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놀라서 들여다보니 붉은 보자기에 몇겹으로 싼 물건은 다름아닌 돌멩이였다.
"이놈들 모두 참새 골을 삶아 먹었고나. 대개 거금을 가지고 원행하는 자들이란 피화할
방책을 도모하는 법이다. 일부러 부담을 드러내어 한눈을 팔게 하고서 돈은 다른 곳에 숨겼
을 것이다. 이제 은자 만 냥이란 것은 어찌 알았더냐?"
딴은 수돌이의 말을 듣고 보니 구구절절이 지당 부처님 말씀이라 모두들 고기 눈이 벙벙
하여 쓸개 씹은 것처럼 입맛을 다시고 서 있었다.
"은자 만 냥이 들었다고 광을 친 것은 물건 임자가 분명하렷다?"
"예...... 그러하오."
주막에서 행객의 동정을 살폈던 자가 풀이 죽어서 대꾸하였다.
"모두들 녹림처사는 그만두고 기방에 나가 창기년들 속곳이나 빨아주고 연명하여라."
졸개의 뺨을 서너 차례나 후려치고서도 수돌이는 성이 가라앉지를 않는 모양이었다. 이어
서 부두령의 귀쌈까지 후려갈겼다.
"이놈아, 너는 일찍이 재령서 군노로 있을 제 살인하여 갈 곳이 없다가, 내가 거두어 살려
주었거늘...... 하는 짓이란 게 매양 이꼴이냐."
"두령, 계집에게 물어보시우. 무슨 사정이 있는 듯하오."
여하튼 수돌이가 계집이라면 빡하고 밝히는 것은 분명한 모양이라, 노기가 좀 수그러졌다.
가마의 발을 들치고 여자를 끌어내는데 고만이는 속으로 이제부터 수돌이를 녹여야겠다 싶
어서 곱게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고 미태를 부렸다. 수돌이가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허! 이게 누군가. 작년 그러께 상제께서 내치신 항아가 바로 자네로다."
고만이는 설핏 눈을 들어 곱게 흘기고는 다시 머리를 아래로 처박았다. 수돌이가 안달이
나서 턱을 치켜들려는데, 고만이는 찬바람이 쌩하니 불도록 머리를 휘저어 뿌리치며 종알거
렸다.
"흥...... 저리 옹졸한 것두 사내라구 수염이 났네."
말본새로 보아하니 계집이 안방마님짜리는 아닌 것이 분명하였고, 어디 기방물림이나 여
비 출신으로 작은집 구실에 아직 물이 완전히 빠지지 않은 양이었다. 수돌이도 슬쩍 농치는
기분이 되어 한결 마음을 놓고 수작을 붙였다.
"내가 어찌 옹졸하냐?"
"약한 아녀자를 이리 칭칭 묶어놓구 희롱하는 사내가 어찌 대장부여요?"
"그 참 말은 바른 말이로다. 얘들아, 이 마누라님 결박을 풀고 상방에 모셔들여라."
졸개들이 줄을 풀자, 고만이는 팔을 몇번 움직여보고 나서 흐트러지지 않은 매무새로 사
뿐히 마루에 올라섰다. 수돌이가 그만 정신이 아뜩하여 고만이의 가무잡잡한 얼굴을 보느라
고 정신이 없는데, 그녀는 한숨을 폭 내리쉬더니만 구슬 같은 눈물을 똑똑 떨어뜨리는 것이
아닌가.
"주위를 물려주셔요."
눈물에 홀림목(목)까지 써서 아뢰니, 수돌이가 아무리 천성이 잔인한 자라 할지라도 계집
앞에 온 삭신이 사그라지는 판이라 다급하게 말하였다.
"얘들아, 너희는 물러가서 약주나 들어라. 그리구 술상 좀 보아오너라."
수돌이는 그가 기거하는 방으로 고만이를 데리고 들어갔다. 도둑의 두령 방치고는 제법
호사스러워 어느 대갓집 사랑채 못지않았다. 한쪽에는 열두 폭 병풍이요, 그 아래 보료와 안
석이 있고 벽에는 대궁과 환도가 나란히 결렸으며 미끈한 세목 돗자리가 거적 대신 깔려 있
었다. 오동 화로는 물론이려니와 은주전자에 오소리 가죽의 털요가 개켜져 있으며, 삼층장이
놓여 있고, 사방탁자 위에는 산과와 떡이 그득 담겨 있었다. 과연 달마산 두령 수돌이는 고
을 원님을 부러워하지 않을 만도 하였다. 수돌이와 고만이가 마주 않자, 고만이는 다시 눈물
을 찍어냈다. 그리고는 묻지도 않은 말을 쫑알대는 것이었다.
