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주홍글씨>
나다니엘 호오돈 作
***동우***
2010년 9월 21일
이번 달 책부족 독서과제.
‘나다니엘 호오돈 (Nathaniel Hawthorne, 1804~1864)’의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
몇 달 전인가, '롤랑 조페' 감독의 '주홍글씨' (‘나다니엘 호오돈’의 ‘주홍글씨’는 몇 번 영화화 되었을 것인데)를 보았다.
‘데미 무어’가 ‘헤스터 프린’역, ‘게리 올드만’이 ‘딤즈데일’목사역. ‘로버트 듀발’이 프린의 남편 ‘로저 칠링워드’역.
‘데미 무어’는 ‘헤스터 프린’으로는 적역이 아니듯 하였지만, 영화는 그런대로 원작에 충실하였다고 생각된다. (로버트 듀발의 연기는 '대부' 이래로 실망한 적이 없다)
‘주홍글씨 (The Scarlet Letter)’
Adultary(간통)의 첫 글자 ‘A'를 분홍색으로 옷가슴에 아로 새기고 ’나는 죄인‘이라는 표상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살아야 하는 수형자(受刑者) 헤스터 프린.
영국으로부터 신대륙으로 건너온 그녀는 행방불명되어 생사를 알수 없는, 늙은 남편을 둔 젊은 유부녀였고, 그녀는 젊은 목사 딤즈데일과 사랑에 빠져 딸을 출산하였다.
사생아(딸 '펄')'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밝히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헤스터 프린.
소설의 고장은 간통한 남녀는 목 매달아 처형할듯 서슬 시퍼런 청교도사회, 17세기 미국 동북부 뉴잉글란드.
그 집단적 광기를 그녀는 제 한 몸으로 묵묵하게 받아 내면서, 가슴에 주홍글씨 'A'를 새긴채로 그 고장 보스톤을 떠나지 않고 살아간다.
바느질로 생계를 꾸려 딸 '펄'을 양육하면서 사람들과의 접촉도 끊은채 고독하게 살아가는 헤스터 프린.
내게 그녀는 꿋꿋하고 아름다웠으며 그녀의 독립적인 개성은 뚜렷하여 눈이 부셨다.
목사 딤즈데일과 유부녀 헤스터 프린이 어떻게 사랑하고 정을 통하게 되었는지 거간의 사정은 소설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학식이 깊고 경건하여 모든 사람의 도덕적 귀감인 뎀즈데일 목사.
그런 그가 통념(通念)의 벽을 부수고 유부녀 헤스터 프린과 함께 불태웠을 로망은 상상으로 그려 볼 뿐이다. (7년후 호젓한 숲속에서 그녀를 조우한 목사, 그녀를 향한 애정의 절절함은 소설 속 묘사로서 짐작...)
소설 전반에 딤즈데일은 일견 위선자의 면모로써 등장한다.
자신이 사생아 ‘펄’의 아비이노라고 선뜻 나서지 못하는 위선에 대한 자의식과 목사로서의 종교적 죄의식.
그는 내면적으로만 깊은 괴로움으로 신음하고 있을 뿐이다.
인디언에 붙잡혔다가 뒤늦게 살아 돌아온 헤스터 프린의 늙은 남편 칠링워드는 아내의 부정을 알고 복수에 집념에 사로잡힌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의사로서 딤즈데일에 접근하는 칠링워드.
겉으로는 도덕군자의 폼을 잡고 있지만, 그의 복수심은 집요하고 일견 매우 변태적이다.
복수의 방법이란 매우 심리적인 것으로. 목사의 기독교적 모럴을 자극하여 정신적으로 고문하는 것이다.
흡사 지렁이에게 소금을 뿌려 고통으로 꿈틀거리는 모습을 쾌락으로 감상하려는 듯 그것은 매우 악마적 관음증이었다.
그의 복수심은 사디스틱한 희열로 전율하지만 어찌보면 그것은 자학적인, 혹은 타나토스의 형태도 엿보인다.
느끼건대 정신분석적 접근으로 이해를 구하여야 할 심리상태가 아닐수 없었다.
칠링워드는 병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늘 목사 곁을 맴돌면서 끊임없이 딤즈데일의 죄의식을 일깨운다.
끊임없이 그의 정신에 독을 뿌리는 것이다.
종장에 필경, 그 독으로 딤즈데일은 죽음에 이르게 되고야 만다.
헤스터 프린.
<오랫동안 줄곧 소외당한 입장에서 그녀는 위정자들이 설정해 놓은 모든 인간 사회의 제도로부터 동떨어진 곳에서, 단지 그것들을 비판하고 관찰하며 살아왔으며 목사의 늘어진 칼라. 법복. 처형대. 교수대. 난롯가. 교회등에 대해서도 인디언이 느낄 정도의 존경심밖에 갖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운명은 그녀를 자유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갔다. 주홍 글씨는 다른 여자들이 감히 발을 들여 놓지 못하는 영역에도 드나들 수 있는 통행증이나 다름없었다. 치욕과 절망, 고독 같은 것들이 스승 중에서도 가장 엄하고 과격한 스승으로서 헤스터를 굳세게 만들어 주었다.>
어느 날 숲 속에서 ‘헤스터 프린’과 딸 ‘펄’과 조우한 딤즈데일.
