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옥은 아무 정신 없이 타박타박 걸었다. 작은잿말의 밭두렁과 그 너머로 동구에 섰는 노송이 보였으며 어느결에 묘옥의 흐려진 눈앞에 길산의 낯익은 걸음걸이가 나타났다. 달빛을 온몸에 받으며 길산은 다가오고 있는 듯하였는데 묘옥은 뛰는 가슴으로 그를 기다렸다. 다시 제정신이 들었을 때는 아직 훤한 저녁이었고 소나무 밑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묘옥은 울음을 터뜨렸다. 묘옥이 자기 설움에 겨워 마음껏 울고 난 뒤에 다시 길산에 대한 생각이 이어졌다.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가 처형되기 전에 감영 옥으로 찾아가 손이라도 잡아보아야만 원이 없을 듯하였다. 제 몸에 찍혀 있는 연비의 또렷한 글자, 정표를 해준 사내, 거친 세상을 살아오며 처음으로 마음까지 바치었던 유일한 남자, 그러나 어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