"이내 팔자가 이리도 기박할 줄이야 뉘 알았겠습니까. 기왕에 하늘의 비단이 이리로 풀어
져서 두령님과 상면케 되었으니 내 더 이상 무얼 주저하겠습니까. 저는 주인으로부터 버림
을 받은 것이올시다. 일찍이 해주 교방에서 관기로 불려 나가 있었는데, 수청든 진사와 연이
닿아 관아를 사하고 물러앉았지요. 한 석삼 년 살림을 보았는데 자식이 없었지요. 그 가형이
평안도 관찰사라 하여 엄히 이르기를 식솔을 데리고 평양으로 오되 소실을 거느린다는 것은
유생으로서 용납 못할 일이라 하여 주인이 좌불안석이시더니, 드디어 계교를 낸 것이올시다.
이제 생각해보니 만 전은커녕 아예 나를 노중에다 내칠 수는 없으니 적환을 자초한 것입지
요. 저두 애초에는 일부종사 먹은 마음 피가 맺히도록 다져두고 있었사오나, 이제 모든 형편
을 알아채고 보니, 의리지정이 쓸데없소이다. 두령께서 이 미거한 계집을 거두어주신다면 기
박한 팔자를 고쳐볼까 하여요."
수돌이가 듣고 보니 입끝 말끝에 조리가 서 있고 앞 뒤 순서가 맞아떨어지는지라, 별반
의심 없이 흡족하여 고만이의 손목을 턱 잡아끌어 어깨를 안았다.
"거 듣던 중 반가운 말이로구나. 그따위 졸장부 사낼랑은 미투리 벗어 던지듯 팽개치고
나와 살자꾸나. 비록 도방 대처와는 달리 한가하여 답답하기는 하겠지만, 여기에 없는 것이
뭐 있겠느냐. 원하는 대로 털어다가 호강을 시켜주마. 그러면 그렇지, 노장은 병담을 아니하
고 양고는 재물을 심장한다는데, 만 전을 지녔다고 장광설하였으니, 실로 보물이 자네임을
몰랐구나. 나도 그동안 염복이 박하여 늘 홀로 지내기가 가을걷이 뒤의 허재비만 같더니 이
제 짝을 만나 화락하게 되었다. 이 아니 경사냐......"
수돌이가 양물이 말을 듣지 않아 계집이라면 은근히 겁을 집어먹으면서도, 그럴수록 늘상
원망스럽고 오매불망하는 것이 역시 계집의 속살이라 이런 반갑고 흐뭇할 데가 없었던 것이
었다. 대번에 미닫이를 드르륵 밀어제치고 냅다 고함부터 내질렀다.
"얘들아, 이리 좀 오너라!"
졸개가 달려오니 수돌이는 한바탕 깔깔대며 웃고 나서,
"내 오늘 가인을 만나 속현하게 되었으니, 술 내고 음식 장만하여 오늘밤을 흐벅지게 놀
도록 준비해라."
졸개들이 그런 말을 전해듣고, 술 먹고 질탕하게 논다는 말만 반가워서 모두들 환성을 지
르고 부산하게 일들을 벌였다. 술을 거른다 전을 부친다 밥을 한다 떡을 한다 하여 산채의
아낙들은 모두들 제 세상 만난 듯 정신들이 없고, 수돌이는 새옷을 꺼내 입고 역시 새옷 입
고 곱게 화장한 고만이와 상을 마주하여 술을 들었다. 산채에서 별다른 격식이 있을 리 없
어 음식상을 벌여놓고 차서를 정하여 둘러앉은 뒤에 수모의 부축으로 맞절을 하고 나서 술
석 잔을 음복하는 것으로 성혼이 대략 치러졌다. 수돌이는 그러나 못내 밤을 치를 일이 걱
정이다. 연신 색시 쪽을 돌아보며 기색을 살폈고 모두들 철모르는 계집이 고자를 만나 비뚤
어진 마음보를 잘못 덧들이고는 곧 수돌이의 칼날에 비명횡사할 것을 염려하였다. 부하들은
내 모른다 네 방귀, 하는 식으로 법석대며 술을 퍼마시고 타령에 잡가에 춤까지 추어, 어느
덧 삼경 어름이 되니 떠올랐던 반달도 산마루로 잦아들고 야기가 썰렁하였다.
"밤이 깊었는데 들어가 주무시지요."
