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누가 내 치즈를 훔쳤을까?>
-스펜서 존슨 作-
***동우***
2016.08.13 04:52
소년적에 '아미엘의 일기' <스위스의 고독한 철학자 앙리 프레드릭 아미엘 (Henri-Frederic Amie 1821-1881)이 일생동안 쓴 일기>를 머리맡에 두고 읽은적 있습니다.
이런 구절도 내 노트에는 남아있지요.
<나는 나를 이해해 줄 것 같은 사람에게만 우정을 요구해 왔다. 지식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만 대화를 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런 행동은 나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세상을 내게 맞출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나의 마음을 이해해 주기 전에 내가 먼저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 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삶의 성실이다.>
1970~1980년대 우리나라 기업들은 일본의 QC(품질관리)를 배우자하여 뻔질나게 일본을 드나들면서 TQC(전사적 품질관리)라는 운동(캠페인)이 유행이었는데 그건 일종의 정신개조 운동이기도 하였습니다. <평생직장 운운...우리나라나 일본이나 그런 풍조 지금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시절에는 예상하지 못한 작금의 전혀 다른 패러다임.>
그때 유행하던 구호가 있었습니다.
<마음이 변하면 태도가 변한다. 태도가 변하면 습관이 변한다. 습관이 변하면 인격이 변한다. 인격이 변하면 인생이 변한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 문장은 '아미엘의 일기'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합디다. (책을 뒤져보아도 어느 위치에 있는지 못찾았어요)
나는 정신개조니 자기개발이니하는, 그런 종류의 클리세를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변화를 싫어하는 기질 탓이겠지요만. ㅎ
'스펜서 존슨 (Spencer Johnson, 1940 ~ )'이 우화로 들려주는 '누가 내 치즈를 훔쳤을까(옮겼을까)?'
일모도원(日暮途遠)의 나같은 늙은이보다, 조금이라도 젊어있는 이들에게는 유용한바 있을듯 하여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아래는 이 글 말미에 있는 발문입니다.
++++
당신의 치즈는 안전한가?
우리는 변화라는 화두를 안고 살아간다. 그 변화는 우리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기도 하고 보다 안전한 삶을 향한 이정표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는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고에 익숙하지 않다. 낯익은 환경이 주는 안락에 취해 다가오는 변화의 기미를 애써 외면해버리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우리의 촉수는 점점 더 무디어져간다. 과연 10년 뒤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변화되어 있을 것인가?
그때 우리는 어떤 미로속을 달리고 있을까?
혹 아무도 오지 않는 막다른 골목에서 썩은 치즈 때문에 절망하고 있진 알을까...
나는 변화에 대한 명쾌한 답을 이 책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찾을 수 있었다.
처음 이 흥미롭고 위대한 이야기를 접한 것은 스펜서 존슨씨와 공동으로 '일분 매니저 (One Ninute Manager)를 집필하기 몇 년 전이었다. 그리고 몇 년의 세월을 더한 지금 내가 받았던 감동의 깊이 그대로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는 치즈를 찾아 다니는 네 명의 재미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은 안주라는 감미로운 유혹과 변화라는 험난한 여정을 통해 삶의 참의미를 깨달아간다.
본서에 등장하는 치즈란 우리가 생활 속에서 얻고자 하는 직업, 인간관계, 재물, 근사한 저택, 자유, 건강, 명예, 영적인 평화 그리고 조깅이나 골프 같은 취미활동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우리들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치즈를 마음속에 두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또 자신이 그토록 갈구하던 치즈를 얻게 되면 누구나 그것에 집착하며 얽매인다. 하지만 만약 치즈를 상실하게 된다면 급격한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심리적인 공황상태에 빠져버린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치즈를 통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모습들을 제시한다.
본 우화의 또 다른 매력은 미로찾기에 있다. 미로는 우리들 각자가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머무르는 장소를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장소란 우리가 현재 몸담고 있는 조직이나 지역사회, 또는 우리 삶에 등장하는 어떤 관계일 수도 있다.
우리는 미로를 달리며 수많은 장애물에 부딪치게 된다. 막다른 곳,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곳, 왔던 길을 되짚어 가야하는 곳...
이 책은 우리 자신이 개척해 나갈 '통로'를 보여줌으로써 위기에 빠진 직장생활이나 결혼생활 그리고 인생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커다란 촉매제로 작용할 것이다.
실제로 NBC-TV에서 존경받는 방송인으로 맹활약을 하고 있는 찰리존스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읽고 직장생활의 위기를 극복했다는 고백을 했다.
그 당시 그가 방송국에서 하던 일은 스포츠 중계방송이라는 독특하지만 방송인이라면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해낼 수 있는 업무였다. 순조로운 일상이 지나갔고 올림픽 육상경기의 장, 단거리 중계방송을 훌륭히 치러 내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직장 상사는 다음 올림픽 경기에서 그의 주력 분야인 육상 대신 수영과 다이빙 중계를 담당하라고 지시했다.
그순간 찰리 존스는 당황했고 화가 치밀었다. 새로 맡겨진 종목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기에 그는 더 큰 좌절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열등감이 더해지면서 위기감은 증폭되었다. 이러한 그의 불안은 상사에 대한 분노로 치달았고 그가 하는 모든 업무에 영향을 미쳤다.
바로 그때 찰리 존스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읽게 되었다.
책을 읽고나서 찰리 존스는 자신의 사고방식과 행동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즉시 안주하고 있던 치즈에서 벗어나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현실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수영과 다이빙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의지를 불태웠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상사에게까지 전달되었고 그가 해왔던 업무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중요한 임무가 맡겨졌다. 즐거운 마음으로 변화를 수용한 결과인 것이다.