<“나는 비참하오, 헤스터! 사람들이 내게 차라리 경멸과 증오를 퍼부어 주었으면 좋겠소.”>
<“헤스터,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오. 가슴에 떳떳하게 주홍 글씨를 달고 있으니 말이오. 나의 주홍 글씨는 남모르게 불타고 있소! 공허요! 죽음뿐이란 말이오!”>
헤스터는 딤즈데일에게 보스톤을 떠나 그 죄의식에서 벗어날 것을 권유하였으나 딤즈데일은 보스톤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딤즈데일은 죽음으로서 칠링워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된다.
죽기 전 군중에게 고백하는 딤즈데일.
<“뉴잉글랜드의 주민 여러분!”목사는 큰 소리로 외쳤다. 사람들의 머리위로 울려퍼진 그 목소리는 높고 엄숙하고 위엄이 있었으나 한없이 떨렸으며, 양심의 가책과 고뇌의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듯 절규에 가까운 쉰 목소리였다. “나를 사랑해 주셨던 여러분! 나를 성스러운 인간이라고 생각해 주셨던 여러분! 보십시오! 이 세상의 큰 죄인이 여기 서 있습니다. 나는 겨우, 이제야 겨우, 7년 전에 이 여인과 함께 섰어야 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 여인의 굳센 팔은 여기까지 내가 겨우 기어온 힘보다 훨씬 강한 힘으로 이 무서운 순간에도 내가 쓰러지지 않도록 부축해 주고 있습니다. 헤스터가 달고 있는 주홍 글씨를 보십시오! 여러분들은 누구나가 다 이것을 보고 몸을 떨었습니다! 이 여인이 어디 있든지, 비참한 업고를 짊어진 이 여인이 안식처를 구하기 위해 어디엘 가든지 이 글씨는 그 둘레에 공포와 소름끼치는 혐오를 자아내는 기분 나쁜 빛을 던져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또 한 사람의 죄악과 치욕의 낙인에는 몸을 떠는 일이 없었습니다. 낙인은 그 사나이에게도 찍혀 있었습니다! 이제 죽음을 앞두고 그 남자는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다시 한번 헤스터의 주홍글씨를 봐 주십시오! 이 불가사의하고 무서운 주홍 글씨도 그 남자의 가슴에 찍혀 있는 표적에 비하면 한낱 그림자에 불과하며, 그 남자 자신의 빨간 낙인도 그의 깊은 가슴속이 타고 있는 상징에 불과한 것입니다! 죄인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의심하는 분이 이곳에 계십니까? 보십시오! 그 심판의 무서운 증거를 보십시오!“>
<헤스터는 그의 몸을 안아 일으켜 그의 머리를 자기가슴에 기대게 했다. 로저 칠링워드 노인은 생기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옆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내게서 도망쳤구나!”노인은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기어코 내게서 도망쳤구나!”“하느님이 당신을 용서하시기를 바라오.”목사는 말했다.>
헤스터 프린의 옷가슴에 분홍색으로 새겨진 주홍글씨 'A'.
그것은 조선(朝鮮)시대 도둑질한 사람의 이마에다 먹물 문신을 새기는 형벌인 자자형(刺字刑)과 같은 것이었다.
도둑놈은 예나 지금이나 어김없는 범죄자일 테지만, 목사와 통정하여 아이를 낳은 것이 언감생심 그와 같은 자자형(刺字刑)이 가당한 죄인인가.
아하, 그러나 미친 시대 미친 세상에서는 그러하였다.
메인 플라워호에 실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건설한 청교도의 고장, 미국 동북부 뉴잉글란드의 17세기는 야만의 시대였고 보스톤은 야만의 고장이었다.
그 시대 미국 뉴잉글란드 지방을 지배하고 있는 정교일치(政敎一致)의 세상에서 헤스터 프린은 죄악을 전파하는 전염병자로 취급되었다.
간통한 여인이란 사람들의 접근을 스스로 꺼려야 했던 그야말로 불가촉(不可觸) 죄인이었던 것이다.
칼비니즘이 지배하는 삼엄한 기독교 근본주의.
유부남과의 간통죄를 범한 처녀를 향하여 투석사형(投石死刑)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인간이란 개별적인 존재이다.
개별이 집단으로 화하면 곧잘 인간은 사라지고 만다.
집단이 지향하는바 이념, 그 이념에서 발현되는 집단적 광기란 무서운 것이다.
하물며 그 이데올로기가 종교인 경우에야 말할 것도 없다.
집단으로서 해석될 존재가 아닌 인간이건만 집단 속의 개별이란 얼마나 왜곡된 모습이란 말인가.
