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部分

1994. 11

카지모도 2016. 6. 24. 00:49
728x90




17434 1994. 11. 1 (화)


부차장회의 총무로서 번잡한 일거리들.

관절의 힘줄이 당기는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 시내에 나가서 감사패 재수정하고 필름을 맡기고 오랫만에 진주집의 해장국 한그릇하고 시장을 헤매며 야유회 불참자들에게 줄 타월을 한보따리 사들고 사무실로 돌아와 P/C로 메시지를 만들어 붙여 각부서의 여사원들을 불러 타월을 돌린다.


회사, 동기부여가 너무나 미진한 회사.

나는 이미 나이들어 어쩔수 없이 순치되는데 익숙해 있다하더라도 젊은 세대들은 곧 환멸과 만내리즘에 빠져 붙어있지 못할 것이다.

비젼, 패기, 도전, 용기, 개혁, 이런 단어들이 대선의 풍토에 혹여 날아들어 오면 금새 녹슨 고철이 되어 버리고 만다.


아, 진지한 독서와 내면을 응시하여 정신적인 경건과 진지함에 잠겨 본적이 언제쯤이었을까?

천착코자 하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MIND MAP으로 정리하고자하였던 정신분석과 종교는?

우찌무라 간죠의 기독교 문답은? 아니 하다못해 경제기사 소프트는?

가을은 갔는데.


俊이를 도우소서. 英이를 도우소서. 아내를 도우소서.

불꺼 안경을 벗고 나의 그 분께 간구하다.


17435 1994. 11. 2 (수)


"왜 내일이어야 하나?"

곰곰 생각할수록 매우 사무치는 이 한마디.

왜 오늘이어서는 안되는가?"

옳고 건전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곧바로 실천에 옮겨서는 아니될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

무슨 조건이 만족하여야 운운...


며칠후로 생각하고 있던 어머니 뵙는 일, 어제 뵙다.

생각치도 않게 英이가 낮에 인성의원에 들렀다고.

오십을 바라보는 아들과 팔십을 바라보는 어머니.

무엇에 겨운 모자관계인가.


형수는 구약의 그 방대한 분량을 꼼꼼하게 노트에다 손으로 베껴 써 채우고.


어머니 보는 날은 그예 취하는 날.


취하여 쓰러져 잠들다.

꿈- 꿈이 있었음직한데 깨어난 머릿속에는 흔적 하나 남아있지 아니하다.


새롭게 하소서 나의 아버지.


17436 1994. 11. 3 (목)


F/D 수리, PONTOON BARGE 수리건.

그 외주공사비의 처리가 부담스러운데,

품의를 얻기가 힘이 드는 분위기의 요즈음 회사.


기침은 들쑥날쑥.

하루걸러 마셔대는 술인데 언제 최상의 때가 있겠는가.

기침이 떠나 주기를 바라는게 무리이지.


퇴근때의 통근버스.

주공 아파트에 대거 몰려사는 사람들때문에 아파트 꼭대기까지 버스가 올라가는 바람에 십여분의 손해.

까닭없이 마음이 급해지는 퇴근때의 10여분.

집에 돌아가서는 정작 하는 것은 없으면서.


5시 기상.

목욕.


17437 1994. 11. 4 (금)


SB-410 인도식.

의장과 JD규 대리 감사패와 시계를 받다.

YH중 부장 동남아 출발.

PONTOON BARGE 건 다시 NEGO하여 결재 올리고, 화성산업 아가씨 오게하여 계약변경에 인장을 누르다.

기침, 기침.

하나님의 호흡이 잘 먹히지 않는 것은 너무나 오랫동안 너무나 멀리 그 분의 경건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탓이다.


스테판 킹의 '캐슬록의 비밀 (NEEDFUL THINGS)'

황당한 상상력이 종횡무진 날뛰는 기괴한 분위기의 소설.