찰리 존스는 전보다 더 열성적으로 일을 했고. 그 후에는 프로축구 명예의 전당 방송을 도맡게 되었다.
이 후일담을 듣고 나는 이 책의 미완성본을 우리 회사 직원들(약 200명 가량)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고 함께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하는 바램에서였다.
미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를 원하는 여느 회사처럼 우리 블랜챠드 훈련개발원 역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 우리의 치즈는 계속해서 옮겨다닌다. 변화하는 치즈에 따라 과거에는 충성스럽고 우직한 직원이 필요했지만 현재는 주위 상황에 민감하게 대처할 수 있는 융통성있는 직원이 필요하다. 그러한 까닭에 치즈는 유동적으로 움직일 줄 아는 직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독자 여러분도 잘 아는 사실이지만 변화를 보고 그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인생관을 갖지 못하면 직장생활이나 모든 사회생활은 스트레스로 인해 엉망이 된다.
이 책을 읽은 이들의 공통된 소감은 변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이었다. 다가올 미래에 대해 변화의 촉수를 세우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썩은 치즈의 망령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이 짧은 우화는 우리에게 변화의 단서를 제공하리라고 확신한다.
'치즈' 읽기의 마지막 묘미는 모두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구성에 있다.
첫 번째 장 '모임'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들의 모습을 통해 다양한 삶의 모습과 변화된 환경을 보여주고 두 번째 장에서는 이 책의 핵심 내용인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소개한다. 세 번째 장 '토론'에서는 이 우화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작용할 것이며 그들의 일과 삶속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토론이 이어진다.
이 책의 초고만 읽은 사람들 중에는 마지막 장은 읽지 않고 나름대로 이 이야기의 의미를 해석한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이는 마지막 장을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고 한다.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개인적인 바람으로 독자 여러분들이 나처럼 이 책을 거듭해서 읽고 읽을 때마다 새롭고 유익한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그렇게 하면 변화에 잘 대처할 수 있고 각자 원하는 큰 성공을 이루는 데에도 무리수가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감히 단언하는 것이다.
나는 여러분들이 이 책에서 발견한 숨겨진 보물을 마음껏 즐기고 또 바라는 만큼 성공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치즈와 함께 자신도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눈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에 떠밀려 추락하는 것 같은 참담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이제는 과거의 치즈를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생존의 밀림에서 '도태' 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지 '썩은 치즈'를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치즈'를 향해 나서야 되기 때문이다.
++++
***동우***
2016.08.14 00:55
누가 내 치즈를 훔쳤을까...
모든 우화가 그렇듯이 사례의 단순화로 인한 '근시안적 귀납의 오류'가 있을수도 있겠습니다마는.
기존의 것 미련없이 작파하기.
새로운 것에 대하여 과감하기.
'고르디우스의 매듭'
단칼에 내리쳐 풀어버리는 알렉산드로스가 쾌쾌(快快)하기야 하지만 곰곰 살펴보면 손쉽게 풀수있는 매듭일런지도 모릅니다.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
한때 로자 룩셈부르크의 주요한 명제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Reformation(개혁)이나 Renovation(개선)이 Revolution(혁명)보다 효율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도저히 풀수없는 매듭, 호리도 개선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라면 Revolution이 되어야 하겠지요.
합리화로 사태를 납득하려하거나, 막연한 희망에 기대려하거나, 사태를 추상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기 십상입니다.
기존의 안주(安住)로부터의 벗어남이 두려워.
절박한 상황에서의 지나친 사태분석이나 자기연민 따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변화를 향한 과감한 행위가 필요할 뿐입니다.
거기에 기쁨과 비전이 있습니다.
더우기 작금에 이르러서는.
과학과 기술과 시스템으로 시대가 절박하여 세상이 한발 앞서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변화는 상시적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자고 자신에게 중얼거립니다.
치즈뿐이겠어요?
관계에 있어서도 말입니다.
***스니프***
2016.08.14 11:18
한때 그리도 유명짜하니 책방 서가에, 신문 광고란에 펄럭이던 이 제목의 책.
동우님 덕분에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동우님네 '리딩북스 도서관'은 내게 이렇게 유혹적이며 유익합니다.ㅎ
아들내외랑 점심 약속있어 잠실 나왔어요.
이 염천에 부엌에서 달그락거린다는 건 누구에게나 형벌일테니.
잦은 매식, 골라 찾아들어 골라먹기 재미로 무더위를 쫒아봅니다.
태풍은 감감무소식이고,
동우님께 사랑담긴 사이다바람 장풍 날려드려요.
쉬이이이이이익~~~ 솨아아아아아아아~~~~~^^
***┗동우***
2016.08.15 04:41
어제 아드님 내외와 무얼 드셨을까.
저 남쪽나라에서 태풍 하나 음모를 꾸미고 있답니다,
스니프님의 장풍.
사랑담긴 사이다 바람.
당케세, 메르시.
정말 씨원합니다. ㅎ
***스니프***
2016.08.16 19:52
장어랑. 전복넣은 갈비탕 먹었어요.
여름 보양,보음을 위해서....ㅎ
태풍온다는 기별 있었나 보아요.
무더위가 넘넘 지루해서 이젠 견디는 것이 한계점을 보이려하는데
슬슬 염천의 등등한 기세도 고개숙이려 하네요.
모든것은 지나갑니다.^^
***┗동우***
2016.08.17 03:14
태풍기별은 쏙 들어가버렸네요.
그래도 고개 숙이는 무더위.
정말 그래요.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삶을 살도록 만드는 섭리가 아닐수 없습니다.
아드님 내외와 여름 보양 보음 하신 날.
나도 아들녀석과 장어탕 먹었어요.
서울에는 장어탕하는 집 있을라나?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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