고만이가 은근히 잡아끄는데 수돌이는 그럴수록 난감하였다. 음심은 용연처럼 깊었으나
양물은 아이들의 고추만이나 하게 움츠려 있으니 어찌하랴. 짐짓 만취한 체 비틀거리며 일
어나 안방에 깔아놓은 금침 위에 가서 엎어져버린다.
"아이 서방님, 이러시면 저는 첫날밤부터 앉은말뚝이 되오리까. 옷을 벗겨주셔얍지요."
하면서 고만이가 수돌이의 손을 끌어다 제 가슴에 넣어주는데, 팽만한 젖을 손에 쥐고 심장
이 무사한 사내자식이 있겠느냐. 수돌이가 취한 체했던 태도를 싹 바꾸어 오랫동안 주려왔
는지라 물컹 젖가슴을 잡으면서 달려드는데 고만이는 다시 제물에 자빠지며 다리로 수돌이
의 아랫도리를 휘감았다. 수돌이가 한 손은 가슴에 두고 한 손으로는 치마솔기를 더듬어 귀
를 찾아 쑥 집어넣고는 고쟁이 위로 그곳을 더듬는데, 고만이는 에그머니 속삭이며 허리를
비틀어 들어온 손을 사타구니로 꽉 물어버려 놓아주지를 않았다. 수돌이가 양물에 약간의
힘이 올랐다고는 하나 곧 무골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고만이가 바지춤을 더듬다가 그만
소스라치며,
"에고 서방님, 이게 뭣이오니까......"
외마디 소리를 지르자, 수돌이는 제풀에 탁 나가자빠져 천장을 바라보며 멋쩍게 대꾸하였다.
"신근에 병이 들어 합환의 정을 나눠본 지가 벌써 수삼 년이 지났네."
하고는 다시 고만이에게로 덤벼들어 목을 조여 잡고서 야무지게 새된 목소리로 을러댔다.
"만약에 이 일로 나를 조롱하거나 피한다면 가죽을 벗기고 거기를 오려내어 씹을 테여!"
보통 계집 같았으면 첫 번 실망에 정이 뚝 떨어지고 두 번 협박에 소름이 끼쳐서 곧 진저
리를 쳤겠으나, 고만이도 내심으로는 벌레가 몸에 붙은 것 같았지만 꾹 참아 겉으로 내색은
커녕 슬픈 목소리를 꾸며대어 달랬다.
"서방님두 어쩌면 그리두 소갈머리가 밥주발만하오. 비록 양물이 작다 하나 귀를 후빌 적
에 못 보셨수. 이자는 가늘어도 구석구석을 비벼주지요. 절구가 넓고 공이가 작다 하여 곡식
을 못 찧는 바 아니요, 돌리고 부딪쳐서 구하는 것을 얻지요. 주눅이 드셔서 이제 운우지정
까지 못하게 되셨으니, 이는 매정하고 성급한 계집들만을 만난 탓이어요. 오늘은 이만 주무
시고 낼부터 소첩이 지성으로 모셔서 천하의 오입장 기술을 알려드리리다."
하며 부드럽게 뺨도 치고 귓밥도 만져주고 입술도 대어주니, 생전에 수돌이란 놈이 이러한
노숙한 계집은 만난 적이 없는지라 그만 봄볕에 응달 얼음이 풀리듯 슬근슬근 녹아버리고
말았다. 이어서 고만이는 윗목에 준비해둔 술상을 끌어다가 화주를 그득히 부어 권하였다.
"어서 이 술 드시구 푹 주무셔요. 오늘은 저도 피곤하여 서방님 팔을 베고 세상모르고 자
고 싶어요."
"과연 백년해로할 연분일세."
수돌이가 자기 제삿날이 될 줄도 모르고 두꺼비 벌레 삼키듯 널름널름 받아서는 한 잔이
석 잔이요 석 잔이 열두 잔이 되도록 들이켰다. 드디어 눈빛이 게슴츠레해지고 혀가 굳어서
힘이 축 늘어질 쯤 되어서 수돌이는 그만 마른 짚단 바람에 넘어가듯 금침 위에 코를 박고
넘어져 일어날 줄을 몰랐다.
강선흥이와 첫봉이 형제와 변가 일당들을 합하여 아홉 명의 백운산 패거리들은 토성이 막
아선 학령 쪽으로 오르지 않고, 큰어미고개에서 구이령 줄기를 타고 달마산의 북록으로 올
라갔다.