악마가 평화로운 마을에 가게를 열고, 주민들을 이간하여 서로 증오하고 죽이게 만들고, 드디어는 다이나마이트가 작렬하고 자동소총이 난무하여 전쟁터가 된다는....


J가 황선생님으로부터 빌려온 '목사님의 답변'이라는 책.

새벽 화장실 앉아서 반쯤 읽는다.

우찌무라 간죠의 기독교문답을 연상케하는 그 내용은 찬찬한 설명의 기독교의 변증서.

헌금문제, 종파문제, 천주교에 대한 시각등 다소 완고한 보수성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성실하게 잘 썼다.

기독교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하여 생각을 바꾸게 할 좋은 책이다.


소리내어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을 읽는다.


17438 1994. 11. 5 (토)


F/D 공사관계, 도면을 그리고 공사내역을 작성한다.

그러나 오후에는 아뿔사, 英이가 빌려온 논리퍼즐책의 덫에 걸려 그 문제풀기에 흠뻑 빠지고야 만다.


사람마다 두뇌의 우열은 다르다.

그러나 두뇌가 나쁘더라도 집념을 갖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의 두뇌 개발은 가능하다.

나의 두뇌는 나쁜 편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스스로는 뛰어나다고 느끼고 있다.


그런데 두뇌를 개발코자하는 집념에 이르면 썩 좋은 편이 되지 못한다.

두뇌 쪽이 아닌 마음의 자세, 정신적인 집념, 이런 쪽에서 열등한 것이다.


그 퍼즐들을 제법 풀어낸다.

풀고났을 때의 쾌감이라니.


17439 1994. 11. 6 (일)


토요일날은 늘 특별한 느낌이 든다.

전에 7시까지 근무하였을때와는 실로 격세지감.

정오만 지나면 자유로운 시간.

젊은이들은 여기저기 약속들이 널려있어 잔업을 기피하고, 예전같으면 줄줄이 켜져있을 임원의 재실등도 정오지나면 하나 둘 꺼진다.

오후까지 사무실 남아있더라도 편하게 바둑이라도 둘수있고.


그런데, 나의 토요일 오후는 참으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소모성의 시간이다.

타성.

술마시기 아니면 비디오 보기.

J는 부엌에서 뚝딱거리며 김치를 담그고 있고, 나는 마루에 책상다리 하고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비디오를 본다.


17440 1994. 11. 7 (월)


일요일.

종일 비디오.

션 코넬리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007 영화.

오리지널 아이언 프레밍원작의 옛 007 영화들, 테렌스 영감독의 화면은 고전미가 있었다.

그것이 로저 무어의 '뷰투어 킬'에 이르면 물량작전과 스펙터클이 강조되고 좀더 잔인하여 진다.

그렇지만 요즘의 냉혹무비한 범죄영화에 비하면 007 영화는 로맨틱하기 그지없다.


'피아노'

뉴질랜드의 해변, 그곳에 호젓이 놓여있는 피아노.

그 풍경은 시정 넘치지만 결국 무언가.

벙어리와 피아노.

언어로 표현치 못하는 마음의 영상?


'아리랑'

조선의 혁명가.

참다운 인격의 청년 장지락.

시대가 만든 열정, 순수의 그 열정.


그예 일요일 오후 술마시다.


17441 1994. 11. 8 (화)


스테판 킹의 소설 반납하고 윤정모의 '들' 빌린다.

제1권의 반을 후딱 읽어버렸는데 골격을 거칠게 드러내고 있는 작가의 반미의식은 다소 서걱거리는 느낌이지만 그 역사적 리얼리즘의 감동은 깊다.

그녀에게 있어서 미국이라는 나라는 다만 제국주의의 침략국일 뿐이다.


또 Sh씨 방에 불려가 되지도 않는 독선의 논리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알겠습니다'만 연발하는 곤욕을 치루다.

건설부의 육교 건.

