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운 세월은 이제 다 간 것 같았다. 태조 이성계의 용안을 그리어 모신 영정을 봉안하고, 봄, 가을로 춘추 두 번에 걸쳐, 향사에 따라서 분향 제전을 받들어 오는, 장엄하고도 전아한 경기전과, 전주 이씨 시조 신라사공 이한과 그의 배비인 경주 김씨의 위패를 받들어 모신 터 조경묘를 경기전 북쪽 켠에 세워서, 이 땅이 조선의 연원이라는 것을 확실하고도 상징적으로 밝히었다. 경기전은 태종 10년에 창건하여 그해부터 바로 엄숙한 지고의 제향 범절을 갖추었지만, 조경묘를 창건한 것은 한참 뒤인 영조 4년이었다. 그때 신묘 시월 오일. 선비 이득이를 필두로 칠도 유생들은 하얗게 궐기하여 구름같이 엎드린 채 상소를 올렸다. 고구려나 신라 시대를 살펴보면 나라마다 시조묘가 있어 받들어 모시는 품이 장중한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