등지구 살
아갈 게 뻔하구나. 우리는 대대루 양인을 면치 못하구 살아왔지만, 국법을 등지는 사람은 하
나두 나오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남대천 밖에서 왜구들의 목을 십여 급이나 베어 나라에서
시호까지 내렸던 분이시다."
"하여간...나는 장연서 못살아요. 그러잖아두 관가를 싹 쓸어버리구 싶은 걸 참구 있단 말
유. 도대체 언니는 어릴 적에 서당이라두 댕겨서 글을 배웠다지만, 서은을 입은 적이 있습니
까. 해마다 모 가을로 부역에 시달리구, 환자 갚기가 늦든지 세포 바치는 것을 미루든지 하
면 느닷없이 잡혀가 옥에 갇혀 굶주리고, 이놈 저놈에게 천대받구 능멸이나 당하며 살았지
요. 차라리 산속의 적당이나 대처의 돈 많은 상놈들은 이따위루 살지는 않습니다. 그저 약하
구 용기 없는 놈들이나 소처럼 미욱하게 살구 있단 말이우." 인흥이가 아우의 말에 답답함
을 참지 못하여 칼칼한 목소리가 되면서 방바닥을 두드렸다.
"그래서 너는 도적이 되겠단 말이냐?"
"아무거나 되려오."
"이 자식!"
선흥이의 뺨에서 찰싹하는 소리가 들렸다. 인흥이가 귀쌈을 호되게 후려갈긴 것이었다.
"남은 식구는 어찌 살라구 너 혼자 도적이 되어? 누군 산속에 들어가 부잣집 재물이나 털
어 배불리 먹고 편안히 살구 싶지 않아서 철철이 원행장사루 병을 얻어 고생하는 줄 아느
냐. 그래두 우린 이 나라의 백성이구 임금의 은혜루 쌀알을 넘긴다. 집안을 망칠 작정이면
어서 의절하구 나가거라."
"쳇...도적놈들게 시달리면서 무슨 임금의 은혜람. 산속의 도적은 부자나 노리니 그래두 분
별이나 있지. 언니는 그럼 내가 억울하게 내수사놈들에게 반죽음이 되어 돌아온 것두 나라
의 은혜란 말이우?"
선흥이도 지지 않고 대드는데, 인흥이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언니 대답해보시우. 나두 황소보다 힘이 세단 말을 듣는 장사요. 한번 힘만 불끈 주었다
면 그따위 형틀은 반짇고리 밟아 뭉개듯 했을 터이고, 오랏줄은 지푸라기 끊어내듯 했겠지
요. 내수사 노비들이나 전화 따위는 한 주먹 두 발길질에 피곤죽이 되었을 겝니다. 나두 가
슴에 몽아리져서 올라오는 울분을 씹어 삼키느라구 매가 아픈 줄을 몰랐수. 오죽하면 내 성
미루 그 모진 매를 맞으며 참았겠수. 이젠 이런 살림은 정이 뚝 떨어졌어요. 내 마음대루 살
아갈 테니 언니두 참견 마시구, 그저 부모님들 걱정이나 안하도록 해주시우." 선흥이는 맨
몸 그대로 문을 열고 방을 나섰고, 인흥이는 아직도 고개를 푹 숙인 채 말리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였다. 선흥이가 미투리를 신고서 다시 돌아서더니 허리를 굽혔다.
"하직 인사 올립니다. 언니, 부모님들 모시구 부디 무사허시우." 인흥이가 고개를 들더니
이제껏 참아왔던 격한 감정이 터져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쫓아나왔다. 인흥이가 덥석 달려
들어 아우의 손을 잡았다가 어깨를 안았고, 선흥이는 형의 등을 툭툭 두드리면서 낮게 말하
였다.
"언니, 이 아우가 죄가 많소. 무모님들 깨시지 않게 슬그머니 나갈라우."
"이 녀석아, 노자두 한푼 없이 어디루 가려느냐. 내일 떠나거라. 내일 염장에 나가서 네 노잣돈이나 몇냥 돌려 오마."
"집에 계신 분들이 걱정이지, 나야 기운 펄펄하겄다 나이 젊겄다 무에 걱정입니까. 어서
들어가요. 밤공기가 찬데 고뿔 드시겠수."
선흥이는 형을 밀어내고 달음질하듯 삽짝을 빠져나와 동구 밖을 향하였다. 형제의 작별이
어려워 뒤통수가 간질거리고 명치가 무둑하였으나 집을 떠나는 선흥이의 발걸음은 역시 가
벼웠다.
선흥이는 첫봉이네 집에서 이틀을 보내었다. 그리고 그들은 심백이 들이칠 일을 벌이기
전에 우선 달마산 수돌이네 산채를 방문하기로 의논이 되었다.
"심백이를 죽이구 나서 나두 불타산에 들어앉을란다." 첫봉이가 말하였고 선흥이는 고개
를 끄덕였다.
"우선 집을 떠나야지. 여기서야 눈이 많으니 아무 짓두 할 수 없잖아." 첫봉이는 말하였다.
"오늘 떠나자. 네 말대루 장연을 넘어서 백운산에 오르지." 둘봉이가 말하였다.
"언니, 저 네봉이는 어떻게 하우. 어린것이 다리를 다치구 누웠으니 끌구 다니기두 애처롭
구 어디 맡기기두 안쓰럽소."
"네봉이는 당분간 금사사 원주스님께 맡겨놓았다가 나중에 데려가기루 하자꾸나. 우리는
짐을 꾸릴 테니 네가 업어다 맡기구 오너라. 한 스무 냥 내어주면 아마 상방에 모셔줄 게
다."