근본부터가 원칙도 없고 규정도 없이 떠맡은 생산관리부의 업무인데, 규정과 원칙 운운하는 그 조그만 사나이의 머리구조는 그냥 괴물스러울 뿐이다.


英이.

초저녁 돌아와 개기고 있는 모습, 안스럽고 가엾고 답답하고 화나고.


그리고 俊에게는 대입 수험생의 치열함이 엿뵈지 않는다.

그것이 오히려 마음 편한 것인지도.


꿈- 귀신이 나오는 참 별 꿈을 다 꾼다.

Sh씨의 강박적 이미지가 귀신이 된 모양.



17442 1994. 11. 9 (수)


농촌이 겪어왔던 역사의 현실을 나는 알지 못한다.

단지 가난하여 헐벗고 굶주린 농촌이라는 정지된 풍경화는 윤정모에게 용납되지 않는다.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자의 이분구조, 그 다스리는 자의 그것은 제국주의를 등에 업은 관료주의, 그 이기적인 꼭두각시의 정부...

이 사실을 확연히 깨닫고 농촌은 일어나 싸워야한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다스릴때까지 싸워서 자주를 획득해야 한다.

윤정모의 그것은 다분히 이상주의의, 의식화된 자의, 좌익적 사고의 논리?


노동의 현실 또한 나는 모른다.

그것이 자본과 노동이라는, 이분구조로서만 파악되는 현대의 시스템일까.

19세기 산업혁명, 그후의 계급혁명.

나는 물론 순수한 이상의 열정에 금새 감염되어 감동하고야 마는 그런 사이비 감상적 사회주의자이지만 好惡를 떠나서 시대의 수레바퀴, 정신에 대한 물질의 승리, 그 물질은 또 새로운 정신을 잉태하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느낌 하나.

윤정모를 읽으면서.


막스 불르흐의 스코트란드 환상곡.


17443 1994. 11. 10 (목)


육교공사 지출품의 QC의 검사확인서와 품질에 대한 부전지 붙여 결재 올려놓고 조그만 사나이의 어떤 포탈이 있을까 염려하였는데 쉽게 결재는 떨어지다.

그러나 웬걸, 7시 다되어 가는 퇴근무렵의 Sh씨 호출, 기능직사원 잔업 문제로 또 조그만 사나이의 포악을 뒤집어 쓴다.

나로부터 시작하여 현업과장들을 차례로 불러들여 악을 써대는 그 모습은 차라리 코메디에 가깝다.

어떤 장기적 비젼과 합리적 시스템에 의지하여, 원칙과 규정에 의하여 돌아가는 곳이 아닌 전근대적, 지극히 비논리적 독선에 의하여 관리되는 그런 시스템의 짓거리들.

극심한 환멸.


17444 1994. 11. 11 (금)


회사에서의 무력감의 근원은 다른데 있지 아니하다.

부쩍 심해진 전무라는 사나이의 나에 대한 포탈,

그 냉혹함의 배후에는 무슨 파워게임이 존재하고 있는겐지.

그저 두리뭉실 견뎌나갈수도 있으련만 조그만 사나이가 그냥 놓아두지 아니하니 어찌하랴.


이 진부하고 진부하여 고이고 고여서 썩은 내가 나는 풍토속.

이십여년 인생을 바쳐서 나는 과연 무엇을 얻었는가.

쥐꼬리만한 경제의 근거로서, 그나마 처자식 거느리고 예까지 왔다는 것을 감사해야 할까?

기댈 언덕 하나 없음에 그저 막막하기만.


俊이 이제 시험 10일 남았다.

俊일 생각해서라도 나는 지금 흔들려서는 아니된다.


17446 1994. 11. 13 (일)


토요일, 어수선하고 못마땅하고 싫은 회사의 분위기 속에서 그래도 집중하여 몇가지 사안 처리.

J과장 한라중공업 공정소위원회 1박2일 출장갔다 귀사.