그들은 초저녁부터 오르기 시작하여 삼경 어름에는 탄다릿내를 따라서 상류 쪽으로 올라
가 토벽이 끝난 곳의 얕아진 계곡을 건넜다. 토성 위에 번을 서는 자들의 눈을 피하여 산채
로 들어가는 오솔길 양편 숲속에 그들은 숨어서 기다렸다.
"저 토성에 있는 놈들은 변서방이 맡소. 우리는 산채로 기어들 테니까."
"산채 앞의 외나무다리에도 번 서는 놈이 있을 게요."
첫봉이와 변가가 말하는데 선흥이가 나섰다.
"수돌이는 내가 때려 잡지."
의논이 정해지기를, 변가는 칠성이를 데리고 토벽을 기어올라 망지기 두 놈을 해치우기로
하였고, 둘봉이가 졸개 한 명을 데리고 숲속을 기어가 다리 앞의 망지기를 덮치기로 하였으
며, 첫봉이는 나머지 졸개 세 사람과 더불어 달마산 졸개들이 제각기 잠든 집에 불을 싸지
를 작정이었다. 강선흥이는 먼저 수돌이를 잡아놓기로 하였다. 선흥이는 굵직한 참나무 몽치
를 가졌는데, 변가는 환도, 칠성이는 짜른 비수, 첫봉이는 역시 환도, 둘봉이는 시퍼렇게 갈
아놓은 낫을 작대기에 매어 들었으며, 졸개들도 제각기 쇠스랑이나 장창을 지녔다. 모두들
어둠 속을 노려보는데 이윽고 캄캄한 가운데 불빛이 나타나며 좌우로 서너번 오락가락하였
다.
"고만이가 성사하였구나!"
선흥이는 몸을 잔뜩 구부리고 어둠속으로 잦아들었고 분담했던 패거리들도 제각기 상대를
찾아서 바삐 흩어졌다. 선흥이는 길을 피하여 호가가 네 채나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당을
멀찍이 돌아서 불빛이 보이는 맨 위 쪽 초가로 접근하였다. 마루에 등잔을 손등으로 가리우
고 섰는 고만이가 보였다. 선흥이가 나직한 목소리로,
"날세......"
하자 고만이는 등잔불을 훅 불어 껐다. 선흥이는 고만이의 뒤쪽에 활짝 열어젖혀진 미닫이
로 주저하지도 않고 성큼 들어갔다. 선흥이가 어둠에 눈이 익었던 터이라 이불 위에 큰대자
로 자빠진 수돌이에게 달려들었다. 아무리 술에 취하여 곯아떨어졌다 한들 명색이 화적의
두령인 수돌이는 인기척에 놀라 상반신을 벌떡 치켜드는데 선흥이가 참나무 몽치를 휘두를
것도 없이 맨주먹으로 수돌이의 이마빡을 보기 좋게 후려갈겼다. 수돌이는 걷어챈 삽사리
모양 뒤로 발랑 까져버린다. 선흥이가 놈의 행전을 벗기고 바지까지 훑어내린 다음에 그것
으로 입막음과 뒷손결박을 지웠다. 그리고는 수돌이의 이마가 깨져서 끈적이며 주먹에 묻어
나온 피를 그의 가슴팍에다 쓱쓱 문질렀다. 고만이가 들어와서 곁에 쭈그리며,
"우리 허서방은 어디 있수?"
하면서 첫봉이의 계집 행세를 하는 꼴이 같잖아서 선흥이도 외입장의 말투를 써보았다.
"제미...... 언놈의 골즙은 뭐 꿀물이나 감홍로라두 된다든가, 아무거나 내어 먹지."
고만이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짐짓 토라져서 받아넘겼다.
"가이새끼도 생피하고 상놈도 항렬이 있는 터에 말인가 떡인가, 흥 참 별꼴이 각색일세."
그러나 고만이는 속곳 바람인 채 옷을 입을 기색이 아니었다. 고만이가 열려진 미닫이를
닫으려는데 선흥이는 발을 쳐들어 막았다.
"놔두오...... 불을 지르자마자 뛰어나갈 판이니."
고만이는 죽은 듯이 엎어졌던 수돌이가 조금씩 꿈틀거리자 그의 벗겨진 궁둥이를 토닥이
며 종알거렸다.
"에그 가엾어라. 그러게 계집 후릴 근력이 없으면 밀구렁에 달래든지, 흐물대는 건 쭉 뽑
아서 포도청에 쇠좆매 대신 바치든지, 아니면 꼬치에 꿰어 말렸다가 한양 구리개에다 팔아
두 돈냥이나 받지 않아."