'군거적 순종의 원리'에 의하여 개별적인 것들은 그 집단적 세계관에서 도피할 수가 없다.
오로지 순종만이 있을 뿐이다.
개별적 삶의 기반이 바로 그러한 집단의 가치관이란 토대위에서 형성되었으니, 바로 곁에서 자유가 빤히 손짓하고 있건만 그 자유를 향하여 나아 갈수가 없는 것이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집단에 파묻히려는 인간성의 속성, 그리하여 인간이란 슬픈 존재이다.
작금 다양함과 개별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미국이라지만, 근세의 미국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나라였다.(미국의 죄업은 흑인노예제도 뿐만이 아닌 것이다)
불과 반세기전인 1950년대 미국사회를 공포에 떨게 하였던 매카시즘 또한 그러하였으니.
‘아서 밀러'는 매카시 광풍을 빗대어 희곡 ‘크루서블’을 썼는데, 그 소재가 바로 16세기 뉴잉글랜드 지방의 마녀사냥이었지 않은가.
‘권위주의적 종교’와 ‘인도주의적 종교’.
에리히 프롬의 저서 ‘'정신분석과 종교'에서 정신분석적 측면에서 구분한 종교 형태이다.
'인도주의적 종교'는 초기불교, 유교, 이사야, 예수, 소크라테스, 스피노자의 교리, 기독교의 신비주의, 프랑스 혁명전의 이성종교등을 들고 있다. <사도시대 원시기독교는 인도주의적 종교였으나 역사가 진행하는 동안 권력에 의하여 권위화(authoritarianism化)되어 버렸다.>
이슬람교와 캘비니즘은 대표적인 권위주의적 종교이고.
<"칼빈 신학에서는 불복종이 가장 큰 죄이다. 신의 모습이 완벽하면 할수록 그만큼 인간은 불완전하게 된다. 인간은 자신이 지닌 최상의 것을 신에 대해 투사해야 하며 그에 따라 그 자신은 더욱 빈곤해 진다. 이제 신은 모든 사랑과 모든 지혜와 모든 정의를 소유하게 된다. 인간은 자신이 추구할수 있는 모든 완전한 것을 신에게 투사해야 하므로 그는 이러한 미덕을 박탈 당하고 공허하고 빈곤하게 된다. 그는 애초에 왜소함의 감정에서 시작하였지만 이제는 완전히 무력한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가 지니고 있는 모든 힘은 신에게 투사되어 버림으로 이제는 인간이 지닌 모든 것이 신의 것이 되며 그에게 남겨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가 자기자신에게 접근할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신을 통해서이다. 그는 자기 것을 약간 돌려받기 위하여 신의 자비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것이 신의 자비나 은총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선한 그 어떤 것도 지니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자신을 죄인처럼 느끼게 되며 자기를 인간적으로 만들어 줄수 있는 유일한 것을 되찾기 위해서는 신의 자비나 은총을 통하여야 한다. 신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얼마나 철저하게 사랑을, 지혜를 잃어 버렸는가를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자신에 대한 신뢰, 사랑, 이성의 힘에 대한 체험을 갖지 못한다. 그는 구별한다. ‘세속적인 것’과 ‘신성한 것’으로. 그러므로 더욱 세속적인 인간의 행위는 사랑이 없어지고 인간 본성은 부정적이 되며, 신성한 것은 자신의 무기력, 무가치성을 강조하여 죄인임을 거듭 의식하여 용서를 간구하게 되는 것이다. 용서의 간구가 거듭됨으로 그는 고통스러운 딜레마에 더욱 빠지게 되고 더욱 죄악감을 촉발하여 자기의 신을 찬양하고 드디어 자신을 되찾을 가망은 더욱 적어지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 '정신분석과 종교' 중에서->
헤스터 프린.
그녀의 정신은 '군거적순종의 원리'에 순응하는 정신이 아니었다.
7년 동안, 위선으로 인한 자의식으로, 또한 종교적 죄의식의 고통 속에서 헐떡였을 딤즈데일과는 다르다.
놀랍도록 꿋꿋한 헤스터 프린.
그녀는 딤즈데일과의 사랑을 추호도 후회하지 않았다.
죄의식을 강요 당하였지만 헤스터 프린의 모럴의식은 언제나 떳떳하였다.
그녀의 영혼은 맑고 건강하였으며 그녀의 가치관은 조금도 주눅들지 아니하였다.
헤스터 프린의 옷가슴의 분홍글씨 'A'.
분홍글씨 ‘A'의 자자(刺字)는 그녀에게는 소중한 사랑의 표상이었으며 또한 무한한 자유의 증표였는지도 모른다.
헤스터 프린의 '부끄러움'이 아닌 헤스터 프린의 '떳떳함'의 글자.
집단성에 저항하는 개별성의 글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러러 고개를 드는 진짜배기 크리스찬의 글자.
그것이 바로 분홍글씨 ‘A'가 지닌 징표(徵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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