철이 들었는지 아니면 요즘 전무에게 당하는 내 꼴에 연민을 느끼는지 제법 곰살맞게 군다.


다른 조선소의 발빠른 변화로의 몸부림.

그러나 대선조선은 구태로 회귀하고 있는 꼴이다.

그 변화의 본질을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돌, 돌, 돌대가리들.

P상무 역시 입으로는 ISO다 무엇이다 하고 들은 풍월로 읊조리고 있으나 그 사고 속에는 시스템적 감각은 들어있지 아니하다.


17447 1994. 11. 14 (일)


일요일 새벽.

바람을 맞으며 J와 태종대 걷다.

해장국 한그릇씩 사먹고 돌아오는 아침.


추스려 추스려 나태한 정신을 추스려라하고 구호처럼 마음 속에서는 외쳐대지만,

영혼 쪽의 영토에서는 자꾸만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하고 염려의 메시지를 띄우고 있건만.

나의 일요일은 영화와 낮잠에 함몰되고 만다.


장 꼭도 감독 주연의 '올훼의 유언'

내 꿈 속의 어떤 이미지들과 흡사한 흑백 영상.

그러나 시인의 메타포가 녹아있는 시인의 논리는 내 꿈의 논리가 아니다.


윤정모 '들' 완독.

편향된 사고의 경향도 없지 않지만 작가로서 완숙하다.

독자를 격동케 하는 문학적 감성도 흐드러지게 녹아있다.


그러나 윤정모의 그 이상론은 과연 옳은 방향일까?

어느 소비에트가 완벽하게 성공하였던가.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완전한 평등과 사랑과 자유의 세상.

이 인간의 속성으로서는 가능치도 않은 꿈을 윤정모는 과연 과학적으로 가능하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겐가.


윤정모같은 작가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수 있을까.


겨울이 곁에 닥아와 귓가에 대고 '겨울이야' 하고 목쉰 소리로 말한다.


17450 1994. 11. 17 (목)


죽음에 관한 객관적인 설명은 가능한가.

'인간은 단지 혼자서 죽는다' 파스칼.

나 자신만이 경험해야할 나만의 것.

죽음의 자기의식.

그것은 설명할수 없기 때문에 의식되어진다.

'인간은 죽음에 이르는 하나의 존재이다' 하이데거.

죽음은 경험할수 없는 경험이다.


죽음에 차츰 가까워진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철이들게 하기도하여 인생의 오의를 깨닫게도 하며, 또는 절망과 허무의 나락 속에서 울부짖게도 되는...


공자님이 말한 지천명이란 결국 죽음이 가까워 올때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말씀.

청년들아, 늙기전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부쩍 추워져 겨울이 성큼 닥아섰다.

俊이, 수학능력시험 초읽기.


문을 걸어잠근 아이들 방 속의 세계는 내게는 완강한 무지의 공간이다.


17451 1994. 11. 18 (금)


님 웨일스 '아리랑'

김산, 장학량.

청결한 사람, 인류를 위하여 순수하게 자신을 희생할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

장중한 사람, 어쩌면 진정한 기독교도로서 살았을 사람.

님 웨일스가 쓴 그것이 실존한 김산의 고백이었다면, 그는 그저 한 인간으로서도 위대하였다.


17452 1994. 11. 19 (토)


대폭의 인사에 대한 소문만 무성.


전일의 음주는 사무실 책상앞 하품 연발.

대준건설 건, 약간의 공사비 인상으로 결국 계약.


느닷없는 N.C CUTTING SYSTEM에 관한 자료검토 ORDER.

즉흥적, 모든 업무기획 형태가 이 모양이다.

장기적인 비젼을 향한 세부계획도 없는 원칙부재의 즉흥성...


사장아들.

수리영업부에서 매우 소탈하게 일하고 있다.

말단사원으로,

연대경영학과, 미국유학.

A사장의 자식 교육은 그런대로 괜찮아 보인다.


俊이 결정의 순간이 임박하였다.