선흥이가 보통 때 같았으면 방바닥을 두드리며 허리를 꺾을 법도 하건만 참으로 고만이의
농지거리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거침이 없으니 혀를 찰밖에 없었다.
"쳇! 옥문도 시냇물 건널 적엔 쪽, 한다더니 말이 되우 많네. 지금 어느 경황이라구 음기
를 돋구구 지랄이람."
고만이는 선흥이의 시큰둥한 반응에 그제서야 팽하니 돌아앉아 속곳 위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선흥이는 어둠속에 화광이 비치기만 기다리며 미닫이 앞을 지키고 앉아 있었
다.
변가는 칠성이를 데리고 토성의 왼편 등성이로 올라갔다. 사람 두어 길 높이의 토성은 아
래가 두루뭉술하였으나 위에는 간신히 둘이서 끼여 설 만하였으니, 양편에 통나무에다 나뭇
가지를 엇갈려 묶은 외사다리를 놓아 오르내리게 되어 있었다. 망지기는 등을 토담에 기대
고 앉아 졸고 있는 모양이었다. 맞은편에도 희끗한 사람의 자취가 보였는데, 그쪽이라고 눈
을 뜨고 지키고 있을 리가 만무하였다. 변가가 이쪽 놈을 덮치는 동안 칠성이도 오른편 망
지기를 향하여 쪼르르 달려갔다. 변가가 대번에 환도를 두 손에 잡고 상대의 배에 박았고,
그자가 목구멍에 걸린 듯한 낮은 신음소리를 지르면서 앞으로 쓰려졌다. 칠성이가 제 먹이
를 들이칠 찰나인데 놈은 급히 깨어나 장창을 곧추 겨누었다. 칠성이가 비록 급습은 하였으
나 짜른 비수로 어찌 대적하랴, 미처 찔러 들어가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서버렸다.
"저...... 저 밥쇠 같은 자식!"
변가가 시체에서 칼을 뽑으면서 당황하여 부르짖으니 망지기는 곧 자세를 바로잡아 장창
을 수평으로 겨누고 좁은 토벽 위의 두 사람을 내몰았다.
"어어...... 애걔걔."
칠성이가 뒤로 몇걸음 물러나며 짜른 비수를 속절없이 휘저어대는데, 막무가내로 파고든
창날이 사정없이 칠성이의 배와 등판에 맞창을 내버렸다. 칠성이는 산속이 떠나가라고 고함
을 지르며 쓰러지고, 변가는 과감하게 칠성이의 허우적거리는 몸을 젖히고 달려들어가면서
장창 가진 자의 어깨를 비스듬히 베었다. 칠성이와 망지기가 함께 토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
다. 변가는 이미 습격이 들통났음을 깨닫고 재빨리 성벽을 뛰어내려 첫봉이들과 합세하려고
오솔길을 뛰었다.
계곡 앞의 다리에서 번 서는 자를 노리던 둘봉이가 바위 뒤에 숨어서 상대를 노리는데,
워낙에 사방이 트인데다 아래는 자갈이라 대뜸 달려들지 못하고 틈만 노리는 중이었다. 그
때에 이상한 신음소리가 들려왔고, 상대는 두리번거리며 잠깐 주위를 살피는데 곧 뒤이어서
골짜기가 울리도록 높다란 비명이 들려오자, 그자는 창을 들고 산채 쪽으로 뛰어오는 것이
었다. 그가 막 지나자마자 둘봉이가 치솟으며 작대기에 잡아맨 낫으로 등을 찍어 넘겼다.
망지기들을 해치우기는 하였으나, 이미 산채를 누군가 습격한다는 것은 탄로가 난 일이라
졸개 셋을 거느린 첫봉이는 불을 지르고 기다리고 할 여유가 없었다. 우선 눈에 띄는 대로
병장기 거머쥐고 쫓아 나오는 두 녀석을 칼로 베었다. 졸개들은 미처 막지 못하여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달마산 패거리들에 둘러싸였고, 그중 하나가 쇠몽치에 결딴이 났다. 어둠속에
서 이리저리 무리를 이루어 몰리고 쫓기고 하는 중에 변가와 둘봉이와 졸개도 섞여들었다.
그러나 도적들은 저희 마당이고 수도 훨씬 많았다. 누가 붙여놓았는지 관솔 횃불이 훤하게
타올라 상대를 알아보기가 훨씬 쉬웠다. 첫봉이네가 더욱 불리해졌다. 그들은 모두 다섯 사
람으로 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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