둘봉이가 네봉이를 금사사에 데려다 주러 간 동안에 선흥이와 첫봉이는 작은 봇짐 셋을
꾸렸다. 그리고 포구에 나가서 기다렸다가 돌아오는 둘봉이와 만났다. 세 사람은 산으로 곧
장 오르지 않고 들판을 따라서 걸었다. 원통산 아래 사금터에 도착하여 지척에 보이는 백운
산에 오르지 못하고 그 밤을 금골서 묵었다. 이튿날 새벽에 이슬을 가득 머금은 풀숲에 바
지를 흠뻑 적시면서 그들은 백운산으로 올랐다. 강선흥이는 언젠가 학령을 넘으면서 혼찌검
을 내주었던 세 도적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그들만 수하에 넣으면 달마산 산채는 물론이거
니와, 불타산 심백이네 산채의 허실까지도 소상히 알아내겠기 때문이었다. 수돌이에게 가서
도움을 청하고 심백이네를 들이치자고 할 수도 있었지만, 제 산채를 차지한 두령이란 흔히
권세를 빼앗길까 두려워하게 마련이었으며, 강선흥이를 기피할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선흥
이가 안면은 있으되 수돌이를 믿지 않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적당의 두령이 되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첫봉이의 말대로 우선 형세가 기중 약한 백운산의 좀도적들을 수하에 넣기로 하였
다. 백운산은 산줄기도 장하지 못하고 그리 깊지도 않건만 유리한 점이 있었다. 즉 송화와
해주와 장연의 세 관계가 갈리는 지점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뚜렷이 어느 고
을의 관할인지 분간이 안되어 세 군을 수시로 넘나들 수가 있었다. 백운산은 동편이 울창한
숲이요, 서쪽에는 바위와 황토가 드러난 곳과 사태난 등성이가 길게 뻗쳤다가 툭 잘라지며
원통산에 잇닿아 있었다. 세 사람은 안개가 자욱히 발 아래 깔린 백운산 정상에 닿은 능선
을 한 줄로 서서 걸었다. 한참 걷다가 경계가 한눈에 펼쳐지는 곳에 이르면 차례로 절벽 끝
으로 나아가 후미진 골짜기들을 살펴보고는 하였다. 백운산 연봉의 세 번째 능선을 타고 넘
어가며 다시 아래를 살피던 첫봉이가 손가락을 쳐들었다.
"저게 뭐냐?"
둘봉이와 선흥이가 시선을 모아 내려다보았다. 동편 숲 사이로 한줄기의 파아란 연기가
바람 없는 공중에 길게 피어올라가고 있었다. 선흥이가 내려다보다가, "분명히 인가가 있겠
구먼."
"혹시 사냥꾼이나 초동이 아닐까?"
"어쨌든 헛걸음할 셈치구 내려가보자."
하니 첫봉이가 먼저 비탈 아래로 내려갔고 두 사람도 그뒤를 따라갔다. 차차 다가가니 역시
인가가 있는데 갈라진 두 바위 사이에 흙으로 개어올린 집 비슷한 곳이 보였으며, 그 주위
에 서너 채의 움집이 낮게 꺼져서 자리를 잡았다. 척 보기에도 바위와 숲과 물뿐이니 농사
를 짓는 이들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낙네가 두엇이 나와 나물을 시냇물에 씻으면서 재잘거리고 있었다. 선흥이는 서슴지 않
고 아래로 내려갔고 물가의 아낙네들이 제각기 뭐라고 고함을 치면서 집 쪽으로 달아났다.
아니나다를까 바위 밑 토굴과 움집에서 몇몇 사내가 고개를 내밀었다. 세 사람은 그들을 향
하여 천천히 다가갔다. 사내들이 제각기 몽둥이며 쇠스랑이며 무기를 집어들고 달려나오는
데 토굴 앞에서 환도를 빼어들고 나오던 자가 걸음을 멈추었다. 선흥이가 멀찍이 떨어져 서
서 외쳤다.
"나를 알아보겠느냐. 학령에서 만났던 장연 강선흥이가 바로 내다." 그러나 그는 경계를
풀지 않고 되물었다.
"헌데 여긴 어쩐 일이슈. 피차에 원한이 없소이다."
"느이를 해코지할려구 온 게 아니다. 바루 입산할려구 왔다." 두목은 칼을 거두어 집에
꽂으면서 다시 말하였다.
"거 뒤에 두 사람은 뭐요. 혹시 기찰포교가 아니우?"
"내 동무들이다. 느이들하구 의논할 일이 있어서 그런다. 봐라, 우리는 모두 맨손이다." 두목은 학령에서 묘옥이를 덮쳤다가 때마침 행상길을 가던 선흥이의 눈에 띄어 혼찌검을 당한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으르렁거려 보았자 자기네 같은 오합지졸의 적수가 아니었다.
"이리 들어오시우."
그들 세 사람은 두목의 안내로 토굴로 향하였고, 늘어섰던 자들 중에서 두 놈이 고개를
비쭉 내밀더니 선흥이께 아는 체를 하였다.
"어서 오슈."
"음, 잘 있었느냐. 요새두 학령에 목을 잡으러 나가니?" 낯익은 졸개 대신에 두목이 말하
였다.
"웬걸요, 수돌이네 식구들 행패에 그만 학령을 빼앗기구 말았습니다."
"그럼 무얼 해서 먹구 사나?"
"그러니 이렇게 죽을 맛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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