17453 1994. 11. 20 (일)


토요일.

요일은 금새금새 반복되어 닥아오고 지나간다.

전번의 토요일, 그 전전번의 토요일, 또 그 전전전번의 토요일....

나이를 먹는다는 것, 새로운 다양한 어떤 것을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것.

완고하고 고루한 진부함 속이 오히려 편한 상태.

그리하여 반복되는 타성 속에 정신을 잠구는 것.

그리하여 '참 세월은 빨리도 간다'하고 중얼거리게 되는 것.

내 외부를 향하여 '유치해. 유치해'하고 평가하고 혼자의 성 속에서 짐짓 폼을 잡고는 있으나 기실 그 유치함으로부터 밀려 쫓겨날까봐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俊이 입시생의 초조함과 치열함이 외부로 드러내 보이지 않는 포즈가 오히려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녀석의 마음 속에서는 어찌 천연덕스런 멀쩡함만 있겠는가?


17454 1994. 11. 21 (월)


일요일.

EBS의 명화극장.

쥬리앙 듀비비에의 '마리 옥토브로'

리노 벤추라가 출연한 것을 보니 쥬리앙 듀비비에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옛사람이 아닌 모양이다.

깊이있는 흑백 화면.

한정된 공간에서의 무대적 연출, 연극적인 플롯.

시드니 루멧의 '열두 노한들'이 연상되기도.


잠, 꿈.

영도, 낙원과 같은 분위기.

맑은 바닷물, 전통이 살아 숨쉬는 마을, 대학 캠퍼스.

형, 홍철이, 죽은 영환이도 등장..


낼 모레 俊이 용약 출전.

우리의 대표선수.


도우소서.


17455 1994. 11. 22 (화)


俊이 드디어 내일.

시험장소는 대학병원 앞에 있는 경남중학교.


기도.

俊이를 도와 주십시오.

못난 아비의 어느 구석, 손톱만치라도 예쁘게 봐주실 한톨이라도 있으면.


17456 1994. 11. 23 (수)


오늘이다.

뒤척이는 염려와 바램은 3시도 못되어 정신을 흔들어 깨운다.

엇저녁, 제 방문 걸어잠그고 있는 俊이의 마음이 어찌 예사로울까.

긴장을 풀어라.

마음을 편하게 가져라.

조금도 염려할것


이 없노라고 俊이에게 잠꼬대같은 당부를 하지만...

어젯 밤, 똥은 누었는지...


이제 오늘 俊이의 최상의 컨디션으로 최선을 다하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그리하여 어떤 결과이든지 그를 수렴하고, 그 결과로서 또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하나님 나의 아버지.

오늘 俊이를 도와 주십시오.


17457 1994. 11. 24 (목)


형의 차를 타고 俊이와 彦이 함께 경남중학.

남고의 격문 플랭카드가 걸려있고 후배들이 늘어서 커피를 쥐어주며 격려하는 가운데로 뒤돌아 보는법 없이 俊이는 사라져 들어간다.


사무실에서 俊이와 함께 시간을 잰다.

지금은 언어영역시간, 지금은 점심시간. 아, 이제 俊이는 시험을 모두 치루었구나. 이 시간에...


시험 치르고 그 해방감에 彦이와 노래방에도 가고 소주도 한병 비우고 10시경 돌아와 곯아 떨어지는 녀석.


문제가 쉬웠다고.

제 엄마가 적어놓은 정답을 맞추어보고는 140점 정도 나오겠다나?

건방을 떠는게 아닌가 모르겠다.


이제 본고사를 남겨놓은 俊.

네 대학생활에는 이 아비의 꿈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주님께 감사.


17459 1994. 11. 26 (토)


술에 곯아 게으른 몸을 일으켜 미장원 가서 머리를 파마하고 목욕탕 들러 때를 벗기다.

노조창립기념 휴일.

날씨는 초겨울답지 않게 따스하고 짓푸른 바다는 한가롭게 누워있다.


1월이 되어 俊이 대학생이 되면, 함께 산에도 오르고, 녀석의 정신을 살찌우게 하는 부자간의 이런저런 대화도 꿈꾼다.


비디오 '제로니모'

인디언쪽의 시각으로 만든 인디언 영화.

자신들이 주인인 드넓은 땅을 빼앗기고 보호구역이라는 좁은 울타리 속에 디밀어지는 인디언들.

이제 순치되고 순치되어 제국주의의 한구석에서 구경꺼리로들 살고 있는가.


17460 1994. 11. 27 (일)


英이가 서울의 이벤트사에 근무하는 선배에게 얻어온 공연 티켓.

KBS HALL에서 열리는 POP ORCHESTRA.

누나는 俊이에게 석장을 주면서 彦이와 관람하라고 하였는데 녀석은 가지를 않았다.

제 누나는 공연장 문 앞에서 동생을 기다리고 있는데 녀석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여하튼 상대에 대한 배려없는 녀석이다.


날씨 바싹 추워진다.

이제 곧 세밑일테지만 매년 맞고 보내는 세밑의 풍경화는 갈수록 건조한 색감으로 닥아온다.


俊의 대학.

그것이 이루어지는 내년이면.

새롭기를, 새롭기를...

그리하여 신앙과 새로운 의미의 삶을.

변화된 삶의 양태.

돈과 신변잡사의 구속으로 부터 해방된 삶의 양태를 꿈꾸는.



17461 1994. 11. 28 (월)


일요일의 종일은 비디오 보기로 점철된다.


'007 황금 총을 가진 사나이'

바람둥이 스파이 제임스본드 로져무어.


좋은 영화 '델마와 루이스'

패미니즘의 영화.

여성의 정체성이라는 문제는 미국이라서 다르지 않다.

당연한듯 남자에 길들여 사는 삶, 어느날 홀연히 깨어난다.

자동차 안에서 델마가 루이스에게 묻는다.

"루이스, 너는 지금 깨어있니?"

그랜드 캐년, 장대한 자연 속에서 델마와 루이스는 다시 그 딱한 질곡의 여성 속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절벽아래로 자유의 존재를 날린다.


17462 1994. 11. 29 (화)


낮에 사무실을 잠시 빠져나와 이곳 저곳 책방을 돌면서 俊이 진학관련 정보를 구한다.

중앙일보에서 낸 '95 전국대학순위'는 없고, 대신 진학이라는 잡지를 부록이 탐이나서 구입한다.


俊이의 수능성적 144점으로는 부산대학교 영문과는 어림없다.

러시아어과나 일어과정도면 가능성이 있을라나.

동아대나 수산대의 영문과라면 가능할 것인데.


집에 돌아와 俊이를 앞에 앉혀놓고 의논한다.

그런데 녀석은 단지 수학과목을 치루어야 한다는 그것 때문에 부산대학의 포기에 동의할뿐, 엉뚱하게 사회학과 운운하고 있다.

俊이가 생각하고 있는 대학의 전공이란 무엇일까.


야심과 패기가 엿보이지 아니하고 나약한 의지를 내비치는 俊이.

그런 아들놈의 편린을 보는 아비짜리는 부아가 치민다.


J와 듀엣의 기침하기.


17463 1994. 11. 30 (수)


새벽 일어나 俊이의 대학에 관하여 곰곰 생각을 하여 보지만, 자꾸 아비와의 얼굴 맞대기를 피하는 그 녀석에게 어떻게 진지하에 어프로치할 방법이 없다.

편지를 쓰기로 마음 먹는다.



'辨明 僞裝 呻吟 혹은 眞實 > 部分'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95. 1  (0) 2016.06.25
1994. 12  (0) 2016.06.24
1994. 10  (0) 2016.06.24
1994. 9  (0) 2016.06.24
1994. 8  (0) 2016.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